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1부 8장 10
중앙당 괴수관리대책국 국장실.
홀로 국장실 소파에 앉은 국장, 모택평은 초조함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초에 한 번씩 피쳐폰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똑똑.
노크소리가 울렸다.
"들어와라."
모택평은 누군지도 보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앉은 것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있어서, 자신보다 윗사람은 이 국장실에 올 일이 없었다.
"아버님!"
다행히 들어온 남자는 자신의 아랫것이었다. 모택평은 눈썹을 찌푸리며 남자의 말을 정정했다.
"국장."
"...국장님."
남자는 초췌한 몰골로 고개를 숙였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있었고, 며칠 제대로 몸을 제대로 씻지도 못한 것 마냥 몸 군데군데 때가 끼어있었다. 하지만 모택평은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행방은? 시신은 건졌나?"
"동원 가능한 모든 동창을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반경 10km 안에 시신은 커녕, 도주한 흔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남자는 사진을 하나 꺼냈다. 타깃이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추락한 지점. 그곳은 비행기라도 떠서 날아간 듯 잡초들이 눕혀져있었다.
"<문화>야."
"예."
남자, 문화는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모택평은 혀를 차며 파이프를 입에 물었다.
"내가 너에게 너무 대단한 이명을 붙여준 모양이구나."
"......!"
문화는 모택평의 말뜻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무능을 이명의 원 주인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었다. 이명에 걸맞는 활약을 하라며.
"5km 안에서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네 제안에 따라 10km로 반경을 넓혔어. 그런데 시체는 커녕 도망친 흔적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게 쉬이 이해할 수 있는 답이더냐. 어디 입이 뚫려있으면 대답해보아라."
모택평은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코를 찡그렸다.
"괴수 조종사가 땅으로 꺼졌나, 아니면 하늘로 솟구쳤나?"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믿어주십시오, 국장님. 국장님께서 제게 붙여주신 이명만큼 열과 성을 다해-"
"쯧."
모택평은 혀를 차며 담뱃재를 털었다. 문화는 주먹을 불끈 쥐며 울분을 삭였다.
"그래. 괴수 조종사 옆에 함께 왔다는 그 대머리 보디가드. 그가 동창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능력자일 수도 있지. 가령 조선이나 협회의 비밀병기 같은 것 말이야."
"......단둥에서 나타난 그 SS급 괴인, 불사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문화야."
모택평은 진심으로 아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봉효라면 그리 되묻지 않고, 바로 자신의 의견을 말했을 것이다. 가령, 그 괴인이 낙하 직전에 괴수 조종사를 구해 우리의 인지를 벗어난 방법으로 도망쳤을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말이야."
"......송구합니다."
문화는 그저 그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갑자기 제독의 자리를 맡고 있던 그가 행방불명 되는 바람에, 급히 수습된 동창의 우두머리는 문화가 되었다.
모택평이 직접 둘을 비교하며 문화의 무능을 지적했 듯, 현 동창은 여러 의미에서 이전의 능률을 10할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 사라진 동창의 영웅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찾았느냐?"
"......전역을 살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들의 위치는 찾지 못하였으나-"
모택평이 주먹을 불끈 말아쥐자, 문화는 황급히 목소리를 높여 말을 이었다.
"더이상 행방불명되는 자는 없을 겁니다! 모든 동창 인원들을 철저히 3인 1조로 구성하여, 행여나 한 명이라도 사라지면 바로 다른 이들이 신고하도록 명령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래. 더이상 전력이 사라지는 것이라도 막아야지. 이미 3할 가량이 행방불명되었지만."
모택평은 이죽거리며 문화를 조롱했다. 문화는 억울함에 가슴이 얹혔지만, 계속되는 모택평-아버지의 조롱을 감내해야만 했다.
"봉효라면 달랐을 거다."
"......노력하겠습니다."
모택평은 끊임없이 이복형인 봉효와 문화를 비교했다. 그는 수많은 사생아를 낳았고, 그 자식들 간의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자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들 중에는 봉효, 딸 중에는 운장이 가장 우수했으나, 지금은 둘 다 사라져버렸지. 문화야."
