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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74화 (174/1,497)

〈 174화 〉1부 9장 8

<그 시각, 대한민국 신서울 히어로 협회 지부.>

피닉스와 환룡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던 모습은 자연히 전국-전세계에 생방송으로 흘러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모택평을 응시하는 피닉스.

그리고 여유로운 얼굴로 시선을 흘리는 모택평.

청화가 탄 비행기를 납치한 배후가 모택평이라는 소문은 제법 설득력이 있었고, 열에 아홉은 모택평 배후설을 지지했다.

“와, 쟤 성깔 좀 있다?”

집정관은 캔커피를 홀짝이며 청화를 가리켰다. 대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청화와 모택평이 서로를 노려보는 장면은 나름 장관인 동시에 방송사고 급의 사태였다.

“서울 난민 출신이니 어쩔 수 없죠.”

집행관은 혀를 차며 청화가 직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행태를 지적했다.

“보세요. 모택평 여유 넘치는 거. 만약에 진짜로 배후였으면 꼬리 자르고 나온 걸 겁니다.”

“......여유요?”

함께 앉아있던 화권, 이승형이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자리에서 유일한 S급이 자신의 생각에 동의를 하는 것 같지 않자, 집행관은 눈썹을 찌푸리며 이승형에게 따지고 들었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 아뇨. 그건 아니고…. 여유라기 보다는….”

이승형은 긴가민가했지만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언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아무 생각없어보이는 것 같은데요?”

이승형의 손가락은 다른 누구도 아닌 모택평을 가리키고 있었다. 브리핑룸에 모인 모든 이능력자들이 이승형의 발언에 웃거나 혀를 차며 부정했다.

“화권아. 상대는 모택평이다. 선의철보다 더한 놈이야.”

“끌끌끌. 설마 대륙의 2인자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저렇게 나왔겠는감. 흐허허. 분명 꿍꿍이가 있을 것이야. 암."

우사와 풍백이 대표로 이승형의 말을 반박했다. 이승형이 S급 특유의 시선으로 판단한다면, 그들은 연륜을 통해 쌓은 눈썰미로 판단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운사는 포기했다. 확신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이승형의 생각은 농담으로 치부되었고, 그 사이 만찬 겸 회담은 간신히 진행되었다. <굿모닝 테러> 이후 중국 전역에 잠들어있던 괴수들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개시했다.

"민간 피해가 없는게 신기하네요. 분명 짜증나서 깨어난 걸 텐데."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움직임이지. 아마도 혼돈이라는 SS급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하랑이가 죽였잖아요?"

"그럼 하랑이가 무서워서 그런걸지도."

광검이 지키는 신서울에 괴수들이 발을 들이밀지 않았듯이, 괴수들도 강자의 영역은 알아보는 것 같았다. 민가를 습격하려던 괴수들은 노랫 가락이 울릴 때마다 도망치기 바빴고, 괴수들이 보이는 이상행동은 북경에 가까워질수록 심해졌다.

그 덕분에 히어로들과 헌터들은 아주 쉽게 괴수를 사냥할 수 있었으나, 아직 주요 괴수들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집행관. 어제 이후 반응이 나타난 네임드는?"

"S급 괴수 <흑사갈>, <물지기>, <지파룡>입니다. 하나같이 S급 중위권의 괴수이며, 흑사갈의 경우에는…."

"S급 괴수 흑전갈의 모체지."

"...협회에서 준 SS로 보고있던 괴수인데 괜찮을까요?"

영상 속 <쌍검 래빗>이 열과 성을 다해 위험한 괴수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다. 청화는 경청하고, 석하랑은 눈을 끔뻑이고, 샤오린은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 있었다.

[후후.]

모택평은 그저 웃으며 그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 또한 스크린 너머의 존재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듯, 관조하는 자세로 회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었다.

"이미 모든 조치가 끝났기에 부리는 여유겠죠?"

"글쎄. 어느쪽이든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군. 집행관. 중국쪽 협회와는 협의가 잘 되었는가?"

"......아직입니다."

집행관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중국의 괴수를 한국 소속의 이능력자들이 나서서 제거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기도 했다. 하지만 청화가 어느 나라의 사람인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려면, 밥상에 숟가락 정도는 놓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했다.

"괴수 조종의 매커니즘이라도 알면 어떻게 방법을 써볼텐데."

"그래도 대충 예상가는 건 있지 않은감?"

"코어를 통한 부활? 진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영감님."

"......정말, 너무 미스테리한 존재네요."

[...이상이 현재 검출된 S급 괴수의 반응입니다.]

셋. 유황숙이 설명을 마치고 착석했고, 청화는 손을 들어 지도에 삼각형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설명 감사드립니다.]

