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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53화 (153/1,497)

〈 153화 〉1부 8장 13

피닉스가 흑염룡의 위에 두 남녀가 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그 시각.

혼돈환룡이 잠들어 있는 심처에는 그의 성은을 입은 동창의 전 단원들이자 이제는 환건적, 자칭 환룡단의 단원들은 온힘을 다해 마력을 퍼뜨리고 있었다.

"제독…! 이제는 무리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이능력자가 한계를 호소했다. 하지만 제독, 봉효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그를 호되게 꾸짖었다.

"어리석은 것! 신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게 무엇이더냐!"

"......주무시는데 깨우는 겁니다!"

"그렇다! 그러니 우리는 신께서 편히 주무시도록 자리를 마련해야하는 것이다!"

봉효는 단원들에게 일갈했다. 그들 또한 신이라고 부르는 혼돈환룡의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자신들의 한계는 명확했다.

"마력의 공명을 통해 신을 깨우려는 개수작이다. 그럼 마찬가지로 마력을 방출해 맞받아치면 될 일!"

봉효는 유능한 존재였다. 모택평이 그에게 요절한 천재 모사꾼의 자를 이명으로 붙였을 정도로, 봉효는 뛰어난 머리로 굿모닝 테러의 파훼법을 금방 찾아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그들의 마력보다 정신력이 깎여나가고 있다는 것. 미리 비밀기지 밖에서 소리를 먼저 듣고 있던 단원이 급히 신호를 보냈다.

[옵니다! 기상나팔! …이, 이건?! 으아악!]

"흡."

전신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전신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수많은 레퍼토리 중에서 하필 지금 이 위기를 노리고 재생되는 나팔 소리는 동창에서 사용하던 기상 나팔 소리였다.

"......끄응."

솔직히 얘기해서 아프거나 따가운 공격은 아니다. 육체적 데미지는 일절 없었으나, 정신적으로 상당히 기분이 더럽다.

"제독."

"왜."

"그냥 우리 이거 안 하면 안 됩니까?"

"......솔직히 나도 하기 싫다. 머리만 아프고 귀찮아."

가부좌를 튼 채, 땀을 뻘뻘 흘리며 마력을 방출하기도 벌써 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혼돈환룡은 더할 나위 없이 곤히 자고 있었고, 단원들은 그가 새근새근 조는 모습을 보며 기운을 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또다시 변한 노랫소리에 절로 짜증이 일었다.

딩딩딩. 굿모닝.

"언제까지 아침 노래부르려고 하는 거지…?"

"큰일났다. 이제 지겹기는 커녕 익숙해지기 시작했어."

"정신차려. 그게 상대의 노림수다. 익숙해진다 싶으면 다른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봉효는 마력을 흔드는 노랫소리에 섞인 악의를 눈치챘다.

"어떻게든 빡치게 만들어서 깨우려는 속셈이야…! 바로 이 분을!"

중국 전역을 뒤덮는 알람과 기상나팔이 노리는 자는 단 한 명, 혼돈환룡이다. 상대는 백만 이능력자를 귀찮게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혼돈환룡을 깨우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아마도 상대는 신과 비슷한 존재일 터...!"

그렇기에 봉효는 혼돈환룡을 깨울 수 없었다. 상대가 어느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혼돈환룡을 깨우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히 엿보였다.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감이다!"

혼돈환룡에 의해 만들어진 첫 번째 괴인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봉효는 새로이 자신의 주인이 된 소녀의 본성을 금방 눈치챘다.

그냥, 계속 자고싶을 뿐.

막말로 환룡단을 구축한 것은 봉효 자신이었고, 혼돈환룡은 환룡단이 제공해주는 조금 더 좋은 침대와 조금 더 좋은 장소에 기뻐할 뿐이었다.

