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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60화 (160/1,497)

〈 160화 〉1부 8장 20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나는 샤오린과 하야테, 운장과 질풍객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 뼈저리게 잘 알고 있다. 거기에 샤오린에 빙의한 혼돈환룡까지 가세한 이상, 섣부르게 싸울 수는 없었다.

1%라도 죽을 가능성이 있다면 하지 말자. 진짜 죽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그러니 만발의 준비를 갖춰야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를 위해 나는 유서깊은 도주기를 사용했고, 아주 성공적으로 몸을 내빼는데 성공했다.

“깜짝이야.”

석실에서 코어로 구슬치기를 하던 흑전갈 괴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는 괴인형을 해제한 뒤, 코어가 된 덕배를 다시 부활시켰다.

“으아악! 허억, 허억.”

덕배는 괴인으로 돌아와 바닥에서 숨을 헐떡였다. 흑전갈 괴인은 그의 모습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나는 그의 호기심을 채워줄 시간이 없었다.

“코어 줘봐요.”

“여깄네.”

흑전갈 괴인은 가지고 놀던 코어들을 내게 던졌다. 지속성을 가진 S급 코어 셋. 흑전갈들을 죽이고 나온 부산물이 내 손바닥 위에 놓였다.

“걔들 못이기냐? 튄 거지, 지금?”

“아뇨. 잠깐 생각을 좀 하느라.”

미니피닉스로 순간이동한 만큼 혼돈환룡은 내 위치를 찾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가진 전력을 다시금 상기했다.

나.

조덕배.

500여기의 C급 괴인 환염령 무리.

그리고 S급 흑전갈 괴인.

“저기요. 전투 가능해요?”

“호신술이라면.”

흑전갈 괴인은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무를 뽐냈다.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 괴물일 뿐, 무력 수치가 100에 다다른 두 괴물을 상대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쳇.”

“강적인가?”

“아뇨, 난적이요.”

죽여서는 안되지만 힘조절이 되지 않는 적. 나는 질풍객에게 한 번 잘렸던 손을 들어올렸다.

“봐주면 지는데, 안 봐주면 죽이게 되는?”

“그러니까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이군.”

“그런 셈이죠.”

샤오린에 혼돈환룡이 깃든 이상, 유사하게 SS급 이능력자의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질풍객까지 달라붙었으니, 귀찮기 짝이 없는 전력이었다.

“흑염룡 부르지?”

“걔는 베이징에서 잔챙이들 어그로 끌어야 해요. ...흠.”

조커카드가 있지만 지금 당장은 쓸 수가 없다. 그건 혼돈환룡을 확실히 제압한 뒤에 마음을 꺾는 조커카드지, 전황을 타개할 수단은 아니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혼돈환룡이 스스로 무언가를 하도록 의지를 다잡게 하는 것이다. 중국 땅에 내가 들어온 이상, 더는 잠을 자고 싶어도 잘 수가 없을 것이다.

"애 정신 차리게 할만한 방법은…. 아."

새삼스레 떠올랐다.

"대탈출."

혼돈환룡은 주인공 일행의 도움을 받아 진시황릉에서 벗어나, 그들과 함께 탈출길에 올랐다. 주인공의 등에 업혀 아무것도 하지 않던 혼돈환룡은 사력을 다해 탈출하려는 주인공 일행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쟤들은 왜 저렇게 열심히 도망치는 걸까.

"본인이 직접 느껴보도록 하면 되겠네요."

나는 환염령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황제님. 오랜만에 군병력 지휘해보시겠어요?"

흑전갈 괴인이 입꼬리를 씩 들어올렸다.

* * *

피닉스가 섬광탄을 터뜨리고 몸을 숨긴 그 시각.

셋은 혹시나 모를 기습에 대비해 사방을 경계했다. 아직 해는 떨어지기 직전이었고, 피닉스는 태양빛 아래에 숨어 언제든지 기습할 수 있었다.

