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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55화 (155/1,497)

〈 155화 〉1부 8장 15

혼돈환룡.

원작에서 다섯번째로 만나게 되는 이 간부는 조우 시점 상 상당히 공략이 어려운 존재이다.

원탁과의 교류를 통해 이벤트를 쌓는게 가능한 샤오린이나, 부산만 내려가면 자주 만날 수 있는 여섯번째 정령 석하랑보다 더 미연시적으로 공략하기 어려운 존재.

데이트 신청? 잔다.

던전 공략? 잔다.

배회 괴수 토벌? 잔다.

오직 잠, 잠, 잠.

주인공 일행에게 구출된 것에는 감사를 표하지만, 이미 네 명의 간부가 주인공을 돕고 있으니 자신은 굳이 돕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아이였다.

플레이어들은 결국 자기만 하는 혼돈환룡의 행동에 폭발했고, 게임사에 버그로 신고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도 예상못했지.'

설마 이벤트마다 매번 잠에서 꼬박꼬박 강제로 깨우는 이벤트가 혼돈환룡을 정령으로 각성시키는 이벤트가 되리라고는.

[그러니까 빨리 와라. 슬슬 기다리기 지친다.]

나는 흑전갈들의 시체로 쌓아올린 의자에 앉아, 괴수가 아닌 다른 손님을 맞이하고 싶었다.

[인간이든, 괴수든, 정령이든. 누구든지 대 환영이다...!]

빨리. 제발. 나는 괴수만 자꾸 오는 것에 슬슬 귀찮아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투수와 배팅을 주고받고 싶었다.

스으으----

[왔군.]

저 멀리서 마력의 반응이 느껴진다. 나는 흑전갈을 쌓아 만든 의자에서 일어나 덕배를 꼬나쥐었다.

[그럼 이번에는 또 뭐가-]

익숙한 형태의 미사일이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모택평...!]

설마 자국 영토 안에서까지 미사일을 쏴댈 줄이야.

* * *

"국장님?!"

"상대는 SS급 빌런이 아닌가. 그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지."

모택평은 능청스러운 얼굴로 버튼을 마구잡이로 두드리고 있었다.

발사 스위치를 누른다고 미사일이 마구잡이로 날아가지는 않지만, 초에 수 번을 달칵거리는 그의 마음은 방 안의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었다.

"괴수 조종사의 죽음으로 인해 그의 호위가 폭주. 전국에서 날뛰는 괴수들이 그 호위에 집결. 당연히 우리는 우리가 해야하는 일을 하는 걸세. 그도 그럴게."

모택평은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촬영한 불사조, 한창 흑전갈과 드잡이질을 하던 피닉스를 가리켰다.

"서울의 악마인 불사조가 이곳까지 왔다는 건, 이미 테러가 아닌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럼 원탁에 지원 요청을 할까요?"

아들 중 하나가 모택평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떤 이름을 붙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들의 의견에 모택평은 일단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운장없이도 해봐야지. 자네들 백만 이능력자의 힘들을 발휘할 때가 되었네."

"상대는 SS급으로 추정되는 빌런입니다."

"1명아닌가. 고작 1명을 상대로 백만을 투입하는 것도 나는 과하기는 커녕 심하다고 생각하네만."

모택평은 시시각각 모여드는 이능력자들의 배치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압록강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저 자는 이능력자들을 죽일 생각은 없어."

"그래도 혹시나 죽이면 어쩌시려고요?"

"......그래도 지금 이능력자가 늘어나고 있지 않나?"

여전히 모택평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그의 아들들에게는 시끄럽게 울리는 모닝콜 소리가 아직까지도 울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라고? 기상나팔이 울린다고? 이건 하늘이 알려주신 징조다. 이능력자들의 군대가 드디어 일어나야 한다는 조상님들의 신호야!"

"영어인데요."

"사소한 것은 넘어감세. 중요한 건 지금 그 놈이야. 신호는?"

