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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22화 (122/1,497)

〈 122화 〉1부 7장 (2)

"하으.... 그, 그만 넣어라. 내 더는 못 한다."

[참아라. 원래 처음은 다 아픈거다.]

"아니, 흐으응. 이, 이거 절대 신음 아니, 햐앗?!"

[...소리를 참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히려 소리는 참지 않는 게 좋아.]

"하나만 똑디 해라...흐읏. 하아, 하아. 아니, 갑자기 그렇게 속도를 올리면?!"

[아프지 않게 빨리 끝내주지. 꽉 잡아라.]

"야, 씨! 히잇?! 처, 천천히! 너무 많다! 꽈, 꽉 차버린다고?! 니 왤케 잘 하는데?!"

[그야 이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니까. ...넣는다.]

"뭐? 아, 안 돼! 더 이상은, 흐아아, 하아아앙!!"

...

...

...

"이제 끝! 너무 많은 마력을 갑자기 써서 탈진이 온 거예요. 한 시간 누워서 쉬고나면 괜찮을 거예요."

"...허리 빠진 것 같다. 내 좀 눕혀도."

석하랑이 좀비처럼 흐느적거렸다. 나는 하랑을 그대로 안아 평소처럼 빈백에 눕혔다. 하랑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가쁘게 쉬었다.

"니 진짜 너무한 거 아이가.... 어떻게 그 큰 걸 막 쑤시는데...."

"그야 이게 제일 빠른 방법이니까요."

나는 큐브를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당신은 지금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너무 무식하게 정령의 힘을 끌어다 썼어요. 제가 다시 채워넣었으니까 이제는 괜찮을 거예요."

"그래.... 이제 더는 안 들어가...."

나는 앓는 하랑을 뒤로하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번에 왔다간게 무색할 정도로 냉장고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제가 참기름 밖에다 내놓으라고 했죠?"

"...그냥 먹으면 되지, 까탈스럽게시리. 쥬스 꺼내라."

"완전 상전이네. 손님한테."

"이 집 주인 내다, 그지야."

나는 블루베리 그림이 든 우유팩을 하랑에게 전력으로 집어던졌다. 정확히 안면을 노리고 던져진 우유팩은 갑작스레 허공에 생긴 얼음 그물에 떨어졌다.

"고맙다, 흐흐."

하랑이 얼음그물을 해제하고 우유팩을 들어 싱글벙글 웃었다. 나는 혀를 차며 냉장고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캔커피?"

냉장고의 한 칸이 캔커피로 가득했다. 혹시나 싶어 야채실을 열어보니, 그 안에도 캔커피가 한가득이었다. 하랑은 빨대를 우유팩에 꽂아 쪼르르 마셨다.

"내는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도저히 써서 몬 마시겠더라. 그나마 그거는 설탕 있어서 달게 마실 수 있다 아이가? 걍 설탕물이더만."

"왜 딸기우유는 하나도 없죠?"

"내가 뭐하러 그딴 거 사놓는데? 마 닥치고 있는 거나 마셔라."

"...주둥아리 진짜 확."

나는 한숨을 내쉬며 캔커피를 하나 꺼내들었다. 손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감촉에 나는 슬쩍 몸을 움직여 빈백에 쓰러졌다. 큰 빈백에 나와 하랑이 함께 누웠다. 하랑은 얼굴로는 싫은 기색을 내면서도 붙어있는 몸을 떨어뜰이지는 않았다.

"얍."

나는 캔커피를 하랑의 팔에 갖다대었다. 흰 박스티 덕분에 팔이 그대로 드러나 캔커피가 그대로 피부에 닿았다.

하랑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니 뭐하는데? 빙시가?"

"......역시."

팔에 캔커피를 대어도 하랑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본능적으로 작용했음을 확인하고 캔커피의 뚜껑을 땄다.

"...뭐고?"

캔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는 내 마력으로 데워진 캔커피를 한모금 홀짝였다.

"체내 마력이 스스로 공격을 막은 거예요. 피부에 닿은 순간 화상을 입을 걸 알고는, 혈관에 흐르던 마력이 곧바로 작용해 체온을 유지했죠. SS등급 특징이에요. 이제 알몸으로도 에베레스트에서 살 수 있을 걸요?"

