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77화 (177/1,497)

〈 177화 〉1부 9장 11

당했다.

아주 제대로 당했다.

나는 내가 했던 말의 의미를 찬찬히 곱씹었어야 했다.

-환룡의 괴인은 나의 명령을 듣지 않는다.

그래서 봉효는 나에게 반기를 들었다. 사실 반기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관점을 조금 달리해보면 권력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이에게 과잉충성을 보이기 위해 먼저 괴수를 잡으려는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몹시 낮았다.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그리고 이 세상이 굴러가는 흐름 상 봉효가 내 뒤통수를 친게 맞았다.

"S급 괴수들 먼저 잡아서 자기들이 꿀꺽 하려고 하는 거군."

그도 아니면 환룡단의 위세를 보여 내게 무력 시위를 한다거나. 환룡을 위한 그 기세는 가상하지만, 나의 원대한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아주 난리십니다, 피닉스 님?"

샤오린이 새로 지급받은 워치로 네트워크 상의 반응을 전했다. 히어로 커뮤니티들에서는 중앙당 당사를 박차고 나오는 내 영상을 보고 세 가지 반응이 주류를 이루었다.

-괴수 쓰러뜨려야 한다면서 바로 박차고 나오는 클라스ㄷㄷ 모택평 얼굴에 아주 침 제대로 뱉었죠?

ㄴ 가능

ㄴ 뭐가 가능하다는 거야 미친ㅅㄲ야

ㄴ청화 님의 성수…. 달게 받겠읍니다.

-하이잭 당했는데도 사람들 구하겠다고 나서다니 천사가 따로 없다

ㄴ속지마 썅년이야

ㄴ신성 모독이다!

"회담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결단력. 날뛰는 괴수들을 제압하러 가시겠다는 정의감. 주로 일반 시민들과 히어로들의 반응입니다. 그리고."

-와...흑염룡 진짜 부활시키네? 코어만 있으면 부활도 가능한가?

-걸어다니는 전술핵이네요. 저런 인재를 극동에 두고 있는게 옳다고 보십니까?

-한 번에 부릴 수 있는 한계가 있지 않겠음? 막말로 S급 10마리만 모아서 부려도 나라 하나는 바로 정복가능하겠네.

-걸어다니는 차원문ㄷㄷ

"주로 협회나 전문가들의 의견이군요. 청화 님의 능력의 실체와 한계에 대해 상당히 궁금한 눈치입니다. 그리고…."

샤오린은 얼굴을 붉히며 웃음을 참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창염개진!!!!ㅋㅋㅋ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나 같으면 자살했다ㅋㅋㅋㅋㅋ

청화 양 넘모 불쌍해…. 흑염룡 죽으면 저거 계속 외쳐야 하는 거잖아…. 흑흑

이건 석하랑이 잘못했다

칠흑같은(이하생략)

당당하게 외쳐서 오히려 더 부끄럽다. 쟤는 수치심이라는게 없나?

"다들….흡….피닉스 님의….크흡, 영창을….하하하!"

결국 샤오린도 빵 터져서 배를 부여잡았다. 내 멘탈에는 전혀 스크래치가 나지 않았다. 전혀. 진짜로. 단 1cm의 흠도 없다.

"샤오린."

"예…. 흐흡…."

"SSS 오르려면 이거보다 더 심한 것도 해야할텐데. 그 때가서 보도록 하지."

"......예?"

샤오린은 벙쪘다. 나는 동정호로 흑염룡이 날아가는 동안, 샤오린에게 SSS에 이르는 단초를 제공했다.

"인간의 한계는 친화율 99. 그곳에서 더 올라가지 않아."

이미 인간으로서 SS에 이른 것 만으로도 상당한 경지다. 비록 석하랑은 반인반령이고 샤오린은 괴인이지만, 아직까지 인간의 카테고리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예. 그건 직감하고 있습니다."

샤오린은 내 진지한 목소리에 웃음을 가라앉히고 경청하기 시작했다.

"SS에서 더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정원이 딱 일곱자리 밖에 없거든."

"예?"

"정령을 품음으로써 가능하단 말이다. 이능력자로서 신의 경지에 오르는 건. ...아니, 됐다. 지금은 그걸 이야기하는 건 중요하지 않지."

