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화 〉1부 10장 12
피닉스가 광고 촬영을 하고 간 다음날 오전.
백희아는 모종의 루트를 통해 화권 이승형의 면담 요청을 받았다.
집정관의 뒤를 이은 집행관으로서 히어로와 면담을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가 어째서 고전적인 수법인 '편지'를 써서 '따로 옥상에서 보자'고 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백희아도 궁금했다.
청화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길래 청화가 샤오린에게 안겨 옥상을 뛰어내리면서까지 협회 건물에서 도망쳤는가에 대한 해답은 이승형에게 있었다.
백희아는 만만의 준비를 마치고 이승형과 독대했다. 이승형이 어떤 고백을 하더라도 논리적인 언변으로 정중한 거절을 하리라 마음 먹었다.
"청화단에서 저를 영입하려고 했습니다. 괴인 <피닉스>가 직접."
"당신도요?"
둘 사이에 사소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백희아나 이승형이나 둘 다 피닉스에게 '자신과 손을 잡자'는 제안을 받기는 했고, 둘은 단호히 제안에 거절했다.
"역시 화권이네요. 정의감이 넘치시네요."
"역시 집행관입니다. 악의 유혹에 단호히 뿌리치시다니."
둘은 피닉스의 타깃이 된 것에 한탄했다. 광검을 죽이고 소나무 부대를 학살한 빌런이지만, 그 강자가 자신을 요구한다는 것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겁니다."
"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둘은 손을 맞잡으며 동지가 되었다. 사람보는 눈이 확실하다고 자부하는 백희아는 이승형의 영웅적인 면도와 실력에 신뢰를 느꼈고, 이승형은 백희아의 마력에서 풍겨오는 진솔한 의념에 확신했다.
누구 하나 믿기 힘든 신서울, 히어로 협회에서 둘은 서로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동료가 되었다.
"서울을 여러모로 발전시키는 건 이해하지만…."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의철 조카라고 해서 오해했는데…."
"백 총리 외손녀분이라고 해서 오해했는데…."
""역시 대화를 하니까 통하는 군요!!""
정의감 넘치는 둘은 다시금 악수하며 환하게 웃었다. 자판기에서 마실 음료를 산 둘은 피닉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장시간 논의를 시작했다.
"힘으로 제압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SS급이잖아요?"
이미 이승형은 주먹다짐을 나눠 패배했다. 피닉스가 진심으로 상대하지 않았음에도.
"설화령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마도 안 될 거예요. 제 직감인데, 설화령은 왠지 몰라도 그와 야합을 했어요. 스승의 원수와 어째서 손을 잡은 건 지 몰라도."
"중국에서 다닌 걸 생각해보면…. 끄응."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결국 둘은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했다.
"역시."
"이야기를 나눠서 설득하는 방법밖에 없겠습니다."
결국 말로서 해결하는 방법이 최고였다. 둘은 머리를 맞대고 빌런 피닉스를 갱생시킬 방법에 대해 논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또다른 스캔들을 불러일으키게 된 건 나중의 이야기.
"역시 미인계를 사용할까요? 이승형 씨, 죄송하지만 당신이 한 몸 희생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피닉스는 저를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백희아 씨는 어떻습니까? 그 반지...푸른 불꽃이 들어있군요. 피닉스 님께서 주신 거 아닙니까? 혹시? 아무 관계가 아니라는 건 저를 속이려는 게-"
"마, 맞는데 오해하지마요! 다짜고짜 강제로 끼우고 가버렸단 말이에요!"
둘이 서로 완전한 신뢰를 쌓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 * *
우리는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흑전갈 소동으로 얻은 코어와 큐브에 취해, 우리는 신서울의 이면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하루동안 정보를 수집하고 그 후에 대책 논의를 하자. 간부들은 각자의 방면에서 정보를 물색했고, 나는 조용한 곳에서 홀로 정신을 가다듬으며 원작과 현 상을 비교해야 했다.
'서울로의 이주가 조금 빨라졌을 뿐이다. 특별히 달라진 건 없어.'
주인공 일행이 서울을 복구하면서 자연히 사람들은 서울로 하나 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아키택트가 건물들의 원형을 복구하지는 않았지만, 원작의 뒷배경에서도 큰 이슈가 되었다.
'이럴 때는 참 현실적이란 말이지.'
게임 속 세상이 아닌, 사람들 하나하나가 살아숨쉬는 세상이었다. 0과 1의 코드로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 각자 저마다의 생각과 사고로 움직이는 세계.
'지휘관이었을 때가 그립군.'
