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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65화 (165/1,497)

〈 165화 〉1부 8장 25

군신(軍神) 샤오린.

운장이라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군신으로 거듭나는 SS급의 이능력자로, 그 경지에 오르면 자신의 진짜 재능을 각성하게 된다.

검강.

처음에는 검에 마력을 싣던 단계로 시작해 종국에는 자신의 마력 자체를 검으로 만들어내는 판타지의 설정을 그대로 갖다박은 샤오린의 재능은 SS급에서 그 판타지를 실현해낸다.

무기강화에서 무기구현으로.

마력으로 무기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무기 자체를 만들어내어 계속 휘두르는 것이다.

다만 그 무기는 당연히 마력으로 이루어진만큼 속성을 가지기 마련이지만, 샤오린은 치사하게도 혼돈환룡의 괴인이라는 특성까지 이용하고 있다.

영체의 무기화. 마력으로 빚은 무기에 영체의 속성을 덧씌워, 실체가 없는 무기를 만들어낸다. 물리력이 없는 샤오린의 병장기는 마력 그 자체를 잘라버리려 하고 있다.

그리고 내 몸은 마력으로 이루어져있다.

나는 졸지에 내 하드 카운터를 만나버린 것이다.

* * *

사각!

부분 괴인화를 통해 불러온 건틀릿의 손등이 잘렸다. 잘려나간 단면 아래 내 손등이 벌겋게 익어있었고, 나는 무기가 있을 위치를 향해 다른 손바닥을 쳐올렸다.

카앙!

마력이 부딪히며 불똥이 튄다. 무기의 장대 부분인 듯 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나는 샤오린의 무기가 아닌, 샤오린의 자세를 봐야했다.

"뭔지 안 보여서 곤란하십니까?"

"눈 감고도 이기니까 닥치고 계속 싸워요."

벌써 30여합 넘게 합을 주고받았다. 나는 공격을 한 번 할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샤오린의 무기에 온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패앵-!

고개를 급히 옆으로 돌렸다. 귓불을 무언가 스치고 날아갔다. 시위를 당기지도 않고 쏜 것으로 봐서는 석궁인 듯 하지만, 자세는 전혀 아니었다. 샤오린은 다시 봉을 잡는 자세를 갖췄다.

"하앗-!"

발을 앞으로 내민다. 찌르려는 걸까? 베려는 걸까? 도끼? 창? 극? 쉽게 예측하기는 어려웠고, 마력으로 찍어누르는 것도 어려웠다.

"어딜!"

그래서 나는 오히려 앞으로 발을 내딛으며 거리를 좁혔다. 샤오린은 순간적으로 눈썹을 찌푸렸고, 나는 그 불편함을 놓치지 않았다.

'날붙이가 달린 봉인가?'

무기가 무엇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 나는 무기를 든 사람을 공략하기로 했다. 샤오린은 봉으로 추정되는 무기를 회수해 내 발을 노렸다.

"흥!"

땅을 박차고 점프했다. 아마 장대로 추정되는 곳에 발을 디딘다. 영체라고 하더라도 마력을 실으면 그 실체를 밟을 수 있다. 샤오린은 자신의 무기를 타고 올라온 내 행동에 이를 깨물었다.

타다닥.

장대를 타고 달렸다. 행여나 중간에 무기를 해제할까봐 날개까지 보험으로 펼쳤다. 샤오린이 장대를 놓는 시늉을 했고, 나는 그대로 점프해 공중제비를 돌았다.

서걱-!

샤오린의 수도가 내 귓불을 스쳤다. 단검? 세검? 그도 아니면 은장도? 샤오린은 아주 작은 무언가를 쥐고 있었고, 나는 샤오린의 뒤에 착지해 주먹을 뻗었다.

카앙!

샤오린은 단검으로 추정되는 것을 역수로 쥔 채 휘둘렀다. 마력 감응 하나만은 기가막힌 이능력자답게, 뒤에서 기습을 한 내 주먹의 위치를 정확히 읽어냈다.

푸욱-!

단검은 건틀릿을 파고들어 내 손을 찔렀다. 샤오린은 자신이 찔러놓고도 내가 쉽게 공격을 허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건지,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흥."

