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8화 (118/1,497)

〈 118화 〉1부 6장 (24)

가웨인이 히어로들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사이, 오라클과 등대 또한 격론을 끝냈다.

등대가 괴수를 조종할 줄 안다는 극비 정보를 보여주면서까지 중국 히어로들을 저지하고자 한 당위성을 설명하니, 오라클은 제 예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을 캐치해내어 협정을 이끌어냈다.

SS급 괴수 뉴클리언. 평양에 잠들어있는 괴수가 영면에서 깨지 않도록 청화단에서 한반도 북쪽을 관리하고 최우선적으로 대처하는 대신, 그 땅을 정복하려는 중국 정부-구체적으로는 모택평을 저지시켜 달라는 협정을 맺었다.

그리고 언젠가 있을 멸망의 날, 힘을 합하여 외계에서 올 성주를 쓰러뜨리자는 비밀 동맹을 체결했다.

원탁 입장에서야 나쁜 거래가 아니니 수용할 법도 했지만, 막상 그 거래를 이끌어낸 청화단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리한 협정이었다.

"어딜 밑장빼기 해. 수틀리면 그 괴수 깨워서 다 죽자고 날뛸 거 누가 모를 것 같아?"

오라클은 그 협정의 맹점을 찔렀다. 말 그대로 청화단에게 핵단추를 쥐여주는 셈이니, 오라클은 지배력을 잃어버린 한반도에 최소한의 억제력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그럼 한국에 원탁 한 명을 파견하시는 거로 하죠."

"싫어. 세 명으로 해."

"그럼 우리가 셋 다 지정하겠습니다."

"꺼져. 너네 가웨인 떠맡고 싶냐?"

1과 3 사이에서 수도 없이 서로 으르렁거린 끝에, 둘은 그 중간 지점인 두 명을 파견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렇게 둘의 협정은 끝났고, 그 설명을 들은 가웨인은 한숨을 돌렸다. 차원문의 발생에 중국 히어로들은 평양으로 진격할 명분이 꺾이게 생겼다.

"당장 눈앞의 차원문을 앞에 두고, 한국의 S급들을 몰살시켰던 평양의 괴수를 공격하려 한단 말입니까?!"

"가웨인은 당장 진실을 밝혀라! 원탁은 저 악당들과 무슨 관계냐!"

중국 히어로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본래 중국의 협회나 중앙당 소속이라고 할지라도, '일단은' 자의로 집결한 민병대를 자칭했다.

국가 단위로 내려온다면 몰라도, 개개인이 자기 책임하에 평양으로 내려온다는 건 원탁에서도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아니면 이건 원탁의 뜻이 아니라, 여왕의 기사 가웨인 경의 뜻이라고 보아도 무방한가?!"

"영국은 옛 북한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웨인을 보내서 이렇게 길을 막는 것이야!"

"아닙니다! 여러분의 힘으로는 평양의 괴수를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가웨인은 말을 해놓고도 아차 싶었다. 히어로 중에서도 유독 자존심이 강한 중국의 히어로들을 대놓고 무시한 처사에 가웨인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해입니다! 저는 그런 의도가-"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겁쟁이 원탁은 저리 꺼져라! 인민의 힘을 보여주마!"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수백 명의 히어로들이 강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약 1km 정도 되는 거리는 A급 히어로들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흑?!"

가웨인은 갈라틴을 뽑아 들었지만 쉽사리 그들을 공격하지 못했다. 원탁이든 영국 출신의 히어로든, 가웨인에게는 히어로들을 제지할 당위성이 하나도 없었다.

"시끄럽네. 쫑알쫑알."

가웨인의 옆에 선 운디네가 손을 뻗었다. 운디네의 손에서 퍼진 얼음 결정은 강에 닿자마자 강 전체를 얼려버렸다.

"......!"

히어로들이 전부 발걸음을 멈췄다. 강을 헤엄치던 히어로들은 전부 그대로 강에서 얼어버렸고, 경공으로 강 위를 뛰던 히어로들은 하늘을 가득 메운 괴수 군단에 발이 묶였다.

"운디네! 이게 무슨-"

"말 안 들으면 힘으로 제압해야지. 아가들아, 정신 차렸으면 당장 차원문이나 막으러 가렴."

운디네가 손목을 두드렸다. 중국 히어로들이 우물쭈물하며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사이에 숨어있던 린레이는 현상을 빠르게 보고했다.

[퇴(退).]

봉효에게서 온 연락은 여전히 짧았지만, 그 의미는 명백했다. 하지만 한 가지 명백하게 언급해줘야 할 것이 있어, 린레이는 다시 봉효에게 의견을 구했다.

