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73화 (173/1,497)

〈 173화 〉1부 9장 7

괴수 조종사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익히 잘 알고 있다.

내가 그렇게 상황을 만들었고, 연기를 통해 스스로의 몸값을 올렸다.

거기에 두 명의 SS급 이능력자. 비록 서로 누가 더 강한지 쓸데없는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지만, 세상은 이미 둘을 인류 최강자의 반열에 올려두었다.

청화. 석하랑. 샤오린.

나와 석하랑은 국빈으로, 샤오린은 나를 지키는 호위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천자가 언급한 '조촐한'이라는 단어에 안심하고 있던 나는 눈앞에 벌어진 장관에 절로 기가 죽었다.

"와. 심하네."

어지간해서는 기가 죽지 않는 석하랑도 기가 막힌 눈치였다. 샤오린만이 익숙하다는 듯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나마도 부담스러우실까봐 줄이고 줄인 겁니다. 원래는 전체를 동원하려고 했습니다."

"이게 줄인 거라고?"

절로 코웃음이 났다. 8차선 도로 한 가운데를 호화로운 2층짜리 리무진 버스 대가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는 2층 야외에서 셋이서 둘러앉아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눈으로만 훑어봐도 이만이 넘어 보이는데…?"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진 인파들은 하나같이 청색과 백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나왔다.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색이 적색임을 감안한다면, 이 대로 전체가 청-청화와 백-석하랑의 색으로 물결치는 광경은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그리고 있다 아이가…. 야. 쟤들 다 뭔지 알겠제?"

"그래. 히어로다. 다 이능력자야."

나와 석하랑이 본격적으로 이능력자를 양산하기 전, 한국 협회에 등록된 이능력자의 수가 6백명이었다. 그런데 그 수의 약 30배에 이르는 이능력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있었다. 나와 석하랑을 반기기 위해.

"이거 동원된 건가?"

"설마요. 히어로들은 자율적인 존재들입니다. 당에 직접 적을 둔 히어로들은 천이 되지 않아요."

샤오린은 그들의 면면을 가리켰다. 2만 히어로들은 모두 우리 셋의 이동에 시선이 꽂혀있었고, 각자 가져온 청과 백의 꽃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사람들이 전부…."

"네. 당신들을 환영하러 온 이능력자들입니다."

"허허. 허."

이능력자들만 2만이다. 일반인들까지 나왔다면 아마 이 카 퍼레이드는 인파로 마비가 되었을 것이다.

"와. 대박. 야, 이거 봐라."

석하랑이 자신의 워치로 보내진 사진을 내게 공유했다. 은유하가 보낸 사진은 북경을 하늘에서 찍은 사진으로, 도시의 절반 가까이가 청백으로 물들어있었다.

"지금 이 사람들…. 숫자만 2백만이라는데."

"하하, 하."

절로 웃음이 나왔다. 대륙의 기상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고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우리를 반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은혜를 입었으니까요."

샤오린은 그런 자국민들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로 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당장 설화령께서는 흑염룡을 퇴치해주셨죠. 그리고 SS등급의 괴수, 혼돈마저 퇴치해주셨어요. 흑염룡 하나만 하더라도 북경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는데, 그보다 더 강한 등급의 괴수를 날뛰기 전에 제압했으니 전 국민이 감사함을 느끼는 거죠."

"그, 글나…."

석하랑이 어색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능력자들이라 그런지 비명까지 지르며 환호하지는 않지만, 절도있는 자세로 흰꽃을 치켜들며 그를 반겼다.

"""석하랑!!! 석하랑!!!"""

"'"설화령!!! 설화령!!!"""

"히익."

마력조차 싣지 않고 육성으로만 내지르는데도 차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석하랑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떨었고, 뭐가 무서웠는지 내게 몸을 붙였다.

"덥다. 떨어져."

"니, 니는 이게 안 무섭나?"

"전혀."

솔직히 전혀 떨리지 않는다. 아직 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나와서 환대를 해주는 것이 기가 찰 뿐이다. 최종전만 17번 했는데 이정도 쯤이야.

"석하랑."

"왜?"

"나중에 60억의 응원과 기대를 받으며 싸울 때는 어쩌려고 그러나?"

"......스케일이 왜 그렇게 커지는데?"

"그야 전장이 달라지니까."

나는 살포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샤오린이 놀라 내 옆에 붙었고, 나는 샤오린의 부축을 받으며 양 옆의 이능력자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청화아아아아아!!

"아쉽네요."

나는 반대편으로 몸을 돌려 인사했다. 샤오린도 몸을 돌리며 나와 함께 인사했다.

"뭐가 아쉽습니까?"

