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205화 (205/1,497)

〈 205화 〉1부 10장 8

층간 소음을 일으키던 두 부부를 제압한 뒤.

나는 죽여버린 광검을 부활시켰고, 아키택트가 복구한 내 방에서 두 부부와 진솔한 상담을 해야했다.

"우선 미안해요. 한창 달아오르고 있을 때 방해한 거."

"아냐. 주책맞게 뛰쳐오른 우리 잘못이지."

"......망가뜨려서 미안하군."

내가 먼저 사과를 하니 두 부부도 순순히 사과했다.

그들은 막 쉬러갔다가 지진을 느끼고 온 아키택트의 표정을 보고 바로 허리를 숙였고, 아키택트는 영혼없는 얼굴로 건물을 수리한 뒤 아예 동작 지하토굴로 도망쳐버렸다.

우리는 한참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가장 먼저 광검이 말문을 열었다.

"그 나체 여자애.... 진짜 군신인가?"

"네. 환룡이 괴인으로 만들어서 영체가 되긴 했는데, 같은 등급인 SS 눈에는 영체가 보여요. 반투명한 형태로."

샤오린은 광검 또한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가 본 SS급이라고 해봐야 나와 석하랑 두 명이 정령 뿐이니, 정령은 자신을 볼 수 있다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걔도 참...."

"사람마다 취향은 다른 법이니까요. 그쪽 아저씨 취향이 로리콘인 것 처럼."

"죽을련?"

"정정하죠. 빈유취향."

나는 손을 들어 아나스타샤가 쏜 물줄기를 낚아챘다. 또 아키택트의 신세를 질 수 없으니 빠르게 물줄기를 증발시켜버렸다.

"자꾸 남의 방 파괴하면 진짜 화낼 거예요. 당신들이 어지럽히는 방 이렇게 깨끗하게 치워주는 곳이 여기말고 다른 곳이 있을 것 같아요?"

"...아마 없겠지?"

"음. 그건 고맙군."

출입하는 순간부터 정신을 잃게 만드는 농후한 살냄새는 SS급인 나조차도 기가 질리게 할 정도로 강렬했다.

가을이 촉수로 다 치워버리거나, 유이신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종일 청소를 한다거나, 내가 불꽃으로 아예 싹다 소멸시키고 환기를 해도 흔적이 남아있었다.

"성생활을 즐기는 건 딱히 뭐라고 할 생각 없는데, 그걸 치우는 입장을 생각하세요."

"그치만...."

"20년 동안 밀린 거 채우려면 매일매일 해도 모자라단 말이다."

중년에 이르면 성욕이 왕성해진다고 해도 이 정도까지 심할까 싶었다.

"안 지쳐요?"

"괴인이 지칠리가."

"얘, 나 원탁이야. S급 이능력자란다?"

흑염룡은 눈감고도 씹어먹을 피지컬의 소유자들이 오직 성행위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참 대단하다 싶었다.

"안 질려요?"

"아니? 짜릿해. 늘 새로워."

"루살카 때는 하지 못했던 체위들도 이제는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얼마나 좋니?"

정녕 이들 부부의 머릿속에는 운우지정밖에 없다는 말인가. 나는 통탄함을 금치 못하며 부부를 격침시킬 한 마디를 꺼냈다.

"서울에서 원탁 회의하면 석하랑도 올 텐데, 어쩔 생각이에요?"

"윽."

"......."

광검과 루살카의 안색이 굳어졌다.

"언제까지 도망만 치고 다닐 생각이죠?"

"그야 우리도 만나고 싶기야 한데."

"......용기가 나질 않는다."

석하랑이 북경에서의 일을 처리하고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두 부부는 부리나케 짐을 챙겨 부산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둘이서 머무르는 숙박 시설을 밤꽃으로 테러하다가 부산 전역의 블랙리스트로 찍힌 것도 이유의 하나였지만, 둘은 석하랑과 혹시나 마주칠까봐 아예 부산에서 떠나 올라온 것이다.

"하긴, 한 명은 태어나자마자 죽이려 들었고, 다른 한 명은 12년 동안 버렸으니 죄책감도 들겠죠."

"너무 적나라하게 이야기하지 말아줄련?"

