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화 〉1부 8장 16
모택평은 이름부터가 누군가를 연상케했으나, 실상은 전혀 다른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조맹덕.
모택평은 위촉오 삼국지에서 위의 기틀을 마련한 난세의 간웅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다 못해, 그의 성향과 일생을 빼다박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2인자의 자리를 차지해 꼭두각시 1인자의 아래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력을 누린다거나, 추후 자신이 1인자로 올라갈 계획을 짜고 있다거나.
심지어 그의 성적 취향, 유부녀 취향 마저도 빼다박았다.
'그게 내가 루살카보고 행여나 넘어오지 말라고 한 이유기도 하지.'
아무리 루살카가 S급 이능력자이고 그의 곁을 지키는 SS급 괴인이 있다고는 해도, 조심해서 나쁠 게 전혀 없지 않은가. 애초에 그가 낳은 사생아들 모두 타인의 아내나 연인을 범해 태어난 이들이다.
유일한 딸인 샤오린에게 '운장'이라는 이명을 정해준 것도, 어쩌면 본판의 집착을 반영한 설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예 본인일지도.'
무신이 초패왕의 환생이듯, 샤오린 루트의 최종보스인 모택평도 위무제의 환생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그저 모티브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가 남의 연인을 가로채려는 NTR 마스터라는 건 플레이어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가 남의 연인을 납치하는 수단은 바로 동창의 조직원들이다. 그래서 나는 동창 놈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니 미래의 너를 탓해라.]
나는 아래에서 찔러들어오는 권격을 무릎을 들어 막고, 덕배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쳐올렸다. 괴인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콰직.
"크허억?!"
혼돈환룡에 의해 괴인이 된 동창 놈 하나는 덕배에 의해 두 알이 으깨졌다. 어차피 부활하면 다시 재생될테지만, 죽기 전까지는 계속 터진 상태로 살아야 할 것이다.
[동정을 탈출했다고 안심했나?]
그럼 다시는 못 쓰게 고자로 만들어버리면 될 일. 나는 덕배의 위에 올려져 게거품을 문 괴인을 옆으로 패대기쳤다.
"크어악?!"
괴인은 바닥을 구르며 목이 꺾여 기절했다. 꼴에 환속성이라고 데미지는 절반밖에 들어가지 않지만, 뭇 모든 남자가 가진 약점이 터진 이상 전투에서 물러날 수 밖에 없다.
"이…악랄한 년!"
혼돈환룡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를 갈았다. 직접 괴인들을 조종하고 있는 만큼, 그 데미지의 일부는 혼돈환룡의 본체에도 전해졌을 것이다. 실제로 혼돈환룡은 허벅지를 비비며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나는 덕배를 겨누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링크 풀어보시던가? 고통도 안 들어갈텐데.]
"시끄러워!"
혼돈환룡은 울먹이면서도 괴인들을 조종해 나를 덮쳤다. 눈이 회색으로 빛나는 환속성 괴인들이 하나같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고, 나는 그들이 다가오기 전에 먼저 앞으로 뛰었다.
[네가 직접 빙의하는게 아닌 이상, 그저 꼭두각시일 뿐이다.]
가장 먼저 달려오는 놈의 명치에 덕배트의 끝을 찌른다. 가슴이 움푹 파인 괴인은 피를 토하며 그대로 제자리에 멈췄고, 나는 덕배의 몸통 아래를 손으로 받쳐들고 불꽃을 뿜었다.
화아아악!!
화염방사기가 붐을 뿜어내듯, 덕배에게서 뿜어진 푸른 불꽃이 괴인의 전신을 불태웠다. 괴인은 숯검댕이가 되어 입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혼돈환룡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다음.]
나는 덕배를 잡아당겨 수평으로 크게 휘둘렀다. 불에 탄 괴인을 옆으로 크게 쳐날리자, 그 옆으로 단검을 들고 찔러오는 괴인이 황급히 땅을 구르려 했다.
[어딜 기습을.]
