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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66화 (166/1,497)

〈 166화 〉1부 8장 26

나는 샤오린과 함께 북경으로 올라갔다. 환룡을 깨웠고 무신을 처리했으니 이제 거리낄 게 없었고, 나는 북경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정령의 기운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고생했어요."

"내가 뭘 한게 있다고."

가을은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항상 어정쩡하던 자세가 변한 것을 보고 금방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S급 축하드립니다."

"축하 선물은?"

"JDB 드릴까요?"

"그게 뭔데?"

"조덕배요."

"꺼져."

가을은 인상을 찌푸렸고, 나는 슬며시 가을의 뒤를 살폈다. 역시 문제의 그것은 없었다. 진정한 S급 환속성으로 각성하면서, 촉수꺼비의 잔재는 가을에게서 자취를 감췄다.

"이제 완전히 가라앉았네요."

"꺼내려면 꺼낼 수 있어."

가을은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S급에 이른 환속성 마력이 가을에게서 일어나자, 가을의 뒤로 회백색의 촉수 아홉 가닥이 돋아났다. 내가 촉수라는 걸 알고 있기에 촉수라고 봤지만, 처음 보는 이는 반투명한 꼬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제 진짜 구미호 다 됐네요?"

"그래도 코드 네임은 팬텀으로 계속 가고 싶은데."

"좋을 대로 해요. 협회에서 바꾸려고 하면 대가리들 깨뜨려서라도 바꿔드릴게요."

"말이라도 고맙네. 그럼 일단 이쪽도 서로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은데?"

가을은 자신의 옆에 딱 달라붙어있는 환룡을 가리켰다. 나도 내 옆에 시립한 청백색 전포의 가면 쓴 무인을 가리켰다.

"얘 환룡이야. 네가 말한 환속성 정령."

"......."

환룡은 가을에게 딱 달라붙어서 으르렁거렸다. 역시 내 예상대로 가을은 성공적으로 환룡을 설득한 모양이었다.

"잘했어요, 가을. 역시 제 언질이 통했나보네요."

"아니. 그거 하나도 안 써먹었는데."

"......."

치트 없이 공략을 한 번에 성공? 나는 절로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어떻게 했어요?"

"그냥 누구 호박씨나 깠지. 공감대가 정말 잘 형성됐거든. 아주 나쁜 사람이었어. 그치?"

끄덕끄덕. 환룡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죽일듯이 노려보는 시선의 향방은 나를 향해있었고, 나는 베일을 베베 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내가 죽일 놈입니다."

"그럼 죽어."

환룡이 내 말꼬리를 잡으며 도발했다. 나는 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빙의 말고는 할 줄 아는 거 없는 애가 무슨."

"아는 거 많거든? 너보다 잘 하거든?"

"글쎄요. …...진짜로?"

나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혀를 낼름거렸다. 무엇을 잘 한다고 말한 건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환룡보다 잘하는 건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한 번 테스트 해 봐요?"

나는 환룡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시선을 맞췄다. 일부러 입술을 뻐끔거리며 침을 살짝 묻혔고, 환룡은 내 도발에 사색이 되면서도 얼굴을 붉혔다.

"...벼, 변태!!"

"어머. 싸움 얘기였는데."

나는 빽 소리를 지른 환룡의 어깨를 탁탁 두드린 뒤, 가을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을 또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당신은 또 왜 그래요?"

"...아니, 잠깐 나 보지마."

S급이 되면서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한 걸까, 가을은 목 아래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나는 두 환속성 콤비가 왜 당황했나 고민이 들었지만, 곧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피닉스가 좀 요염하기는 하지.'

그리고 나의 테크닉까지 더해졌으니 음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나를 그 분야의 최강자로 만들어준 여신님께 감사의 인사를 속으로 올린 뒤,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었다.

"흠흠. 아무튼 환룡, 반가워요. 온전한 정령으로 깨어난 걸 축하드립니다."

"......그 얼음땡이는 뭐야?"

