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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54화 (154/1,497)

〈 154화 〉1부 8장 14

혼돈의 도가니가 따로 없었다.

피닉스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혼란.

비스트 테이머의 행방불명, 각지에서 들려오는 굿모닝 알람,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다니는 미니피닉스, 피닉스의 마력에 이끌려 날뛰기 시작하는 괴수들, 그리고 주인을 구하기 위해 바다를 가로질러 오는 S급 괴수 흑염룡.

그리고 피닉스는 예상치 못했던 혼란.

혼돈환룡의 이른 기상, 사라지기 시작한 동창의 이능력자들, 함께 자취를 감춘 운장과 적토, 봉효를 위시하여 만들어진 환룡단, 그들을 제거하기 위한 모택평의 국경봉쇄, 그리고 흑염룡의 위에 올라타 상공을 가로지르는 두 명의 원탁 히어로.

"정말 개판입니다."

각지의 X로이드들을 통해 취합된 정보들을 정리한 김지화는 헛웃음을 지었다. 인형으로 파견을 나온 은유하 또한 그에 공감하며 질색했다.

"이런 거 다 감안해서 뭐 하라고 했으면 저는 진작에 때려쳤어요."

"네? 작전 입안 같이 하신 거 아닙니까?"

"아뇨. 저는 중국에 넣어주기만 한 걸요."

은유하는 후회막심한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 항공기…. 아직 3년은 더 날 수 있는 아이였는데."

피닉스가 중국에서 잡을 S급 괴수 중 코어 하나를 대가로 약속하기는 했으나, 역시 비행기 한 대가 공중폭파 당한 것은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진짜 내가 다시는 중국 쪽으로 머리라도 이고 자나봐라."

"...회장님. 공장들 중국에 좀 있지 않습니까?"

"네. 있기는 하죠. 그래서 작전을 짤 때 피닉스 씨한테 부탁했어요. 가급적이면 내륙 쪽에서 난리를 쳐달라고. 어차피 목적지도 서쪽이니까."

은유하는 플라스틴 보틀에 넣어둔 커피를 마시며 눈썹을 으쓱였다.

"공장들 다 해안에 있거든요."

"아."

"최대한 공장들 철수하기 전까지 자재들 확보해야죠. 생산기지 국내로 좀 돌리고."

"그래도 됩니까? 예전에 한창 임금 문제로 공장 돌렸던 거로 아는데…."

"24시간 무임금으로 일할 노동자들 있잖아요."

은유하는 새하얀 손가락으로 김지화를 가리켰다.

"기대하세요. 지금 저 신서울에서 만난 두분이랑 서울 어디에 공단 만들지 논의중이니까."

"......괴인에 대한 임금은 뭘로 지불하실 생각입니까?"

은유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했다.

"딸기?"

"......그 문제에 관해서는 나중에 진지하게 단장님과 토의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지화는 고개를 천장으로 꺾으며 잠시 심호흡을 했다. 눈앞의 회장님은 중국이 개판이 되고 있는 와중에도 어떻게하면 돈을 벌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은 걱정 안 되십니까?"

김지화는 불안해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물에 내다 놓은 아이같이 피닉스는 천방지축으로 날뛰었고, 김지화는 피닉스에 목숨을 저당 잡힌 입장이었다. 비행기 값으로 받게 될 S급 코어를 어떻게 사용할 지 고민하던 은유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그야 단장님 다치거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다 죽는 거죠. 어차피 5년 뒤에 지구 멸망이잖아요? 그리고 걱정을 왜 해요. 저보다 훨씬 강하신 분인데."

"강하기야 강하지만…."

김지화는 뒷말을 삼켰다. 은유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닫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알아서 잘 하시겠죠.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걸 거예요."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이라고 안 새는 건 아니잖습니까?"

"그 바가지 막는다고 나름 조덕배 씨 데리고 갔잖아요. 김지화 씨는 진짜 걱정이 많으시네요. 가을 언니도 아니고…. 잠깐."

은유하가 눈썹을 찌푸렸다.