"그래도 9년 정도는 제자로 키웠는데...."

"그럼 석하랑 부를까요? 날아오면 아마 10분도 안 걸릴텐데? 잠깐만요. 호출할게요."

나는 마도기어에 손가락을 슬쩍 올렸고, 두 부부는 내 옆으로 달려와 내 팔을 양쪽에서 잡았다.

"얘, 너 지금 미쳤니?"

"쓰렉, ......."

"부르기 애매하면 쓰레기라고 해요. 익숙하니까."

"쓰레기. 우리에게 시간을 줘라. 아직 5년하고도 반이 남았다며?"

"하아."

광검과 루살카는 여전히 석하랑과 만나기를 꺼려하고 있다. 석하랑도 두 부부-부모가 먼저 다가올 때 까지는 일부러 찾을 생각이 없었다. 그건 내가 석하랑에게 직접 물어서 확인했으니 진짜 그의 본심일 것이다.

"5년 반 정말 빨리 지나갈 수 있어요? 석하랑 그러면 누가 챙기라는 거예요?"

"너 있잖니?"

"여보?"

광검이 눈썹을 찌푸렸다. 아무리 금실이 좋은 부부라도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이다.

"왜? 서방님. 얘가 좀 정신이 미쳐서 막 엄청 나쁘고 그런 조건은 아니잖아."

"그래도 이런 난봉꾼에게 하랑이를 맡길 수는 없잖나?"

"서방님. 인간의 상식으로 판단하면 안 된단다."

루살카가 열 손가락을 펼쳤다.

"애초에 우리는 인간이 아니란다. 그럼 인간으로서 판단하는 건 조금 문제가 있지 않겠니?"

"그러면?"

"나는 말이야."

루살카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다독였다.

"이 촉새가 얼마나 많이 가랑이를 벌리든 상관없어. 그게 수많은 여자든, 아니면 남자 한 명이든."

"......거 표현 좀."

"내가 틀린 말 했니?"

"그럼 루살카."

광검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떨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살짝 긴장감이 서려있었따.

"너, 너도 혹시 다른-"

"서방님. 나는 지금 인간이 됐잖아?"

루살카는 입술위에 손을 붙였다가 광검의 입술 위로 옮겼다.

"그럼 인간의 법도를 따라야지. 어머, 서방님은 그러면 다른 여자에 눈독을 들이는-"

"절대로 그런 일 없다. 나는 일평생 너 하나 뿐이야."

"사랑을 과시하는 건 좋은데 제 방에서는...."

"쓰레기."

"얘."

두 부부가 넓디 넓은 내 침대를 보고 눈에 불을 켰다.

"침대 한 번만 빌려주면 안 되겠니?"

"엄청 푹신해보이네. 어머, 이건 유성 거 아니네? 유럽 쪽 메이커 같은데."

이미 두 부부는 내 침대를 점거해버렸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은유하가 공수해준 거예요. 자기네 침대보다 그게 더 좋을 거라고."

"은 회장이 그걸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텐데? 본인이 직접 그랬다고? 남의 걸?"

"광검. 진실을 하나 알려드려요?"

나는 세상 사람들이 알면 기함할 진실을 하나 두 부부에게 알렸다.

"은유하 방에 유성 제품은 하나도 없답니다."

"허."

"......정말이니?"

"다른 곳의 메이커 중에서 최고급만 선별해 자기가 직접 사용해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유성의 품질을 그만큼 끌어올린다는 논리죠."

말은 번지르르하지만 과연 실상은 어떨까. 때로는 모르는 게 더 나은 가혹한 진실이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 침대 말이에요. 제가 마력으로 조정까지 해뒀으니 절대로 망가지거나 시트 꺼지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 그러면?"

"......쓰는 건 좋은데, 저 가을이 광고 끝내고 서울 돌아올 때 까지 못나가게 생겼는데 괜찮아요?"

"어머, 어머. 혹시 부끄러워하는 거니?"

벌써부터 침대 위로 다이브를 한 루살카는 옆으로 누운 채 골반을 두드리는 것으로 유혹을 했고, 당연히 그 유혹은 내가 아닌 남편인 광검을 향해 있었다.

