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1부 9장 3
샤오린이 폭탄을 연쇄적으로 터뜨린 그 시각.
청화단의 간부, <아키택트> 제임스 리는 은유하의 초대를 받아, <하늘성> 류천성과 함께 신서울 유성 저택에서 이능력자 아카데미의 건축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와."
당연히 그들 또한 샤오린이 터뜨린 폭탄에 이성이 날아갔다. 그들은 괴인이 아닌 인간으로 서울의 내정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샤오린의 정체를 귀동냥으로는 들었어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보스 눈 엄청 높네. 세상 미녀들만 골라서 먹고 다닌 거 아냐?"
"설마 저정도일 줄이야. 끙."
둘이 놀란 것은 샤오린의 미모였다. 연예인이었던 천가을이나 미인상인 석하랑과 비교해도 손색이없을 정도로 샤오린의 이목구비는 빼어났다. 동양화로 그려진 미인화에서 볼법한 외모로, 샤오린은 전포를 입고 있었다.
"......."
둘의 맞은편에 앉은 은유하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은유하는 청화단의 스폰서가 되면서 간부들에게는 자신의 본체를 노출했고, 셋은 간단한 저녁식사 후 아카메디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중국 쪽 일이 일단락 된 건 다행이지만."
은유하가 한기가 풀풀 날리는 목소리로 웃고있는 샤오린을 노려봤다.
"진짜로 전생의 부인 꼬시고 오라는 건 아니었는데…. 후후…."
두 남자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분명 상급자의 잘못인데 자신이 벌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늘성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은유하를 진정시켰다.
"슬슬 익숙해지시게. 각오하신 바 아닌가."
"그렇긴 하네요. 후우. 사람 좋은 제가 참아야죠."
은유하는 샤오린과 피닉스에 대한 감정은 접어두고, 그들의 행보로 인한 여파에 대해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다.
"샤오린 씨가 호위무사를 자처했어요. ...이건 예정에는 없는 거였는데, 상황 봐서는 서울까지 따라 올 생각인 것 같네요."
"호위가 생긴 건 좋으나, 그만큼 이목이 쏠릴 텐데."
"마침 흑염룡도 죽었으니 괴수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테고. 서울에 사람 완전 많이 들어오겠는데?"
"김해를 통해, 신서울을 거쳐, 서울로 상경하겠네요. 이제 사실상 괴수는 다 죽었으니."
아직 산기슭 곳곳이나 버려진 섬에 괴수들이 있었지만, 청화단의 단원들과 괴인 부대에 의해 조용히 소탕되고 있었다.
"아키택트. 혹시 도로도 깔 수 있어요?"
"그냥 복구만 하면 얼마든지. 새로 만드는 거면 시간 좀 걸리고."
"그럼 나중에 돌아오면 상의해야겠네요. 에휴."
은유하는 커피를 마시며 쓰게 웃었다.
"언제부터 내가 남 신경 쓰면서 사업을 운영하게 됐는지. 쯧."
"저, 은유하 회장."
하늘성이 조심스레 물었다.
"자네, 우리 단장한테 혹시…."
"좋아하냐고요?"
은유하는 코웃음을 치며 커피잔을 들었다.
"후후. 저 유성의 회장, <인형술사> 은유하입니다. 네. 당연히 좋아하죠. 고객님이 얼마나 제게 많은 금전적 이득을 벌어주시는데요. 하아, 이번에 비행기 한 대 값으로 받게 될 S급 코어만 생각하면 제가 커피 생각도 안 난 답니다."
"......하늘성."
아키택트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는 아직 얼라라서 자각 못했다에 코어 다섯 개 건다."
"나는 돈귀신이라는 거에 받고 열 개 걸지."
두 남자가 소소한 내기를 하는 사이, TV 속 영상은 빠르게 전환되고 있었다. 샤오린은 얌전한 기자들의 일부만 지명해 특수병실로 이동했고, 그들은 병실에 협회 관계자로 추정되는 이의 보호를 받는 푸른 소녀-청화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안녕하세요.]
청화는 조신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얼굴은 창백했고, 납치당한 모진 일을 당하기라도 한 듯 눈두덩 아래는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저, 심려를 끼쳐서 죄송-]
[범인이 누군지는 보셨습니까?!]
기자 하나가 중국어로 크게 떠들었고, 청화는 잠깐 눈을 감았다. 셋은 그 연기의 진실을 금방 깨달았다.
"말 끊어서 빡쳤네."
"그렇네요."
"한 번 더 끊기면 보스, 바로 본색을 드러낼 걸?"
셋은 행여나 피닉스가 전세계를 상대로 본 모습을 보일까 조마조마했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척도 거북했지만, 적어도 인간 목숨을 파리로 아는 사이코가 말을 끊었다고 기자의 목을 뎅겅 날리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았다.
[저…. 비행기에 탄 이후로 잘 기억은 안 나요.]
피닉스는 ‘마치 내가 아무것도 기억을 못해서 죄송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깔았다. 샤오린과 협회의 관계자가 도끼눈을 치켜뜨며 기자를 나무라듯 노려봤다.