"아무튼 여름에 에어컨 없이 살 수 있다, 그 말이제?"

하랑이 반색하며 몸을 내쪽으로 돌렸다. 루살카의 딸인만큼 화염내성, 그러니까 화염 친화율이 0에 가까운 하랑에게는 매 번 여름이 지옥과도 같았을 것이다.

겨울에는 추위에 체력이 회복되지만, 여름에는 더위에 숨만 쉬어도 도트 데미지를 입는 이상체질.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더는 없다.

"그러고보니 이벤트 스킵당했네."

"뭔 소린데 또."

"수영복 이벤트."

"풋!"

하랑이 마시던 우유를 흘렸다. 나는 곧 불을 일으켜 바닥에 흐른 우유를 증발시켰다.

"니, 니 변태가?! 누구한테 그딴 걸 하려고 한 건데?!"

"...? 아, 오해하지 말아요. 바캉스 얘기니까. ...얘봐라?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 예요?"

나는 손을 집게처럼 들어 석하랑의 볼을 쥐고 흔들었다. 자기도 부끄러운 줄 아는지 별다른 말없이 어버버 거리다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던가."

"원래 목적이 그쪽 감상이니까요. 그나저나...."

나는 하랑의 몸을 유심히 훑었다. 박스티로 체형은 그리 드러나지 않지만, 고작 천쪼가리로 내 마력의 투시를 막을 수는 없었다.

히로인 육체미 원탑은 단연 천가을이지만, 석하랑은 슬랜더한 체형이 일품이다. 특히 하체가-

"야. 뭘 보냐."

"그쪽 가슴요."

"미쳤냐?"

"아뇨. 엄마 유전자가 일 안해서 다행이라고요. 그랬으면 당신 여기는 김해 평야가 됐을 거예요."

나는 습관처럼 석하랑의 몸 위에 올라탔다. 석하랑이 빈백에 누워있고, 내가 그 위에 포개어져 서로 마주보는 자세. 나는 고개를 하랑의 언덕 사이에 올렸다. 확실히 원작 5년 전이라 그런지 덜 여물었지만 앞으로 조금만 더 관리하면 원작보다 더 커질 가능성이-

두근, 두근, 두근.

"......석하랑 님?"

"마, 말시키지 마...."

갑작스레 몸이 포개어져 당황한 걸까, 아니면 저를 올려다보는 내 얼굴에 부끄러워진 걸까. 하랑의 심장이 너무나도 크게 두근거린다. 나는 하랑의 명치에 턱을 대고 한숨을 쉬었다.

"...얘 또 이러네. 자꾸 두근대지 말라고 했죠?"

"그러면 갑자기 이러지나 말던가!"

"누가 언제 어디서 이런 기습 공격을 할 지 모르잖아요? 푸흐흐. 아니면 우리 설화공주님은...."

나는 빈백을 짚고 살짝 몸을 띄워 하랑과 눈을 마주쳤다.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하랑의 거친 숨이 내 목을 간질였다.

"아무한테나 반하는 사람이었던 만큼, 부친을 죽인 원수에게도 반하는 쉬운 여자였나요?"

"......."

하랑의 두근거림이 조금씩 멎어들기 시작했다. 하랑의 상기된 볼이 조금씩 혈색을 잃어가고, 지진이 난 것 처럼 흔들리던 동공이 착 가라앉았다.

팍! 하랑이 내 어깨를 잡고 그대로 뒤집었다. 빈백이 한쪽으로 쏠리며 내 몸이 뒤집혔도, 나는 순순히 하랑의 인도의 이끌려 바닥에 누웠다.

자세가 바뀌었다. 하랑은 나를 아래에 깔고 마운트 포지션을 잡았다. 하랑은 한기가 뚝뚝 흘러나올법한 차가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역시 내는 니 예쁘게 못 봐주겠다."

"당연하죠. 잊지마요. 당신 나한테 반하면 안 돼요."

"......."

하랑이 나를 노려봤다.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하랑을 올려다봤다.

서로가 그렇게 말없이 노려보기를 수 분. 나는 슬슬 의아해졌다. 이 때 쯤이면 슬슬 '개소리하네, 미친.'같은 소리를 하며 나를 집어던졌어야 했는데, 아직까지 나는 손목을 붙잡힌 채 하랑에게 구속되어 있다.

