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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11화 (211/1,497)

〈 211화 〉1부 10장 14

결국 이전과 마찬가지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청화단은 공중정원과 지하왕국을 사이에 두고 상당한 이견이 갈렸고, 나는 졸지에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놓였다.

"어느 쪽이든 히드라가 없으면 안 돼."

"그러면 히드라 잡아 와야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간부를 찾아 정령으로 각성시키는 것은 내 몫이었지만, 의도치않게 부하들에게 강요를 당하고 있다.

결국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토지-부동산에 관한 문제는 전문가의 고견을 들어봐야했고, 마침 내게는 돈 버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돈 귀신 한 명을 잘 알고 있었다.

"무슨 바보같은 생각이에요?"

막 잠들려하던 사람을 깨워서 그런 지 표정이 상당히 좋지 않다.

나는 은유하가 하루에 얼마나 자는 지 알고 있기에 숙면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회의가 너무 길어져서 새벽이나 되어서야 끝나버렸다.

"공중정원? 지하왕국?"

"그래. 일단 가능은 한데 허무맹랑한-"

"당장하죠. 알아봐둔 땅은 있어요?"

"...은유하?"

졸려서 반쯤 감겨있던 은유하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다 잡아와요. 정령이라는 것들. 하는 김에 광속성 먼저. 지하든 하늘이든 도시 하나 새로 만들어보자고요. 어떻게 그런 깜찍한 생각을. 고객님, 그 도시 이름은 당연히 유하 시티 겠죠?"

"......."

"고객님. 지금 이럴 게 아니라 서울 한 바퀴 둘러보는게 어때요? 서울 빙 돌면서 가장 짓기 편한 곳을 찾는 거예요."

"지, 지금?"

"그럼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요?!"

은유하는 오히려 내게 역정을 냈다.

"지금 잠이 중요해요?! 유하 시티의 첫 삽을 뜨게 생겼는데!"

"......."

은유하의 이런 면모는 처음 본다.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그렇게 만들고 싶어할까. 생각해보니 오마케에서도 은근히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은유하."

"왜요?"

"누구는 청화대학교 이름을 짤랐으면서, 누구는 도시 이름을 유하 시티로 하는 게 적절하다고 보는가?"

"훗, 고객님."

은유하는 머리칼을 뒤로 흩날리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천가을 모르게 얼마 찔러드릴까요?"

"뒷 돈 안 받아."

"칫."

은유하는 뇌물까지 써가며 나를 유혹하려했다. 하지만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도시의 이름을 사고 팔 단계는 아니었다.

"애초에 오늘 이야기를 한 내용이다. 앞으로 차근 차근 생각해도 늦지 않아."

"고객님. 미루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자, 빨리 가죠."

은유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두 팔을 벌렸다. 고급스러운 금빛의 실크 잠옷이 펼쳐졌다.

"지금?"

"당연하죠."

"새벽 3시인데?"

"새벽 3시에 자는 사람 깨워서 마음에 불질렀으면 책임 지셔야죠?"

괜히 깨웠나 싶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도저히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알았다. 그럼 흑염룡을 불러서-"

"고객님이 직접 안아주시면 되잖아요?"

"......?"

나는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은유하는 당찬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고객님께서 저를 안으셔서 직접 서울 날아가시면 되지 뭘 흑염룡까지 불러요. 신서울에 새벽부터 사이렌 울리게 하실 거예요?"

"그건 아니지. ...하는 수 없나."

나는 은유하의 옆으로 다가가 안아들었다. 은유하는 자연스럽게 내 목에 팔을 감고 다리를 휘저었다.

"그러면 가요. 저도 이거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누구한테 들었길래?"

"천가을이요."

"......."

천가을은 왜 이상한 걸 퍼트리고 다닐까. 나는 그래도 은유하를 꽉 끌어안으며 베란다 문을 열었다. 밤 공기는 차가웠지만 내가 마력을 동원해 차단했다.

"은유하."

"네?"

"따로 원하는 거 있나?"

"음…."

은유하는 내 목덜미를 감은 손가락을 살살 간질이며 눈웃음을 쳤다.

"서울 갈 때는 인간형으로, 신서울 돌아올 때는 괴인형으로."

"...알겠다."

나는 그대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은유하는 화들짝 놀라 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네가 본체로 이렇게 스킨십 하려는 건 의외군."

"이게 다 뇌물이에요. 유하 시티를 만들기 위한 포석이죠. 어때요?"

은유하는 자신의 잠옷을 슬쩍 들어올리며 나를 유혹했다. 그답지 않은 육탄공격에 나는 정신이 아뜩해졌다.

"너 뭐 잘못 먹었니?"