"그때는 전투만 생각하면 됐는데 말이죠."
복잡한 정치나 경제, 사회 문제에 신경쓸 필요 없이 오로지 괴수를 죽이거나 잡기만 하는 전투에만 신경쓰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히로인들과 피말리는 사랑 싸움을 할 일도 없었고, 오롯이 괴수와 괴인을 때려잡는 것만 생각하면 만사 오케이였다.
'그래서 각 방면으로 간부들을 모았지.'
청화단 조직 운영을 위한 등대 김지화.
정치와 행정 문제를 맡길 하늘성 류천성.
도시 재건 인프라 구축을 위한 아키택트 제임스 리.
셋은 내가 인천에서 올라올 때부터 눈독을 들인 핵심 인재였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 또한 생각해야했다.
청화단의 간부들은 이 세계에서 수십년을 살아온 이들이며, 그들의 이해관계는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는 것을.
***
<다음 날, 6월 27일 오후 4시. 여의도 청화단 아지트 라운지.>
오후 2시부터 시작된 회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의 주제는 단 하나 뿐이었지만, 그 하나의 주제 만으로 간부들은 감정의 골까지 생기기 직전까지 언쟁을 벌였다.
주제.
서울에 유입되는 인구를 지금처럼 제한할 것인가, 아니면 제한을 풀어버릴 것인가.
"중간은 없어요. 한 번 받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밀려올테죠. 우리는 선택을 해야합니다."
나는 일방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래서 간부들을 모아 회의를 하고자 했고, 휴식을 취하기 전에 각자가 가진 의견을 물었다.
팬텀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서울에 사람들이 올라오는 흐름은 막을 수 없어. 사람들이 광검이 있는 신서울과 석하랑이 있는 부산으로 모여든 것 처럼, 청화와 군신이 있는 서울로 모여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아무리 시위대 중에 프락치같은 놈들이 숨어들어서 선동한다고 해도, 시위대 중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가족을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그거야 네 부모님을 서울로 모시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
"부정은 안 해. 나쁠 건 없잖아? 솔직히 조금 그렇잖아. 내가 뼈빠지게 일해서 서울에 집 하나 구했는데 그걸 되찾을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해봐. 욕심 나지 않겠어?"
천가을은 서울로 들어오는 이들의 제한을 풀기를 원했다.
"안 돼. 그러면 서울에 있던 사람들은 뭐가 되냐?"
아키택트가 가장 격하게 반대 의사를 펼쳤다.
"너야 신서울로 내려가서 안전하게 살았을 지 몰라도, 우리는 진짜 힘겹게 살아남았거든? 원래 동작 지하에 있던 사람들 10만 명이었어. 6년동안 4만 명이 굶어 죽거나 괴수들한테 잡아먹혔다고. 그럼 이 정도 호사는 이제 누려도 되잖아? 막말로 서울에 있는 건물들 누가 다 복구했어? 청화단에서 복구했잖아? 그걸 왜 원래 주인이라고 하는 놈들에게 바쳐야 해? 나는 반대야. 이산가족 상봉하듯 사람들 선별해서 서울로 보낼 수도 없잖아?"
아키택트는 신서울의 이들이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이성적으로는 건물들을 내어줘야한다고 이해하고 있었지만, 감정적으로는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저도 동감합니다."
등대 또한 아키택트의 의견에 거들었다.
"부동산에 대한 소유권 문제는 나중에 차차 해결한다고 해도, 서울에 들어오는 놈들 중 일부 빌런들이 섞여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서울수복작전에서 도망쳤던 땅개 같은 놈들이요. 정말 기상천외한 루트로 서울에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 놈들이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섞여서 서울로 들어오면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히어로들이 개입할 겁니다. 청화단은 점점 활동 영역이 좁아질 거고요. 일단 현상금이 올라간 빌런 조직 아닙니까?"
"그건 자네가 현상금이 걸려서 걱정하는 겐가?"
"당연하죠. 하늘성 당신도 서울 시장이 되었으니 현상금이 안 붙었지, 1순위였을 겁니다."
등대는 방문객에 섞여 들어올 악의 넘치는 무리를 경계했다. 뒷문이 아닌 정문으로 들어오는 자들을 청화단에서는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흠흠. 지금 의견은 청화단의 간부이자 시장으로서 하는 말일세."
하늘성이 자신의 의견을 펼쳤다.