[운장 님은 어찌할까요?]

[폐(廢).]

[예? 무슨 말씀입니까?]

[......버리라고, 이 등신아.]

린레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책임이 불거졌을 때 토사구팽당하느니, 상사의 말을 못 알아먹는 등신이 되는 편이 나았다. 린레이가 빠르게 주변 동창 히어로들에게 속삭였다.

"제독께서 퇴각을 명하셨다. 운장 님은 버린다."

"예? ...예."

의문을 가지지만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된다. 동창 히어로들은 빠르게 다시 흩어져 히어로들을 선동했다.

"평양은 언제든지 공략할 수 있다! 하지만 차원문은 지금 지금이 아니면 막을 수 없다!"

"시안의 천만 주민을 위해서라도 당장 달려가야 한다! 명심해라, 저 여자는 운장이 아니다! 운장 님이 저리 쉬이 쓰러질 리가 없다!"

히어로들 대다수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차원문을 막으러 가야 한다는 원칙은 그들이 발을 돌리게 했다.

린레이는 발걸음을 돌리기 전, 가웨인과 운디네를 쏘아보며 말을 남겼다.

"오늘의 굴욕은 잊지 않겠다. 특히 설녀.... 크렘린에 반드시 이 문제를 언급하겠다."

"그러렴. 우리 작은 아버지는 좋아하시겠구나."

"운디네?! 아, 아닙니다! 이건 절대로 전쟁을 하자는 뜻이 아니에요!"

가웨인이 열심히 중재하지만 이미 히어로들은 자리를 떠났다. 운디네가 손을 쥐었다 펴 얼어붙은 강을 다시 원상복구 하고, 얼어붙은 히어로들은 그대로 강에서 빠져나와 선양으로 후퇴했다.

중국 히어로들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운디네가 보드카의 마개를 따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제 손 놓지 않으련?"

"네?"

[더 가져가도 될텐데?]

화륵. 운디네의 옆에서 검은 갑주의 괴인이 나타났다. 불과 3m 옆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에 가웨인은 경악했지만, 그 이상으로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농도에 넋을 잃었다.

괴인, 피닉스의 손이 운디네의 어깨에 올려져 있었다. 운디네는 피닉스에게서 얻은 마력으로 강을 얼렸다.

"됐단다. 괜히 나한테 분령 심어놓을 생각 말렴. 그건 진짜 기분 더러우니까."

[쳇. 아깝군.]

피닉스가 운디네에게서 손을 뗐다. 운디네는 곧장 손으로 어깨 위를 털어내고는 가웨인에게 몸을 돌렸다.

"대장. 고생했단다. 한 건 없지만."

"그, 옆에 있는 이분, 아니 이 자는 누구인가요?"

운디네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내 남편 죽인 살인범?"

"......네?"

가웨인이 놀라자 운디네가 퍼뜩 말을 바꾸었다.

"농담. 조크. 세상에서 둘도 없는 쓰레기 같은 악당이야. 엮이기도 싫지만 엮일 수밖에 없는 오랜 악연이지."

"그건 그거대로 문제인데."

분홍 머리의 오라클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등대 또한 그 뒤를 따라왔다. 둘의 표정은 어딘가 썩 만족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어쩔거야, 이제. 원탁이 사실상 빌런이랑 손을 잡게 되었다고. 나랑 얼음땡이가 이쪽은 어떻게 할 수 있어도, 중국은 차원문 진압하면 난리 칠 게 뻔해."

"그러면 운장이.... 아차."

가웨인은 이마를 쳤다. 인질로 잡힌 운장을 버렸다는 시점에서 눈치챘어야 했다.

"큰일 났군요. 차원문이 진압되는 즉시 모택평은 전쟁을 일으키려고 할 겁니다."

"하라고 하렴. 안 그래도 자꾸 결혼하자고 해서 짜증 났는데 이참에 다 쓸어버리게. 얘기했잖니? 작은아버지도 좋아하실 거라니까?"

"전쟁은 안 됩니다! 인류끼리 싸워서는 멸망의 날을 대비할 수 없어요! 진정해주세요!"

과격한 운디네의 발언에 가웨인이 운디네를 진정시키는 사이, 오라클은 등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피닉스를 주시했다.

'저거네. 내 꿈에 자꾸 나타나는 새가.'

예언에 나오지 않는 자. 하지만 어렴풋이 몇몇 장면들이 떠오른다. 머리에 쓴 투구는 누가 봐도 그 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를 불태우는 푸른 불꽃의 새를.