태블릿을 한참 바라보던 문화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렸습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과연. 미사일을 얻어맞고도 살아남을 줄이야. ......역시 그 놈인가."

두 달 전, 운장을 가지고 놀듯 싸웠던 그 푸른 불꽃을 날리던 빌런. 그와 지금 난리를 치는 이가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놈이 지금 잡은 흑전갈의 수가 몇이라고?"

"넷입니다. 전부 때려잡아서 코어는 온전할 겁니다."

"그런가. 그럼 문화, 동창을 모두 불러모아라. 빌런을 죽이고, 그 코어를 탈취하겠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문화는 태블릿으로 들어온 정보에 당황했다. 모택평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의 경솔함에 짜증이 일었지만, 문화는 그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세 가지 긴급 정보입니다. 하나는 서울에서 S급 괴수 흑염룡이 황해를 날아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뭐? 역시. 괴수 조종사는 아직 살아있던가."

모택평은 턱수염을 쓸다가 재빨리 결단을 내렸다.

"일단 요격하시게. 미사일을 쏴. 덩치도 크니 좋은 사격 훈련이 되겠군."

달칵달칵달칵.

모택평은 발사 스위치 모형을 자꾸만 엄지로 두드리며 입맛을 다셨다. 그가 괴수대책국의 국장이 아니라 군부의 우두머리였으면, 금방 하늘은 미사일로 수놓아졌을 것이다.

"또 미사일...."

"알겠습니다."

아들 한 명이 질색한 얼굴로 말을 흘렸지만, 문화는 눈치를 주며 그 소리를 덮었다.

"그리고 두 번째 소식입니다만...."

문화는 살짝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환건적이 전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모두 빌런 불사조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 아하, 도적떼 주제에 외적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들을 촬영한 영상 자료입니다만."

문화가 모두가 볼 수 있게 거대한 모니터에 영상을 띄웠다. 행방불명된 동창의 동료들이 모두 봉효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었고, 봉효는 한 소녀를 품에 안고 있었다.

"......호오."

회색의 소녀를 본 모택평의 눈이 빛을 발했다.

"아무래도 봉효가 여색에 물들어 배신을 한 모양인데."

모택평이 입맛을 다시며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동창의 조직원들이자 그의 아들들은 또 부친의 나쁜 버릇이 동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모든 히어로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리겠네. 빌런과 테러리스트. 그 둘을 모두 일거에 제거하겠다고 말이야. 그리고."

모택평은 회색 소녀를 가리키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저 소녀는 반드시 생포해오도록."

"예. 알겠습니다. 몸 성히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입니다만...."

문화는 떨떠름한 얼굴로 미사일이 폭격을 한 장소를 가리켰다.

"불사조의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 * *

"에이, 진짜. 내가 저거 미사일 다시는 못 쏘게 때려잡든가 해야지."

나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덕배를 바닥에 던졌다. 데구르르 굴러간 덕배(돌방망이)는 석실 한켠에 놓였다.

"일단 보관해두고 나가야겠네요."

'여기에 들어올 놈은 없을테니.'

괜히 싸우다가 코어라도 흘리면 피눈물이 흐를테니, 모처럼 모은 코어들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다.

타다다닥.

코어들이 관속에 흩어졌다. 미라의 옆으로 놓인 코어들은 마치 순장품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중 갈비뼈 옆에 떨어진 S급 코어를 꺼내들었다.

"본인 아니면 눈물날 것 같은데."

본인이어도 조금 난감하기는 하겠으나, 그래도 이왕이면 본인이면 좋을 것 같았다.

"삼국지에 고대 무장 치트만큼 재미있는 게 없죠."

나는 코어를 미라의 심장 부근에 올려, 손톱으로 구멍을 낸 다음 그 안에 코어를 밀어넣었다.

"으으."

시취가 피어오르고, 수천년 묵은 퀘퀘한 냄새도 울린다. 미라의 봉인을 푼 이상 감당해야하기는 했으나, 갑자기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영창은 생략...!"