"팬텀 어디있어요?"

"......"

김지화는 침묵했다. 자연히 은유하의 미간이 뒤틀렸다.

"팬텀. 천가을 어디있냐고요."

"...저도 모릅니다."

김지화는 순순히 자신이 아는 바를 대답했다. 은유하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말로 아는 바가 없었다.

"천가을, 지금 단장님의 특명에 따라 비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일언 반구도 없이?"

은유하가 입술을 깨물었다. 김지화는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피닉스가 남긴 혼란은 여의도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

쾅!

전갈의 꼬리가 내 볼을 스쳤다. 닿기만 해도 녹아내릴 것 같은 맹독을 뚝뚝 흘리는 꼬리침은 치명적인 흉기였다. 하지만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고, 나는 몸을 살짝 비트는 것으로 독침을 흘렸다.

새애액!

전갈 괴수는 급히 독침의 방향을 바꾸려했으나, 이미 내 손이 꼬리의 가운데를 잡고 있었다. 강철판같은 갑각의 꼬리가 내 손 안에서 장어처럼 팔딱거렸다.

[너 잡는데 고생 좀 했지.]

쓸데없이 방어력은 높은데 독 공격을 쓰느라 아군을 전부 독살 시키던 짜증나는 녀석이었다. 물론 지금은 조금 피부가 두꺼운 벌레일 뿐이다.

우드득.

키에엑!!

내가 손을 살짝만 쥐는 것 만으로도 전갈 괴수는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단단한 갑각 사이로 내 손톱이 파고들었고, 구겨진 외피 사이로 보라색의 진물이 흘러나왔다.

푸시이이--

내 건틀릿 위로 독액이 흘러내렸다. 건틀릿 아래 불타고 있는 불꽃 덕분에 독액은 금방 익어버려, 흘러내릴 새도 없이 증발했다. 매케한 보라색 연기가 피어오르자, 괴수 흑전갈은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크륵?!

[나는 네가 참 좋아.]

진심을 담아 고백했다. 패턴은 짜증나지만 보상은 상당히 좋아서 후반부에 자주 사냥하던 녀석, 흑전갈은 중국에 널리고 널린 S급 괴수였다.

[A급 간신히 넘긴 사이즈지만….]

나는 오른발을 들어올려 흑전갈의 집게발을 밟고 눌렀다. 꼬리와 집게발 한 쪽이 내게 잡히자, 흑전갈은 수많은 다리를 움직이며 몸을 비틀었다.

으득. 으드득!

당연히 그리 반항할수록 나는 손과 발에 힘을 더 불어넣었다. 독액을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는 독침까지 붙잡아 두 팔을 교차하듯 비틀어 꼬리를 끊었고, 발 뒷굽으로 집게발의 관절을 눌러 으깨버렸다.

캬아악!

두 개의 공격수단이 내 손발에 의해 뜯겨나갔다. 흑전갈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고, 나는 놈이 도망치는 걸 놓칠 수 없었다.

[넌 은유하 선물이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가 거리를 좁혔다. 흑전갈은 크게 뒤로 물러서며 자신이 뚫고 나타난 땅굴로 도망치려했고, 나는 그보다 더 빨리 흑전갈의 위로 뛰어올랐다.

[네 꼬리 맛 좀 봐라.]

자신의 독이 얼마나 극독인지 스스로 느껴봐야 정신을 차릴 터. 나는 흑전갈의 몸을 눌러 바닥에 고꾸라뜨린 뒤, 휘어진 독침의 끝을 외피 사이에 찔러넣었다.

까드드득!

철판이 뜯겨나가듯 외피가 벗겨진다. 생살과 단단히 붙어있던 외피는 내가 갈고리처럼 걸어둔 독침 꼬리에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쩌저적'하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외피는 마치 손톱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선사하리라.

키야악! 캬아악!

흑전갈은 발광하기 시작했다. 외피가 뜯겨나가는 고통에 더불어, 자신의 생살에 닿는 제 독침에 묻은 독에 살갗이 녹아내리고 있다.