"예."
"둘 다 잡아오너라. 그게 네가 동창 제독으로서 할 첫 임무이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임무다."
"알겠습니다."
문화는 고개를 숙이고 국장실을 떠났다. 모처럼 기대하고 있던 보고는 허탕이었고, 다시 초조함이 자신을 좀먹기 시작한다.
"...봉효만 있었더라면."
그가 낳은 수많은 사생아들 중에서 아쉽게도 봉효만한 아들은 없었다. 모택평은 그나마 머리가 조금 돌아가는 문화의 이명을 철회할까 진지하게 고민에 빠졌다.
"이왕 바꾸는 거 C급 정도 되는 자로-"
"아버님?!"
국장실의 문이 벌커덕 열리며, 문화가 노크도 없이 들어왔다. 모택평은 예의없이 무작정 국장실로 뛰쳐들어온 아들에게 경을 치려고 했으나, 문화의 귀에 걸린 미소를 보고 흠칫 놀랐다.
"찾았습니다! 환건적 놈들입니다!"
"......그게 지금 내 방에 멋대로 들어온-"
"사라진 동창 히어로들이 환건적이었습니다!"
모택평은 담배 파이프를 놓쳤다.
* * *
"다 모아 왔어요?"
나는 덕배를 석실로 불렀다. 이미 그에게 명령권을 내려주었던 환염령들은 덕배의 뒤에 졸졸 따라왔다.
"그래. 여기."
덕배는 내게 보자기를 던졌다. 쌀 한가마니를 훌쩍 넘는 무게의 보자기를 내게 집어던졌지만, 나는 그걸 공중에서 마력으로 낚아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흠...쓸만한 건 대략 오백개 정도네요."
"뭔 소리야. 지금 거의 3천개는 모아왔는데."
덕배는 역정을 내며 따지고 들었다. 그의 뒤에 시립해있는 환염령들도 감히 불만스러운 눈치가 강했다.
"아뇨, 모아온 건 고생했어요. 다만 이 중에 제가 당장 쓰려고 하는 게 오백개 정도라는 거죠."
"??"
덕배는 순간 이해되지 않는 다는 얼굴로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뒤의 환염령들을 가리키며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그 환건적이라는 거, 일단 특징을 얘기해볼래요?"
"오냐. ...어, 그러니까...."
덕배는 중국어가 가득한 웹페이지에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나도 조용히 침묵했고, 그 뒤에 있던 환염령 하나가 덕배의 옆에 붙었다.
"제가 읽어드려도 되겠습니까?"
"그, 그래. 잘 부탁한다."
덕배는 스크린을 내밀었고, 환염령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스크린을 두드려 내가 알고자 했던 정보를 찾아냈다.
"주로 회색의 마력을 띄는 이능력자들로, 동공에서 회색의 빛을 뿜어냅니다. 실체를 갖추어 다니지만 유령이 될 수도 있으며, 지금까지 발견된 개체는 모두 남자들입니다."
"......그럼 얘들이랑 똑같은 거 아니냐? 성별만 다르지."
덕배가 환염령의 동공을 가리켰다. 환속성의 코어에서 내 마력이 깃들어 태어난 그들은 회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부하 2호, 오늘은 촉이 좋네요. 맞아요."
나는 덕배의 추측에 긍정하고, 환염령에게 그 뒤의 내용을 물었다.
"혹시 등급은 어떻게 돼요? 대부분 C급에서 A급일텐데."
"......맞습니다. 대부분의 개체는 C급이지만, 간혹 A급인 경우가 있습니다."
"젠장."
머릿속에 떠오른 한 가지 가정이 벌써부터 확신으로 변했다. 나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덕배와 환염령들에게 간단히 설명했다.
"혼돈환룡이 잠에서 깨어난게 확실한 것 같아요. 누가 깨운 건지, 아니면 누군가 깨운 건지는 모르죠. 하지만 지금 상황은 최악이에요. 환건적이라는 애들, 원래는 동창 놈들이거든요."
