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52화 (152/1,497)

〈 152화 〉1부 8장 12

중국 전역이 들썩였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음악 소리는 시도 때도 없이 하늘에 울려퍼졌고, 이능력자들은 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괴수를 사냥할 때에도 울리는 알람 소리에 몸서리를 쳤다.

딩딩딩. 굿모닝. 딩딩딩.

"으아악! 지금은 저녁이라고오!"

히어로 한 명이 귀를 막고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귀를 막아도 소리는 들렸다. 심장의 코어가 빠빠빠빠 하며 흔들렸고, 그는 미쳐버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굿모닝 굿모닝! 젠자앙!"

"으아아!! 도대체 어떤 놈이야!!"

히어로들은 경기를 일으켰다. 불규칙적으로 울리는 아카펠라 하모니에 절로 아침 혐오가 생길 지경이었다.

"우리는 전혀 안 들리는데. 이능력자들 한테만 들리는 건가?"

"그런가본데."

히어로들과는 달리, 일반인들은 전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리가 공기를 매질로 전달되는 것이라면, 지금 중국 전역을 들쑤시고 있는 '굿모닝'은 마력을 매질로 전달되는 이능의 발현이었다.

"어...나 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뭐? 이능력자만 들을 수 있다잖아. 너 혹시?"

그에 따라 이능력을 각성하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 '나도 이능력자'라고 자각하는 일이 생겼다.

이에 중앙당, 특히 동창의 입장은 둘로 갈려버렸다.

"아버님! 제발 이 테러를 멈추게 해주십시오!"

문화가 직접 총대를 메고 모택평의 앞에 나섰다. 그는 안그래도 초췌한 몰골이 이제는 피골이 상접해있었다.

"이능력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낮잠은 커녕 작전을 펼칠 때도 들리는 환청에 미쳐버릴 것 같다고요!"

"언제부터 네가 감히 내게 이런 반항을...."

"아버님!"

모택평은 인상을 찌푸리며 성을 내었으나, 그 이상으로 문화는 발작을 일으켰다. 왠지 여기서 더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에 모택평은 한 수 물러서 이성적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했다.

"기존의 이능력자는 그럴 수 있겠지. 하지만 문화야. '굿모닝'이라고 하지 않느냐. 아직 각성하지 못하고 있던 이능력자들에게 새로운 아침을 선사하는 일이야."

모택평은 각 도시마다 건설되어있는 협회의 검사장 영상들을 증거로 내밀었다. 실제로 자신의 귀에 굿모닝이 들린다며 찾아오는 이들은 기존에 비능력자였고, 새롭게 이능력자로 등록되었다.

그 수가 무려 천.

굿모닝이 시작된지 고작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자신이 각성했는지조차 모르는 이능력자를 찾아내는데 아주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청각 테러가 계속될 지 모르잖습니까! 동창은 커녕 모든 히어로들이 좆같, 아니 미쳐버릴 것 같다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참게. 고작 환청 좀 들리는 거 가지고 뭘 그리 따지는 겐가."

히어로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으나, 모택평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만약 모택평이 굿모닝을 들을 수 있었다면, 바로 자신이 동원 가능한 모든 전력을 이용해 청각 테러를 막았을 것이다.

"좋게 좋게 생각하시게. 이능력자가 늘어나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가. 다 이 나라의 흥복을 위한-"

삐리리리!

국장실에 직통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모택평은 중계도 없이 걸려온 전화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예, 괴수관리대책국 국장 모택평입니다."

[구, 국장. 큰일입니다.]

"......각하?"

상대는 자신보다 유일하게 높은 사람인 주석이었다. 당장은 그도 예를 갖추어야 할 존재.

[자, 자꾸만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띵띵띵 거리는 게....]

털썩.

모택평은 수화기를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국장? 도, 도와주시게. 너무 시끄러워서 미쳐버릴 것 같네....]

무능의 결정체로 만들어 다음 당대회에서 정식으로 주석 자리를 '선양'하듯 이어받을 모택평의 계획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 * *

"이건 계획에서 어긋나는데요."

나는 중국 각지에서 각성하기 시작하는 이능력자들의 수에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인구 수가 13억이나 돼서 그런 건지, 이능력을 각성하고도 자신이 이능력자인지 자각하지 못하는 인구가 벌써 천 명을 넘겼다.

"아마 비등록자까지 하면 몇 배는 뛰어넘겠죠?"

"어쩔래. 이거 완전 적의 배를 불려준 꼴 아니냐?"

"모택평만 실각시키면 적은 아니에요. 히어로가 늘어나면 나중에 성주와 대전을 벌일 때 좋은 거니까. 좋은 거긴 한데...."