'뭐야. 얘 왜 이래. 무서워.'

설마 이대로 얼어버린 건가? 반하지 말라는 내 말이 그렇게 충격적이어서 선 채로 굳어버린 건가? 내가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던 찰나,

와락. 하랑이 내게 그대로 안겼다. 나는 갑작스런 하랑의 행동에 혼란에 빠졌다.

"하, 하랑 씨?"

"니 그거 모르제."

하랑은 웃을 듯 울 듯 한 목소리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내 SS등급 되면서 감정 읽는 거 더 잘하게 됐다 아이가. 어디서 구라를 치는데, 이 망할 가스나야."

"......아!"

내가 등신이다. 나는 재빨리 구속을 피해 몸을 괴인형으로 바꾸-

뚝. 하랑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투명한 액체는 내 눈가를 스치고 그대로 내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왜 자꾸 니는 스스로 죄인이 될라 카는데?"

"......아녜요. 당신 지금 착각하는 거예요. 그거 다 오해-"

"오해는 개뿔. 니 여기 두근거리는 거 니만 모른다."

하랑이 내 심장을 눌렀다. 옷 너머로 전해지는 하랑의 한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하랑의 눈에 비친 내 동공에는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손 떼라."

"먼저 확실하게 대답해라. 안 그러면 내...."

하랑이 눈짓으로 얼음창을 생성했다. 그 창끝은 목젖을 금방이라도 찌를것처럼 날카롭겨 벼려져있었다.

"성주고 나발이로 죽어버릴 거다."

얼음창은 하랑의 목젖을 겨누고 있었다. 나 또한 하랑과 마찬가지로 상대의 마력에서 감정을 어느정도 읽을 수 있었다.

하랑은 진심이었다.

"......꽤 긴 얘기가 될 거다."

얘기할 생각이 없었는데, 얘기하고 말았다.

* * *

"......글나?"

"그런 거죠."

나는 하랑의 등뒤로 손을 뻗어 등을 두드렸다. 다행히 하랑은 얼음창을 거두었지만, 심적으로는 상당히 흔들리고 있었다.

"미안해요. 하지만 그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은유하는 당신 진심으로 걱정해서 그런 생각을 짜낸거니까."

"안다. 그래서 더 짜증나는 거다."

하랑은 몸을 일으킬 기력도 없는지, 내 위에 몸을 겹쳐 그대로 쓰러졌다. 하랑의 무릎이 내 허벅지 사이를 눌렀다.

"둘 다 내를 진심으로 걱정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게, 그냥 어이가 없어서 그런다 지금. 완전 사람 마음 가지고 논 거 아이가."

"...은유하 아가씨가 아니었으면 지금 광검은 무덤에 있었을 거예요. 원래 저는 그냥 광검 깔끔하게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그게 지금 남의 아빠 죽인 사람이 할 소리가? 참 나. 닌 여기서 유하 언니야 편을 들고 자빠졌네."

"안 그러면 네가 은유하를 죽일 지 모르니까."

비록 내 실수로 은유하와의 밀실 거래가 드러나게 됐지만, 석하랑이 은유하와 척을 지는 건 나도 바라지 않았다. 심정적으로는 무릎이라도 꿇고 사과하고 싶었다.

"아, 그카치는 마라. 내가 더 쪽팔린다."

"...아 씨, 인간형이면 당신한테 다 읽히잖아요. 비켜요. 당장 괴인형으로 바꿀 거야."

"시른데? 시이르은데? 꼬우면 니도 그 상태로 SS되던가. 흐흐흐."

할 말이 없었다. 인간형의 출력이 S+가 최대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까먹고 있었다. 루살카 때문에 여러모로 골머리를 썩히던게 화근이었나보다.

"어, 그러면 지금 내가 니 죽일 수 있는 거 아이가?"

"......"

"킥. 긴장하는 거 봐라. 안 죽인다. 유하 언니야도 안 죽이고, 아...쌤한테도 뭐라 안 할 끼다."

"...? 그러면요?"

하랑이 표정을 굳혔다.

"성주. 그 어둠 속에서 지랄하는 놈이 만악의 근원 아이가. 그 놈 때려잡아야지."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그거나 그거나."