"아뇨. 마음가짐을 달리 한 거예요. 암만 생각해도 지분 0.0625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자신이 고작 100 중의 1 중에서 또 1/16이라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은유하는 과감하게 신체접촉을 하며 나를 유혹하려 들었다.

"풉."

"왜 웃어요?"

"아니. 그도 그럴게."

나는 은유하를 살짝 내 몸으로 잡아당겼다. 은유하의 옆가슴과 내 가슴이 맞닿아 형태가 뭉게졌다.

"이 몸이 훨씬 큰데 그걸로 어필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세, 세상에는 작은 것에 대한 수요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고요!"

자신의 컴플렉스를 찔린 것에 대해 은유하는 내 가슴 앞에서 펄쩍 뛰었다. 새벽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로 마음을 바꿔먹은 건지, 은유하는 이전보다 훨씬 제 진솔한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귀엽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긴요. 귀엽다고 했죠? 그건 저에 대한 말일까요, 아니면 제 가슴에 대한 이야기일까요? 전자면 엄청 고마운데, 후자면 저 조금 화날 것 같거든요?"

"......마음대로 생각해라."

새벽이라 감수성이 풍부해진 건 은유하만 그런게 아닌 모양이다. 나는 은유하를 더욱 강하게 끌어안으며 서울 하늘을 빙 둘렀다.

"고객님, 고객님. 그럼 저도 화답해드릴게요."

밤이라서 그런가.

은유하의 눈동자는 별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제가 고객님 정말로 사랑하는 거 아시죠?"

"......무슨 의미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흥. ...하암."

은유하는 그 말을 끝으로 내 품에서 졸린 듯 하품했다. 나는 괜시리 은유하에게 미안해졌다.

"밤늦게 미안하다. 이능력 끊고 쉬고 있을 때인데."

"고객님이 직접 오셨는데 어떻게 계속 자겠어요. 하암."

은유하는 졸릴 눈을 깜빡였다.

"나중에 자면 돼요. 나중에."

"자면 다른 인형들과 연결도 끊어지지 않나?"

"7명 전부다 낮잠 재우면 되죠, 뭐. 아침까지 시간 좀 걸리면...후아암, 다 늦잠 재우면 되고. 원래가 다 자율인형들이니까 반나절 정도는 입력된 명령대로 생활할 거니까 괜찮아요."

은유하는 자신의 목덜미를 가리켰다. <인형술사>의 이능력을 보조하기 위해 항상 달고다니던 보조연산장치는 이미 신서울의 침대 머리맡에 두고 나온지 오래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은유하가 '온전한 은유하'로서 쉬는 유일한 시각. 나는 그걸 알면서도 굳이 은유하를 찾아와 의견을 물었다.

"...서울 갈 때 까지 자라."

"......하필 잘 시간에 오셔서…흐으…."

은유하는 내 품에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유성의 운영을 위해 하루에 2시간도 채 잠을 자지 않는 여자니,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것도 상당히 무리를 한 셈이나 다름 없었다.

"......사랑이라."

은유하가 어떤 의미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는 긴가민가했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 사랑에 답해줄 수 없었다.

대주주는 욕심쟁이라서 단 한 주도 넘겨주려 하지 않았다.

"미안하고, 고맙다."

나는 내 품에서 잠든 은유하가 편안히 잠자기를 바라며, 느긋하고 편안한 움직임으로 새벽 하늘을 날았다.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 * *

<6월 28일 오전 10시, 여의도 청화단 아지트 라운지.>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공중정원이랑 지하왕국 둘 중에 어디를 할 지 고민하신다고."

잠에서 깨어난 은유하는 아주 멀쩡한 정신으로 청화단 간부들의 앞에 섰다.

저혈압인 그를 위해 내가 예전에 하던 것처럼 머리를 감겨주었고, 은유하는 그 어느때보다 말짱한 정신으로 화두를 던졌다.

"네. 참고로 각 간부들의 의견은...."

하늘파. 등대, 하늘성, 흑염룡.

땅파. 팬텀, 궁성, 아키택트.

인천 깍두기 파, 조덕배.

"난 왜 이 모양이냐?"

"어디든 상관없다고 했잖습니까."

"조덕배 표가 캐스팅 보트가 될 줄이야. 끄응."

일단 간부들은 다수결의 원칙을 존중했다.

그래서 이처럼 3:3으로 의견이 갈리면 항상 조덕배가 문제였으나, 그는 나를 엿먹이는 것 말고는 전혀 관심이 없어 항상 무효표를 던지곤 했다.

"그렇다고 저걸 설득하기는 싫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단장님께 말씀드리는 게 낫죠."

"한 가지 오해하는 게 있는데."

나는 나를 가리키며 그들에게 단언했다.