환룡은 내게 바로 질문했다. 그로서는 당연히 궁금한 것이리라.

"루살카 딸입니다."

"......."

"20년 전에 인간이랑 눈맞고 배맞아서 애를 낳았는데, 여차저차해서 걔한테 정령의 힘이 넘어갔어요. 이제 석하랑이 물의 정령입니다."

"와, 와…."

환룡은 소름이 돋는다는 듯 팔짱을 끼며 몸을 떨었다.

"어떻게 인간이랑 그 짓을, 아, 아니. 그러면 루살카는 어디에 있는 거야?"

"한국요. 중국에 오면 위험해서 대기시켜놨어요."

"왜?"

나는 샤오린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모 유부녀 헌터가 노릴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이제 그 사람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 겁니다. 그러면 각성한 정령을 위한 선물."

나는 안주머니에 보관하고 있던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주머니에는 회색이 대부분인 코어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환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제가 미쳤다고 당신이랑 척 지려고 했겠어요? …...그, 기만한 건 미안해요. 그 때 깨뜨렸던 코어는 다 가짜였어요."

"......."

환룡이 나를 보며 입을 떡 벌렸다.

"너 가짜지?"

"......무슨 망발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루살카도 눈치채지 못한 내 정체를 이렇게 쉽게? 나는 등에 식은땀이 절로 흘렀지만, 애써 불쾌한듯한 표정을 유지했다.

"아냐. 네가 창염일 리가 없어. 그도 그럴게…."

환룡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언했다.

"창염은 사과같은 거 안 해! 절대로 자기 잘못 인정 안하는 년이라고!"

"......사람은 살다보면 달라지기 마련이에요."

"정령이잖아!"

"비유적인 표현이에요. 이런데서 따지고 들면 어쩌라는 거예요. 나 참. 됐고, 빨리 다들 부활이나 시켜요."

나는 샤오린을 가리켰다.

"그리고 쟤도 좀 고쳐주고."

"뭘 고치라는 건데?"

"제가 가슴에 바람구멍을 좀 냈거든요."

샤오린은 자신의 전포를 슬쩍 들어올렸다. 전포 아래에는 속옷 한 벌 없이 나신만 있었다.

"......내가 속옷을 안 만들었던가?"

"......어머."

"......심하네."

나는 속옷이 없음을, 가을은 잘 빠진 샤오린의 몸매를, 그리고 환룡은 코어 근처의 상처를 봤다. 환룡은 울상을 지으며 샤오린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아팠지?"

"괜찮습니다, 주군. 비록 패배하였으나 저는 만족합니다. 다음에 이기면 됩니다."

"주군?"

이 새로운 관계도는 또 뭐지. 나는 생각은 했지만 정작 직접 들으니 새삼스러워졌다.

"......환룡은 좋겠네요. 천가을이랑 샤오린, 양손의 꽃이라니."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가을이 내 머리를 손으로 헝클였다.

"내가 왜 쟤 꽃인데?"

"...아니, 신화적인 의미에서 한 말인데…."

"흥! 야, 그러면 가을이 나한테 넘겨!"

"지랄하지마라. …...어머나."

나도 모르게. 나도 놀랐고 가을도 놀랐고 샤오린도 놀랐고 환룡도 놀랐다. 나는 잠시 목을 가다듬고 나긋나긋하게 환룡에게 웃으며 말했다.

"지랄하지마요."

"아 왜에에?! 가을이 나한테 주면 내가 진짜 열심히 할게. 응?"

"......너 도대체 뭘로 애를 설득한 거냐?"

이해하기 어려운 환룡의 정신상태에 나는 피닉스의 말투-내숭을 내려놓았다. 가을은 볼을 긁적이면서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환룡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얘가 너한테 내가 아까운 인간이라고 하더라."

"......."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환룡의 착각을 바로잡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천가을은 못 준다."

"왜?"

"애초에 줄 물건이 아니니까."

나는 가슴께의 코어를 가리켰다.