[그러면 처, 청화 양. 지원은 아끼지 않을테니, 부디 하나라도….]

"주석이라는 양반이 저리 쩔쩔메서야. 끄응."

"보기 좋지 않수? 딱봐도 한 눈에 반한 눈치구만. 안 그러냐, 불주먹아."

"......갑자기 저는 왜 부르십니까?"

모두의 시선이 이승형에게 쏠렸다. 승형은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고, 집정관이 손을 들어 제보했다.

"내가 봤다! 저 새끼 리무진에서 청화 양한테 더럽게 찍쩝대더라!"

"......집정관 님? 제가 언제-"

"언제 본 적 없냐고 물었잖아!"

"그건 진짜로 본 것 같으니 말하는…. 어휴, 됐습니다. 예. 호감 표시 했습니다. 됐나요?"

이승형은 두 손을 들며 항복했고, 히어로들은 눈꼴시렵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얼빠놈."

"능력지상주의자."

"페도 새끼. ...아, 페도까지는 아닌가?"

"여러분? 호감이라는게 같은 한국인으로서 그렇다는 거지 이성으로 느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설화령 님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서.]

[저도 동감입니다.]

[후후. 그러면 이리 하지요.]

가만히 입을 꾹 닫고 있던 모택평이 손목을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한 시간. 오찬을 하고 한 시간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이곳에 모여 회의를 재개하심이?]

[아, 알겠습니다. 그리하지요. 예. 그리 합시다.]

모택평의 중재하에 회담은 멈췄다. 라이브로 송출되던 영상도 잠시 멈췄고, 아나운서와 패널들이 회담 중에 나온 괴수들의 프로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외네요."

집행관은 손으로 턱을 쓸며 주억거렸다.

"모택평과 유황숙이 반대가 된 것 같아요. 회담을 쌩으로 틀어버린 것도 청화 양을 압박하려는 심리전이었을텐데."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부탁을 거절하기에는 힘드니, 중국 전역의 S급 괴수들을 처리해달라?"

"하나로 끝낼 생각이 없겠지. 그러면서 천천히 유혹하려 들게야. 귀화하라고. 쯧."

"......글쎄요."

이승형은 다시 자신만의 생각을 밝혔다.

"그냥 뭐 하기 싫은 것 같은데....."

"네가 그런 거라면 그런 거겠지."

"끌끌끌, 불주먹 녀석. 아직 사람보는 눈이 없구만. 남의 나라 귀중한 사람을 납치하고 비행기를 폭파시킨 자가 그 다음날 바로 자포자기 하겠나? 흐흐."

"......."

이승형은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만 같아 영 기분이 이상했다. 이승형의 이상 반응에 집행관이 스크린에 비친 천자를 가리켰다.

"그럼 저 남자는 어떻습니까? 주석이요."

"......청화 양에게 한 눈에 반한 것 같은데요."

이승형은 진실을 말했다. 그리고 모두가 이승형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질투하냐?"

"질투네."

"추하다, 승형아."

"......예, 그냥 질투심 강한 사람으로 하겠습니다."

이승형이 두 손을 들며 항복했다. 그러자 우사와 풍백, 집정관을 위시한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승형 청화 좋아한다!"

"사랑은 원래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는 거야!"

"껄껄껄! 근데 쟤는 시댁인 서울에 가지도 못하잖나. 껄껄껄!"

"......."

이승형은 자포자기했다. 집행관만이 천자와 이승형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스크린 속 자리를 뜨고 일어나는 청화의 얼굴을 살폈다.

"예쁘긴 하네."

집행관은 엄지로 입술을 훔쳤다. 회담이 재개되기까지 아직 시간은 한참 남아있었다.

"그러면 일단 언제든지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합시다."

"집행관. 벌써?"

"벌써고 자시고. 제가 정부 청사에서 날아온 이유가 뭐겠어요."

집행관이 손에 든 열쇠를 흔들며 웃었다.

"오랜만에 이거 운전하려고 온 거죠."

* * *

<잠시 뒤. 중국 북경 중앙당 당사 내, 대기실.>

"아악!"

쾅! 내 발길질에 책상이 뒤집혔다. 마음같아서는 환룡의 모가지를 뜯어버리고 싶었지만, 그 환룡은 지금 우리 옆이 아니라 천자의 옆에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너무 그카지 마라. 더 빡치기만 할텐데."

석하랑은 나를 진정시키려하지만 나는 안다. 그 또한 같은 정령인 환룡의 속내를 읽고 있었으니, 그가 회의중에 얼마나 딴생각을 많이 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망할 유령이 지금 피닉스를 전세계급 바보로 만들었다고요!"

"원래부터 바보였으니까 딱히 문제는 없지 않나?"

