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화 〉1부 9장 15
흑전갈은 코어를 제외하면 A급 중에서도 중상~상 정도의 스펙을 가진 괴수였지만, 그 수가 워낙에 많아 코어대로 S급으로 분류된 괴수다.
중국 서쪽의 내륙지방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나타날 정도로 등장 빈도가 잦은 괴수였으며, 흑전갈들을 사냥하고 얻는 코어는 중국이 코어 무역에서 상당한 흑자를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대했다.
혹시 어딘가에 흑전갈 둥지라도 있는 거 아닐까? 사람들은 그 둥지를 털어 무수한 코어를 수급하기를 바랐지만, 중국 중앙당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생각이 없었다.
1주일에 S급 코어 하나가 나오는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중앙당은 신강의 거대한 괴수 반응에 대해 쉬쉬했고,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안심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그런데 그 둥지가 무너진 모양이다. 흑전갈들은 크기가 작은 새끼부터 시작해서 기존에 알려진 녀석보다 더 거대한 녀석까지, 천차만별의 크기로 빠르게 동쪽으로 전진했다.
마치 무언가를 쫓기라도 하는 것 마냥.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사막을 넘어 숲길에 이른다. 땅을 뒤덮는 전갈 무리의 등장에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있던 남자가 손에 들고있던 담배를 떨어뜨렸다.
"으, 으아아아악?!!"
괴수 경보는 진작에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파룡과 물지기라는 S급 괴수가 등장하는 바람에, 남자는 자신의 워치에서 울리는 괴수 경보가 또 그놈들이겠거니 하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뭐, 뭐야! 이 미.... 어?"
사각 사각 사각 사각
흑전갈들은 민가를 지나쳤다. 그들은 남자가 사는 도시 따위는 삽시간에 망가뜨릴 수 있는 힘과 마력이 있었으나, 그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민가를 피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통제된...군대?"
여왕벌의 명령을 따르는 개미 군세 같다고 느낀 것은 남자의 착각일까. 지평선을 뒤덮는 흑전갈들은 오직 동쪽으로 진군하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것 같았다.
"이, 일단 신고!"
남자는 워치를 영상 촬영 모드로 바꾸어 흑전갈들을 겨눴다. 남자를 비롯해 베란다에 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가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흑전갈들의 이상행동에 외려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 흑전갈들은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남자는 저도 모르게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만 반짝이고 있는데...?"
설마 흑전갈들이 태양을 쫓아갈 리는 없고. 남자는 그저 기이할 뿐이었다. 흑전갈들이 이동하면서 내던 지진은 점차 잦아들었고, 남자는 혼이 빠진듯 우두커니 서서 그 뒤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집문서라도 도둑맞았나...?"
그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남자는 영상을 급히 당과 협회에 제보했다.
흑전갈들의 대대적인 이동이 공식적으로 널리 알려진 순간이었다.
* * *
오라클은 꿈을 통해 예언을 한다.
불과 반 년, 아니 석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예언은 무려 적중률 99%에 달하는 천기누설에 가까웠고, 실제로 원탁은 그의 예언에 따라 주요 요인들을 파견하며 괴수들을 퇴치했다.
"흐억, 허, 허억!"
오라클은 침대에서 거친 숨을 헐떡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하얀 실크 셔츠는 땀에 흠뻑 젖어있었고, 오라클의 분홍색 머리칼은 살짝 색이 바래있었다.
"미, 미친...!"
오라클은 가슴을 두드리며 호흡을 골랐다. 여전히 꿈에서는 하늘을 뒤덮는 푸른 새 때가 나타났고, 오라클은 그 새들이 각양각색의 방법으로 지구를 멸망시키는 걸 눈앞에서 바라만 봐야 했다.
"물, 물...."
오라클은 목이 타서 냉장고로 달렸다. 협회에서 제공한 특실에는 냉장고가 따로 달려 있었고, 오라클은 물통에 담겨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
"푸우웁!"
술이었다. 공업용 알코올이라도 때려박은 듯 쓰기만 했고 맛도 없는 술이었다. 오라클은 금방 그 물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떤 미친 놈이 물통에 소주를 부어놓은 거야?!"
범인은 이전에 방을 자주 쓰던 모 술꾼이었지만 오라클은 알 턱이 없었다. 일단은 술도 물은 물이니, 그걸로라도 목을 축인 오라클은 숨을 헐떡이며 침대 끄트머리에 주저앉았다.