"...그 고자 놈들? 잠깐만. 동창은 모택평 수하들이잖아."
"예. 아무래도 벌써 활동을 시작한 것 같아요. 혼돈환룡이."
나는 절로 이가 갈렸다. 내가 원작보다 5년 더 빨리 활동을 시작했던 것 처럼, 세계도 시간을 5년 당겨 간부들을 하나 둘 깨운 모양이었다.
설마 모택평이 깨운 건 아니겠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최악의 가정에 온몸이 벌벌 떨렸다.
"젠장.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그럼 덕배랑 환염령들. 명령을 내립니다."
나는 그들이 가져온 보자기를 펼쳤다. 마력으로 된 보자기는 각을 만들어 넓은 상자가 되었고, 덕배와 환염령들의 표정이 살짝 불편해졌다.
"......삼천 중에 오백. 야, 설마."
"네. 합시다."
나는 팔을 걷으며 손을 풀었다.
"D급 코어들 말고, C급 정도 되는 코어들만 따로 빼내자고요."
아쉽게도 수작업이 필요했다. 우선 나부터 보자기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C급 코어들을 바깥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야. 21세기 문명시대에 이렇게 해야하냐? 뭐 자동분류 못해? 놀고 있을 때가 아니라면서 이게 뭐하는 거야?"
"덕배 씨. 그냥 닥치고 앉아요. 당신들도 도와요."
환염령들도 옹기종기 모여 앉아 C급 코어를 밖으로 빼내기 시작했다. 덕배는 투덜투덜거리며 엉덩이를 깔고 앉아 코어를 골랐다. 나는 적당히 10개를 고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하냐? 빨리 안 빼?"
"저는 다른 일을 해야해서."
나는 10개의 코어를 외곽에 뿌린 다음, 그들을 다시 괴인으로 만들었다. 10개체의 환염령들이 태어나고, 나는 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코어 골라요."
"네."
둘러앉은 괴인들이 C급 코어를 골라내면 나는 그걸로 괴인을 만든다. 단순 노가다나 다름없는 작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괴인은 늘어나고 작업 속도는 빨라졌다.
"저희 언제까지 이 작업을 합니까?"
"그냥 하면 심심한데 얘기라도 하면 안 되나요?"
단순작업에 지친 환염령들이 입을 열었다. 약 서른 명 정도로 늘어난 환염령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
"......알겠어요."
내 마음은 급하기는 하지만, 너무 억압하게 되면 작업 속도도 오히려 느려지리라. 나는 그들에게 잡담을 허락했다.
"어머어머, 대범하셔라. 감사해요. 맨날 끼에에엑만 나와서 입이 근질거렸는데."
"그쵸? 말하고 싶은데 자꾸 비명만 나오니까 돌아버리겠더라고요. 아, 진짜 살 것 같다. 죽으니까 말도 못하고 진짜 짜증나던 거 있죠?"
"오호호, 다행히 이해심많은 주인님이 부활시켜주셔서 다행이에요. 깔깔깔!"
그리고 좌판이 깔렸다. 나는 그냥 괴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까 고민했지만, 이미 사태는 겉잡을 수 없었다.
"저기 언니, 언니는 어쩌다 죽었어요?"
"나? 괴수한테 잡아먹혔지. 동생은 어쩌다 죽었어?"
"저요? 저 차원문 열리고 도망치다가 사람들한테 깔려서 죽었어요. 그쪽 청년은 어쩌다 죽었는감?"
"저게 나 태워 죽였다."
어느새 환염령들 사이에 끼어있던 덕배가 나를 삿대질하며 으르렁거렸다. 환염령들은 덕배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안타까운 목소리로 덕배를 위로했다.
"저런. 젊은 나이에 안 됐네. 그래도 다시 살아나지 않았수."
"총각. 긍정적으로 생각혀. 어차피 인생은 가는데 순서가 없다고. 온 세상에 괴수가 판을 치는데 일찍 간 것도 운명이여, 운명."