아프기는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광검도 그러했지만, 이세계의 무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몸을 도외시한 육탄 공격에 한 번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괴수나 마룡들이나 할법한 행동을 엄연히 인간의 모습을 한 내가 하니까. 특히 살생을 꺼리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효과적인 잡기술이다.

콰아아악-!

붉은 피가 튀고, 잘려나간 건틀릿의 손가락이 푸른 불꽃으로 타올랐다. 나와 연결이 끊긴 육체는 불에 타들어가며 소실되었으나, 그 시각적 효과-눈뽕으로 인해 샤오린은 눈을 찌푸려야 했다.

"이런...!"

나는 아직 살아있는 쪽의 주먹을 뻗었다. 발을 앞으로 구르며, 허리를 비트는 힘을 싣고, 기병창처럼 찌르듯이 주먹을 곧게 내질렀다.

퍼--억!

샤오린의 옆구리에 내 주먹이 꽂혔다. 주먹 모양으로 움푹 패인 샤오린의 얇은 허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으나, 샤오린은 터지기 전에 마력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데 성공했다.

"큭!"

나는 발을 급히 바닥을 쳐서 뒤로 물러섰다. 이미 샤오린은 창대같은 무언가를 나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팔이 잘렸다. 샤오린은 자신의 옆구리를 가격한 내 팔을 가차없이 베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자세와 칼날의 궤적을 보며 샤오린이 쥔 무기가 무엇인지 확신했다.

"언월도구나?"

운장을 버리기로 했어도, 습관이라는 것은 무시하지 못한다. 내 확신에 샤오린은 인상을 썼지만, 더이상의 전투는 의미가 없었다.

"끝이에요."

나는 가차없이 팔을 버렸다. 아직 손등까지 남아있는 손을 뻗었다. 손가락 대신 푸른 결정같은 손톱이 나있었다.

콰득.

심장을 찔렀다.

샤오린은 내게 심장이 잡혔다.

괴인 샤오린은 자신의 목숨인 코어를 가격당했다. 내 손톱 끝이 코어를 건드리고 있었다.

"…여인을 이리 함부로 대하시는 분이셨어요?"

샤오린은 왈칵 피를 토하며 웃었다. 또 패배해서 긴장이 풀린 건지 말투가 그 나이대의 아이로 돌아왔다. 나 또한 피를 흘리며 웃었다.

"남녀를 떠나서, 당신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강한 존재예요. 봐줄 수 없죠."

"그런 것 치고는, 커흑. 상당히 많이 봐주신 것 같습니다만."

샤오린은 내 몸을 가리켰다. 나는 괴인형이 아닌 인간형의 몸으로 샤오린과 맞서 싸웠고, 수십 합을 겨룬 끝에 나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뭘 봐줘요? 전력으로 싸웠는데."

"괴인형으로 싸우시지 않으셨잖아요."

"당신이랑 스펙 대결을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요?"

나는 샤오린의 심장에서 손을 빼냈다. 앞가슴이 뻥 뚫리고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지만, 샤오린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저보다 저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모양입니다?"

"잘 알죠. 그러니까 이렇게 여유부리는 거 아녜요?"

나는 잘린 팔의 단면에 손을 올렸다. 마력이 퍼져나가며 팔을 구축했고, 나는 팔을 이리저리 돌리며 상태를 확인했다.

"당신이 깨끗하게 패배를 승복하는 사람이니까 가슴 놓은 거지, 아니었으면 바로 바닥에 메다꽂았어요."

"저런. 기대에 부응하지 말 걸 그랬네요."

샤오린은 자켓으로 노출된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괴인이라 죽지는 않겠지만, 보기에는 상당히 흉했다.

"시안 근처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묻고 싶었는데요."

"예."

"수영복에 자켓은 누구 아이디어에요?"

나는 샤오린의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쿨미즈를 연상케하는 하이레그 수영복도 수영복이었지만, 그 위에 걸친 청화단의 자켓은 더 어이가 없었다.

"수영복은 봉효 오라버니의 아이디어고, 자켓은 서울 갔을 때 선물로 받은 거예요."