"남의 정사를 옆에서 구경하겠다니, 역시 쓰레기답다."

광검은 자연스레 루살카의 뒤에 몸을 붙이며 백허그를 했다. 손이 움직이는 모양새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벌써부터 한 몸이 된 것 같았다.

"저기요. 그 침대 제 거 거든요?"

"여기서 하는 거 허락해줬잖니. 흥."

"아직까지 해도 된다고 말 한 적 없는데요."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나."

"......이럴 때는 참 말은 잘 해요."

그 말빨로 석하랑에게 사과할 말이나 고민하라고 질타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나는 가을이 돌아올 때까지 밀린 일이나 처리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얘. 혹시 소리 마음껏 질러도 돼?"

"......결계 쳐드릴게요. 하아. 젠장."

나는 마력을 튕겨 결계를 펼쳤다. 내 방은 별세계가 되었고, 이 안에서 나오는 그 어떤 소리도 바깥으로 통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저 녀석, 끝까지 안 나가는 거 봐서는 우리 행위에 상당히 관심이 많은 모양이야. 루살카. 어디 한 번 보여주자고."

"그래. 아예 그냥 다 벗어버릴까? 우리가 얼마나 잘하는 지 보여주는-"

"......후우, 더이상은 못참겠군."

나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내리치며 의자에 몸을 뉘였다. 두 부부는 나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했고, 나는 머그컵에 딸기우유를 부어 그들에게 들어올렸다.

"어디 한 번 하고 싶은대로 해보세요. 제가 마음껏 품평해드릴테니."

"어머. 잘난 척 하는데, 너 이런 거 해본 적 없지 않니?"

"과연.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루살카, 보여주자고."

부부가 침대위에서 나뒹굴기 시작했다. 나는 딸기우유를 삼키며 느긋이 그들의 정사를 구경했다.

"쯉, 하아, 어때? 부럽지? 그래도 서방님 안 줄거다. 흥."

"나도 저거랑은 죽어도 하기 싫다. 평생 너와 할 거다, 루살카."

부부는 수치심도 없는지 알몸으로 나를 능욕하려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행위에 하품만 나왔다.

"다 이유나랑 해본 체위구만."

"뭐...."

"라고...?"

"아, 헛소리예요. 신경쓰지말고 계속해요."

결국 나중에는 내가 답답해서 몇 가지 체위와 테크닉을 알려줬다.

광검과 루살카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아는 우수한 학생들이었고, 내 설명을 열심히 듣는 둘을 위해 나는 나도 모르게 신이 나서 신명나게 입을 놀렸다.

"그 때는 위에서 찍어내리는 식으로. 그렇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해야 그 체위에서는 안쪽까지 깊숙히 들어가. 이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교배 프레스'라는 건데...."

나는 이 날을 기점으로 부부의 카운셀러가 되었다.

...어째서?

* * *

피닉스가 두 부부의 성생활 코치가 되어버린 그 시각.

가을은 가을대로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예, 촬영 끝! 이야, 청화 양 배우해도 되겠어요? 처음치고 대단한 걸요?!"

"예, 예...."

가을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14년차 배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NG를 열 번 가까이 내버렸고, 중간중간 연기에 집중이 깨져서 목표로 했던 한 시간은 훌쩍 넘겨버렸다.

"......."

청화의 몸으로 연기를 해서? 그렇지 않다. 가을의 이능이 변신이기는 해도, 가을은 변신한 대상의 이능력까지 복사할 만큼 변신 상대의 모습을 완벽히 재현해낸다.

가을 본인에게는 문제가 없었지만, 가을의 평정심을 잃게 만드는 외적 요인이 하나 있었다.

"저...."

머리를 하얗게 염색을 한 이승형이 가을에게 다가왔다. 바로 눈앞의 이 남자가 가을이 연기에 있어서 '처음 치고는 제법'이라는 평가를 받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혹시 잠깐 둘이서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워후우, 화권 님 벌써부터 데이트 신청 하는 거야?"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이 휘파람을 불며 장난을 쳤다. 가을의 눈이 찡그려지자, 승형은 손사래를 치며 난감해했다.

"아뇨. 데이트 신청은 아니고 결투 신청이요."