"천가을은 청화단의 간부다. 괴인이기 이전, 인간 때부터 청화단의 일원이었어. 주고 받는 물건이 아니야. 엄연한 사람이다."

"......무슨 차이야?"

환룡은 짐짓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인간이 아닌 정령으로서의 사고로 인간을 판단하면서 생긴 오해였다.

"됐어. 이해하지 못할 거면 그냥 이해하지 마라. 정 네가 천가을을 갖고 싶거든…."

나는 천가을의 눈치를 슬쩍 봤다.

"나를 죽이고 가져가라. 천가을은 내 사람이다."

"그래? 그럼 간단하네. 지금 당장 본체로…. 어라?"

환룡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령으로서의 본체를 꺼내려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본체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샤오린의 눈치를 보고 헛기침을 했다. 환룡만 있다면 막말하고 싶었는데, 샤오린이 있으니까 눈치가 조금 보였다.

"소용없어요. 우리 지금 본체로 돌아가려면 절차가 필요하니까요."

"절차?"

"사랑을 하는 거죠."

"푸우웁!"

환룡이 뿜었다. 그 침이 내 얼굴과 옷에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불꽃을 피워 더러운 침을 없앤 뒤, 고개를 꺾었다.

"푸하, 하아, 하아. 아, 이제야 알겠네. 너 그래서 아직 그 꼴이구나?"

"좋을 대로 생각해요. 어쨌든 천가을은 못 줍니다. 정 갖고 싶으면 직접 사랑을 쟁취하세요."

"어머, 그래도 돼? 혹시나 내가 쟤한테 홀라당 넘어가버리면?"

"......그럴 생각 있나?"

나는 갑자기 불안해져서 가을을 올려다봤다. 어장을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나는 졸지에 히로인들을 상대로 어장관리나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그 어장의 첫 손님이 천가을이었다.

이어지는 은유하, 석하랑, 히카리, 환룡, 거기에 지금 샤오린까지 낚으려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으니, 딴 마음이 생겨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글쎄. 그건 너 앞으로 하기에 따라 달린 거 아닐까?"

가을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내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웃었다. 나는 속에서 들끓는 열기를 내리느라 안간힘을 써야만 했고, 가을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훗."

"나, 나도 해줘!"

환룡은 가을에게 엉겨붙으며 나와 똑같은 취급을 원했고, 가을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것 마냥 다른 손으로 환룡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히로인에게 히로인을 NTR 당한다니.'

효율적으로 따지면 이건 베스트 매치다. 천가을과 환룡. 떡볶이와 순대같은 만고불변의 조합이 서로 사이가 좋아지게 되어 신화-SSS에 이른다면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다.

'근데 왠지 되게 고까운데.'

그런데 이 싱숭생숭하고 더러운 기분은 뭘까. 분명 이 세계의 얘들은 내가 알던 걔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인데, 자꾸만 과거의 기억이 투영되어 기분이 찝찝하다.

거기에 튀김같은 애 까지 환룡에게 딸려있다. 나는 이 애매모호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튀김을 불렀다.

"샤오린."

"방금 저를 두고 이상한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그 튀김옷....아니 운장 코스프레 벗을 때가 됐어요."

"너 제정신이야?"

가을이 갑자기 내게 일갈했다.

"사람들 앞에서 스트립쇼 시킬 생각이야?"

"아뇨. 당연히 가면만 벗는 거지. ...아, 진짜."

나는 가슴을 탕탕 두드려 열기를 가라앉혔다. 큐브 때문인지, 자꾸만 튀어나오려고 아우성을 친다. 그리고 나는 이 화를 토해내는 순간, 여러모로 끝장이라는 걸 확신했다.

"......샤오린."

나는 목소리를 깔고 샤오린을 불렀다. 샤오린도 변한 내 목소리에 자세를 바로잡았다.

"넌 지금부터 나를 모택평에게서 구출한 영웅이 된다. 알겠나?"