기습을 실패했으면 맞을 준비를 해야지. 나는 괴인의 시체를 그대로 단검을 든 괴인에게 쳐날렸다. 바닥을 구르려던 괴인의 몸에 시체가 포개어지고, 나는 그 위를 강하게 밟아 괴인의 몸을 바닥에 찍었다.
"크아악!"
"하읏!"
괴인과 혼돈환룡이 동시에 비명을 지른다.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엎어진 그의 고간을 향해 덕배를 겨눴다.
화르륵!
"끄어어억?!"
괴인의 고간에 불을 질렀다. 혼돈환룡은 바닥에 주저앉으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이게?!"
[흥.]
콰득. 등 뒤에서 몰래 숨어든 괴인이 내 관절 사이를 칼로 찔렀다. 갑주의 빈틈을 찌른 것은 칭찬할만한 일이지만, 아쉽게도 그닥 아프지는 않았다.
[소용없다.]
팔을 뒤로 뻗어 괴인의 턱을 붙잡았다. 괴인은 내 손을 풀어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그보다 내 행동이 더 빨랐다.
쿠웅!
포개어진 괴인 위에 괴인 하나를 엎었다. 3층으로 포개어진 괴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고, 나는 등뒤에 꽂힌 검을 뽑아 그들에게 안식을 부여했다.
콰득.
이걸로 네 개째. 나는 네 명의 동창을 다시는 세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이 미친 년아! 왜 자꾸 거시기에 집착하는 거야?!"
혼돈환룡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그의 뒤에 시립한 열 세 괴인들도 저마다 자세를 갖추고 내게 달려들려 했으나, 다들 허벅지를 살짝 비틀며 고간을 보호하고 있었다.
[집착이 아니다. 네가 저들의 동정을 떼어주었으니.]
탁. 나는 덕배를 앞으로 뻗어 그의 몸통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나는 저들의 성기를 떼어주는 거지. 별 다를 건 없지 않나.]
"달라! 아으, 더는 못 참아!"
혼돈환룡이 몸을 뒤로 돌려 부하 괴인에게 손을 뻗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신체가 다시 그의 코어로 되돌아갔으며, 코어는 부하 괴인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변신중의 상대를 덮쳐야 하는게 악당의 불문율이지만, 지금만큼은 참아주기로 했다.
[빙의했군.]
"...그래."
괴인이 답했다. 목소리는 동창 남자의 것이었으나,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혼돈환룡의 것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짙은 회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네가 직접 싸우는 게 훨씬 낫지. 접근전은 개천광 다음으로 제일 잘 싸우는 게 너잖나.]
"그 쌈닭이랑 비교하지마. ...애초에 너 뭐야? 왜 그딴 지저분한 몽둥이 들고 다니는 건데? 왜 굳이 이 먼 곳까지 날아와서 나를 깨운 거야? 그것도 이렇게 시끄럽게 하면서."
전장의 배경음은 아직도 굿모닝 아카펠라였다. 하늘을 뒤덮는 환염령들은 내 명령에 의해 이곳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는 박자에 몸을 맡기며 덕배를 어깨에 걸쳤다.
[사람은 바뀌기 마련이다. 잔말말고 덤비기나 해.]
자유로워진 한쪽 손을 뻗어, 손가락을 이리 오라는 듯 까딱거렸다. 그건 명백한 도발이었고, 혼돈환룡은 질색을 하며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때를 봐서 도망치려는 눈치였다.
[참고로 튀면 전세계에다가 울리게 할 거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미사일의 폭심지로 내려온 환염령 하나가 성가를 부르듯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불렀다.
띵띵띵. 굿모닝.
"......역시."
동창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모르는 얼굴인 걸 봐서는 아마 원작에는 나오지 않은 동창의 이능력자일 것이다. 그는 혼돈환룡에게 허리를 숙이며 속삭였다. 물론 다 들렸다.
"신이시여. 범인을 찾았습니다."
"그래…. 저 미친 년이 나 깨우려고 그 짓을 저지른 것 같네. 하아."
[일은 안하고 자고 있는 애가 옆에있는데 당연히 깨워야지.]