숙면 매트리스, 토퍼, 솜이불, 수면양말, 수면안대. 기타 등등 온갖 숙면을 위한 물건을 제공할 때마다, 혼돈환룡은 그들을 괴인으로 만들어 동자공을 해제시켜 주었다. 그러니 혼돈환룡을 지켜야 했다. 봉효의 주도 하에 혼돈환룡을 중심으로 진을 구축한 환룡단의 노력은 그칠 줄 몰랐다.

아직 동자공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료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들에게 새로운 생을 부여해 준 은인이자 신을 위해.

"크으윽...!"

그러나 빗물이 계속 떨어지면 바위도 뚫기 마련. 환염령들이 지저귀는 노래소리가 드디어 진을 무너뜨렸다.

굿굿굿모모모닝닝닝

"허억…!"

돌림 노래를 부르듯 시간차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단원하나의 눈에 핏발이 섰다. 그는 생전부터 분노를 쉽게 조절하지 못하는 장애를 앓고 있었다.

"으아악!! 시끄러워!!"

"자네?!"

봉효가 화들짝 놀라 남자를 저지하려 했으나, 이미 진은 무너져버렸다. 차음막처럼 펼쳐진 마력의 벽에 구멍이 송송 뚫렸다.

"......끄응."

혼돈환룡이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봉효는 입만 뻥긋하며 소리 없이 아우성을 쳤지만, 혼돈환룡은 부스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혼돈환룡은 양반다리로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저혈압을 앓는 환자가 새벽 소음공해에 일어난 것 마냥 짜증이 풀풀 날렸다.

"......봉효."

목소리가 변했다. 혼돈환룡은 잔뜩 잠긴 목소리로 봉효를 불렀고, 봉효는 올게 왔구나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예."

"나갈 준비 해."

혼돈환룡의 눈에는 핏발이 서있었다.

"불닭년 다시는 울지 못하게 모가지 뽑아버릴 거야."

혼돈환룡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으라차아아아!!"

나는 기합과 함께 덕배(돌방망이)를 휘둘렀다. 내 머리를 노리고 할퀴어오는 괴조의 발톱은 덕배에게 가로막혔고, 나는 그에 멈추지 않고 괴조를 쳐날렸다.

끼요오오오옷?!

괴조가 괴성을 지르며 흙바닥에 패대기쳐졌다. 날개가 뒤틀려 꺾이고, 바닥을 두세바퀴 구르며 깃털 사이로 피가 흘러나온다.

"흐흐. 건방진 녀석 같으니."

나는 오골계같은 괴조의 배 위에 올라타 발을 크게 굴렀다.

캬아아악?!

괴조가 비명과 함께 푸른 피를 토했다. 마력으로 강화된 신체 덕분에, 단순히 발을 구른 것 만으로도 내장 전체가 파열된 모양이다.

"그러니까 적당히 깝쳐야죠. 네?"

나는 덕배를 수직으로 들어, 막 퍼덕이려는 날개를 찍었다. 괴조의 부리에서 피가 뿜어졌고, 나는 손을 날카롭게 모아 심장을 향해 찔렀다.

푸슈으읏!

피가 얼굴에 튀었다. 하지만 미리 피부 겉면에 마력으로 막을 형성했기에, 진짜 얼굴에는 닿지 않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괴조의 심장이 있을 곳을 찾아 손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분명 이쯤에 있던 것 같은데…. 아, 여깄네요."

푹. 나는 고무처럼 탄력있는 괴조의 심장을 뽑아냈다. 우악스러운 내 손길에 심장과 연결된 혈관들이 강제로 뜯겼고, 괴조는 그 고통에 절명했다.

케륵.

조금 과한 행동이었을까. 나는 그래도 피닉스 본인부터가 새인데, 같은 조류형 괴수를 이리 무참히 죽여버린 것에 마음이 영 싱숭생숭했다.

"...아뇨, 아니죠."

'이게 내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피닉스의 강함은 자명한 사실이나, 그걸 다루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언젠가 별을 타고 넘어올 성주, 그리고 이계신을 이기려면 반드시 SSS급으로 올라서야 했다.