"뭐?"

"개인적으로 흑염룡에 관심이 많아서요. 그 왜, 설화령도 흑염룡을 쓰러뜨렸잖아요? 저도 혹시나 가능할까 싶어서."

승형은 허공에 섀도우 복싱을 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한창 선남선녀의 썸을 기대하던 스태프들은 순진무구한 승형의 표정에 실망한 눈초리로 해산했다.

"...여기서 얘기하기는 좀 그렇고, 제 대기실로 가시죠."

"잠깐만요."

백희아가 일어나려는 청화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 분이랑 둘이서 방에 들어가는 건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무슨 문제요?"

"그야...."

백희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이승형도 백희아의 말뜻을 알아채고 살짝 얼굴을 붉혔고, 가을만이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마저 일어섰다.

"걱정마요. 둘이 아니니까."

가을은 비어있는 공간을 가리켰다.

파밧. 공간이 일렁거리며 검은 장발을 길게 늘어뜨린 푸른 전포의 여인이 나타났다.

"군신?! 언제부터?!"

"한참 전부터 있었습니다만."

샤오린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다시 사라졌다. 백희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가을은 바로 몸을 돌려 대기실로 향했다.

"킁킁, 어디서 이상한 냄새 안 나?"

"네 코가 이상한 거다. 으, 여기 누가 물 흘렸어?"

지나가던 스태프들이 촬영이 마무리된 현장을 정리하는 사이, 승형은 협회의 카페로 달려가 음료 세 잔을 주문했다. 커피는 금방 나왔고, 승형은 그걸 챙겨 '청화 대기실'로 들어갔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침대에는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승형은 문을 닫고 들어와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마력을 흘렸다.

"여기요. 캬라멜마키아토."

"저 딸기좋아하는데요."

"그건 청화 양이고, 가을 씨는 아니잖아요?"

"칫."

가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승형이 건넨 커피를 받았다. 승형은 자신의 몫을 챙겼고, 나머지 하나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군신께서는...?"

"감사합니다."

샤오린은 재빨리 모습을 들어내 한 번에 캬라멜마키아또를 들이키고 다시 숨어버렸다. SS급 유령의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승형은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좀 다양하게 사오지, 왜 메뉴 통일한 거야?"

가을은 변신까지 풀며 본 모습을 드러냈다. 승형은 자신의 손에도 들린 커피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마음이 급해서요."

"흥. 언제 눈치챘어?"

"보자마자요. 마력이 다른 걸요."

"......사람을 마력으로 판단하는 변태가 여기 또 있네."

가을은 빈정거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좋아. 그래서 둘이서 보자고 하는 이유가 뭐야? 설마 또 미저리같이 굴려는 건 아니지?"

"이제는 가을 씨가 저 안 좋아하는데 계속 제 감정 밀어붙이는 건 민폐죠. 저는 그런 지질한 남자로 가을 씨 마음에 남고 싶지 않습니다."

"...누구처럼 지질하지 않아서 좋네. 좋아. 서로 서로 쿨해지자. 앞으로는 그냥 누나라고 불러. 그냥 친한 선후배 사이가 되는 거야. 오케이?"

"...왠지 느낌이 이상하긴 한데, 좋아요 누나. 친한 선후배."

승형은 쿨하게 가을이 제시한 관계를 받아들였다. 너무나도 쿨한 승형의 대답에 가을은 뭔가 꿍꿍이가 아닐까 의심했지만, 승형이 딱히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기색은 없었다.

"끙, 자꾸 누구랑 비교되게.... 너 만약에 내가 너 좋다고 하면 어쩔 거야?"

"진짜로 좋아하는 거라면 생각해보겠지만, 누나 그런 거 아니잖아요?"

"너 뭐 잘못 먹었니? 아니면 그 사이에 누구 다른 사람 마음에 품었어?"

"누나까지 저랑 청화 양 엮으려고 하는 겁니까? 나 참. 그런 거 아니에요. 청화 양에게 볼 일은 하나 있었지만."

"......뭔데?"

이성적 관계가 아니면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걸까. 가을이 긴가민가하는 사이, 승형은 헛기침을 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거신'에 대해서."

승형의 얼굴에는 확신이 넘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