"아뇨, 저는 지금 뭔가 엄청 중요한 내용을 들은 것 같은-"

"도착했다."

흑염룡은 내 마력에 의해 부스트까지 되어 하늘을 날았다. 나는 마력이 한창 들끓고 있는 동정호의 아래로 눈을 돌렸다.

"젠장."

키에에에---!

지파룡이 단말마를 토해냈다. 환룡단 괴인들과 환염령들의 합격술, 거기에 S급 괴인인 황제까지 합세하니 지파룡도 오래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꺄하하하하!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오백의 환염령들이 날뛰는 것은 훤히 잘 보였다.

"물방 면역인 놈을 정신 데미지로 잡다니."

"예?"

"......조덕배!!"

나는 답답한 마음에 덕배를 부활시켰다. 내가 품속에서 꺼내 집어던진 그의 코어는 선명한 갈색으로 반짝거렸다.

"나 한국 갈 때 까지 부를 일 없는 것 아니...으허억?!"

덕배은 자신이 흑염룡의 위, 지상에서 수 백미터는 떨어진 상공에 있다는 걸 깨닫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바로 덕배의 등짝을 열어, 그를 덕배트로 만들었다.

"흑염룡."

[예, 신이시여.]

"......너는 북동으로 선회하여, 먼저 물지기를 잡고 있어라. 좌표는 이곳이다."

나는 흑염룡에게 S급 괴수, 물지기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화이허. 회수라고도 불리는 강 깊숙한 곳에 물지기는 잠들어있다.

"나는 저 망할 놈들을 때려잡고 합류하겠다."

[신이시여. 그렇다면 하나 간청을.]

"뭐냐."

[먼저 잡아 죽여도...되겠습니까?]

흑염룡이 이빨을 번뜩이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석하랑에게 쪽도 못 쓰고 당한게 영 자존심이 상했는지, 전의를 상당히 불태우고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나는 흑염룡의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하늘에는 태양빛이 쬐는 덕분에 나는 빛속에 몸을 숨길 수 있었고, 흑염룡은 옳다꾸나 싶어서 회수로 방향을 틀었다.

"흑염룡이 질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내 옆에 따라붙어 떨어지는 샤오린이 물었다. 지상으로 자유낙하를 하고 있음에도 샤오린은 태연했다.

"상성적으로 불리하거든."

"물지기라는 이름으로 봐서는 물 속성 괴수인 듯 합니다만."

"그래. 번개까지 뿌려대는 무시무시한 놈이지."

불/비행 타입이 대부분인 창염계 괴수들은 하나같이 물/전기 타입에게 상성상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괜히 또 선수를 빼앗기기전에 흑염룡을 파견해두어야 했다. 그래야 청화가 새로운 괴수를 쓰러뜨리러 간 걸로 착각할테니.

"다 왔나…!"

이제 슬슬 바닥이 보인다. 괴인형으로 몸을 바꾸어, 덕배에 마력을 때려넣었다.

□□□□□?!!?

덕배의 코어가 과열되어 터지기 직전까지 마력를 불어넣었고, 공중에 노닐던 내 환염령들이 화들짝 놀라 도주를 시도한다.

키이이익!!

지파룡이 내 존재를 눈치채고 괴성을 지른다. 다행이다. 아직 죽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막타를 때려 빼앗을 뿐!]

나는 지파룡에 닿기 직전, 몸을 빙 돌리며 덕배를 때려박았다.

쿠---------아앙!!!

30m는 넘는 지파룡의 거체가 무너졌다. 등딱지를 때린 내 몽둥이질은 지파룡의 내부를 진탕으로 만들어 헤집었다. 내 짜증을 담은 덕배는 지파룡의 등을 크게 찌그러뜨려 마무리 일격을 넣는데 성공했다.

[푸흐흐, 마격은 내 것-]

흐어어어.

바닥에 턱을 처박은 지파룡의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온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지파룡의 입에서 회색의 유령이 스르륵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유령-화한 환룡단의 단원 놈이 오체투지를 하며 엎드린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내가 잡은 놈은 지파룡이 아니라, 지파룡에 빙의한 유령 괴인이라는 걸.