다름아닌 나, 창염의 피닉스가.

"그래요. 절대 죽을 수 없죠."

콰직. 나는 심장을 터뜨려, 그 안에 자리잡은 괴수의 코어를 꺼냈다. 피를 닦아내어 살핀 코어는 진한 녹색을 띄고 있었다.

"A급…. 쳇."

나는 코어를 손에 움켜쥐어 덕배에게 집어던졌다. 아직 돌방망이 상태인 그는 자신에게 닿은 코어의 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으적. 으적.

덕배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나는 멀리서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 반응에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흐흐흐. 역시 못참고 바로 튀어나오네요."

개인 루트를 밟는 동안, 온갖 방법을 동원해봐도 혼돈환룡은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루트가 확정된 이후의 H 이벤트 씬에서, 혼돈환룡이 자고 있을 때 주인공이 덮쳐도 그는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침대에 끌어당겨 같이 자자고 하던 정령.

그리고 잠에서 깨우면 불같이 화를 내는 소녀의 약점은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모닝콜 트는 순간부터 바로 깼죠? 그런데 그냥 귀찮아서 내버려두고 있었죠?"

혼돈환룡은 기본적으로 영체, 즉 혼령이다. 나처럼 육신을 마력으로 구성하고 있으니, 광역으로 퍼져나가는 마력의 진동에 바로 반응하지 못하고는 못 베길 것이다.

"예상보다 조금 더 늦게 깨기는 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고."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근육을 풀었다. 이제 남은 일은 혼돈환룡의 세뇌를 푸는 일 뿐. 간부로서의 혼돈을 없애, 정령인 환룡만을 남기면 되는 일이다.

"덕배 씨. 일어나요."

나는 돌방망이를 집어올리며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덕배는 꾸역꾸역 A급 코어를 먹어치웠으나, 유감스럽게도 C급을 탈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아직도 진화가 안 돼요?"

[아니, 그 뭐시냐. 조금만 더 먹으면 진화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래서 결국에는 지금 C급이라는 거잖아요. 쳇. 관장이랑 체육관 배틀 뜨기 전에는 진화시켜서 싸우는 게 훨씬 유리한데."

[여기가 체육관이냐?]

괴조의 시체만 없었다면 문화 유적지라고 생각될 만큼 깔끔한 회색 벽돌이 넓게 펼쳐진 연무장이었다.

"비슷하죠. 이능력자들 수련장이니까. 일단 손님맞을 준비부터 할까요?"

나는 불꽃을 튕겨 괴조의 시체를 불태웠다. 역한 단백질 타는 냄새가 재와 함께 하늘로 살살 피어올랐다.

[왜 소멸 안 시켜?]

"어그로 끌려고요. 덕배 씨. 통닭 냄새 솔솔 풍기는데 손님들 많이 오시지 않을까요?"

[그 치킨 대장이 너고?]

"죽을래요?"

[오, 드디어 죽여주냐? 부활 안 시키고?]

덕배는 자꾸만 깐족을 부렸다. 어떻게 날이 가면 갈수록 더 시건방져지는게, 원작 초창기의 야황을 보는 것 같았다.

"...에휴. 됐어요. 여기서 빨리 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갑시다."

[빨리?]

"네. 그래서 지금 어그로 끌잖아요."

캬아아악!

담벼락이 무너지며 거대한 곰 한마리가 나타났다. 나는 주먹을 들어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B급, A급, S급. 먹이 냄새에 꼬이는 파리들을 하나둘 잡다보면…."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시야가 푸른 불꽃으로 감싸이며, 나는 육신을 괴인의 것으로 바꾸었다.

[SS급에도 이르게 될 터. 내가 가기 귀찮으니 자기가 알아서 오게 해야지.]

지금부터는 괴인 피닉스의 시간이다.

화륵.

돌방망이에 푸른 불꽃이 피어오른다. 내가 활성화시킨 정령석의 영향으로 돌방망이는 불타는 철퇴가 되었다.