다크 레기온의 간부적으로 얘기하기는 했으나, 간부든 정령이든 솔직히 혼돈환룡은 매를 좀 맞아야한다. 고환을 여덟 개 터트리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준 걸로는 부족했다.
혼돈환룡이 쌓인 설거지를 정리할 정도의 의욕만 있었어도, 성주는 진작에 제거당했을 것이다. 나는 덕배를 탁탁 두드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너. 솔직히 말해라.]
"뭘."
혼돈환룡은 두 손을 들어올리며 내게 눈을 부라렸지만, 내 이어진 질문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세뇌 풀렸지?]
"......세, 세뇌? 무슨 소리야?"
혼돈환룡의 목소리가 심각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내 떠보는 말에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지, 아니지. 그래. 내가 말을 실수했어.]
"그, 그래.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우리는 다크 레기온의 자랑스러운 간부-"
[세뇌 걸린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귀찮아서 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어.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자고 싶어서. 그렇지 않나?]
"......."
혼돈환룡은 잠시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모르겠는걸."
변명이었지만, 나는 계속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돈환룡은 목을 가다듬으며 손을 흔들었다. 원작 오마케 엔딩에서 보았던 때 이상으로 그는 지금 생기가 넘쳤다.
내게 변명을 하기 위해.
"나는 그저 예상외의 사태 때문에 예정보다 먼저 일어났을 뿐이야. 그리고 조금 일찍 일어난 바람에 준비를 하고 있던 거라고."
[예상외의 사태?]
"차원문."
혼돈환룡은 자신이 잠들어있던 진시황릉의 방향을 가리켰다.
"자고 있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차원문이 열리는데 어떻게 잠에서 안 깨. ...그리고 문제 없잖아. 어차피 세계를 정복하는 게 우리의 사명 아니야? 우리가 다크 레기온의 간부인 이상-"
[나도 세뇌 풀렸다.]
"......."
[나도 세뇌가 풀렸어. 그래서 지금 간부들을 찾아서 정령으로 각성을 시키려고-]
"나를 속이려고 들다니, 어리석은 수작을 부리지 마! 다른 간부들이 제대로 활동하는지 감시하는게 창염의 피닉스, 네 임무잖아!!"
혼돈환룡이 오히려 역정을 냈다. 나는 답답함에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아니 그러니까 나도 세뇌 풀렸다고! 몇 번을 말해!!]
"세 번!"
슬슬 빡친다. 얘 왜 사람, 아니 정령을 이렇게 믿지 못하지. 더 열받는 건 내가 이미 원작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뇌를 푸는 조건을 모두 클리어하였기에, 사실상 반쯤은 정령으로 각성한 상황이기도 했다.
스스로 정령임을 '인지'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인데, 혼돈환룡은 그걸 거부하고 있다.
[아.]
나는 혼돈환룡의 흔들리는 동공에서 그 생각을 읽었다.
'행여나 자신이 세뇌가 걸렸다는 걸 내가 눈치채면, 바로 성주한테 일러서 자신의 세뇌를 강화할까봐 무서워하는 거다. 내가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저렇게 연기에 심취한 걸지도 모른다. 자신은 절대로 세뇌가 풀리지 않았다고. 어디까지나 오해라고. 난 네 놈의 수작에 넘어갈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창염의 피닉스는 성주의 스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진짜 때릴까.'
답답해서 속이 다 쓰릴 정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이해했다. 당장 눈앞에 성주사 샤랄라하고 내려와 '너 세뇌 풀렸니?'하고 묻는다면, 당장 오체투지하여 간부로서 충성을 다하고 있다며 빌빌거릴게 뻔했다. 나는 화를 삭이며 말했다.
[그래. 이해는 하지. 하지만 나도 정령으로 각성을-]
"증거를 보여봐."
혼돈환룡은 내 말을 끊으며, 자신의 코어를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정령이라는 증거를 보여보라고. 그러면 믿어줄게."