'그럼 그 여자애는 뭐지?'

오라클은 얼굴을 붉혔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엉큼한 꿈들을 애써 잊어버렸다. 귀를 쫑긋 세워 저쪽의 대화를 엿들으니, 청화단이라 칭한 이들도 전쟁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어쩌죠? 한 번 저질렀으니 두 번 세 번은 쉬울 것 아니겠습니까."

"막아야지. 그래도 한국이랑은 전쟁 안 일으킬 거야. 우리랑 전쟁을 일으키도록 해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차원문의 소요가 더 커지는 걸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미친 소리 하네. 그러다 사람 다 죽이ㄹ...."

오라클은 숨을 헛들이켰다. 청화단의 시선, 특히 괴인의 시선이 제게 닿았다. 오라클은 그제야 자신이 속마음을 저도 모르게 내뱉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머,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네."

가면의 여인, 팬텀이 상체를 숙여 오라클과 시선을 마주했다. 흘러내린 코트 사이로 드러난 존재감에 오라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너 방금 우리 집 애 보고 얘기한 거야?"

"애?"

오라클이 눈으로 괴인을 가리켰다. 팬텀은 무얼 묻냐는 듯 입술을 삐죽였다.

"당연하지. 우리 중에 미친 소리 할만한 애는 쟤밖에 없거든."

"...미친 소리인 거 인정하는 거잖아. 그러면. 차원문 열리면 사람들 죽어 나가는 게 다반사인데, 고작 전쟁 막겠다고 소요를 더 키운다고?"

오라클의 말에 팬텀이 허리를 바로 세웠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그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남의 거에 눈독 들이지 마."

팬텀이 주먹을 쥐어 오라클의 이마를 콩 때렸다. 오라클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건 등대나 괴인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그거 때문에 오라클을 때린 거야?"

"그거 때문이라니. ...오라클? 얘가 오라클이야? 원탁의 예언가?"

"사람을 뭐로 보고.... 야! 너희들 다 내 덕분에 산줄 알아! 내가 괴수들 출현 예언해준 덕분에 너희들 다 살아남은 거잖아!"

쾅! 팬텀이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때렸다. 오라클은 억울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왜 때려!"

"괘씸해서. 누가 제대로 일 안 해서 죽어버린 미래 할리우드 대스타의 복수야."

"개소리. 내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 대주주거든? 그런 배우 있었으면 내가 진작에 꼬셔서 탑스타 만들었어."

"......뭐래. 기상청만도 못한 예언가가."

오라클과 팬텀이 티격태격하는 걸 뒤로하고, 다른 넷이 한자리에 모였다.

원탁의 가웨인, 운디네. 청화단의 등대, 피닉스. 가웨인이 눈앞에 있는 만큼 등대가 나서서 대화를 이끌었다.

"협정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쪽이야말로. 어디까지나 예언의 괴물을 쓰러뜨리기 위한 동맹입니다. 원탁은 결코 빌런의 악행을 좌시하지 않습니다. 당장 이번만 하더라고-"

"세계 평화를 위해 움직이는 게 원탁이죠. 저희가 악행을 저질렀나요? 평양에서 터질 핵폭탄이 깨기 전에 막은 건데?"

가웨인은 반론을 하지 못했다. 가증스럽게도 청화단은 중국 히어로들을 인질로만 삼았을 뿐, 그 누구 하나 죽이지는 않았다.

"약 한 명, 마음이 죽은 아이는 있는 것 같지만."

운디네가 피닉스를 보며 비꼬았다. 가웨인과 등대의 시선이 바로 옆에서 적토의 고삐를 잡고 온 여인에게 닿았다.

"괜찮습니까, 운장?"

가웨인은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으나 운장은 묵묵부답이었다. 운장은 제 언월도를 들고는 피닉스에게 겨눴다.

"......!"

등대가 놀라 뒷걸음질 치고, 팬텀이 빠르게 촉수를 튕기며 날아왔다. 명백한 도발에 담담한 건 운디네와 피닉스뿐이었다. 피닉스를 노려보던 운장이 굳게 다문 입술을 뗐다.

"승자가 패자의 목을 취하는 건 당연지사."

운장이 창을 꺾었다. 창대의 끝은 피닉스의 손에 닿았다.

"베세요. 저는 이제 살 가치가 없는 자입니다."

"진정하세요, 운장! 살 가치가 없다니요?"

피닉스는 창대를 쥐었다. 언월도의 날이 운장의 목 끝에 닿았다. 운장은 담담히 눈을 감았다.