이 냄새를 맡으며 장황하게 영창을 읊었다가는 중간에 토를 할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코어를 활성화하며 마력을 불어넣었다.

"불로불사가 된 것을 축하합니다."

나는 그가 가장 바라고 있었을 소원을 들어주었다. 미라에 박힌 코어가 갈색의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나는 관에서 두어발자국 물러섰다.

으득. 으드득.

미라의 외피는 흑전갈의 것과 마찬가지로 단단한 갑각이 되어 있었다.

인간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으나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난 시체라서 그런지, 그는 흑전갈의 인간화라는 평이 어울릴정도로 괴수의 성분이 더 강했다.

"......흐음."

괴인이 일어났다. 그는 눈을 껌뻑거리며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는."

"예."

"그대는 과인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나를 이리 부활시켰는가."

과연.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자신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있음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에 살기가 번들거린다.

"예. 무덤 주인한테 허락 좀 받으려고요."

나는 그에게 현 세태를 간단히 알렸다. 이미 그가 세운 나라는 멸망한 지 엄청나게 오래 지났다는 것, 그리고 수천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를 부려먹기 위해 괴인으로 만들었다는 것.

"황제였던 자를 수하로 부린다니. 어이가 없군."

"원래 신무장 깽판칠 때는 자캐 넣고 그 밑에 고대 무장 집어넣는 건 국룰이잖아요?"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네만 대충 이해했다. 그러니 나를 마음껏 부려먹겠다 이거군."

"예. 대신 좋은 거 알려드릴게요."

나는 그의 심장을 가리켰다.

"당신 심장에 있는 코어만 무사하면, 제가 얼마든지 부활시켜드릴 수 있거든요?"

"불로불사를 유사하게 만든 건가. 흠. 재밌군."

흑전갈 괴인은 꽤나 재미있다는 말투로 관에서 몸을 일으켰다. 불사는 아니지만 부활을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그는 제법 의욕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내 나라는 멸망했으나 여생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그래. 나는 무엇을 하면 되는 가? 이 땅의 부흥을? 다시 중화의 통일을?"

"아뇨? 전 한족이 아니라 한민족인데요. 그리고 중화통일에 저는 관심이 없어요. 세계가 얼마나 넓은데."

나는 그가 지배한 땅의 넓이, 그리고 세계의 지도를 펼치며 둘을 비교했다. 그는 자신의 지배한 넓은 땅이 전 세계에 비교하면 상당히 좁은 편이라는 것에 놀란 눈치였다.

".......세계는 넓군."

"그쵸? 그러면 당신에게 내리는 첫번째 명령입니다."

나는 그의 관속에 있는 코어들을 가리키며, 덕배를 챙겨 손을 흔들었다.

"그거 보관좀 하고 있어요."

"......."

나는 다시 지상으로 전이했다. 미사일 폭격이 이루어진 근처에 숨겨두었던 미니피닉스의 위치로 순간이동 한 뒤, 다시 괴인형으로 육체를 바꾸었다.

[잭팟터졌군.]

나는 내 손에 들린 덕배의 등을 치하하듯 쓰다듬었다. 덕배는 몸서리를 치며 떨었지만, 나는 일부러 그의 말을 무시하고 있었다.

[모처럼이니까 다음에 나오는 괴수는 너로 때려잡아주지. 무기 경험치도 오르는 지 확인해봐야하지 않나.]

덤으로 스트레스도 좀 해소하고. 나는 바닥을 박차고 뛰어, 미사일이 떨어져 크레이터가 생겨버린 작은 분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다리고 있었어."

그곳에는 회색의 소녀가 팔짱을 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자다가 일어난 듯 멍하면서도 핏발이 선게 몹시 짜증이 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흐흐.]

드디어 깨어났다.

나는 이 세계에서 세번째로 만난 정령, 혼돈환룡에게 덕배를 흔들며 인사했다.