"......."
나는 갑자기 관속에 고이 누워있는 시체에 미안해졌다. 내 예상이 맞다면 그는 아마 대륙을 호령했던 존재일텐데, 졸지에 그의 눈앞에서 도떼기 시장을 만들어버렸다.
문제는 희안하게 그들이 떠들수록 작업 효율이 좋아지고 있다는 것. 나는 귀를 꾹 닫고 그들이 골라내는 코어를 주웠다.
"아가씨. 아가씨는 어쩌다 죽었어?"
"전 괴수한테 잡아먹히기 전에 도망치다가….옥상에서 그만. 언니는요?"
"저런. 나는 괴수한테 잡아먹혔어. 호호호. 예전에 흑전갈 한창 날뛸 때 있잖아."
"어! 저도 흑전갈한테 도망치다가 죽었는데!"
"어머어머. 그럼 우리 사망동서인감?! 깔깔깔!"
다들 한 번 죽었다 부활해서 그런 걸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상당히 유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코어를 줍다가 관으로 다가가 관뚜껑을 확실하게 막고 기도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너 아까부터 관에다가 뭘…."
덕배는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관의 존재에 대해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이거 설마 그거 아니지?"
"맞을 걸요? 왜, 위에 화려하게 되어있는 건 도굴 방지용이죠. 근데 저도 확신은 못해요."
"그러면 부활시켜보면 되지 않냐? 본인인지 아닌지."
"......미친."
나는 절로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지금 고인능욕을 하자는 거예요?"
"네 전문 아니냐?"
"아니, 그래도 이건 좀…."
만약에 진짜면 어쩌려고 그러는 건지. 나는 바닥에 구르는 D급 코어 하나를 들어올렸다.
"......부하 2호. 이왕 부활시키는 거면 좀 더 좋은 코어로 하는 게 낫겠죠?"
"그건 또 좋은 아이디어인데. 너도 솔직히 살짝 혹했지?"
"혹한 정도가 아니라…."
나는 관뚜껑을 열었다. 덕배는 관 안의 미라를 보며 화들짝 놀랐다.
"으아 스발?!"
"미리 준비 해뒀죠."
나는 관속에 숨겨둔 미니피닉스를 꺼냈다. 덕배는 미라가 아니라 미니피닉스를 보고 놀라 엉덩방아를 찧은 모양이었다.
-벌써 부활시키려는 거시야?
"......아뇨. 당장은 아니에요."
진실을 알게된 시점에서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지금 눈앞의 미니피닉스는 본인이 아니다.
본인 말마따나 이계신의 파편인 큐브를 구해올 때만 만나준다고 하는 비싼 여자인 만큼, 지금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미니피닉스는 그의 의식로부터 파생된 단편 조각에 불과했다.
"둥지에 있는 새들과 함께 대륙 전체를 확인하세요. S급 괴수 나타나면 바로 저한테 날아와서 보고하고."
-알겠다는 거시야.
미니피닉스는 유유히 공중을 날아 석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또다른 미니피닉스를 하나 만들어 관뚜껑 위에 올려두었다.
"왜 또 하나 더 만든 거냐?"
"빠른 이동을 위한 마킹이죠. 언제 또 지하까지 내려와요? 순간이동 해야죠. 일단 들어봐요."
나는 덕배에게 내 계획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S급 괴수를 찾는 순간, 바로 순간이동해서 죽이고 코어를 빼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코어로 여기 이 사람을 부활시키는 거죠."
"현지에서 전력을 충원하는 건가. 나쁘지는 않네. 야, 그러면 말이야."
덕배는 꽤나 솔깃한 제안을 했다.
"여기다가 아예 임시 거점 차리는 건 어떠냐? 상식적으로 여기까지 환건적이든 모택평이든 내려오겠냐? 누구처럼 문화재들 다 때려부수면서?"
"......."
나는 관속의 미라와 덕배를 한참 번갈아보다가 답했다.
"나중에 주인 허락 받고요."
주인으로 추정되는 이는 아직도 관속에 잠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