"후아, 하아. 젠장. 미친."
오라클은 꿈에서 본 광경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어지간한 빌딩보다도 더 거대한 여인의 몸이 폭발하고, 그 안에서 득실거리던 바퀴벌레같은 전갈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괴수들은 하나같이 날카로운 독침을 번들거리며 무언가를 쫓고 있었다.
"이, 이거 분명 곧 일어날 일이야!"
오라클은 급히 원탁을 소집했다. 언제나 그렇듯 가웨인 경이 먼저 호출을 받고, 곧이어 속속들이 오라클의 긴습 소집에 응했다.
[또 뭔가 꿈을 꿨니? 너 요즘 잘 안맞으니까 그냥 잠이나 자는 게-]
"전갈이야!"
오라클은 자신이 꿈에서 본 내용을 간략히 읊었다. 소집에 응한 원탁들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아나스타샤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중국에 흑전갈이라고 하는 S급 괴수가 있어. 운장이 자주 잡았던 걸로 알고 있단다.]
[운장은 지금 뭘 하는 거야?]
동아시아를 담당하고 있는 세 원탁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석하랑이야 왠 동네 샐러리맨같은 남자를 데리고 회담장으로 들어갔다고 하니 그렇다 치고, 어째선지 운장과 질풍객은 호출에 응하지 않았다.
[운장도 같이 회의에 참가한 거 아니었어?]
[모릅니다. 청화 양을 따라서 물지기를 잡으러 간 걸수도 있죠.]
[그럼 질풍객은?]
[...차라리 질풍객을 빼고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일단 중국측에 연락해! 젠장, 흑전갈인지 뭔지, 수천 마리가 쏟아진다니까!"
오라클은 침대 시트를 팡팡 내리치며 짜증을 부렸다. 원탁에 소속되어 있으나 전투력은 없는 그로서는 항상 이렇게 대신 싸워달라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지, 진정하세요. 오라클. 지금 중국은 엄청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혼란? 벌써?"
[아니란다. S급 괴수 둘이 날뛰고 있어. 흑염룡이랑 물지기. 지금 다들 그거 구경 중이었단다.]
아나스타샤가 영상을 공유했다. 블랙드래곤과 번개고릴라가 수면 위에서 펼치는 괴수 대격돌에 헐리우드 스튜디오의 사주로서의 영혼이 들끓었으나, 우선 당장은 문제의 흑전갈들을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이, 일단 협회에 긴급대비 요청을...."
[왜 그렇게 급하냐. 언제 일어날 지 모르는 예언을 가지고.]
[제로니모.... 오라클의 예언은 절대적입니다.]
[요즘 헛발질 장난 아닌데 절대적이긴 무슨. 그냥 개꿈아니냐?]
제로니모가 오라클을 도발했다. 최근들어 오라클의 예언이 아예 틀리거나, 타미잉을 놓치는 일이 번번하기에 생긴 불신이었다. 하지만 오라클은 굽히지 않았다.
"너, 흑전갈들 쏟아지면 어쩔 거야?!"
[허, 그러면 내가 지난 번에 얘기했던 네 영화에 무상으로 출연한다. 애초에 S급 괴수인 흑전갈이 수천 마리가 나온다는게-]
위이이잉. 위이이잉.
긴급 시그널이 울렸다. 제로니모는 사색이 되었고, 오라클은 입꼬리를 비틀었다가 머리를 쥐어 뜯어며 절규했다.
"젠장! 기뻐할 때가 아니잖아! 어디야!"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위성 영상이 해당 지점으로 급히 돌아갔다. 수없이 늘어나는 붉은 점의 수에 원탁의 영웅들은 숨이 멎고 말았다.
"......S급이 몇이야?"
오라클의 예언은 맞아 떨어졌다.
단지 그 예언이 그가 잠에서 깨어난 지 불과 10분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의 예언은 여전히 완벽하고 절대적이었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삭!
흑전갈들은 사방으로 퍼져나가다가 한쪽을 향해 땅을 달리기 시작했다. 원탁은 급히 그 방향을 살폈다.
"동쪽!"
흑전갈들은 그저 동쪽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그 동쪽의 끝에는 중국의 수도, 북경이 있었다.
* * *
흑사갈이 흑전갈 대군을 이끌고 나를 쫓아오건 말건.
사람들이 흑전갈의 대이동에 놀라 나자빠지건 말건.