"어찌됐든 도시가 발전하려면 인구가 늘어야 해. 서울이 어디 지방 도시이던가? 인구 천만의 도시였어. 못해도 백만은 정착해야 서울도 옛 기능을 되찾을 거야. 단장이 서울을 통해 구상하는 계획도 최첨단 코어 산업을 기반으로 한 신도시가 아닌가. 6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해. 애초에 지금 있는 6만 중에서도 불만있는 자는 많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단 말이지."
"빨간 띠 머리에 두른 시위대가 시청 앞에 모여서 허구한날 데모하고 그럴텐데?"
"사람 사는 세상인데 그 정도야 어쩔 수 없지. 공권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청화단의 간부이지만 대외적으로는 행정가인 만큼, 하늘성은 빌런과 정치인 중 정치인 쪽에 치우친 의견을 내세웠다. 그 말도 틀리지 않은 정론이었다.
찬성파, 천가을과 류천성.
천가을은 인도주의 적 관점에서 헤어진 이들이 상봉해야함을 주장했고, 류천성은 행정가의 입장에서 인구 유입을 통한 도시 재생을 주장했다.
반대파, 김지화와 제임스 리.
김지화는 서울에 빌런들이 섞여들어올 수 있음을 지적했고, 제임스 리는 자신이 재건한 건물의 소유권은 서울의 주민들에게 있음을 강하게 주장했다.
"나한테 의견묻지마라?"
"애초에 기대도 안 했다."
깍두기, 조덕배. B급으로 올라 발언권은 얻었으나, 그는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모두가 맞는 말을 하고 있기에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우리는 다른 간부인 유이신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회의장에 도착한 유이신은 자리에 앉자마자 워치에 녹화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에는 흑염룡이 입에서 작은 불을 내뿜어 제 의사를 표현하고 있었다.
[새로운 신도는 언제나 환영.]
흑염룡 곽용우는 서울의 주민들이 늘어나는 걸 환영했다. 전투원인 만큼 특별히 깊은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저는 반대입니다."
마지막으로 유이신이 제 의견을 밝혔다.
"히어로 협회는 서울에 반드시 지부를 차릴 겁니다. 그 지부는 이곳 여의도가 될 겁니다. 아무리 청화단이라고 할지라도 아지트 앞마당에 히어로들이 드나드는 걸 눈뜨고 볼 수는 없지요. 결국 저희의 활동 영역도 크게 제한될 겁니다."
유이신은 악의 조직 간부로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서울에 유입될 주민들보다 서울로 올라올 히어로들을 꺼리는 눈치였다.
"딱 절반 씩 갈렸군."
결국 회의는 평행선을 달렸다. 간부들의 의견은 3:3으로 팽팽히 갈렸고, 누구 하나 쉽사리 양보하지 못하는 난항에 이르렀다.
"결국 내가 정해야 하는 건가."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마음이 편했다. 간부들끼리 감정의 골이 상하느니, 차라리 내가 모든 욕을 뒤집어 쓰는 게 훨씬 나았다. 어느쪽을 선택해도 쓰레기가 재활용도 안 되는 폐기물이 되겠지만.
그러니 제 3의 선택지를 꺼냈다.
인간의 사고로는 할 수 없는, 정령으로서의 시각으로.
"좋아. 그럼 이렇게 하지."
나는 원작을 답습하기로 했다.
"결국에 이 문제의 궁극적인 문제는 부동산의 소유권을 문제로 두고 있는 상황이다. 법적 분쟁을 가봐야 청화단이나 현재 서울 주민들이 질 게 뻔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법정 싸움으로 끝까지 몰고간다."
"은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인가? 변호인단이라도 꾸려보려고?"
"아니. 재판은 무조건 패배하게 되어있어. 선의철이 그쪽으로는 지독하게 조정해뒀을테니. 중요한 건 재판을 진행하는 동안 걸리는 '시간'이다."
내가 아키택트에게 말하려다 말았던, 그리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사람과 물건만 있으면 얼마든지 실행 가능한 계획에 대하여 밝혀야 했다.
"아키택트, 네 속성이 뭐지?"
"그야 당연히 지속성이지."
"...부동산에서의 토지 범위가 지평선 기준으로 지하 1km 아래와 지상 1km 위를 초과하는가?"
"...아닐 걸?"
모두의 시선이 하늘성에게 돌아갔다.
"거리의 문제가 아닐세. 토지는 일종의 구역이야. 위아래를 전부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니."
"그렇다면 필요한 구역은 은유하를 통해서 전부 사버리면 그만인가."
나는 서울의 부동산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인 동시에, 다음 회의 안건을 꺼냈다.
"......공중정원이랑 지하왕국 중에 뭐가 더 낫다고 생각하나?"
회의는 더 격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