"……."

나는 주머니속에 넣어둔 코어를 꺼냈다. 혼돈환룡이 만든 괴인인 만큼 그가 부활을 시켜봐야겠지만, 역시 이 놈과는 진솔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크흠. 일단 치료부터."

나는 샤오린의 구멍난 가슴에 마력을 채워넣었다. 치료는 아니고 흉한 몰골을 가릴 임시방편이었지만, 다행히 더이상 피는 나오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나는 마력을 쥐어짜 옷을 만들어냈다. 샤오린을 위한 코스튬이기도 한 옷은 백색과 청색이 섞인 전포로, 관운장 시절의 코스프레 디자인과 매우 흡사했다.

"이건 뭡니까…?"

"2P 컬러죠."

"예?"

"그냥 해본 소리니까 일단 입어요. 가면도 챙기고."

"…저보고 지금 운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세요?"

"당연한 거 아녜요?"

짐짓 화난듯한 샤오린에게 나는 검지로 그의 이마를 톡톡 건드렸다.

"대중들 앞에서 변장을 풀어야 당신이 운장인 걸 믿을 거 아녜요."

"…오호."

샤오린은 귀가 솔깃한지 제법 흥미가 동하는 듯 했다. 역시 대중의 관심과 카메라 욕심이 많은 샤오린으로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생각에 들떠보였다.

[들려?]

하얀 나비 배지가 울렸다. 석하랑의 호출이었다. 샤오린이 내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는 사이, 나는 배지에 손가락을 올리고 석하랑에게 응답했다.

[무슨 일이냐.]

[환룡 각성했어. 그…천가을 언니랑 같이 나왔는데?]

[내가 보낸 거 맞다. 다행이군.]

석하랑은 환룡이 각성하자마자 내게 연락을 보낸 모양이다. 나는 이제서야 뒤섞여있던 혼돈이 사라지고 직접 앞으로 나선 환룡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천가을과 환룡 데리고 북경으로 와라. 나도 곧 합류하겠다.]

[알겠어. 나는 협회로 가면 되지?]

[그래. 은유하에게도 연락해라. 비행기값 물어줄테니 인형 하나 중국으로 보내라고. 직접 건네주겠다.]

[이게 자꾸 나한테 명령을 하네? 야! 내가 네 부하야?]

[부하는 아니지. …그렇군. 말 실수를 했어.]

나는 목을 가다듬고 말을 정정했다.

[은유하에게 연락을 좀 해줘. 부탁하마.]

[……진작 그렇게 얘기하지. 알았어! 모처럼 네가 부탁하는데 안 들어줄 수는 없지. 좀 있다 북경에서 봐!]

달칵. 석하랑은 연락을 끊었다. 나는 배지를 엄지로 쓸었다.

"쉬운 녀석."

"어…저기…."

"왜 그러시죠?"

전포를 다 차려입은 샤오린은 나를 보며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전포의 이상을 확인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혹시 속옷 때문에 그래요? 만들어 드릴 까요? 사이즈가…85B였던가?"

"제 사이즈는 어떻게,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크흠."

샤오린은 헛기침을 하며 내 입을 가리켰다.

"왜 제게는 존대하시고, 이야기를 나눈 분께는 반말하시는 겁니까?"

"……아차."

설마 정령들끼리 떠드는 걸 들었을 줄이야. 아주 가까이에서 있었기에 내 목소리만 들은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마력의 울림을.

"그게 들렸어요?"

"예. 아주 잘 들렸습니다. 당신 목소리만 들렸지만."

[지금 것도 들리나?]

"히익?"

샤오린은 몸을 움츠렸다. 나는 손을 흔들어 마력의 울림을 풀었다.

"그러는 당신도 지금 말투 바꿨잖아요. 운장 코스프레."

"그, 그건 어디까지나 습관 때문에 그런 겁니, …예요. 크흠!"

"편한대로 얘기해요. 어느쪽이든 귀여우니까."