[혼돈환룡 올 때 까지 워밍업 좀 해볼까.]

키에엑?!

나는 당황한 곰 괴수의 이마를 향해 불타는 철퇴를 집어던졌다.

스트라이크였다.

* * *

중국으로 넘어오기 전.

나와 은유하, 루살카는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맞추었다.

혼돈환룡.

각지에 숨어있는 S급 괴수.

그리고 큐브.

하나같이 죄다 조금만 삐끗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폭탄들이었고, 모택평은 그 폭탄을 빌미로 삼아 온갖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광인이었다.

"혼돈환룡만 빼오는 건 안 되나요?"

"안 돼요. 언젠가 큐브를 발견하게 되면 무신을 부활시킬 겁니다. 큐브도 찾아야 해요."

"그럼 큐브는 어떻게 찾으면 된다니? 중국 전역을 마력으로 스캔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혼돈환룡의 힘을 빌릴 거예요. 대륙 전체에 혼란을 일으켜서 모택평의 눈을 돌리는 사이, 각지를 이잡듯이 뒤져서 큐브를 찾는 거죠."

선의철이 큐브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듯이, 모택평 또한 큐브의 존재에 대해 알고있다.

"하지만 정작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죠. 발견하는 건 2년 뒤가 될 테니까."

선의철처럼 확실하게 위치를 알거나, 청송처럼 이미 큐브를 확보한 경우와는 달랐다. 모택평은 동창을 이용해 중국 전역을 이잡듯이 뒤졌고, 큐브를 발견하기까지 앞으로 2년 정도 남았다.

"또 먼저 발견했을 가능성은 없어요?"

"네. 다행히. 절대로."

아무리 세계가 나를 놀려먹으려 작정해도 그것 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적당히 화제를 돌린 뒤, 다시 그들과 계획을 짜맞추었다.

"다시 한 번 더 언급하지만, 모택평의 시야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좋아요. 혹시나 미쳐서 또 미사일 버튼을 쾅쾅 누르기 전에, 그 시선을 중국 국내로 돌리는 거죠."

"당신의 실종으로 과연 가능할까요? 선의철의 소나무 부대가 모택평의 동창을 모티프로 만든 조직인 건 알고 계시죠?"

"예. 훨씬 악랄한 놈들이죠."

여러모로 악랄놈들이다. 중국 육로를 탈출하는 주인공 일행을 괴롭히는 최악의 적으로, 모택평은 히로인들을 잡으면 동창의 공용 노리개로 포상하겠며 그들을 자극했다.

"그러니까 동창도, 괴수도, 모택평도 싹다 때려잡을 겁니다. 앞으로 5년 반. 그 동안 절대로 이 땅에 눈독을 들이지 못하게. 덤으로 혼돈환룡도 뚜드려패서 데려오고."

나는 내 기억상 중국 곳곳에 배치되어 있던 S급 괴수들의 위치를 가리켰다.

"그래서 제 계획은 말이예요, 간단해요."

나는 지도 전체를 매직으로 빙빙 돌렸다.

"난전(亂戰)."

지금까지의 전투의 무대가 구로, 부산이나 압록강과 같이 협소한 지역이었다면, 이번의 전투 무대는 훨씬 스케일이 크다.

"중국 전역에서 난전을 벌입니다.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울 수록 좋아요. 그만큼 모택평도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혼전에 머리가 아파오겠죠.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나는 둘에게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다.

"계획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고, 대륙에서 마음껏 깽판칠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건 창염의 피닉스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난장판. 혼돈. 어차피 상대도 혼돈환룡 아닌가?

"이게 제 계획입니다."

'어차피 계획 세워봤자 다 망가지던 걸.'

은유하와 루살카가 머리를 맞대어 나의 합법적 입국, 모택평의 시야 분산, 이후의 행보에 관해 작전을 세우고 계획을 만들었지만,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전부 때려 죽이는 거지.]

이 얼마나 심플하고도 완벽한 계획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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