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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83화 (183/1,497)

〈 183화 〉1부 9장 17

"백청영이라...."

희고 푸른 꽃.

꼭 누군가를 연상케하는 이름이었지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일단 마음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의심의 싹을 접어두고, 우선 큐브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좋아....요. 크흠. 그러면 백청영 군. 당신이 큐브를 알게 된 배경은?"

"간단합니다. 저는 모 국장의 심복이었으니까요. 모택평은 큐브에 관련된 일을 오직 제게만 맡겼습니다."

"모택평이? 아, 고독."

남들을 절대로 믿지 않는 모택평이 타인에게 큐브같은 중대사를 맡길 리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봉효-백청영의 심장에는 고독이 박혀있었다.

"예. 저 또한 국장에게 충성을 맹새했습니다. 그러니 저 스스로 고독을 바쳤죠. 설마 그게 샤오린을 죽이는 계기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지만."

"......환룡 덕분이네요."

"예. 주군 덕분에 동생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덤으로 환룡단의 단원들도."

백청영은 진심으로 환룡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만약 백청영이 내가 생각하는 '그'가 맞다면, 환룡의 곁에 두는 건 여러모로 위험했다.

죽일까. 하지만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죽이는 건 무리다.

"환룡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죠?"

"예? 큐브 얘기는...?"

"환룡, 사랑해요?"

"미쳤습...크흠."

백청영이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저도 모르게 욕지기까지 내뱉는게, 환룡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주, 주군은 분명 제게 새로운 삶을 이끌어주신 분입니다. 하지만 이성으로 생각한다? 어불성설이죠. 연심을 품어서도 안 되고, 애초에...."

백청영은 제법 진심으로 질색을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이상형은 그런 게으름뱅이가 아니라, 워커홀릭같은 커리어 우먼입니다."

"......."

나는 그의 진심을 듣고 확신했다. 백청영은 안전한 존재다. 환룡 루트를 끝까지 타본 이로서 보장하건데, 환룡은 게을러지면 게을러졌지 절대로 워커 홀릭이 될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면 환룡에게 충성하는 이유는?"

"그야 당연히 저를 모택평의 구속에서 깨워주셨기 때문이죠. 아.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백청영은 차를 홀짝여 목을 축였다.

"저는 제 능력을 믿고 인정해주시는 분의 아래에서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환룡께서는 제 능력을 인정해주시어, 전권을 일임하셨죠. 제가 마음껏 제가 가진 모든 걸 펼칠 수 있게끔."

"......이명을 생각하면 봉효라기보다는 공명에 가까운 것 같은데."

"제 우상입니다. 후후."

나는 딸기 쉐이크의 빨대를 휘휘 저었다. 환룡은 가을에게 흠뻑 빠져있고, 백청영은 환룡에게 충성을 바칠 뿐이니 호감을 느낄 리는 없다.

"음, 그러면 인정."

백청영은 안전하다. 나는 한 시름을 놓았다.

"미안해요. 조금 신경쓰이는 게 있어서. 큐브 얘기로 돌아가죠."

"예."

"우선 당신이 알고 있는 큐브의 위치, 한 번 말해볼까요?"

나는 소파에 몸을 묻으며 질문했다. 우선으로 입을 가린 백청영의 눈꼬리가 휘었다.

"시험하시는 겁니까?"

"그렇죠."

"좋습니다. 피닉스 님께 무엇을 인정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 능력은 아닌 듯 하니. 이걸로 인정을 받아보겠습니다."

"좋으실 대로."

나는 백청영에게 어디 한 번 떠들어 보라 손을 휘저었다. 백청영은 워치를 눌러 중국 전역이 나오는 스크린을 펼쳤다.

"제가 지금 파악하고 있는 큐브의 갯수는 총 다섯."

'헐.'

이 새끼 뭐지? 나는 평정을 가장하기 위해 쉐이크를 들어 쪼르르 마셨다. 백청영은 중국 내부에 세 개의 점을 찍었다.

"하나는 상해에 보관중이던 무신의 유해. 추정입니다만, 아마 무신께서 이적(異敵)을 쓰러뜨리면서 그 품에 큐브를 안고 잠드신 게 아닐까 사료됩니다만."

"맞아요. 그건 제가 챙겼어요."

"...어쩐지. 쩝."

백청영은 아쉬운 듯 혀를 찼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왜 큐브를 사용하지 않은 거죠?"

"사용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아. 오케이. 계속하세요."

"예. ...또 하나는 이곳."

백청영은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뤄양-그러니까 낙양이라고 알려진 도시로부터 동쪽에 떨어진 산맥 부근을.

"정답."

"역시 맞군요. 조직원들을 보낼 때마다 목이 달아나서 긴가민가 했습니다."

"캘리펠라가 지키고 있는 곳이죠. 아마 흑사갈 잡으면 이벤트 생길 거예요."