[승패병가지상사.]

"......!"

운장이 놀라 눈을 떴다. 일격에 저를 쓰러뜨린 자가 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피닉스의 손에서 타오른 불꽃이 언월도를 삼키고, 운장의 언월도는 곧장 쇳물이 되어 땅에 떨어졌다.

[나의 무술 스승이 내가 패배했을 때 하던 말이다. 한 번 졌다고 포기하면 영원히 이길 수 없으니.]

"아."

운장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팬텀이 촉수 끝으로 슬쩍 피닉스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너 혹시 쟤도 설마-"

"사람 다 됐네. 되지도 않는 거짓말도 하고 말이야. 안 그러니?"

운디네가 못 볼걸 봤다는 얼굴로 비꼬자, 피닉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팬텀의 시선이 운디네에게 돌아가자, 운디네는 곧장 왼손 약지만 들어 올렸다.

"안심하렴, 아가야. 나는 유부녀란다."

"너야말로 사기 치지 마. 너 미혼이잖아."

정보의 상이(相異)와 소통의 부재 속에 빚어진 혼란에 가웨인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누가 누구와 무슨 관계인지,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머리가 아파졌다.

"그만!"

쾅! 가웨인이 갈라틴을 땅에 꽂으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잡담은 여기까지! 이제 저희도 시안으로 이동합시다. 시간을 지체했습니다. 혹시나 시간을 끌면 서울의 경우처럼 마룡이 튀어나올 수 있어요."

"저게 더 마룡 같은 데."

오라클은 강너머에서 히어로들을 쫓아내는 흑염룡을 가리켰다. 또 대화가 산으로 흐를 것 같은 낌새에 등대가 재빨리 선수를 쳤다.

"나머지는 원탁에게 맡기는 거로-"

[샤오린.]

피닉스가 샤오린을 불렀다. 목소리조차 없는 그 평탄한 어조가 꼭 다정하고 자상하다는 생각에 샤오린은 넋을 놓았다.

[언제든지 기회를 주마. 너는 아직 무기를 놓을 때가 아니다.]

피닉스가 들어 올린 손에 둥지에서 날아오른 미니 피닉스가 날개를 접으며 내려왔다. 미니 피닉스는 곧 불꽃으로 변해 운장의 것과 비슷한 언월도로 변했다.

[가서 차원문을 막아라. 네가 스스로 무기를 놓지 않는 이상....]

피닉스가 언월도를 운장의 손에 움켜쥐어주고 서쪽을 가리켰다.

[나는 언제든 너의 도전을 받아주겠다. 정진하라, 애송이.]

"......흥. 이제 고작 한 번 진 거예요."

운장이 소매로 눈물을 닦고 언월도를 쥐었다. 적토의 위에 올라탄 운장은 고삐를 움켜쥐고 다짐했다.

"앞으로 수십, 수백 번을 도전할지도 몰라요. 괜찮겠어요?"

[물론. 만약 차원문을 닫는 데 실패한다면....]

피닉스가 샤오린에게 다가가 머리를 잡아당기며 귀에 속삭였다.

[입에서 죽여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단련시켜 주마.]

"......이럇!"

운장은 황급히 고삐를 당겼다. 적토는 재빨리 발을 움직여 서쪽으로 사라졌다. 그 모양새가 꼭 도망을 치는 것 같아 이능력자들은 잠시 정적에 빠졌다.

"......됐어. 나 이제 갈래."

운디네가 남은 보드카를 비우고 손을 흔들었다. 가웨인이 놀라 운디네를 불러세웠다.

"이, 이러고 떠나시면 어쩌자구요?"

"몰라. 눈꼴 시려서 못 봐주겠어. 아주 신났네. 누구는 남편 잃고 독수공방하게 생겼는데."

[...잠깐 이리로.]

피닉스가 운디네를 데리고 저 멀리 사라졌다.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눈 운디네는 울긋불긋 한 얼굴로 피닉스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이 악랄한 짐승아!"

[...내가 낸 아이디어는 아니다. 난 그냥 죽이려고 했어.]

"그게 더 나빠! ...어, 잠깐만. 그러면 혹시-"

[...본인 말로는 그렇다더군.]

멀리 있어서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운디네의 표정이 놀랐다가, 화를 냈다가, 울 것 같다가, 마지막에는 소녀처럼 발그레해진 것을 보며 내용을 조금이나마 짐작게 했다.

"운디네가 저렇게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었나요?"

"난 쟤가 저렇게 쩔쩔매는 것도 처음 보는데."