[...이 망할 놈들이?!]

"저, 저는 그저-"

[비켜!]

나는 단원의 멱살을 잡고 강물에 집어던졌다. 코어가 목적이었을테니 당연히 코어는 빠져있었을테고, 예상대로 심장 부위에 날카로운 침구멍이 뚫려있었다.

[......얘는 아니군.]

큐브의 흔적이 없다. 코어는 빼앗겼으나 아직 큐브는 살아있다. 봉효가 큐브의 실체까지는 모르더라도, 큐브가 가진 효능 정도는 환룡에게 전해들어 알고 있으리라.

[큐브가 있는지는 몰라도, 잡는 순간 큐브의 존재를 알게 될 터.]

나는 바로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가 지파룡의 사체를 상대로 시간을 허비한 동안, 그 사이 이미 범인들은 자취를 감추어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북서로 반, 북동으로 반…!]

주제에 양동작전을 벌이려고 하는 걸까. 아마도 흑전갈 괴인이 있으니, 적어도 셋 중에 둘은 먼저 확보한 뒤 나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셈인 듯 했다.

혹은 환룡이 나처럼 스스로 나와서 비스트 테이머임을 자처할 수도 있고.

[역시 안 되겠군.]

"무엇을 말입니까?"

샤오린은 마력을 아래로 방사해 내 옆에 멈춰섰다. 환룡이 의심스러우니, 자연히 그의 괴인인 샤오린도 의심스러웠다.

[솔직히 얘기해라. 나를 방해할 셈으로 붙은 것이냐?]

"전혀 아닙니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번 작전에서 배제된 입장입니다. 저도 제 땅의 괴수들은 제가 잡고 싶었단 말입니다."

샤오린 또한 힘을 과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일단 샤오린이 최소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판단하고, 환염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 최대한 많이 깃들어 강바닥에 딱 붙어 이동해라. 추후 부산물을 해체하여 노획하러 오겠다. 그리고 저 놈은.]

나는 지파룡에 깃들어 나를 낚은 환룡단 단원 놈을 가리켰다.

[복상사 시킬 때 까지 돌려먹어라.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너희들은 성불시켜주마.]

"네, 네!!"

"잠시만요! 청화단의 단주님! 저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환룡단 단원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내게 애걸복걸했다. 그의 팔을 양쪽에서 잡고 들어올리는 환염령들은 안타까우면서도 요염한 눈빛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걱정마라.]

나는 일부러 그에게 내려가 어깨까지 두드리고 엄지를 척 들어올렸다.

[살고 싶으면 오백명을 이기면 된다. 간단하지?]

"다, 단주님?!!"

나는 그를 격려하고 바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금 장난이 심하신 듯 합니다만."

[그냥 때려죽이려다 봐준 거다. ...걱정마라.]

나는 샤오린의 허리에 팔을 감아 끌어안았다.

[네게는 그런 장난을 칠 생각 없으니.]

"......역시 아시는 군요. 보셨습니까? 보셨죠?"

[아니. 안 봐도 검색하면 나오지 않나.]

나는 샤오린을 끌어안고 전속력으로 하늘을 날았다.

[부끄러워하지 마라. 칼자루로 자-]

퍽.

"입 다물어요…!"

[......SR이 소림아닌가. 네 샤오린이라는-]

퍽퍽. 퍽퍽퍽.

날아가는 동안, 나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

잠시 뒤. 회수에 도착한 나는 흑염룡과 환룡단, 그리고 물지기가 3파전을 치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빨리 잡아! 에그 브레이커가 온다!"

"알 터지기 싫으면 빨리 죽여야 해!"

"위아래에서 협공해대는데 어쩌라고!!"

환룡단은 두 괴수의 합공에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거대한 원숭이를 닮은 물지기는 물을 마력으로 뭉친 물폭탄을 집어던졌고, 흑염룡은 상공을 날며 불을 뿜었다.

겉으로는 두 괴수가 격돌하는 것 처럼 보이나, 실상은 흑염룡이 교묘하게 환룡단만을 공격하고 있었다. 흑염룡은 성가신 환룡단을 먼저 제거해야함을 깨닫고 있었다.

[브레스. 전력으로.]

