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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48화 (148/1,497)

〈 148화 〉1부 8장 7

온천에서 돌아온 직후.

나는 어떻게하면 중국에서 무사히 혼돈환룡과 큐브를 무사히 서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는 서울 여의도 청화단의 본거지에 내 작전에 필요한 주요 인사들을 소집했다.

내가 중국으로 갈 수단을 마련해 줄 은유하.

그리고 내가 중국으로 갈 명분을 마련해줄 원탁의 히어로, <운디네> 아나스타샤(루살카).

"진짜 그 농땡이가 중국에 있다는 말이니?"

"네. 아마 거기서 잠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중국 안으로 들어가야하죠."

"...그냥 날아가면 레이더에 걸릴 겁니다. 그럼 분명 그걸 핑계로 삼아서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몰라요."

은유하는 모택평이 가진 광기와 극단적 선택을 경계했다. 내가 원작 지식을 바탕으로 그의 정체를 알고 있다면, 은유하는 그로부터 오는 투자의 리스크와 손해를 귀신같이 판별해냈다.

"그럼 어찌 하자는 거니? 밀입국이라도 하련?"

"아뇨. 불안요소를 제거해야죠. 실각시키는 거예요."

"가능하겠니?"

루살카는 나를 비웃었다.

"이 좁은 땅떵어리와는 달리, 저기는 넓어. 상대는 한 나라의 실질적인 1인자라고. 또 서울에서처럼 도시 하나를 점령해서 압박할 거야?"

"아뇨. 진실을 드러내게 할 거예요."

나는 프로필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감사해야할 전 원탁의 히어로, <무신>의 프로필이었다.

"이 분은 왜요?"

은유하조차 존경심을 드러내는 남자, 무신은 전세계적인 영웅이었다. 아마 그가 성주와의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기만 했더라도, 그는 살아있는 영웅으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살리려고 하거든요. 모택평이."

"......고객님도 아닌데 가능해요? 그게?"

"그 아이구나."

루살카는 내 말뜻을 금방 이해했다.

"혼돈환룡을 깨운 다음, 괴인으로 부활시키려는 속셈이야."

"......맙소사."

은유하는 손으로 입을 막으며 기겁했다. 자신 또한 SS급의 이능력자를 괴인으로 부활시키는데 일조한 만큼, 무신이 부활하면 얼마나 강할 지에 대해서는 익히 잘 알고 있다.

"굳이 혼돈환룡이 아니더라도, 모택평은 온갖 방법을 총동원해서 무신을 부활시키려고 해요. 이미 그의 시체는 성주와의 결전에서 수습되어 무덤에 안치되어 있을 테니까."

"그럼 그 무덤에 있는 시체는…?"

"당연히 가짜죠. 은유하 아가씨 X로이드같은 짝퉁으로 바꿔치기한 가짜. 진짜는 아마 어디 지하에 숨겨져 있을 걸요. 무협지 같은데 보면 나오잖아요. 혈강시. 그런 것이에요."

"......괴인이든 좀비든 무신이 부활한다고 쳐. 그래도 문제 있어?"

루살카는 고개를 치켜들며 자신감을 보였다.

"우리 서방님이 더 강해."

"......저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광검이 무신을 이길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인 시각이 강했다.

"고객님은요?"

"1:1이라면 어떻게든. 하지만…."

"아. 그러네. 그 아이가 붙으면 안 되는 구나."

나는 혼돈환룡의 속성을 설명해줬다. 영체가 근본이기에 다른 육체에 빙의도 가능한 만큼, 혼돈환룡이 무신의 육체를 얻어 사용하게 된다면 평양의 뉴클리언 이상가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간단히 설명하면 우리는 2배로 데미지를 입는데, 저쪽은 1/2밖에 데미지를 안 입는 거예요."

"......?"

"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지 않으련?"

"음…."

게임이 원작인 세계 주제에 게임으로 설명하니 이해를 못한다니. 생각해보니 두 명 다 게임과는 백만광년 동떨어진 여자들이었다. 집정관이라면 대번에 이해해서 '버그캐?'라고 말했을텐데.

"......돈은 두 배로 벌면서 돈 내는 건 절반만 지불하게 되구요, 사정은 두 배로 하는데 스태미너는 절반만 소비하는 남자에요."

"미친 거 아녜요?"

"미쳤네, 정말."

은유하와 루살카는 대번에 이해한 것 처럼 보였다. 어찌됐든 이해한 것 같으니, 나는 내 계획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야할 건 혼돈환룡의 확보. 그리고 원탁이 움직여서 직접 중국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무신의 시체를 연구하는 연구소를 찾아내는 겁니다."

"모택평이 가만히 있지 않을텐데요.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요?"

"네."

제법 그럴듯한 미끼를 던지면 될 일이다. 나는 모택평이 건드리지 않고는 못 베길 꿀단지를 직접 가져다주기로 마음먹었다.