“아하.”
은유하는 손가락을 튕기며 협회측 인사의 정체를 깨달았다.
“팬텀 변신이네요.”
“어떻게 아셨습니까?”
“감으로요.”
은유하는 감이라고 얼버무렸지만, 협회의 감시자-로 변신한 천가을은 피닉스를 옆에서 딱 지키고 있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기자들에게 나가는 문을 가리켰다.
[아직까지 안정을 취해야 합니다. 지금은 청화양이 하고자 하는 말을 들으시고, 추후 따로 이야기를 진행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생방임에도 병실 안의 대화가 가감없이 전파를 탔다. 샤오린은 기자 중 그나마 순해 보이는 이를 대표로 병실 안으로 들이고, 나머지를 밖으로 쫓아냈다.
[그, 그러면 비스트 테이머 청화 양. 하실 말씀은…?]
[아, 네.]
피닉스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 아직까지는 괜찮으니까, 괴수가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갈게요. 그게 제게 주어진 사명인 걸요.]
[아.]
기자는 숨을 헛들이켰다. 고개를 돌리는 게 눈물까지 글썽이는 것 같았다. 피닉스는 간신히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부들부들 떨리는 게 고문의 흔적이 가득한 안면의 고통을 참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세계를 구하는 게…. 제 역할인 거니까요.]
“우웩.”
아키택트는 마시던 차를 뱉었다. 하늘성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은유하는 굳은 얼굴로 피닉스의 옆, 탁자 위에 놓인 검은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혹시…?”
불꽃 모양이 그려진 건 착각일까. 피닉스는 카메라가 검은 구슬을 향하는 걸 보자, 화들짝 놀라며 구슬을 챙겼다.
[이, 이건 그러니까…!]
[인터뷰는 이걸로 끝입니다.]
[자, 잠깐만요! 저게 뭔-]
치치직! 샤오린이 무언가를 강하게 휘두르는 것으로 영상 송출이 끝났다. 아마도 무기로 카메라를 베어버린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고, 방송사는 재빨리 데스크로 화면을 조정했다.
[그...방금 그 구슬은 무엇이었을까요?]
[코어...같아보였습니다만.]
“어머. 설마 저런 짓을 저지를 줄은.”
은유하는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멈췄다. 남자 둘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코어인 건 알겠는데, 저건 무슨-”
“그냥 쇼를 하려는 걸 거예요. 흐흐, 이제 각국에서 알아서 S급 코어 바치려들겠네요.”
은유하는 바로 인형들을 움직여 네트워크의 반응을 확인했다. 사람들은 청화가 다친 것에 분노하고, 그의 사명감에 감동했지만, 도대체 그 코어가 무엇인지에 상당히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은유하는 발견했다. 피닉스가 아마도 나오기를 원했을, 그리고 은유하가 예상한 반응이.
-저거 코어만 있으면 괴수 부활시킬 수 있는 거 아니냐??
“몸값 엄청 뛰겠네요, 이제.”
은유하는 피닉스의 악랄한 수에 혀를 내둘렀다.
“한 집에 흑염룡 한 마리씩 분양하면 돈이 얼마나 될까요?”
“저…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칫.”
은유하는 자신의 흐름을 따라오지 못하는 두 남자의 느린 이해도에 탄식했다. 빨리 피닉스와 추후 이루어질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천천히 설명해드릴테니까 잘 들어요.”
은유하는 두 남자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
"너 연기 정말 더럽게 못하는 구나?"
"......시끄러워요."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남은 병실. 이곳에는 사람은 없었고, 괴인들만 남았다.
"그럼 이제 나타나요."
스륵. 내가 말하자마자 샤오린의 옆 공간에 아지랑이가 일렁거렸다. 샤오린의 옆에서 그를 코칭하던 봉효, 그리고 봉효에게 업혀있다가 바로 등에서 내려 쫄래쫄래 천가을의 옆으로 달려온 환룡.
환속성 괴인과 환속성 정령은 영체가 되어 병실에 들어왔다. 샤오린이 기자들을 이끌고 내 병실에 들이닥친 순간, 혼란을 틈타 몰래 들어왔다.
"역겨웠어."
"뭐래요. 세계 평화는 진심이거든요? 그래서 봉효. 당신 뜻대로 수작은 부렸어요. 어디 한 번 계속 말해봐요."
"예."
봉효가 앞에 나섰다. 흑염룡의 코어를 옆에 둠으로써, 괴수를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리자는 건 봉효의 계책이었다.
"우선 흑염룡이 살아있다는 걸로 모택평은 불안감에 빠질 겁니다. 샤오린이 그의 품을 완전히 벗어난 이상, 흑염룡은 엄청난 압박이 되겠죠. 흑염룡의 위협? 오히려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겁니다. 왜냐."
"흑염룡의 북경 습격은 납치당한 주인을 구하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
"정확합니다. 아니, 원래부터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으셨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내 계획을 확장시킨 것은 봉효였다.