나는 내 마력의 흔적을 흘리며, 아주 느긋한 날개짓으로 창염을 안고 중국 상공을 횡단했다.
[괜히 대륙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제법 널지 않나?]
"흥, 그래봐야 멸망할 세계. 어차피 다 파괴될 세상이에요."
[그걸 막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거지. 그러니 나와 싱크로, 하지 않겠나?]
"당신, 싱크로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거예요?"
창염은 내 턱을 아래에서 손가락으로 툭툭 밀며 심통을 부렸다. 나는 창염을 안아든 손에 힘을 주며 그의 몸을 흔들었다.
[너와 내가 일심동체가 된다는 얘기지.]
"당신과 내가 서로 100% 공감할만한 일이 뭐 있겠어요? 당신 딸기도 싫어하면서."
[......좋아하려고 노력중이다. 노력 중이야. 그래서 기회만 되면 마시고 먹으면서 익숙해지려고 하는 거 아닌가.]
"흥. 그래봐야 아무 소용없어요. 저도 제 기호 정도는 바뀌니까. ...갑자기 왜 멈춰요?"
창염이 내 갑옷을 툭툭 건드리며 이동을 재촉했다. 하지만 나는 창염이 말한 말에 날개짓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기호가 변했다고? 뭘 원하지? 말만 해라. 지구에서 구할 수 있는 거면 얼마든지 구해주마.]
"......비밀이에요. 궁금하면 알아맞춰 보시던가~ 흐흥."
[또 퀴즈놀이인가. 하아. 사람을 정말 열받게 만드는 군.]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날개를 움직였다.
[괜찮다. 어차피 네 몸으로 아무거나 먹다보면 반응이 오겠지. 그래. 이번에 중국에서 일이 끝나면 뷔페라도 가야겠어.]
"그 음식 엄청나게 많이 나온다는 거기요? 후후, 한 번 열심.... 아. 잠깐만. 당신 그래서 딸기 뷔페는 언제 갈 생각이에요?"
창염이 나를 다그쳤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창염이 노려보는 시선을 피했다.
[......아직까지 만들어진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있나. 대신 이건 약속하지. 7월 1일. 그 때 네게 엄청난 선물을 주마.]
"뭔데요?"
[비밀이다.]
"......그냥 서로 하나씩 패 까는 걸로 할까요? 말해요. 당장. 찔러버리기 전에."
창염이 손톱을 날카롭게 세우며 내 갑주를 박박 긁었다. 검은 갑주에 흰 손톱자국이 깊게 박혔지만, 나는 내 선물을 말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신 힌트를 하나 주기로 했다.
[또다른 정령을 공략하는 열쇠가 함께 나오는 날이기도 하지. 흐흐.]
"......???"
창염은 내 말을 못알아듣는 듯 했다.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이며 창염을 토닥였다.
[너무 신경쓰지 마라. 그냥 너는 내 안에서 즐기기만 하면 돼.]
"......설마 이상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죠? 그렇고 그런 짓."
창염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까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목의 갑주가 찌그러졌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내가 너를 두고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나.]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잘 넘어가시던데요. 천가을부터 시작해서 은유하, 석하랑, 샤오린, 거기에 이제 환룡까지. 어젯밤에 잊었어요? 당신 거의 홀라당 넘어갈 뻔 한 거?"
[...그건 인정하지. 잘못하면 천가을에게 홀릴 뻔 했어.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일편단심이다.]
"누구한테요?"
[너.]
"......."
창염은 또다시 침묵했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나는 그저 내 생각을 계속 읊었다.
[아마도 내가 다른 여자에게 반하는 순간이 '나'라는 존재의 끝일 터. 걱정마라. 나는 결코 변하지 않아. 졸지에 어장관리나 하고 여자들 마음 가지고 노는 쓰레기가 된 건 조금 유감이지만.]
"그러신 분이 샤오린 SR-6974는 그렇게 보고싶어 하셨어요? 네?"
쿡쿡. 창염이 내 가슴을 손톱으로 찔렀다. 나는 그게 양심이 찔리는 것 같아 조금 많이 아팠다. 봉효에게는 필요없다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사실 창염이 말하는 것 처럼 보고 싶기는 했다.
"봉효 앞에서 말한 건 다 허세죠? 사실은 보고싶어서 미치겠죠?"