"제가 중국으로 갈 거예요. 직접. 바로."

"......얘, 가웨인이 분명 그런 조건으로 협상을 짓기는 했어. 그래도 네가 굳이 중국으로 갈 필요는 없단다."

루살카는 나를 좋게 타이르려했다. 남편인 허윤환에 대한 소유권은 양도하기는 했어도, 내가 죽으면 광검도 죽는 건 마찬가지였다. 창조주가 죽으면 괴인도 죽으니까.

"걱정마세요. 보디가드 데리고 갈 거니까."

"누구?"

"조덕배?"

"...그냥 내가 따라가는 게 낫지 않겠어?"

루살카는 직접 중국으로 따라오겠다고 제안했다. 나를 신경쓰는-정확히는 내가 피해를 입으면 남편이 어떻게 될 까봐 걱정하는 걸 테지만-루살카의 마음씨에 괜히 마음이 동했으나, 나는 정중히 사양했다.

"저보다 당신이 더 위험해요."

"왜? 나 여차하면 아빠한테 부탁해서 북쪽으로 탈출을-"

"모택평, 유부녀 취향이거든요. 특히 남의 아내를 강탈하는 게 그 인간 성향인데-"

"아, 미안. 중국 잘 다녀와."

루살카는 바로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나도 루살카가 따라오는 건 사양이었다. 히로인이라면 몰라도, 장모님과 둘이서 중국 여행을 가는 건 좀 많이 그랬다.

"흠흠. 그래서 다시 작전으로. 아무튼 모택평은 제가 중국으로 들어가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회유를 하려 들 것이에요. 그 모종의 방법에는 상식을 벗어난 범죄도 있을 수 있죠."

"고객님이 그런 거에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아, 명분?"

은유하는 금방 내 의도를 깨달았다.

"당신이 납치를 당하거나 사고가 생긴 걸 빌미로, 협회나 원탁에서 중국으로 들어갈 명분을 만드는 거군요."

"예. 그게 아니면 입국조차 힘들 겁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괴수를 조종할 수 있는 특수 이능력자가 중국에서 증발해버리면, 과연 전세계 여론은 어떻게 될까요?"

"......자기들이 독점하려고 납치했다고 생각하겠네. 너 진짜 성격 나쁘구나?"

"칭찬 고마워요. 장모님."

"죽을련?"

나와 루살카는 서로 한 차례 덕담을 나눈 뒤, 은유하와 함께 본격적으로 작전을 입안했다.

빌런, 인간, 그리고 원탁.

내가 계획한 작전의 틀에서 각자의 입장에서 최대한 적절하다 싶은 방향으로 작전은 기획을 마쳤고, 실행하는 일만 남아있었다.

"제가 협회로 받는 청화의 스마트워치. 그게 신호가 끊기면 바로 작전을 시작하는 겁니다. 알겠죠?"

"네. 유성의 전력을 준비해둘게요."

"나도 원탁 총각들한테 부탁 하고 올게. 아 참. 운장은 어떻게 할 거니?"

"샤오린?"

루살카는 중국의 원탁 영웅에 대해 짚었다. 이미 단둥에서 한 번 손쉽게 꺾었던 존재였던 만큼, 그다지 신경은 쓰이지 않았다.

"......자유롭게 내버려 둬요. 원탁에 서면 아군이고, 자기 아버지 편에 서면 적군이니까. 어느쪽이든 대처가 가능해요."

"어디에도 서지 않으면요?"

"검은색도 아니고 하얀색도 아닌 회색이라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떤 입장을 취하든 간에, 때려눕히면 돼요."

그렇게 작전의 입안은 끝났다.

나는 은유하가 설계한대로 협회의 초청을 받아 정식으로 히어로 등록을 하고, 바로 김해공항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언제 신호를 끊을까.

혼돈환룡을 각성시킨 뒤?

큐브를 전부 털어먹은 뒤?

그도 아니면 중국의 모든 S급 괴수들의 코어들을 서리한 뒤?

그때까지는 설마 비행기를 타자마자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신호를 끊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 *

덕배의 대포폰을 통해 확인한 위치는 목적지로부터 약 600km 떨어진 지점. 서울과 부산을 직전으로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였으나, 그걸 달려가야 하는 게 참 불편했다.

"사람들 없는 산길로 말이죠."

나는 뒷짐을 쥔 채 여유롭게 달렸다. 덕배는 전력질주로 나를 따라오고 있었지만, 그 속도는 고작 50 정도를 조금 웃도는 정도였다.

"어디가서 C급 주제에 차보다 느리다고 하면 혼나요. 알아요?"

"그럼, 허억, 정령석, 크허, 쓰게 해주던가!"

"그럼 훈련의미가?"