"예? 흠, 뭐, 아무튼 동창의 정보력 덕분에 큐브는 확인했습니다. 모택평도 알고는 있지만 얻을 수 없는 것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고 있었죠."

"자기가 나섰다간 자기 목이 달아날테니. 푸흐흐. 좋아요, 그러면 다음은?"

중국 내의 세번째. 유감스럽게도 그건 내가 익히 알고있는 것이었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예."

"흑사갈이었습니까?"

"......흠흠."

백청영은 우선 너머에서 나를 추궁하듯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것 만으로도 내 생각을 읽은 건지, 백청영은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그렇군요. 저는 지파룡인 줄 알았습니다만...."

"왜 지파룡이라고 생각했나요?"

"S급 괴수 하나가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동정호 깊숙한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큐브를 지키고 있기에 그런게 아닐까 싶었죠."

"유감이네요. 걔도 환룡이랑 같은 과에요."

"젠장."

백청영은 자신의 오판에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러면 이대로 있으셔도 되는 겁니까? 흑사갈에게서 큐브를 챙겨야, ...아뇨. 이미 챙기셨군요. 그러니 이렇게 여유가 넘치시는 겁니다. 그렇죠?"

뭐지 진짜. 얘 이능력이 고독같은 게 아니라 독심술인가?

"표정에 다 드러납니다."

"......저 나름 포커페이스 잘 유지하는데요?"

"앞으로 절대 도박하지 마십시오. 거짓말에 상당히 재능이 없으시군요."

백청영은 혀로 내 심장을 후벼팠다. 신랄하기까지 한 말에 나는 심사가 뒤틀렸지만, 그의 말을 귀담아 듣기로 했다. 들어서 나쁠 건 없으니.

"예. 챙겼어요. 그리고 이미 없앴죠."

"혹시 어디에 사용하셨습니까?"

"정정. 정확히는 흑사갈의 둥지를 부수면서 태워버렸어요. 이 세계에서 오직 저만이 큐브를 없앨 수 있죠."

"......끄응."

백청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긴가민가했지만, 나는 뻔뻔하게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단지 '어떻게 없앴는 지'에 대해서 진실을 누락했을 뿐이다. 알릴 필요도 없었고, 본인도 알리고 싶지 않아했으니.

"큐브의 효과를 쓰려면 하나만 있으면 돼요. 두 개씩이나 있으면 괜히 차원문 열리고 난리가 날 테니까요."

"그렇습니까? 그럼 어쩔 수 없군요. 이미 무신에게서 하나를 확보하셨다고 하시니."

"예. 그런 거죠."

이 세계에서 큐브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는 이는 없다. 백청영은 순순히 내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서 중국에 세 개. 나머지 둘은 어디에 있죠?"

"평양입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 패스."

"예? ...취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백청영은 내가 큐브의 소재를 알고 있는데도 가만히 놔두는 것에 상당히 의아한 듯 했다. 얼핏 생각하면 평양에서 생성되는 괴수들의 코어를 긁어모으는 것보다, 큐브를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니까.

"당장은 안 되요. 나중에. 때되면."

"아끼다 뭐 된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과수는 제철에 수확해야 가장 맛잇는 법이에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백청영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휘휘 저었다. 중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를 지나쳐, 유럽까지 이른 그의 손은 유럽 중앙에 멈췄다.

"어."

"왜 그러십니까?"

"아뇨. 운명이다 싶어서."

마침 다음 행선지는 유럽으로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큐브의 위치와는 다른 곳에 있었다.

"여기에도 큐브가 있어요?"

"예. 정확히는 모택평이 동남아에서 몰래 챙긴 걸 비자금으로 넣어둔 겁니다."

"과연. 물건 숨기는 데에는 저기 만큼 안전한 곳도 없죠."

다만 하나가 더 늘어난다면 어떨까. 실제로 원작에서 간부나 정령이 제어하지 않는 큐브가 여럿 반응을 해서 차원문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베른 게이트. 동시에 두 개의 큐브를 획득한 원작 중후반의 해외 원정 퀘스트였다.

"어. 잠시만요. 그러면 좀 꼬이는데...."

큐브 셋 중의 하나가 모택평의 것이라고 한다면, 나머지 하나는 다른 누군가가 비자금처럼 창고에 넣은 물건이란 말인데. 갑자기 애매해졌다.

"......저도 계좌를 하나 만들어야겠네요."

"횡령하실 생각이십니까?"

"나쁜 의도는 없어요. 다 세계 평화를 위한 거니까."

행방을 모르는 큐브를 찾으려면 무슨 수든지 써야했다. 그 과정에서 전세계의 비자금 절반이 소멸하는 슬픈 일이 생기기야 하겠지만, 결코 내가 잘못한 건 아니다.

차원문은 자연현상. 어디까지나 천재(天災)일 뿐.

"좋아요. 그러니까 모택평의 비밀 계좌라는 거죠."