[...이스터 에그를 알게 됐는데 안 보고 넘어갈 수는 없지. 너도 궁금하지 않나? 세간의 평이 그러한 것을. '샤오린의 영상이 게임에 수록되었다면 창염의 피닉스는 2위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이게 봉효 놈 코어죠? 자, 바로 환룡한테 가요.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영상이길래 그런 평가가 붙는지, 직접 봐야겠어요."
창염은 동쪽을 가리키며 나를 재촉했다. 아닌 척 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이 '1등'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모양인지, 창염은 자신과 샤오린이 비교당했다는 것에 상당히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그러면 슬슬 속도를 좀 높여볼까. 생각보다 흑사갈 놈의 속도가 빠르군.]
"큐브를 빼앗겼으니 당연하죠. 불쌍한 아이. 그 큐브가 벌써 사라진 것도 모르고. 쯧."
[그 큐브 흔적도 남김없이 태워버린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그 큐브 여자랑 데이트 하는데 써먹은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요."
[.......]
"......."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런 관계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역시 나는 창염이 마음을 돌려먹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정말로 싱크로 할 생각 없나.]
"예. 죽어도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죽이세요. 그러면 당신의 모든 제약이 풀리게 되고, 당신 스스로도 신화에 오를 수 있을테니까."
창염은 내 속을 긁으며 도발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그 의도를 따를 생각이 없다.
[아직까지 시간은 많으니 차차 생각하도록 하지. 그러면 곧 북경에 도착할텐데, 슬슬 들어가봐야 하지 않나?]
"흐흥, 글쎄요. 아직 완전히 잠들기까지는 시간 좀 남은 것 같은데."
창염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내 귓가에 속삭였다.
"모처럼 이렇게 나왔는데 조금 더 얘기하자고요.... 네?"
여전히 창염은 이야기나누는 걸 좋아했다. 나는 창염을 더욱 끌어안으며 날개짓에 속도를 올렸다.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글쎄요. 아. 저 빼고, 1순위 빼고, 저 다음으로 보고 싶은 히로인 누구 있어요?"
[이유나.]
나는 즉답했다. 창염의 표정이 사라졌다.
"왜?"
[제일 신세를 많이졌으니까. 여러 의미로.]
"......변태."
창염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내 게임 플레이 과정을 기억으로 읽었을테니, 내가 이유나와 어떤 행위를 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어디서 얼마나 했는지도.
"그러면 지금 당장 가서 이유나 불러서 하지 그래요?"
[걔 지금 미성년자라 안 돼.]
"미성년자 아니면 했다 이거죠? 푸흐흐."
[......그런 말이 아니잖나. 나는 지금 그저-]
"와, 진짜 변태네요. 솔직히 얘기해봐요. 아카데미 양성소 만드는 것도 이유나랑 김누리 불러오려고 하는 거잖아요? 개수작 부리려고."
[아니 그걸 개수작이라고 하면 안 되지. 어디까지나 진엔딩 도달을 위해 히로인들을 안전한 곳에 두려는 거라고.]
"와~ 남의 몸으로 미성년자 후리려는 범죄자가 여기있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나는 북경에 도착할 때까지, 창염의 놀림감이 되었다.
"푸흐흐. 그래서 진짜 속마음을 말해봐요. 거짓말 하면 죽여버릴 거니까. 솔직히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예요? 진짜 솔직히 얘기하면-"
[너.]
"......."
[당연히 너지. 내가 너랑 그 짓 한 번 해보겠다고 2천억 버리고 이렇게 됐-]
푹.
아.
치명타 터졌다.
나는 북경에 도착할 때 까지, 날개 한 쪽을 잃을 파리마냥 비실거리며 중앙당 당사에 몰래 잠입해야했다.
도착하기까지 창염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망쳤다.
"큐브 하나 써먹고 이런 데이트라니, 최악이다...."
창염의 의식이 가라앉고, 피닉스가 된 나는 좌절했다.
너무 솔직하게 얘기했나. 다음에 큐브로 꺼내서 만날 때는 어쩌지. 화를 풀어줘야 할 입장에서 빡치게 만들면 어쩌자는 말인가.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이미 저지른 건 어쩔 수 없는 일.
나는 마력을 가다듬고 대기실로 들어오는 이들을 반겼다. 석하랑, 하유준, 그리고 모택평.
"어서와라. 석하랑, 은유하. ...그리고 환룡."
그리고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청화까지.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조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