"석하랑, 이게!"

공식적인 회담에서 나를 화도 제대로 참지 못하는 멍청이로 만들어버렸다.

"그닥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샤오린이 만찬 중의 일에 대해서 간단히 반응을 읊어줬다.

"'청화 양도 모택평을 배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모택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천자는 가운데 껴서 뭘 얼타는 거냐', '나같아도 나 죽이려고 한 사람 앞에서 표정 굳는다', '모택평 역시 포커페이스 대단하다'...."

"포커페이스가 아니라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거잖아요."

"아니지. 생각은 하지."

석하랑이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 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

"아, 진짜.... 봉효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대요? 환룡이 저 꼬라지가 났는데."

나는 환룡의 옆에서 그를 보좌할 괴인-봉효의 부재를 지적했다. 모택평에게 깃든다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정작 그걸 옆에서 컨트롤 해줄 봉효가 자리를 비워버렸다.

"영체로라도 옆에서 지켜야지, 왜 아예 나타나질 않죠?"

"그걸 내가 우예 아는데. 샤오린 씨, 아세요?"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샤오린이 지도를 가리켰다.

"어떤 괴수를 잡을지 정해주십시오."

"......이쪽도 회담에 관심 없기는 마찬가지네요. 하아."

환룡은 아무 생각이 없고, 샤오린은 괴수와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중국 내의 괴수들을 쓰러뜨린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것 같지만, 그보다는 역시-

"얼굴 드러내고 활약하고 싶은 거죠?"

"예. 역시 잘 아시는 군요. 덧붙여서-"

"속옷 입고 싸우세요."

"쳇."

샤오린은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입술까지 삐죽 내미는게 불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 석하랑이 기가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뭔 소리고. 속옷 입고 싸우라는게...? 바디슈트 얘기하는 기가?"

"아뇨. 브라랑 팬티. 쟤 노브라 노팬티로 싸우거든요."

"으."

"오해하지 마십시오. 저는 노출벽이 있는게 아닙니다."

샤오린이 재빨리 자신의 성벽을 변명했다.

"전투에 방해되는 요소는 빼고 싸우고자 할 뿐입니다."

"그럼 위에 옷도 벗고 나체로 싸우지 글나?"

"그러고 있잖습니까?"

착. 샤오린은 자신의 옷을 가리켰다. 석하랑은 그제서야 샤오린의 의복의 정체를 깨달았다.

"......마력으로 만든 옷이라고? 그럼 당신 설마."

"예. 이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본인이 원하는데 어쩌겠어요. 하아."

내가 마력을 거두어들이기만 하면 전세계에 19금 스트립쇼가 펼쳐짐에도 불구하고, 샤오린은 내 마력으로 짜인 의복을 입기를 고수했다. 내 괴인이라면 모를까 환룡의 괴인이니, 속옷도 만들어줄테니 제발 입으라고 명령을 내릴 수도 없었다.

"니는 그카면 그걸 말렸어야지 왜 만들어주고 있는데? 빙시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었으면 그랬죠."

"후후후. 저는 이제 운장이라는 구속에서 벗어난 존재. 그 무엇도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가로막는 게 있다면, 베고 쓰러뜨려서 넘어갈 뿐!"

"...막가파에요. 완전히."

운장일 때는 그래도 모택평의 억압으로 조신하게 지내던 아이가, SS-군신이 되자마자 바로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는 괜히 말려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그저 노출을 최대한 가리는 옷으로 만들어줬을 뿐이다.

"아무튼 그래서 환룡이 태업하는 건 나중에 볼기짝을 때려주는 거로 하고, 괴수나 잡으러 갑시다. 만찬이 끝난 뒤에 제가 바로 얘기할 게요. 괴수들 잡으러 가자고."

"내는 그러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야."

석하랑이 인상을 찌푸리며 워치에 날아온 메세지를 보였다.

"한국 협회에서 호위를 파견한다 카는데? 삼사부터 시작해서 A급들 대부분이랑, 화권 이승형을-"

"숟가락 얹으려고 하는 거네요?"

나는 높으신 분들의 얄팍한 수작이 역겨워졌다.

"떡고물 떨어질까 싶어서 오는 것 같은데 소용없죠."

나는 샤오린의 어깨를 두드렸다.

"얘 선에서 다 정리 가능한데 뭐하러 한국까지 와요? 괜히 또 왔다가 욕이나 듣지 말고 돌아가라고 해줘요."

"......후후."

"글나. 에휴. 이 사람들은 왜 갑자기.... 헐."

"또 왜요?"

석하랑은 메세지를 훑다가 굳어버렸고, 나는 그의 옆으로 가서 메세지를 함께 읽었다.

"헐."

전 세계가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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