[굿모닝.]

"......진짜 최저야."

혼돈환룡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나는 노래까지 불러주려다가, 그의 뒤에 시립해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피며 혀를 내둘렀다. 하나같이 가슴에 환속성 마력을 흘리는 괴인이 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괴인들을 만들어낸건가?]

"내 부하들이야. 너를 때려죽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일단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 아니겠어."

혼돈환룡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의 명령을 받은 괴인들은 저마다 위치를 잡으며 진을 형성했다. 나는 그 진이 눈에 익어 소름이 돋았다.

[......고자 새끼들 진을 왜?]

"고자 아니야."

혼돈환룡이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내가 떼줬어."

[헐.]

여러모로 충격적인 폭탄 선언이었다. 그리고 혼돈환룡은 얼굴을 붉히며 낮게 속삭였다.

"......전부."

[아무래도 죽이지 않고는 못 베기겠군.]

어차피 괴인으로 부활할테니 한 번은 죽여도 될 터. 나는 덕배를 붕붕 휘두르며 전 고자들을 향해 뛰었다.

[굿모닝이다, 이 페도놈들아!]

"페도...? 야! 누구보고 꼬맹이래! 죽여버려!"

나는 선두에 달려오는 전 고자의 고간을 향해 덕배를 휘둘렀다.

* * *

"그러니까 고독이라는 게 심장에 박혀있었고, 혼돈환룡인가 뭔가 하는 여자애가 그걸 떼어줬다?"

"네."

바닷물을 흠뻑 먹은 하야테는 바람을 달려 둘과 합류했다. 다시 떨어지기는 싫은 지, 하야테는 싫지만 샤오린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으으. 도대체 혼돈환룡이라는 애는 뭐야? 이름 부터가 이상한데."

"저를 부활시켜주신 분입니다.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아니, 처음 듣는 이명이잖아."

"......그분의 이름입니다. 이명이 아니라."

"헐."

질풍객은 혀를 내둘렀다. 이름을 혼돈환룡으로 짓다니.

[세상에는 창염의 피닉스라는 이름을 가진 분도 계시지.]

"미친 거 아님?"

[내 주인이시다.]

"......."

하야테는 자신의 이름과 이명에 감사함을 느꼈다. 아, 그래도 나는 정상이구나.

"에휴. 됐다. 이능력자들 감수성 희안한 거 내가 모르는 것도 아닌...야!"

하야테가 흑염룡의 등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흑염룡 또한 급히 선회하며 날갯짓을 했다.

휘이잉---!!

미사일이 하나 스쳤다. 샤오린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사일의 궤적을 살폈다.

"요격기...!"

두두두두.

저 멀리, 벌떼처럼 날아오는 요격기들이 저마다 총구를 흑염룡에게 겨누고 있었다. 샤오린은 이를 악 물며 흑염룡의 기수를 틀었다.

"지상으로!"

[그럴 수 없다. 신께서 부르셨으니 제 시간에 도착해야한다.]

흑염룡이 입을 벌렸다.

[뚫고 지나간다.]

흑염룡의 입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했다. 샤오린은 눈을 질끈 감으며 고삐를 움켜쥐었다.

□□□□□□□!!

흑염룡이 울부짖었다.

"아싸! 그럼 나는 먼저 간다!"

하야테는 손을 흔들며 허공을 달려 사라졌다. 신호 상 원탁의 히어로로 판별한 건지, 아니면 전투기보다 빠르게 하늘을 달리는 인간에 놀란 건지 요격을 나온 전투기들은 순순히 질풍객을 보내줬다.

"크윽!"

샤오린은 침음성을 흘렸다. 허공에서 뛰어내려 목적지까지 달려도 시간은 한참 걸릴 것 같았다.

"부탁드립니다!"

그저 지금은 흑염룡에게 맡길 뿐. 흑염룡은 샤오린이 트는 고삐에 따라 몸을 수직으로 돌리며 전투기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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