가웨인이 의아해하고, 팬텀은 심통이 났다. 둘의 분위기는 보이는 대로 불과 얼음처럼 상극이었지만, 팬텀이 끼어들 수 없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공감대가 있었다.

"등대라고 했지? 저 둥지의 괴수들, 정말 사람 습격 안 해? 막 새 똥 뿌리거나 그러지는 않지?"

"네. 괴수들만 잡아먹도록 철저히 명령을 내려뒀습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아마도."

둥지에는 여전히 미니 피닉스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저 둥지가 압록강 변에 박혀있는 이상, 육로를 통해 평양으로 넘어오는 이들은 모두 미니 피닉스에게 쫓겨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저거 뿌리 뽑아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전 세계에 광고하게 되겠죠. 평양 괴수의 위험성을. 저희가 안전하게 제거하기 전까지는 참으십시오. 원탁에서도 감당하지 못할 테니."

오라클은 입술을 깨물었다. 등대의 말이 시건방지기 짝이 없었지만, 맞는 말이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두고 봐. 오늘의 굴욕은 내가 꼭 갚는다."

"어련하시겠습니까."

등대는 슬쩍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 6시 30분에 이르렀다. 땅바닥을 발로 차대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팬텀의 옆에 피닉스가 다가왔다.

"......그 아가씨는?"

[아줌마다. 남편 보러 갔다.]

"어? 진짜 유부녀야? 너랑 무슨 관계 있는 거 아니고?"

[돌아가면 얘기해주마. 나도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니.]

팬텀이 반색하며 고개를 돌렸다. 시무룩하게 쳐져 있던 촉수가 다시 번들거리며 생기를 되찾았다. 피닉스는 팬텀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두 원탁에게 고개를 돌렸다.

[잊지 마라. 이 땅에 발을 들이는 순간 어떻게 될 지.]

"그쪽이야말로 조심해. 남의 나라 와서 깽판이라도 치는 순간, 대가리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테니까."

"......성주에게 대항하는 비밀 동맹. 거기까지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대가 만약 악행을 저지른다면."

가웨인이 땅에 꽂은 갈라틴을 뽑아 들었다.

"제 검이 당신을 베겠습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대하지. 이쪽도 조만간 영국 갈 것 같으니.]

피닉스는 팬텀을 안고 그대로 뛰어올랐다. 어느새 강 너머에서 히어로들을 요격하던 흑염룡은 입에 코어를 한가득 물고 공중에서 피닉스를 태웠다.

"......약속은 지키실 거라 믿습니다. 원탁."

등대가 제 위에 날아온 미니 피닉스의 발목을 잡았다. 곧 미니 피닉스는 하늘로 힘껏 날아올라 등대를 흑염룡의 등에 내려놓았다.

□□□□□□!!

흑염룡이 포효를 내지르며 남쪽으로 날개를 힘차게 펼쳤다. 승전을 알리는 포효에 오라클과 가웨인은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눈 뜨고 당했네."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던 걸까요?"

"모르지. 그거야. 하지만 일단 그거 하나는 확실하잖아. 쟤들도 세계 멸망은 원하지 않는다는 거."

오라클이 둥지를 가리켰다. 저 멀리서 돌아오는 미니 피닉스들은 제 부리에 괴수의 사체를 입에 물고 둥지로 귀환하고 있었다.

"거기에 저거 그냥 저렇게 놔두고 갈 정도로 우리를 믿고 있는-"

[실례.]

피닉스가 갑자기 나타나 둥지에 뛰어들었다. 아주 작은 크기의 무언가를 챙긴 피닉스는 다시 제 날개를 펼쳐 빠르게 다시 사라졌다.

"......거겠지?"

"...그래도 저는 불안합니다. 저자를 억제할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말이야."

오라클이 스크린을 띄워 가웨인에게 들이밀었다. 질풍객을 통해 연결된 부산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누나, 우리 팀 13번째로 들이는 건 어때?"

스크린에는 저가 얼린 바다를 녹이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는 설화공주가 비쳤다.

푸득. 하늘을 날던 미니 피닉스가 실수로 괴수의 사체를 오라클의 머리에 떨어뜨렸다. 오라클은 제 머리에 묻은 괴수의 내장을 집어 땅에 내팽개쳤다.

"야. 역시 저거 뿌리 뽑아놓고 가자. 아니다, 좌표 찍을까? 여기다가 토마호크 하나 박아버리게."

"진정하세요, 오라클!"

예언은 이루어졌다.

<단둥 사이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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