"예.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출장 계획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다행이다. 모택평 안 죽이기를 잘 했네요."

"어차피 죽었어도 피닉스 님이라면 은행 자체를 폭파시켜서라도 얻으실 요량 아니셨습니까?"

"그렇긴 하죠. 근데 그건 좀."

그게 가장 빠른 길이기는 하다만,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아주 무서운 이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그리고 그 수많은 이들 중 하나가 바로 내 협력자 중 한 명인 돈귀신이다.

"...더 아는 큐브 없어요?"

"예. 그게 끝입니다."

아쉽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무려 다섯의 큐브를 알고 있다는 게 대단할 따름이었다. 나는 그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큐브. 내가 여의도에서 촉수꺼비를 죽이고 얻어, 천가을을 구하는데 사용했다.

두 번째 큐브. 내가 대전에서 땅을 파내고 챙겨, 창염과 만나는데 사용했다.

세 번째 큐브. 평양에 있으나, 뉴클리언을 쓰러뜨릴 전력이 아직 부족하다.

네 번째 큐브. 내가 무신의 유해에서 빼서 천가을에게 맡겼다.

다섯 번째 큐브. 내가 흑사갈의 둥지를 무너뜨리고 챙겼다. 끝 마무리는 여러모로 아쉬웠지만, 창염과의 데이트에 정말 잘 써먹었다.

그리고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큐브의 소재가 판명되었다.

하나는 뤄양의 동쪽, 과거 '호로관'이라고 불리는 곳. 그곳에 S급 괴물 캘리펠라가 지키고 있다.

하나는 유럽, 스위스의 은행. 모택평이 비자금처럼 맡겨놓은 큐브는 모택평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챙기지 못할 것이다. 청송이 콘크리트로 지하에 파묻어 숨겼다면, 모택평은 과감하게 은행에다 맡겨버린 것이다.

"사람은 안 믿는 양반이 시스템은 또 잘 믿네요. 신기하게."

"거기다가 돈을 맡기는 사람들의 욕망을 믿은 거겠죠.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블랙마켓이 뜨고 있다고는 하지만, 현물을 맡기기에는 여전히 그곳만큼 좋은 곳이 없죠."

"그렇네요. 알겠어요. 중요한 이야기는 이걸로 끝입니다."

코어, SR-6974, 큐브.

그리고 <봉효> 백청영의 이름.

알고 싶은 건 모두 알았다. 나는 내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행방이 묘연한 큐브의 위치를 확정해 준 그를 치하하고자, 그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당신의 능력은 알겠어요. 그러니 이제부터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볼게요."

"예. 무엇입니까?"

백청영은 들뜬 얼굴로 자세까지 바르게 하며 내 질문을 기다렸다. 그를 인정한다는 말이 그렇게도 좋을까싶어 우스웠지만, 과연 저 미소가 어디까지 망가질까 기대되었다.

"부하의 잘못은 상사가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백청영은 사색이 되었다. 머리가 똑똑한 양반이니 내가 말한 의도를 금방 깨달았을 것이다.

"하, 하지만 잘못은 부하가 저질렀잖습니까? 그렇다면 부하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청영은 말까지 더듬으며 당황했다. 나는 그가 당황하는 모습이 썩 재미있어서, 그를 계속 놀려먹기로 했다. 애초에 이럴 의도로 화두를 던진거고.

"예. 그래서 부하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봉효> 백청영. 당신이 저를 엿먹이려 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요."

"......뭐든지 달게 받겠습니다."

"뭐든지? 지금 뭐든지라고 했나요?"

"예. 설령."

백청영은 눈을 질끈 감으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제...알이 부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거 깨먹을 생각 없어요. 당신은 그저 이것만 하면 돼요."

나는 백청영에게 나의 계획을 속삭였다. 앞으로 3주 정도 뒤에 있을 일이지만, 내 말을 듣자마자 백청영의 눈은 경악에 물들었다.

"이, 이런 미친...!"

나를 눈앞에 두고 상스러운 소리까지 내뱉을 정도로 백청영은 당혹스러워했다.

"왜요? 당신은 그저 모택평의 변화를 대중에게 알려주면 돼요. 간단하죠?"

"사람이 어떻게 그런 참담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저는 정령인데요."

"......아,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걸 먹일 생각을!"

백청영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몸을 떨었다. 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럼 당신이 먹겠어요? 선택하세요."

나는 그에게 선택권을 줬다.

자신이 먹을지.

아니면 환룡이 먹을지.

그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결과는 7월 1일, 그 '음식'이 출시되는 순간 전세계에 알려지리라. 그저 기대될 뿐이었다.

"푸흐흐. 그러고보니 그거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나는 기억을 더듬어, 그의 목소리와 말투를 흉내냈다.

"세상에 ....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냥."

"우웩."

"......죄송합니다."

나는 빠르게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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