하랑이 피식 웃었다. 나도 그나마 마음 한켠이 가벼워졌다. 그런데 이제 은유하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따지고보면 내 실수로 얘한테 들킨-

딱! 석하랑이 내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프지는 않지만 따가웠다.

"......뭐하는 거예요, 지금?"

"왠지 또 삽질하는 거 같아서. 내가 어떻게 알았는 지 궁금하기도 하는 것 같고."

"...그래요. 고작 내 감정을 읽은 것 가지고 어떻게 알아낸 거죠? 광검이 살아있다는 걸?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이해할 수 없어요. 절대로."

"요거 봐봐라. 그라믄."

하랑이 내 목뒤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고 자신은 내 바로 곁에 옆으로 눕고는 스마트워치로 스크린을 띄웠다.

"...히어로 커뮤니티? 이게 왜요?"

"일단 봐."

하랑이 이미 방문했던 사이트를 연결했다. 곧 풍채가 큰 안경 남자가 숨을 거칠게 들이마시며 열변하는 영상이 재생됐다.

[도 교수님, 그러니까 교수님은 이 '가면의 검사'가 죽은 광검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제 이론에 따르면, 화속성을 제외한 나머지 여섯 속성이 전부 광검의 이전 마력 패턴과 99% 일치함을 보이고 있어요! 도플갱어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요! 제 명예를 걸고 확신합니다! 이 분은 광검이에요!]

삑. 하랑이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나는 튀어나오는 욕설을 겨우 삼켰다.

주앙, 주앙. 전신을 검은 색으로 뒤집어 쓴 절벽 위에서 빛의 검을 휘두르며 서해무기들을 요격하고 있었다. 제법 멀리서 촬영한 건지, 촬영자의 흥분된 숨소리가 그대로 영상에 들어있었다.

[와! 저거 광검님 아냐?! 기술 대박 똑같은데?!]

그대로 영상이 노이즈가 생기며 사라졌다. 하지만 검은 화면이 계속 재생되고 있다. 하랑이 영상을 긁어놓은 스크립트였다.

"이거 하나가 아니데이."

[안녕하세요, 텐시TV의 힛카입니다! 뚜쉬 뚜쉬! 이번 편은 모비딕이 출몰한 한반도의 정체 불명의 흑기사에 대해 리뷰를 해볼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 분석상 이 이능력자는 죽었다고 하는 한국의 S급 히어로, 광검이다.......]

"......."

"영상 삭제되기 전에 미리 긁어놨지. 히히. 히야, 니 잘 속네. 좀 떠보고 두근거리게 하니까 바로 속마음 튀어나오네? 야, 말 좀 해봐라."

허탈했다.

"말도 안 돼요. 고작 이런 걸로 들킨다고요?"

"내가 좀 티를 안내기는 했지."

하랑은 내 옆구리를 찌르며 헤실거렸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 응? 해운대에서 저 섬까지 거리 1km도 안되는데 못 느낄 줄 알았나? 응, 응? 히히히."

"부산 내려갔으면 조용히 닥치고 있을 것이지 왜 굳이 나서서 들킨 건지...."

하랑은 검지만 들어 좌우로 흔들고는 혀를 찼다. 얄미워서 확 앞머리를 태워버리고 싶었다.

"내도 처음에는 아닌 줄 알았지. 근데 긴가민가 한 거야. 분명 감은 99% 확신하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올 리가 없다 아이가. 그런데...."

"듀라한 들, 젠장."

"흐흐흐. 죽은 소나무 부대 히어로들도 관악서 부활했다가 죽었는데 혹시나 싶었지. 내가 오늘까지 자료 수집하고 니한테 엿 먹이려고 커뮤니티만 밤새면서 돌아다녔다. 근데 솔직히 뭐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왠지 모르게 니한테 묻고 싶어지더라."

"이걸 감으로 때려맞혔다고요? 미친 거 아냐? 솔직히 말하세요. 분명 어디서 들은 게 있을 거야. 그쵸? 은유하가 알려준건가?"

"...잘도 그러겠다. 내한테 맞아 죽을라고 알려줬겠나? 히야, 근대 SS급 되니까 사는 세계가 다르네. 로또 사면 바로 1등걸리는 거 아이가? 히히. 야. 사람들 니랑 내랑 쌈놀이 붙이고 아주 난리긴 하던데, 아무래도 내가 이긴 것 같네?"