"......흐음."

샤오린은 손으로 턱을 쓸며 내 말뜻을 이해하려 했다. 나는 다른 둘에게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 내 계획을 알렸다.

"비스트 테이머 청화는 비행기에서 납치 당했고 비행기는 폭파. 폐관수련을 하던 운장은 SS급으로 각성하여 급히 귀국. 납치범들을 추격한 끝에 청화를 구출. 어떤가?"

"폐관수련...입니까?"

"네가 SS급으로 올라서 급히 끼워넣은 계획이다."

"좋습니다. 붙잡힌 인질을 구출하는 것으로 데뷔하는 것도 나쁘지 않군요."

다행히 샤오린은 내 급조한 계획을 따른다고 했다. 나는 환룡이 가슴에 끌어안은 코어를 가리켰다.

"부활시켜."

"왜?"

"납치범들 만들어야지."

"......내 애들을 왜 네 멋대로 부리려 하는 거야?"

"그게 네 애들 자유롭게 만드는 방법이다."

"......자, 잠깐만 기다려봐."

환룡은 코어 하나를 꺼내 다시 부활시켰다. 봉효였다.

"작전은 실패한 모양입니다?"

"응. 일단 상황은 이래."

환룡은 봉효에게 자신이 놓인 상황과 내 계획을 읊었다. 봉효는 이전의 작전이 실패한 것에 대한 반감은 그닥 없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환룡이 말하는 내 계획을 경청했다.

"그럴듯 하군요. 완전히 실각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운장은 없어지겠죠?"

"그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추후에 진행하면 되는 일이니."

봉효는 눈을 빛내며 내게 포권을 취했다.

"그럼 청화단의 단주님. 완벽한 작전을 위해 제가 첨언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만...."

봉효라는 이름 때문일까.

그의 작전은 나조차도 소름돋았다.

* * *

북경.

설화령, 석하랑은 S급 괴수와 SS급 괴수를 쓰러뜨린 공로를 인정받아 정식으로 초청을 받았다. 이능력자로 각성한 꼭두각시 청년, 그 옆을 보좌하는 토끼귀의 이능력자, 그리고 짜증이 가득한 얼굴의 모택평까지.

"13억 시민들을 대표하여 감사하오. 그대가 아니면 북경이 큰 일이 날 뻔 했소."

"아닙니다. 히어로로서 할 일을 다 했을 뿐입니다. 다만."

석하랑은 딱딱한 목소리로 분위기를 잡았다.

"후에 나타난 SS급 괴수에 대해서는 현재 오라클이 분석중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S급 괴수, 흑염룡이 북경으로 날아온 이유에 대해서는 짚이는 바가 있습니다."

"......뭐죠?"

토끼귀 여인이 귀를 쫑긋 세웠다. 석하랑이 자꾸만 모택평의 눈치를 보는 것 정도는 그도 눈치를 챘다. 석하랑은 머리를 쓸며 머리핀을 살짝 만졌다.

"비스트 테이머, 청화는 납치당했습니다. 괴수관리대책국의 내부 조직-'동창'에 의해 말이죠."

"......!"

주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배석한 이들의 눈이 모두 모택평에게 돌아갔다. 모택평은 여유로운 얼굴로 차를 들어올렸다.

"...말씀드리기 부끄러우나, 현재 동창은 탈주한 이들이 존재합니다. 제 선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 이렇게 되어버렸군요.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예. 그래서 저희 원탁에서 청화 양을 구출해냈습니다."

모택평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석하랑의 말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운장이, 모 장원에 감금되어있던 청화 양을 말이죠."

석하랑은 워치를 눌러 스크린을 띄웠다.

그곳에는 약물에 취한 듯 기절한 청화, 그리고 그를 안고 장원을 빠져나오는 청색 전포의 운장이 북경 대로를 걸어오고 있었다.

비스트 테이머, 청화. 구출.

중국 대륙을 혼란에 빠뜨렸던 사건은 일단 일단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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