"청화가 환대받는게. 창염이나 피닉스였으면 좀 더 좋았을 걸."

"그게 중요하냐?"

"네. 엄청."

여러모로 아쉽기는 하지만 청화로서의 삶은 반드시 필요했다. 나는 우리를 환대하는 이들에게 적당히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았다.

"대놓고 검색 못하는 게 아쉽네요."

"뭐가?"

"사람들 반응이요."

"어려울 겁니다."

"왜요?"

샤오린은 워치를 두드리며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서버 다운됐다고 하는 군요. 중계 방송국 전부."

"......."

대륙의 기상이 대단한 걸까, 아니면 그 환대를 받는 우리가 대단한 걸까. 어떻게 되더라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빨리 괴수들 털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네요…."

여기서 더 있다가는 출국자체를 못하게 될 것 같으니.

***

피닉스와 석하랑이 이능력자 무리들의 환대를 받는 그 시각, 신서울의 여론 또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들이 외국, 그것도 원탁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을 무시하던 중국에 국빈으로 대접받는 것에 사람들은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저러다 중국으로 귀화하는 거 아니냐?

열기가 확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열기는 새로운 방향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피닉스와 석하랑을 해외로 보낸 협회와 정부에 대한 비토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거 큰일이군."

총리는 지직거리는 영상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고작 2만 군중의 함성소리는 중계 영상에 노이즈가 낄 정도로 거대했다.

"자기도 모르게 마력이 실리는 겁니다. 흥분한 거죠."

집정관 유영호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의 대표로 온 그는 원탁으로서 타국의 환영을 받는 설화령의 모습에 대견함을 느꼈다.

"흑염룡이 어떻게 쓰러지는 지 봤잖습니까. 그리고 SS인 혼돈이 어떻게 쓰러지는 지도. ...저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유영호의 옆에 앉은 검은 단발의 소녀가 말을 덧붙였다. 강소연이 개인의 비리와 비윤리적 연구라는 죄목으로 감옥으로 보내진 이래, 협회는 자신들을 대표할 자로 소녀-<집행관>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집행관. 정말로 설화령과 비스트 테이머가 문제없이 돌아오겠지? 그렇지?"

"예. 설화령은 오늘 하늘을 날아서 귀국할 예정이며, 청화 양은 아마도 각지의 괴수들을 토벌하러 다닐 겁니다."

"......저희도 어떻게 한 발 거들면 안되겠습니까?"

괴수대책부의 국장, 장후정이 총대를 매고 다달 쉬쉬하던 말을 꺼냈다. 청화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격으로 협회를 통해 넘어간 거지, 그 어떤 정부인사도 따라가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수행원을 파견하는게…."

"그럼 거 욕 먹을 겁니다. 안 그래도 지금 총리 님이 무능하다고 여론이 들끓고 있잖아요?"

"그…. 집행관. 아무리 그래도 외조부님께 말이 너무…."

"그러니까 내가 빨리 총리 때려치고 집에서 책이나 쓰시라고 말했는데. 쯧."

집행관이 대놓고 짜증을 부렸다. 면전에서 침을 뱉다 못해 뼈를 때리는 막나가는 언행에 사람들은 불편해했지만, 막상 그 말을 들은 총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되물었다.

"그래서 이 할아비 무능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니."

"하나밖에 없죠. 사람 붙여야죠. 콩고물이라도 주워오게."

"방금 수행원을 파견하면 욕먹는다고…."

"나라에서 보낸 게 아니라, 협회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면 되잖아요. 정 이미지가 그러면 정부에서 정식으로 협회에 요청하는 방식으로 하세요. 청화 양을 수행할 인원을 협회에서 파견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저희 쪽에서도 바로 보낼테니까."

"누구를 보내면 좋겠나?"

"설화령 돌아오면 남는 사람 한 명 있잖아요."

집행관은 이제는 백발이 된 청년의 프로필을 꺼냈다.

"얘 놀고 먹고 있으니까 보내주세요. 중국으로."

***

"중화의 중심에 온 걸 환영하오. 나는 13억 인민들을 이끄는 주석, 천자라고 하오."

"......."

깬다. 나는 일그러지려는 표정을 재빨리 굳히며 고개를 숙였다.

"<비스트 테이머> 청화라 합니다."

"대한민국, SS급 히어로 <설화령> 석하랑입니다."

"원탁의 <운장>, 샤오린입니다. ...직접 면대면으로 대하는 건 처음이군요, 주석 님."

나와 석하랑, 샤오린은 행사용 버스에서 내려 만찬장으로 들어왔다. 만찬장에는 천자와 그의 옆을 보좌하는 여성 히어로, <쌍검 래빗> 유황숙이 있었다. 천자가 상석에 앉고, 우리는 그 옆 좌석에 앉았다.