개인적으로는 딱딱한 말투 쪽이 취향이기는 하지만, 가끔 파릇파릇한 소녀 감성이 튀어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애초에 주인공에게 정체가 들켰던 이벤트도 운장 코스프레 중에 생긴 럭키 스케베 아니었던가. 수염도 트리트먼트 하냐는 주인공의 질문에 빽 소리지르던 샤오린의 갭모에란….

"크, 크흠."

샤오린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잠시 내 언행을 되돌아보았다. 또 습관처럼 저지르려했구나. 반성했다.

"…뭐, 말투는 편한대로 하시고."

"왜 제게는 말을 놓지 않으십니까?"

공손한 말투를 유지하기로 한 건가. 나는 그보다 내게 말을 놓으라는 샤오린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제가 말을 놓아야 하죠?"

"그야 저는 당신께 두 번이나 패배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제가 당신에게 말을 놓을 이유는 되지 않는데요."

히로인은 히로인이지만 샤오린은 아직 내 신뢰를 얻은 이가 아니다. 내가 창염으로부터 말투의 자율을 얻은 이후, 나는 내가 신뢰할만한 이들에게만 '나'를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더 막대해주셔도 좋을 것 같은데."

샤오린은 툴툴거리며 전포를 여몄다. 분명 들으라고 한 소리지만 나는 한 귀로 흘려버렸다. 굳이 샤오린을 막대할 이유가 없었다.

"SS급을 막대해봐야 뭐 해요?"

"…예?"

"저런. 자기 경지도 몰라요? 당신 지금 SS에요. 그것도 환속성."

원래 S급인 이능력자를 혼돈환룡이 괴인으로 만들고, SS의 경계에서 오락가락하다가 깨달음 까지 얻었으니 그 윗단계에 이르는 것은 당연지사. 나는 대충 박수를 치며 샤오린의 각성을 축하했다.

"와. SS 축하드립니다. 이걸로 네 번째 SS네요."

"네 번째요?"

"세 번째 석하랑, 두 번째 광검. 그리고 첫 번째."

나는 강위에 둥둥 떠다니는 관을 가리키며 점프했다.

"무신. 항적."

끼이익. 나는 목관의 관뚜껑을 옆으로 밀었다. 그곳에는 죽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미청년이 잠들어있었다.

"인류 최초의 SS급이자 성주에게 일격을 날린 괴물. 그 대신 목숨을 잃었죠."

나는 항우의 환생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샤오린은 내 아쉬움을 읽은 눈치였다.

"괴인으로 만드실 겁니까?"

"좋은 재료기는 한데, 아마 불가능할 거예요. 이것 때문에."

푹.

나는 손톱을 세워 미청년의 가슴에 손을 찔러넣었다. 손톱 옆으로 붉은 피가 새어나왔고, 나는 그의 심장의 맥을 느낄 수 있었다.

두근. 두근.

"역시."

죽은 게 아니다. 살아있다. 성주를 때려패고 사망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아직도 살아있다.

"큐브 덕분이네요."

'모택평이 큐브를 여기서 얻었구나.'

콰득! 나는 그의 심장을 뜯어냈다. 뽑아낸 심장의 맥은 금방 멈춰버렸고, 미청년의 육신은 썩어 문드러져 삽시간에 백골이 되어버렸다.

두근. 두근.

소름끼치는 맥박이 아직도 손바닥 위에 뛰고 있다. 나는 손바닥위에 올려진 심장을 불태웠다.

"……이걸로 세 개째."

나는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큐브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샤오린을 향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이건 비밀이에요."

"뭡니까, 그건?"

"그러니까 비밀."

"맨 입으로요?"

샤오린은 거래를 요구했다. 나는 짜증이 났지만 그의 요구 사항을 들어줘야했다.

"뭔데요?"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죠."

샤오린은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담보라도 생긴 것 마냥 마음의 짐이 생겼지만, 그래도 은유하나 천가을 몰래 얻은 큐브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알겠어요. 그럼 이제는 뒷 마무리를 하러 가죠."

"뒷 마무리요?"

나는 마력으로 붉은 가면 하나를 만들어 샤오린을 향해 흔들었다.

"이제 벗고 살아야겠죠?"

샤오린은 게슴츠레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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