[그러길래 독 좀 적당히 쓰지 그랬나.]

나는 독침을 거꾸로 들어, 뜯어낸 외피 사이에 쳐박았다. 흑전갈은 방충제를 맞은 그리마 마냥 온 다리로 오도방정을 떨다가 축 늘어졌다.

[흠.]

나는 독침을 빼내 외피를 마저 떼어냈다. 온 혈관이 검붉게 물들어 부풀어올라 있었고, 살은 그 짧은 사이에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독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야. 새끼 주제에.]

나는 독침을 찔렀다 퍼올리며 외피를 뜯었고, 곧 흑전갈의 코어가 있을 위치까지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그럼.]

푹.

나는 흑전갈의 머릿속을 손으로 헤집었다. 관절 사이로 흘러들러오는 흑전갈의 체액은 내 불꽃에 의해 금방 익어버렸고, 흑전갈의 살이 벌겋게 익어가기 시작했다. 하얗게 익어가는 눈동자는 분노에 가득차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꼬우면 네 어미 데리고 와라. 이참에 큐브도 같이 가져가게.]

푸-욱. 나는 코어를 찾아 강하게 잡아당겼다. 신경 다발 속에 더듬이처럼 엮여있던 코어는 내 예상대로 갈색의 지속성 S급 코어였다.

[솔직히 이걸 S급으로 치는 건 아니지 않나 싶은데.]

아주 간신히 선에 걸치는 S급으로, 90~95 사이라고 치면 이 코어는 갓 89.9를 넘긴 90의 코어였다.

그래도 은유하는 좋아라 할 것이다. 은유하는 내게 혹시나 비행기가 파괴될 경우의 보증금으로 S급 코어 하나를 걸었지만, 나는 이제 확실히 내 사람이 된 그에게 달랑 하나만 줄 생각은 없었다.

캬아아아악!

첫 흑전갈들이 뚫어놓은 구멍이 뒷편으로 거대한 흙먼지 세 개가 피어올랐다. 내가 찢어버린 흑전갈과 똑같은, 혹은 약간 큰 크기의 흑전갈들이 잔뜩 성난 기세로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아, 얘가 막내였나?]

나는 흑전갈의 머리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주제에 나름 동료이자 가족이라고, 내 도발에 으르렁거리는 게 영 아니꼬왔다.

[애새끼들이랑 놀 생각 없으니, 가서 부모님 모셔와라. 학부모 상담 좀 하게.]

캬아아악!

들은 척도 않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마력을 재정비했다.

[하여튼 요즘 애들은.]

나는 발치에 놓여있던 꼬리를 들어, 투창하듯 쏘았다.

[괴수는 모닝콜 듣고 안 깨시나?]

내가 깨우고자 한 건 혼돈환룡 하나만이 아닌데. 나는 내 눈앞에 쫙 벌려진 집게발을 향해 주먹을 찔러넣었다.

콰---앙!

흑전갈의 몸속에서 불꽃이 폭발했다.

* * *

피닉스는 자신의 마력을 숨기지 않았다. 애초에 괴인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낼 목적으로 날뛰기 시작한 만큼, 그의 뜨거운 마력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어우, 존나 화끈하시네! 아! 죽여버리고 싶다아아!"

질풍객, 히메지 하야테는 멀리서 풍겨오는 열기에 입맛을 다시며 흥분했다. 눈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흑발의 미인, 운장 샤오린만 아니었다면 금방이라도 흑염령의 등에서 뛰어내려 바람을 달렸을 것이다.

"야! 너 한 번 싸워봤잖아! 내가 먼저 싸워보면 안 되냐?!"

"싫습니다. 당신은 이긴 상대를 죽이려 들잖아요."

운장은 싫은 티를 여과없이 내며 따졌다. 국적과는 별개로, 둘은 서로 다른 가치관 때문에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정 싸우고 싶거든 제가 그 분을 이기고 난 다음 싸우십시오."

"너 개발릴 걸?"

"...지금의 저는 다릅니다."