"......."

천자는 입을 뻐끔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천자가 식은 땀을 흘리며 당황해 구원의 눈길을 보냈다. 내 맞은 편에 앉아있는 남자-모택평을 향해.

"후후."

모택평은 달관한 얼굴로 차를 들어올렸다. 한 모금을 들이켜 목을 축인 그는 천자를 향해 목례하여 양해를 구한 뒤,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먼 길 오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비록 오시는 길은 험난하고 여러 문제가 있었으나, 이리 오신 것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괴수관리국의 국장으로서, 그리고 이 나라 인민의 한 명으로서 심심한 사과와 감사를 표합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인 걸요."

석하랑은 손사래를 치며 당황했다. 모택평을 노려보는 샤오린의 눈초리는 점차 싸늘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슬며시 웃으며 그에 화답했다.

"성대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 후후."

나와 모택평의 시선이 마주쳤다. 모택평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웃으며 여유를 부렸지만, 나는 그 웃음의 실체를 알고있다.

-아, 진짜 하기 싫다….

헛웃음이다. 나는 손깍지를 끼며, 내 왼손 검지에 낀 회색의 반지를 슬며시 건드렸다.

[표정 풀어라. 집중 안 해?]

모택평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마찬가지로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둔 푸른 반지를 엄지로 눌렀다.

[귀찮아. 싫어. 안 할래. 빨리 끝내자. 그리고 자는 거야.]

"후후."

의미심장하게 웃는게 아니다. 한탄하듯 웃는거다.

모택평(환룡)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진짜 귀찮네…. 아. 때려치고 싶다. 그냥 죽을까. 유언장 남기고 자살시킬까보다….]

[5년만 참아. 5년만. 2026년 뒤에는 무슨 짓을 해도 건드리지 않으마.]

[......그냥 거기서 계속 잘 걸 그랬어.]

"후후."

"......."

"하아."

석하랑이 한숨을 쉬며 손을 내렸다. 나와 환룡이 마력으로 대화하고 있는 것에 답답했는지, 자신도 끼어들려고 손에 낀 반지를 눌렀다.

[지금 너희들 뭐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 당황하는 거 안 보여?]

[당황이고 자시고 담당자가 저 모양인데 어쩌겠나.]

"후후."

그러니까 그 의미심장한 웃음은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나는 결국 내가 대화를 주도해야함을 깨닫고 시선을 돌렸다.

"아."

천자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내가 눈을 돌리기 전, 천자는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주석 님."

"예."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먼저 축하드립니다. 화속성과 환속성을, 그것도 둘 다 동시에 A급으로 각성하시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그저…."

천자는 화들짝 놀라 무언가를 말하려했으나, 금방 주눅이 들어 모택평의 눈치를 보았다. 오랜 기간 모택평에게 억압되어 있었던 만큼, 그가 보는 눈치밥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후후[졸리다]."

물론 그 당사자의 몸을 가로챈 환룡은 아무런 생각없이 대화가 끝나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샤오린이 눈치를 주지만 소용이 없었고, 모택평과 대척점에 있는 유황숙이나 그의 알듯 모를듯한 웃음에 고뇌를 하는 모양새였다.

뭐지? 동창의 꼬리를 과하게 밟혔다고 생각하고 천자를 앞으로 내세우는 건가? 그도 아니면 다른 노림수가 있나? 이번 만찬의 주역에서 빠지려는 건가? 그도 아니면 천자와 청화를 엮으려는 주책?

안 봐도 비디오다. 시시각각으로 꿈틀거리는 쌍검 래빗의 토끼귀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푸흐흐."

"......아."

"아. 죄송합니다. 주석 님을 두고 웃은 게 아니에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청화 양은 미소가 참 아름다우시군요."

"......."

나는 천자의 칭찬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확신한다. 창염의 피닉스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웃는 존재가 없다고.

"그러면 주석 님.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만…."

"아."

나는 반지를 꾸욱 누르며 살살 문질렀다. 마력으로 모택평(환룡)을 압박해, 그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S급인 괴수들, 어디에 있는 지 알고 계신가요?"

"......후후."

모택평은 손을 들어, 유황숙을 가리켰다.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황숙 공?"

"......예."

결국 쌍검 래빗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끝까지 모택평을 노려봤으나, 모택평은 차를 들이키는 것으로 내 살기를 흘렸다.

"후후후후[떠넘기니 개꿀이네. 아, 가을이 보고싶다.]"

"......."

그냥 모택평을 죽일까.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