[세뇌가 풀린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아니. 부족해. 부족하니까 증거를 보여보라고. 만약에 네가 진짜 정령이라면, 그 '괴인체'가 아니라 정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보란 말이야!"
[.......]
나는 혼돈환룡이 말하는 의미를 깨달았다. 그는 나의 인간형도, 괴인형도 아닌 '신화'에 이른 형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서 파업중인 딸기성애자 때문에 정령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그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역시. 나를 떠보려는 개수작이었어. 야, 내 구역에서 당장 꺼져. 나는 성주 님의 명령에 따라서 이 땅을 정복해야하니까."
[......이거 슬슬 좀 빡치는데.]
석하랑을 불러올까? 아니다. 혼돈환룡은 석하랑을 모른다.
그럼 루살카를 불러올까? 아니다. 혼은 그의 것일 지언정, 육신은 인간 아나스타샤의 것이라 믿지 못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북유럽에 있을 펜릴을 먼저 깨워올까. 아니다. 그 사이에 저건 분명 도망칠 거다.
[하아.]
결국 내가 혼돈환룡을 믿게 만들어야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혼돈환룡은 나를 전혀 믿지 못하고 있다.
[안타깝구나. 우리 사이의 신뢰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흥. 신뢰고 자시고, 빨리 네 담당구역으로 돌아가. 나는 여기서 세계 정복을 위해 온 힘을-"
[그래. 내 생각이 틀렸어.]
나는 덕배를 바닥에 찍었다. 혼돈환룡은 어딘가 안심한 눈치였다.
[정령에 대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와 성주가 무서워서, 그리고 그 무엇도 하기 귀찮아서 모든걸 놓아버린 녀석을 상대로 설득을 한다니. 내가 미쳤지.]
"뭐?"
[이미 네가 내 형태가 '괴인체'임을 알고 있다는 시점에서 너는 글러먹었다. 진짜 아직 세뇌가 풀리지 않은 거였으면 '정령이 뭐냐'고 물었겠지? 당황했구나, 멍청한 놈.]
"......."
혼돈환룡은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보니 네 괴인체인 '혼돈'. 사흉 중의 하나로 개의 형상이었지. 정령체는 환룡이지만. 거 안타까워. 아직 세뇌가 풀리지 않았다니 개인 혼돈이구나. 음. 개야.]
"자, 잠깐만. 거기까지 알고있다는 건! 너 진짜 세뇌 풀렸구나!"
혼돈환룡이 반색한다. 하지만 나는 손바닥을 펼쳐 멈추라고 표시한 뒤, 덕배트에 푸른 불꽃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다.
[미친 개는 몽둥이로 다스려야지. 암. 그렇고 말고.]
"자, 잠깐만! 창염! 나 실은 환룡이야! 사실 세뇌 풀렸어! 창염 언니!"
[아냐. 그냥 세뇌 아직 안 풀린 걸로 하자. 쳐맞다보면 정신차리겠지. 그리고….]
나는 덕배를 붕붕 돌리며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나는 네 언니가 아니다.]
"...여, 역시 낚은 거잖아! 이 나쁜 년아!!"
나는 진실만 말했을 뿐이다. 단지 그걸 믿지 않은 혼돈환룡이 나쁜 거다.
[그러니까 좀 맞자.]
"......흐, 흐흐흐."
혼돈환룡이 광인처럼 웃는다. 빙의한 괴인의 탓인지 아니면 혼돈환룡의 영향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핏발이 잔뜩 서있었다.
"자는 사람 강제로 깨우고…. 듣기만 해도 거지같은 모닝콜이랑 기상나팔 땍땍 불면서…. 통각 공유 하는 거 뻔히 알면서 고환만 터뜨리고…! 그러면서 뭐? 좀 맞자?"
혼돈환룡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래, 좀 맞자 이 씹쌔야!"
혼돈환룡과 괴인들이 뛰어들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덕배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역시 말이 안 통하면.]
주먹으로 싸워야지.
나는 마력을 터뜨리며 달려오는 혼돈환룡을 향해 덕배를 집어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