"괴수 조종의 매커니즘은 코어를 통한 부활. 이거면 저희 주군도 전면으로 나서실 수 있겠지요."
"비스트 테이머를 여럿으로 만들 생각이군요."
"예. 피닉스 님께서 전세계를 일일이 도실 수는 없으시잖습니까."
봉효는 눈을 찡긋였다. 나는 그의 말에서 숨겨진 의도를 깨달았다. 역할분담. 그는 환룡에게 노동의 참된 기쁨을 알려줄 모양이었다.
"그렇네요."
"그런 거죠."
나는 눈으로 그의 노고를 치하했고, 봉효는 담담히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환룡은 자신에게 씌워지는 근로의 올가미를 눈치채지 못한 채, 가을에게 엉겨붙으며 스킨십을 시도하고 있었다. 그냥 찰거머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럼 이제 두번째. 모택평을 실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부정부패 즈음이야 큰 문제가 안 될 것 같은데."
"아마도 어려울 겁니다. 재산 대부분이 자식들에게 나뉘어져 있고, 사람들은 그들이 모택평의 사생아인줄 모르니까요. 고독으로 협박해 대신 감옥으로 보내지도록 꼬리를 자를 겁니다."
한 마디로 모택평은 책을 전혀 잡을 수 없는 존재란 말이었다. 나는 두가지 의문이 들었다.
"모택평한테도 청송이 있어요?"
"예?"
"아. 정정. 모택평한테 고독을 다루는 이능력자가 있나요?"
"......예. 있었죠."
봉효는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자기자신을.
"저였습니다. 하나의 양고와 수많은 음고. 음고가 심장에 박힌 이는 양고를 가진 이의 명령을 따라야하죠."
"...세상에. 어떻게 모택평에게 그렇게 이용당하고 살 수 있었죠?"
"그래보여도 아버지였으니까요. ...설마 제 능력을 자신의 딸 심장을 터뜨리는 데 사용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군께는 항상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봉효는 허리를 숙여 환룡에게 인사했다. 환룡은 쑥스러운 듯 가을의 뒤로 숨었다.
"......당신은 정말 유능한 사람인 모양이네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이제서야 그가 원작에서 나오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봉효는 너무 유능해서 제거당한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인 모택평에게. 넌 더이상 효용가치를 잃었다거나 하면서.
"환룡."
"왜."
"당신 가챠하면 리세마라는 필요없겠네요."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덕배라면 찰떡같이 알아들을텐데. 그도 아니면 나와 기억을 공유한 몸속의 새라도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걸까.
"아."
타이밍을 언제로 잡으면 좋을까. 내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샤오린이 내가 잊고있던 일정을 말했다.
"그래서 주석의 초청에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그거 말예요."
나는 원래 비행기가 납치 되지 않았을 때의 일정을 떠올렸다.
"그냥 환영회를 강행하는 거 아녜요? 지금 이 상황에서도 초청에 응한다는 건…."
"저는 불참을 추천드립니다."
봉효가 초청에 응할 것을 추천했다. 나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왜요?"
"피닉스 님, 그러니까 청화 님은 대외적으로 당에 의해 피해를 입으신 분. 하루도 지나지 않아 행사에 참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뭣보다 피닉스 님이 갑 아니십니까? 무릇 남성의 데이트 제안에는 한 번 튕기는 게 더 매력적일 겁니다."
"제가 천자 상대로 밀당하는 것도 아닌데 왜요?"
봉효의 야시꾸리한 단어 선택에 내가 따지고 들었다. 가을과 샤오린이 봉효를 노려보고, 어째선지 환룡까지 봉효를 눈으로 질책했다.
"......실언이었습니다."
봉효는 재빨리 발언의 경솔함을 인정하고 철회했다.
"크흠. 그래서 오늘 하루는 쉬시지요. 사람들에게 냉정한 상태에서 생각할 시간을 주시고, 내일을 기약하십시오."
"알겠어요. 샤오린, 그러면 협회를 통해 잘 얘기해주세요. 비스트 테이머는 기절해서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설화령에게도 전해두겠습니다."
"...그럼 모택평은 내버려두는 거야?"
가을이 찝찝하다는 얼굴로 불편함을 내비쳤다. 가만히 두기에는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상대이기는 했다.
"걱정마세요."
나는 창밖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지금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으니까. 그쵸, 황제님?"
"그래. 지금 여인 하나를 침실로 들여 거칠게 음양합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스크린을 내리고 있던 흑전갈 괴인이 모택평의 동향을 보고했다. 나를 포함해 병실안에 있던 이들은 갑작스레 알게된 불편한 지식에 갑자기 어색해졌다.
"어, 음."
"...거 취향 참."
"냅둬요. 사람이 그런 거라도 스트레스는 풀어야죠. 아무리 적이라지만 개인의 사생활은-"
"박히고 있는 여인, 상당히 그대와 닮았군. ...파란색 가발까지 씌웠는데? 이건 현대의 병마용인가? 강철로 된 인형이라니. 굉장하군."
쬬를 반으로 갈라 조/조로 만들어버려야 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