나는 하랑을 그대로 집어들어 빈백에 던졌다. 하랑이 웃음섞인 비명을 지르며 빈백에 파묻히고, 나는 곧장 그 위에 올라타 하랑과 눈을 마주했다. 하랑의 눈에 긴장이 스쳤다.

"......어? 니, 니 뭔데? 갑자기 왤케-"

"부분 괴인화."

나는 하랑의 두 손을 움켜쥔 팔을 가리켰다. 관절 아래부터 손끝까지 괴인형의 팔로 바뀌어있었다. 하랑이 마력을 끌어올려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최대치는 낼 수 없지만, SS 정도야 쉽지."

"......."

하랑이 전의를 상실했다.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손목의 구속을 풀었다. 그리고는 헝클어진 하랑의 머리를 손으로 쓸어줬다.

"까불지 마라."

"......꿀꺽."

하랑이 침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건틀릿으로 하랑의 볼을 찹쌀떡처럼 당겼다가 놓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래서 이왕 들킨 거, 확실하게 하죠. 광검 만날 거예요?"

"......아직은 좀 그런데."

하랑은 내게 잡혔던 볼을 손바닥으로 둥글게 눌렀다.

"막상 만나도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다 알아버렸으니 예전처럼 쌤이라고 부르기도 힘들고."

"...뭐, 얼마든지 기회는 있어요. 원한다면 내게 말해요. 자리를 마련해줄테니."

"하이고, 고~~맙네요."

하랑이 한쪽 입꼬리를 들며 웃었다. 나도 화답의 미소를 보냈다.

"슬슬 점심 시간이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죠."

"그래? 아, 이번에는 내가 산다. 이번에 코어 엄청 벌었거든? 흐흐흐, 내 수중에 얼마가 있는 지 알면 니도 깜짝 놀랄 걸?"

"네네. SS급 되신 기념으로 한 턱 쏘세요. 끝나고 카페 가서도 한 번 더 쏘세요."

"......."

나는 하랑의 옷을 마력으로 갈아입히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바깥 날씨는 어느덧 구름이 걷히고 맑은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아 근데 생각해보니 빡치네. 네가 뭔데 남의 아빠를 유하 언니야한테 팔아넘기는데? 엉? 광검이 물건이가?"

"으, 은유하가 산 거 거든요! 공동정범 이거든요?!"

"니가 꼬셔서 그 순진한 언니야가 홀라당 넘어갔겠지. 일로 와라. 니 오늘 내 손에 죽었다."

"하, 그 여우가 순진? 어이가 없어서. 그리고 학습능력이 없, 끼햐악?! 가, 가슴은?!"

"으흐흐, 니도 내 만졌으니 나도 만져도 되잖아! 우와, 이게 다 마력 주머니란 말이제? 마력 한 번 더럽게 많......아 씨, 더 괘씸하네!"

"그, 그만?! 내 몸은-" [그만 하라고!!]

진심으로 화냈다. 하랑의 두 손이 내 괴인형의 흉갑 앞부분을 손으로 쓸었다.

"쓰읍. 이건 이거대로 꽤...."

괴인형으로 바꾸었는데도 가슴을 주무르려 하더라.

그 순간 만큼은 진짜로 무서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하랑의 약점을 찔렀다.

"히잇?! 거, 거기는?!"

[성감대가 어딘지는 다 알고 있지.]

"이, 이이, 변태가?! 오냐, 어디 한 번 붙어보자! 야! 비겁하게 그러지 말고 아까처럼 손만 바꿔! 네가 이기면 네 원하는 대로 해주지! 뭐든지!"

[오호. 지금 뭐든지 한다고 했죠?!"

엎치락 뒤치락 하는 끝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결국 서로 씩씩거리다가 나가기에는 몰골이 말이 아닌지라, 배달음식을 시켜먹기로 했다.

열받아서 소스를 부어버렸다.

"야아아아ㅇ아ㅏㅏㅏ아아아?!?!"

"흥. 당신 찍먹인 거 알고 부은 거예요."

식사가 끝나고 곧장 2차전에 돌입했다.

역시 불 타입은 물 타입 공격에 이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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