아직 혼돈환룡이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계속 환염령들이 노래를 부르게 할 지, 아니면 당장이라도 작전을 중지할 지 갈림길에 놓인 상황이다.

"덕배 씨. 이능력자들이 어디에 등록을 하고 있다고요?"

"히어로 협회 검사장이지. 거의 99%?"

"그러니까 협회라는 거죠. ...푸흐흐."

그렇다면 당장은 문제가 없다.

"계속 노래 부릅니다."

나는 중국 전역을 누비는 환염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들의 옆에는 압록강의 둥지에서 날아온 미니피닉스들이 함께 날고 있었다.

"밤에 자고 있는데 밖에서 흐느끼는 여자 울음소리에 잠을 깨듯이, 최대한 기분 나쁘게 불러주세요. 우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하나."

나는 미니피닉스들을 통해 환염령들에게 명지시했다.

"잠탱이를 깨워야합니다."

"이런다고 정말 깰까?"

덕배가 중국 전역의 라이브 영상들을 훑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부분의 장소들에서 이능력자들이 굿모닝에 괴로워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혼돈환룡은 커녕 환건적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걱정마요. 레파토리는 많으니까. 이래도 안 깨면 2단계 작전도 시작해야죠."

"2단계 작전은 또 뭐냐."

"모닝콜로 안되면 당연히 기상나팔을 불어야죠."

"......쓰레기같은 노래를."

"......이건 욕으로 인정 안하나? 아무튼 덕배 씨. 빨리 노래 좀 찾아봐요."

과연 어디까지 안 깨고 버티나 보자. 나는 혼돈환룡이 깨어날 생각에 절로 신이 났다.

"세계 각 군의 기상나팔 소리, U튜브에 하나 쯤은 올려져 있겠죠?"

작전의 세컨드 페이즈가 시작되었다.

* * *

국경은 봉쇄되었으나, 중국 안의 소식은 당연히 밖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좆같은 소리를 여기서 들어야 해? 어떤 새끼가 중국에서 해병대 나팔을 불어대는 거야?"

오라클은 수틀리면 누구 하나 죽여버릴 기세로 살기를 내뿜었다. 그는 지금 서해 바다를 타고 넘어오는 나팔소리에 전용기가 있는 공항으로 차로 달려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국 근처의 이능력자들은 들리는 모양입니다. 특히 S급 이상은 말이죠.]

가웨인 경은 스크린 너머에서 쓰게 웃었다. 그는 현재 여왕의 보필을 위해 영국으로 돌아간 지 오래였다.

"야! 신입이! 너도 들리지!"

[......예, 엄청 잘 들리네요.]

설화령, 석하랑은 퀭한 얼굴로 헛웃음을 지었다. 수백km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알람음과 군가가 엮는 환장의 하모니는 SS급 히어로의 심장을 뒤흔들고 있었다.

[......운장은 도대체 뭘 하고 있다니? 아직도 연락 안 돼?]

운디네, 아나스타샤는 오라클 보다 더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왜 아나스타샤가 가슴깨 위로 옷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이유를 짐작하고 조용히 입을 닥쳤다.

[운장은 지금 잠적했습니다. 아예 워치를 뺀 모양이에요.]

[하. 정말. 그럼 빨리 어떻게 조치를 취하렴. 언제까지 땍땍거리는 이 소음을 들어야 하니?]

[땍땍?]

[......그냥 비유적 표현이야.]

오라클은 시끄러운 와중에도 그 표현이 제법 옳다고 느꼈다. 노랫소리는 귀를 거슬리게 하지만, 그게 꼭 새 수십마리가 지저귀는 게 아니라 땍땍거리는 것 같았다.

[그보다 한국에 있는 원탁 여러분.]

가웨인이 표정을 굳히며 간곡히 부탁했다.

[비스트 테이머 양이 행방불명된 이 시점에서, 중요한 건 서울의 흑염룡을 잠재우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를 깨워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드래곤이라서 그런가? 잠 엄청 잘 자던데. 걔는 주인이 걱정도 안 되나? 지금 시신도 발견 못 하고 있다던데."

[...아마 주인이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요?]

설화령은 나비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돌렸다.

[주인이 아직까지는 안전하니까 별 반응이 없는 걸 거예요.]

[아니면 이미 위험한 상태일 수도 있지.]

침묵하고 있던 갈색 피부의 남자, 살라딘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어디 중국 땅 어귀에서 팔다리가 잘린 채, 약품에 절여져 있을 지 누가 아는가? 내가 중국 영화를 좀 봤는데, 거기 팔을 앞으로 뻗고 좀비처럼 뛰어다니는 놈들이-]

[살라딘.]