"내가 가진 표는 17표다."

"독재 아닙니까?"

"피닉스 식 민주주의지. 내가 만든 조직인데 뭐 어떠냐."

피닉스 이하 만인이 평등하다. 나는 청화단이라는 조직에서 태양인 동시에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걸? 아주 지 잘난 맛에 살고 있어. 혼자 있으면 또 삽질이나 할 거면서."

"......의견을 말하지 않는 회색분자에게는 발언을 허하지 않으마. 입 다물어라, 조덕배."

"읍읍읍읍!!"

조덕배가 난리를 피우는 걸 코어로 바꾸어 소파에 던진 나는 외부 고문인 은유하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래서 은유하, 청화단의 스폰서이자 최대 투자자인 네 의견은 어떠냐?"

"간단해요."

은유하는 손뼉을 치며 화사하게 웃었다.

"둘 다 만들면 되잖아요?"

"......."

명쾌한 답이었으나, 간부들은 여전히 표정이 밝아지지 않았다.

"그게 됩니까?"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간단해요. 기존의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는 거죠."

은유하는 내게 양해를 구해 마도기어에서 서울의 지도를 꺼내 홀로그램으로 펼쳤다. 간부들은 마도기어에 눈독을 들였지만, 아직은 나밖에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지역이 가지는 상징성, 그리고 이미 기존에 만들어진 인프라. 그 모든 걸 종합해서 간단히 정리하면, 제 의견은 이렇습니다."

은유하는 홀로그램 속 3D 지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서울의 모습에 간부들은 감탄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와. 대박."

"이건...조금 끌리는군."

간부들은 저마다의 시각에서 은유하의 계획을 판단하며 의견을 덧붙였고, 은유하는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자신의 뼈대에 살을 덧붙였다.

"단장, 이거 됩니까? 공중폭포."

"석하랑에게 맡기면 되겠군."

"보스, 이건? 야명주 대신 태양광 다는 건?"

"내가 하면 된다."

나는 그들이 펼치는 상상력을 정령적 시각에서 구체화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이거 하면 돈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제가 사비를 들여서라도 만들 거예요. 도와주실 거죠, 하늘성? 아키택트?"

"물론이네."

"이렇게 까지 밥상 차려졌는데 안 하면 등신이지."

인간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했고, 세 사람은 본격적으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도시를 구축해내기 시작했다.

약 30분.

임시로나마 우리는 새로운 거점이 될 도시의 뼈대를 구축해냈다.

"고객님."

"그래."

"저 잘했죠?"

"물론."

"그러면 둘 중에 하나는 유하 시티로 하는 거예요?"

"......마음대로 해라."

"흐흐, 끼야아아악!! 성공이다!"

은유하는 어느때보다도 방방뛰며 기뻐하고 있었다. 간부들은 일변한 은유하의 분위기에 상당히 어색해하기도 했지만, 나는 은유하가 왜 저렇게 변했는지 진즉에 눈치챘다.

"......저게 <인형술사>의 진짜 모습이다."

내가 은유하를 신서울에서 데려오는 동안, 은유하는 인형들을 조종하는 헤드기어를 진즉에 벗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니까 평소에 너희들이 보던 모습은 은유하의 1/7이라는 거지. ...인형이 7개니까 1/8인가? 아무튼. 모든 인격을 관리하는 총괄자로서의 은유하."

"그럼 지금은?"

"100%. 완전체 은유하다."

"고객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제가 조금 부끄럽거든요?"

은유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척 들어올렸다. 유하 시티라는 이름을 따는 그는 지금 상당히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퍼펙트 은유하라고 불러주시겠어요?"

"......안되겠군.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빨리 의식 나눠라. 특히 그...."

나는 차마 말하지 못하던 것을 돌려 말했다.

"...네 속에 있는 망나니만이라도 당장 인형으로 넘겨."

"......."

유성가 개망나니, 은유하.

<협상가>, <블랙마켓 회장>, <유성그룹 회장> 등 내게는 은유하의 여러 가지 면모를 먼저 보게 되었지만, 원래는 순서가 반대였다.

"무슨 소리야. 망나니라니? 그거 연기 아니었어?"

"......."

천가을의 추궁에 은유하는 침묵했다. 진실을 알고 있는 나 때문인지 은유하는 내 눈치만 슬슬 보고 있었다.

"그거 연기 아니라 자기 본성-"

"고객님!!!"

갑에게 혼났다.

퍼펙트 개망나니 은유하의 도움 아래, 청화단은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위해 각자 맡은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정했다.

내게 주어진 역할은 인간의 판타지같은 공상을 현실로 구현화하는 인재와 소재를 구하는 것.

7월 1일.

나는 새로운 정령을 영입하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

...하루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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