"...우리 벌써 몇 분째 이러고 있지?"

"30분이 훌쩍 넘었습니다."

봉효는 현기증을 참으며 혼돈환룡에게 답했다. 섬광을 터뜨린 피닉스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고, 셋은 방심시킨 뒤에 기습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냥 도망친 거 아닌가?"

"그럴리가. 그럴리가 없어. 그냥 싸우기만 하면 자기가 이기는데 도망을 왜 쳐?"

질풍객은 초조한 얼굴로 칼날을 번뜩였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투에서 강자가 몸을 내뺀다는 건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짓이었다.

1:1이 아니었기 때문에? 질풍객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샤오린을 노려봤다.

"그러니까 왜 남의 몸을 빼앗아가지고는!"

"시끄러워. 인간 주제에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마. ...아, 귀찮아. 이 정도 기다렸으면 됐어."

혼돈환룡의 인내심은 길지 않았다. 샤오린의 몸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 영체는 '퐁'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찬데서 주무시면 허리 돌아갑니다."

샤오린은 바닥에 엎어진 혼돈환룡을 안아들었다. 왠지 모르게 혼돈환룡은 얼굴을 붉히고 있었으나, 봉효와 질풍객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저도 이제 한계…."

철푸덕. 봉효는 빈혈로 쓰러졌고.

"야! 긴장 놓지마! 이거 다 방심시키고 기습하려는 계략이야!"

질풍객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자세를 풀지 않았다. 샤오린은 제 앞에 안아든 혼돈환룡에게 시선을 돌렸다.

"주인님, 아니 주군."

"......왜?"

"오라버니와 수하들을 부활시켜 주시겠습니까?"

"귀찮은데…. 꼭 해야해?"

혼돈환룡은 샤오린에게 안겨있으면서도 투정을 부렸다. 샤오린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혼돈환룡을 타일렀다.

"호위는 당장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그들이 주군의 침소를 지키지 않았습니까."

"별 효과는 없었는데."

"그래도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죠?"

"...그건 그렇네."

혼돈환룡이 손짓을 하자, 샤오린은 그를 봉효의 시체 근처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혼돈환룡은 일어서지도 않도 봉효의 옷깃을 잡아당겨, 그의 코어에 손을 올렸다.

"부활."

우우웅.

코어가 순간적으로 봉효의 육신을 먹어치운 다음, 다시 봉효의 육신을 재구성했다. 뒤틀린 허리가 바로 서고, 뜯겨나간 팔은 다시 돋아났다.

"...감사합니다."

부활한 봉효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찢어진 옷을 챙긴 그는 코어를 하나 둘 꺼내며 혼돈환룡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흐어엉!"

"끄아아!"

괴인들이 하나둘 부활했다. 환룡단은 전원부활했고, 미사일이 폭발한 폭심지는 정적이 내려앉은 것처럼 고요했다.

"이제 어쩌면 좋을까요, 오라버니."

샤오린은 봉효에게 의견을 구했다. 혼돈환룡은 환룡단을 부활시키는 것으로 자신의 할 일을 다했다는 것 마냥 다시 잠들었다. 샤오린은 칭얼거리듯 엉겨붙는 혼돈환룡이 넘어지지 않게 두 팔로 강하게 지지하며 안았다.

"그 분이 도주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곧 다시 주군을 습격할 겁니다."

"그냥 도망친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이지. 끄응."

봉효는 머리를 긁적이며 고뇌에 빠졌다. 다른 환룡단의 단원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성기가 온전한지 바지를 까뒤집으며 안도의 한숨를 내쉬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행여나 싸우더라도 이길 수 있는 곳으로 끌어들이는 수밖에. 혼돈환룡 님."

봉효는 혼돈환룡의 볼을 찌르며 잠을 깨웠다. 막 잠들려하던 그는 눈쌀을 찌푸렸지만, 진지한 봉효의 얼굴에 불만을 가라앉혔다.

"왜…?"