가웨인이 엄한 목소리로 그를 다그쳤다.

[비스트 테이머 양이 안전해야, 전 지구가 안전해지는 겁니다. 예언을 잊으셨습니까?]

[......그 SS급 괴물들? 나는 못 믿어. 흥, 직접 봐야 믿을 수 있지.]

[SS급 괴물들?]

"아, 신입이에게는 아직 설명을 안했구나."

오라클은 자신의 능력을 통해 본 일곱마리의 괴수들을 간단히 설명했다.

"5년 뒤에 전세계 출몰할 괴수들이야. 우리는 지금 그것들을 마룡들의 본체라고 추측하고 있어. 그 중 한 마리는 한국에서 나올거라고 예상하고 있는데...."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물속에 수장시키는 거대한 나방이였습니다. 그게 저희는 아마 부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네?]

설화령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가웨인은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걸 막기 위해 저희가 이렇게 다방면으로 힘을 쓰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치. 그러니까 신입이는 이능력 연마 잘해. 물로 된 나방 따위, 얼려버리면 되잖아? 하하."

[하, 하하. 네....]

설화령은 떨떠름하게 웃고 있었다. 오라클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신이 지키는 도시 인구 수백만이 수장될 것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기분이 나빠질 테니까.

"그보다 일단 중국 문제부터-"

[늦어서 죄송합니다.]

치칙.

스크린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긴 흑발을 늘어뜨린 인형같은 여인이 회색의 안광을 빛내며 나타났다.

[운장?!]

[지금까지 도대체 어디서 뭘...?]

[설명은 나중에. 오라클, 전용기 지금 한국에 있습니까?]

"어. 나 그거 타고 미국으로 가려고 하는데...."

[중국으로 갑시다. 저도 지금 한국에 있으니.]

"뭐?"

전혀 들은 바가 없는데. 오라클은 종잡을 수 없는 운장의 행보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너 도대체 어디서 뭘하다가 이제 나타난 거야?!"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저 먼저 날아가겠습니다.]

"아니, 날아간다니! 무슨?!"

캬오오오---!!

"시발 깜짝이야!"

귀에 짐승의 포효가 울렸다. 회의에 참가하고 있던 원탁들이 괴수의 포효에 깜짝 놀라며 몸이 움츠려들었다.

"뭐야?!"

[와! 이거 개쩐다! 승차감 죽이는데?! 이야호오오오!]

갑자기 스크린에 나타난 질풍객이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운장의 스크린 뒤에 그의 얼굴이 보였다.

"너희 지금 같이 있냐?!"

[예.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운장은 무언가 고삐같은 것을 움켜쥐고 있었다. 원탁들은 그게 적토의 고삐인가 긴가민가 했지만, 방금 전에 울린 짐승의 울음 소리는 결코 말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

[아니, 잠깐만. 이게 무슨...?]

설화령은 나비 머리핀에 손을 올린채 당황했다. 그리고 다른 원탁들도 시시각각 들어오는 정보에 당혹을 금치 못했다.

[흑염룡이...?]

"깨어났."

크아아아아아악!

S급 괴수 흑염룡이 울부짖었다.

그의 위에는 두 명의 원탁이 타있었다.

[먼저 들어갑니다!]

[난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따라간다!]

삑.

두 명의 신호가 끊겼다. 오라클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나 잔다."

삑.

오라클도 원탁의 시그널을 껐다. 그에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취합하는 일이었다.

"도대체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예언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오라클은 점점 자신의 이능력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 * *

흑염룡은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오직 그의 주인인 나, 창염의 피닉스를 제외하고.

그래서 지금 서해 상공을 가로지르며 오고 있을 흑염룡을 부른 이는 나, 창염의 피닉스다.

"미니피닉스가 위치를 알려주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바로 일을 끝마치고 흑염룡을 타고 튀면 되는 거죠."

나는 덕배를 데리고 석실을 빠져나왔다. 덕배는 나에 의해 무기가 되어, 다시 돌방망이가 되어 있었다.

"모닝콜을 해도 안 깨, 기상나팔을 불어도 안 일어나. 그럼 남은 방법은 세 번째 방법밖에 없죠."

나는 돌방망이를 손바닥으로 쓸어올렸다.

"어디 집 마당에 폭탄이 떨어져도 계속 자는 지 봅시다."

나는 작전의 세번째 단계를 시작했다.

S급 괴수.

흑염룡을 대륙 중앙에 터뜨리는 것으로.

그 때까지는, 설마 그 위에 원탁 두 명이 타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