나는 덕배로부터 빼앗은 정령석을 주머니에서 꺼내 흔들었다. A급 코어를 두 개 녹여서 만든 정령석은 덕배에게 엄청난 힘을 주지만, 그 정령석을 빼앗긴 지금은 그저 평범한 C급 이능력자에 불과하다.

"허억, 허억!"

덕배는 숨을 헐떡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은 시뻘게져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화산같았다.

"힘들어요? 편안하게 해드려요?"

"죽이겠다는 말이잖아!"

"그냥 쉬자는 말이었는데. 원하는 대로 해드릴까요?"

덕배는 손을 들 기력도 없는지, 고개만 살짝 가로저으며 내 호의를 거부했다. 나는 덕배의 맞은편, 나무 그루터기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제 얼마 안남았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흐어, 허어. 바쁘다더니, 흐으, 이런 거 할 시간은 있냐?"

"인재를 양성하는 시간이 아까울 리가 없죠. 잡아야할 상대가 어디 다른 곳으로 갈 애도 아니고."

"......야."

덕배는 안정된 호흡으로 자신의 워치를 두드렸다.

"일단 네 친구는 거기에 있다고 치자. 이제 중국 전 국민이 나서서 너 찼겠다고 난리가 날텐데, 이래도 되냐?"

"당연히 되지요. 찾을 수나 있을까요?"

나는 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가리켰다.

"해 떠있는 동안은 저 아무한테도 안 들켜요."

"...보통은 반대 아니냐?"

"자, 청화의 거신. 반복합니다. 이 몸은 무엇?"

"...태양. 스바."

"뒷말이 기네요. 아무튼 저는 태양 그 자체. 태양이 떠있는 동안은 들킬 일이 없다는 거죠. 푸흐흐."

일부러 새벽같이 서울을 빠져나온 이유도 시간 때문이다. 특히 지금은 태양이 하늘 높이 떠있는 정오인 만큼, 나는 누가 와도 이길 수 있다. 성주 빼고.

"그럼 조금 속도를 올려보도록 하죠. 해 떨어지기 전에 공주님 깨우러 가야하니까."

"오냐. ......야, 잠깐만."

덕배가 굳은 표정으로 워치를 내게 들이밀었다. 나는 또 이게 무슨 장난을 치려나 싶어서 짜증이 일었지만, 덕배가 보인 워치의 스크린에 뜬 내용을 보자마자 화가 치밀었다.

"아니 시발."

"지는 욕하네. 나보고는 욕하지 말라더니."

"이게 지금 욕 안할 일이에요?"

욕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다. 비행기에서 동창의 고자 놈들이 수작을 벌일 때부터 경계했어야 하는데, 그와 별개로 이런 정신나간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자, 잠깐."

나는 내 셔츠 카라에 채워둔 나비 모양 배지를 잡았다. 다행히 상대는 바로 응답했다.

[석하랑, 이게 무슨 말이냐?]

[말 그대로의 의미야. ...너 신호 끊어지자마자 들어온 소식이라고.]

"이런 미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타이밍이 이렇게 공교롭다고?"

"너 아무래도 인생에 마가 낀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굿이라도 해봐야하는 거 아니냐?"

덕배는 나를 비웃는듯한 얼굴로 낄낄거렸다. 확 덕배의 심장에 손톱을 박아넣어 버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간신히 화를 삭이며 속을 쓸어내렸다.

"......에이, 됐어요. 어차피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데."

"난 왠지 여기서 더 꼬일 것 같은데?"

"덕배 씨. 지금 주인 인생 종치라고 저주하는 거죠? 그렇죠?"

"아니, 이거 봐봐."

덕배가 워치를 두드리며 다른 기사를 꺼내들었다. 영어로 된 기사는 속보로 중국의 상황을 전세계에 알리고 있었다.

"......와."

울고 싶었다.

"아무래도 너 납치하려고 했던 놈들이 모택평 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신문 기사 속.

모택평은 직접 대중의 앞에 나서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었다.

"신원 불상의 테러 조직이 <비스트 테이머>가 탄 비행기를 습격하여 폭파...?"

난 비행기를 터뜨린 적이 없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더욱 가관이었다.

"이 테러 조직을 최근 들어 기승을 부리는 이능력자 범죄 집단 '환건적(幻巾賊)'으로 명명하여, 전부 색출할 때 까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

이건 원작의 기출 범위를 벗어난 사태인데. 덕배의 표정이 싱글벙글해질수록, 나는 애써 웃고 있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와. 미치겠다, 정말."

국경이 봉쇄당했다.

"이러면 원탁 애들도 못 들어오지? 괴수로 인한 사태도 아닌데."

작전은 시작부터 꼬인 게 아니었다.

"너 족됐다. 이제 어쩔래?"

시작부터 엎어졌다. 나는 그저 허허 웃으며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환건적은 또 어떤 새끼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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