"혼돈환룡님의 빙의는 빙의한 상대의 전력을 100% 발휘합니까?"

"응."

"그러면 혹시, 시체에도 빙의 가능합니까?"

"응."

"그럼 됐습니다. 이 싸움, 우리의 승리입니다."

봉효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하며 동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목적지에 도착만 한다면 말입니다."

봉효가 생각하는 목적지는 그들이 위치한 곳으로부터 정 반대편인 해안도시, 상해.

"거기에 무신의 시신이 안치되어있습니다."

성주를 쓰러뜨린 SS급의 무인에 대한 이야기에 혼돈환룡이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당장 가자!"

혼돈환룡은 한줄기 희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봉효를 끌어안았다.

"넌 정말 최고야!"

"당치않습니다. 저는 그저…."

봉효는 충의에 가득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절 전적으로 믿어주신 당신을 위해 모든 걸 바칠 뿐입니다."

환룡단의 향방이 정해졌다. 목적지를 정한 그들은 부리나케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야! 지금 움직이면 안 되지!"

홀로 남은 질풍객이 이를 갈며 따라붙으려다 머리를 긁적였다.

"......다시 돌아오겠지? 그래, 돌아올 거야."

상대가 무를 아는 자라면, 꼭 돌아와서 재전을 벌일 것이다. 질풍객은 누구든 나타나면 송두리째 베어버릴 각오로 굳건히 자세를 유지했다.

"자, 와라! 기습은 당하지 않는다! 정정당당히, 1:1로 승부다!"

질풍객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을 때까지, 홀로 어둠속을 노려보며 피닉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마 상대가 진짜로 도망친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그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 *

"저건 아직까지 저러고 있네요."

나는 질풍객의 거리 밖에서 멀찍이 그를 지켜보며 혀를 찼다. 갑자기 튀어나와 나를 방해한 걸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모가지에 칼을 꽂아놓고 싶지만, 꼴에 또 메인 히로인의 유일한 가족이라 그러지도 못했다.

"쯧. 예정대로 청년막이나 뚫려라."

"뭐라고?"

"그냥 저주니까 신경쓰지마요. ...아니, 그 왜. 예쁘장하기는 하잖아요."

덕배는 식겁을 하며 오한을 떨었다. 원탁 공식 미녀답게, 하야테는 조금만 꾸며줘도 자타공인 미녀가 될 정도로 중성적인 매력이 강한 존재였다.

"그래서 당하지만."

"누구한테?"

"그건 스포일러라 말 못해요."

"......확실히 아름답군. 이국적인 아름다움이야."

흑전갈 괴인은 턱을 쓸며 질풍객의 미모에 감탄했다.

"그런데 저게 남자라고?"

"네. 달려있어요."

"남색가들이 좋아하겠어. 그래서 저것과 싸울 생각인가?"

"아뇨. 혼자 찬바람이나 맞으라고 냅두죠."

"아쉽군. 그대가 이기면 저자를 내 침소로 넣어달라 요청할 생각이었건만."

"...이런 미친."

나는 절로 오한이 들어 몸을 떨었다.

"황제님, 그쪽 취향이었어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이지. 끄응, 아쉽도다. 생전에 무예를 조금만 더 갈고 닦았으면 직접 칼로써 무릎을 꿇렸을 것을."

흑전갈 괴인은 자꾸만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했다. 나는 더이상 그의 장밋빛 꿈을 상상하지 않기 위해, 대화의 주제와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전환했다.

"환건적, 아니 환룡단 놈들은 도망쳤어요. 어느쪽이든 저를 피해 도망치려는 속셈이겠죠."

"어디로 갈 것 같아?"

"흠. 글쎄요."

정상적인 1:1로 붙으면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혼돈환룡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샤오린에 빙의해 1:1의 대결을 해도, 괴인형으로 붙으면 내 승산이 더 높다.

만약 내가 반대의 경우라고 한다면….

"무신."

"응?"