"뭐가 다른데? 별반 다를 거 없어 보이는 구만."

"다릅니다. 저는 지금 인간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샤오린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리며 자부심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질풍객은 자신의 동생, 히메지 히카리로부터 들었던 '괴인'이 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도 그 괴인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그거 죽은 사람만 가능하다던데."

"...예. 죽었죠."

"쯧. 그러니까 한 번 붙어보자고 할 때 내 손에 죽었으면 얼마나 좋아."

"붙을 생각 없습니다. 그리고 생전에 붙었어도 제가 이겼습니다. 당신이 제게 이길 수 있는 건 미모 하나밖에 없습니다."

"야. 죽을래?"

질풍객은 살기를 내뿜으며 칼을 뽑아들었다. 하늘을 나는 드래곤의 위에서도 그는 자세를 바르게 갖추며 샤오린을 베어버릴 기색이 역력했다. 샤오린은 콧방귀를 뀌며 이죽거렸다.

"원탁 공식 미녀 아니십니까? 그리고 이미 죽어서 또 죽어봤자입니다. 애초에 죽어줄 생각도 없어요."

"칫. 재미없기는. 야, 너 자꾸 죽었다 죽었다 하는데 진짜 죽었냐? 거짓말이지?"

"진짜 죽었으니까 괴인으로 부활한 거 아녜요. 자꾸 뭘 그렇게 꼬치꼬치 캐묻습니까?"

"믿기지가 않으니까 그러지. 나랑 호각, 아니면 나보다 좀 못한 애가 살해당했다는 걸 어떻게 믿으라는 거야?"

"누군가와 싸워서 살해당한 게 아니에요."

샤오린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살당한 겁니다."

"......? 나 이해할 수 있게 좀 얘기해줄래?"

질풍객은 자신이 제대로 들었는지 이해하기 위해 번역기를 다시 확인했다. 마력을 통해 이해한 의사와 번역기가 번역한 말은 정확히 일치했다.

자살'당했다'.

"살해당한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싸워서 죽은 건 아닙니다. 제가 만약 그분같은 강자와 싸워서 죽었다면,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아녜요. 저는 자살을 당했습니다."

샤오린은 이를 악 물었다.

"모택평 국장에게."

"......야, 잠깐만."

질풍객은 손을 들어 샤오린의 들끓는 마력을 진정시켰다.

"모택평이 내가 아는 그 중국 쪽 국장 맡지? 괴수대책국 대가리?"

"예. 그랬죠. 덧붙여서 그가 낳은 사생아만 두 자리수에 이릅니다."

"......미친. 아니, 내 말은 사생아같은 문제를 떠나서, S급인 너를 자살시켰냐고 묻는 거야."

"네."

샤오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제가 패배한 것, 그리고 정체가 드러난 것이 영 신경쓰였나봅니다. 제 존재를 지우려 하더군요."

"아니 그러니까 S급을 왜!!"

"저도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죽기 전에 물었습니다. 뭐라고 하던지 아십니까?"

샤오린은 헛웃음을 지으며 모택평을 모사했다.

"'13억 인구 중에 S급이 설마 또 안 나올까.'"

"......나 너무 충격적인 말을 들어서 말이 안 나온다."

[나도 그렇다.]

"으아악?! 흑염룡이 말을, 으아악?!"

질풍객은 화들짝 놀라 미끄러졌다. 하늘을 날던 흑염룡에서 떨어진 그는 서해바다 한복판에서 추락했고, 샤오린은 이제서야 입을 연 흑염룡의 비늘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신경쓰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적토는 잠시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

[무얼. 신경쓰지마라. 지금은 신의 부름을 받아 떠나야 하니.]

"신이요? 그 분은 신이었다는 말입니까?"

[.......]

천연은 이기지 못했다. 흑염룡은 피닉스가 있는 방향으로 속도를 더욱 올리며, 조심스레 자살'당했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S급을 자살시킨 거지? 순순히 자살한 것 같지는 않은데.]

"......자식들에게 아주 무서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샤오린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이를 갈았다.

"고독이라고,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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