내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흑염룡이 입에 마력을 모았다. 나는 강가에 샤오린을 집어던지며 햇빛속에 몸을 숨겼다.

카아아아아아--!!

흑염룡의 브레스가 호수면을 때렸다. 물지기와 환룡단을 함께 휩쓰는 브레스는 그들에 의해 아주 손쉽게 막혔으나, 그 잠깐동안 시야를 교란하기에는 충분했다.

[봉효는 없군.]

하나같이 다 내가 알을 터뜨리고 기둥을 꺾었던 놈들이라 면면이 익숙하다. 우선 급한대로 나는 그들을 스쳐, 물지기의 배 아래로 파고들었다.

■■■?!

물지기는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나를 보고 당황했다. 물지기가 내 마력을 느낄 틈도 없이, 나는 손톱을 세워 물지기의 심장에 손을 찔러넣었다.

콰득.

사람 머리통만큼 거대한 심장이 내 손에 잡혔다. 물지기는 S급 괴인답게 가슴이 꿰뚫리고 심장이 잡혔음에도 나를 떼어내려는 듯 나를 움켜쥐었다.

캬아악?!

그래서 순순히 몸에서 떨어져줬다. 대신 내동댕이쳐지기 전에, 심장에 다른 한 팔까지 찔러넣어 심장을 세로로 갈랐다.

프슈우우우우웃!!

잘라낸 심장의 혈관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물지기는 나를 잡고 내동댕이치려다, 심장이 잘린 고통에 괴성을 질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안쪽까지 난 바람구멍을 통해 훤히 안이 보이는 심장의 안 쪽, 숨가쁘게 뛰고 있는 작은 S급 코어를.

캬아아악!!

물지시는 물속으로 도망쳤다. 아마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몸을 숨겨 기회를 엿보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순순히 물지기를 놓아주었다.

[꽝인가.]

심장의 큐브는 없다. 결국 소거법에 따르면 남은 큐브의 행방은 S+급 괴수-흑사갈이다.

[또 한참 날아야겠군.]

흑사갈이 잠들어있는 곳은 내가 환룡과 조우를 했던 시안성으로부터 북서쪽 사막 지역이었다.

[흑염룡. 너는-]

"으아아아아아!!"

환룡단의 단원 하나가 물속으로 퐁당 빠졌다. 그 뒤를 단원들이 뒤따르기 시작했다. 실체가 아닌 영체로가 되어 물지기에게 달려드는 모습에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제어는 할 수 없어도 폭주는 시킬 수 있다는 건가. 쳇, 환속성 괴인 아니랄까봐 짜증나는 능력이군.]

■■■■■!!!

내 예상대로 7명의 유령 괴인이 물지기에 깃들어 폭주하기 시작했다. 내게 잘렸던 심장의 바람구멍을 영체의 마력이 메우기 시작했다. 환룡단 단원들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괴수 사냥에 실패했으니, 죽을 각오를 하고 물지기에게 깃든 모양이었다.

[흑염룡.]

[예.]

[...폭주하는 물지기를 제압해라! 죽여버려!]

[알겠습니다.]

흑염횽이 눈을 회색으로 빛내며 달려드는 물지기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샤오린에게 내려와 허리를 끌어안았다.

[샤오린.]

"......네."

[신장으로 간다.]

"...예."

샤오린은 가타부타 말없이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저…혹시 보셨나요?"

[뭘.]

"제…영상. 보신 거 맞으시죠?"

[아니. 듣기만 했다.]

나는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영상은 '전설'이라는 말에 걸맞게, 원작에서도 구현되지 않고 텍스트 설정만 남은 이스터 에그였다.

"보고 싶으세요?"

[......궁금하기는 하지.]

"그러면…. 승리의 주문을 알려드릴게요."

샤오린은 내 목에 팔을 휘감으며 꽉 껴안겼다.

"원본…. 봉효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미션의 보상이 하나 더 늘었다.

나는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신장에 잠들어있을 중국 최강의 괴수, 흑사갈을 향해.

<긴급 퀘스트>

봉효의 음모를 저지하라

보상

S급 코어 3개

큐브 1개 - 창염과의 데이트 티켓

SR-6974.avi <- New!!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