"무신의 시신을 손에 넣으려 하겠네요."

"무신은 누구인가?"

흑전갈 괴인은 무의 신이라는 이명에 생각보다 관심이 많아보였다. 나는 이걸 말해줄까 말까 고민했지만, 덕배가 초를 치고 말았다.

"거, 이 놈 말로는 초패왕의 환생이라던데?"

"...초? 내가 아는 그 초 말인가?"

흑전갈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나는 차마 그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던 부분을 어쩔 수 없이 설명해야 했다.

"그, 황제님 죽고 말이에요."

"당신 나라 오백년은 커녕 50년도 못가고 멸망했수. 그 멸망의 지대한 공헌을 한 게 항우라는 양반이고. 아, 근데 지금 무신은 환생했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인가?"

덕배는 흑전갈 괴인을 조롱했다. 내게도 막나갈 때부터 알았지만, 설마 인류 최초의 황제에게도 이런 불경을 저지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덕배 씨?"

"괜찮다. 본인은 이미 죽은 존재. 다시 부활했다고는 하나, 더이상 한 제국의 황제가 아니야."

라고 말하지만 꼬리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으나, 그는 상당히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크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둘의 이목을 끌었다.

"아무튼 그래서 무신의 시신에 빙의하면 상당히 골치아파져요."

"너 못 이기냐?"

"완전 승리를 완전히 장담하기 어려우니까 그렇죠."

1할이라도 패배할 것 같으면 그 1할을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내가 목숨이 무한인 것도 아니고, 내게는 원코인밖에 없다.

"보험을 들어야겠네. 황제님. 일단 환건적 놈들 추격해주세요. 지휘권은 당신에게 있으니까."

"오냐. 몰이사냥을 하면 된다는 게지."

"예. 저는 미리 목적지에 가있을게요."

탈출구 앞에서 최종보스가 기다리고 있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혼돈환룡을 더욱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기로 했다.

"예, 안녕하세요. 불순분자로 의심되는 자들이 있어서 신고하려고 하는데요…."

환건적을 쫓는 이들은 우리 뿐만이 아니니까.

***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봉효와 운장으로 추정되는 자들인 것 같습니다."

"추정? 불확실한 정보를 지금 내게 보고하는 건가?"

모택평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문화를 질책했다. 하지만 문화는 제법 의기양양한 태도로 보고를 이어나갔다.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예의 회색 소녀도 함께 있었다는 제보입니다."

"어디냐."

모택평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나긋나긋히 물었다. 문화는 지도를 한 부분을 가리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예. 시안 성 인근에서 남하하여, 이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장강?"

문화가 가리킨 곳은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거대한 물줄기, 장강이었다.

"......동창 전 병력을 호출해라."

모택평은 불안감에 몸을 일으켰다. 장강이 흘러 바다로 나아가는 끝에는 상해가 있었다.

"상해의 심처에 대기시켜. 그리고 30분 뒤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지금 밖에 흑룡이 날뛰고 있습니다만."

캬오오오오!

드래곤의 울음소리가 건물을 뒤흔들었다. 문화는 식은땀을 흘렸고, 모택평은 담배 파이프를 말아쥐며 화를 삭혔다.

"나는 준비하라고 말했어."

"......예."

문화는 몸을 돌려 국장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모택평은 환건적이 찍힌 사진들, 그 중에서도 회색 소녀의 사진을 손으로 쓸며 분을 삭혔다.

"봉효…. 나 몰래 연인을 만들었다 이거지."

모택평은 달뜬 숨을 내뱉으며 혀를 내둘렀다.

"생각해보니 아들의 아내는 맛본 적이 없군."

모택평은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예. 모택평 국장입니다. 각하께 급히 연락을. 테러리스트들의 소재를 파악했습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비록 지금 북경에 괴수가 날뛰고 있다고는 하나….예?"

모택평의 얼굴이 찌그러졌다.

"원탁에 지원을 요청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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