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111화 (111/1,497)

〈 111화 〉1부 6장 (17)

<4시 47분, 청화단 아지트.>

해산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재소집이라 뚱할 만도 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간부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선양. 심양이라고도 불리는 만주의 대도시이자 중국의 히어로 협회 지부가 자리 잡고 있는 곳. 여러 가지 지리적 의미를 가지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평양과 가장 가까운 대도시'라는 게 의미가 컸다.

"괴수관리대책국의 국장, 모택평은 전쟁광이에요. 주석마저 제 입맛대로 움직이는 사실상 중국의 일인자죠."

내 설명에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모를 고급정보가-내 미래 지식이라는 변명 하에-우후죽순으로 흘러나왔다.

"운장, 샤오린은 모택평의 사생아에요. 본래 낳을 생각이 없던 딸이지만 샤오린의 생모는 샤오린을 몰래 낳아 정적에게 팔아넘기려 했고, 모택평은 이를 알게 되자 곧장 생모를 죽이고 샤오린을 딸로 맞아들였죠. 대외적으로는 샤오린이 제 딸이라는 걸 숨기지는 못했지만, 출중한 이능력자라는 건 숨겼어요. 당의 견제를 받을 수 있으니."

"그게 <운장>이군."

부정(父情)인지, 아니면 좋은 인재를 얻었다는 욕심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최후는 샤오린과의 독대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플레이어인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의 꿈은 전 세계를 중화로 통일하는 것. 고대에 태어났으면 아마 난세의 간웅으로 이름을 떨쳤을 겁니다."

"그런 남자가 평양 공략을 선언했다.... 북한을 먹을 생각이군."

하늘성의 말에 나는 동의를 표했다.

"협회에서도 암묵적으로 인정할 거예요. 평양을 공략하는 나라가 옛 북한 땅의 주인이 되리라고. 무슨 명분으로 막겠어요. 위험하다? 운장이 선봉에 있는데?"

"한국에서도 실패했는데 무슨 자신감으로?"

"인해전술이죠. 히어로 수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선양에 투입되는 히어로의 수만 현재 한국 협회에 등록된 수의 몇 배에 이른다. 서울도 그만큼의 이능력자가 각성했지만, 선양의 히어로들은 전부 괴수들과의 전투에서 구르고 구른 정예 중의 정예병이다.

"성공할 거예요. 99%. 문제는 그 1%의 가능성이 만에 하나라도 발생한다면, 4천 명 히어로는 전멸당할 수 있어요. 운장도."

평양 사태의 여파를 그대로 체험한 이들인 만큼, 뉴클리언이 얼마나 흉포한 괴수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비록 평양에 투입된 S급들이 광검 허윤환의 폭주로 죽었다고는 하나, 그들 중 최강이었던 화권 김철수는 분명 뉴클리언에게 살해당했다.

언제나처럼 등대가 근심 가득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만약에 평양 괴수가 깨어나면 어떻게 됩니까?"

"몇 년 만에 깨어나는 거니까 먹이를 찾겠죠? 평양 인근의 어지간한 먹이는 다 먹었으니, 가장 가까운 먹이를 찾아 내려오겠죠."

"젠장. 서울이군."

잠시 모두가 침묵에 빠졌다. 팬텀이 내게 물었다.

"너 혼자서 못 잡아?"

"잡기야 잡겠지만, 전투의 여파가 어디까지 커질지는 장담 못 해요. 최소한 평양 사태보다 더 심각해진다는 것만 알아두세요."

"그럼 이대로 1%의 가능성이 안 일어나기를 빌어야 한다는 거냐?"

그 누구 하나 쉽게 의견을 꺼내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바를 그대로 읊었다.

"그냥 본체를 꺼내서 괴수고 히어로고 싹 다 죽여버릴까요?"

간부들 모두가 흠칫거렸다. 역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이미 전 중국 때문에 서해에서 격추된 괴수죠. 그게 바다를 흘러가서 평양 쪽으로 나타났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어요. 여차하면 제가 평양의 괴수를 잡고 그 자리를 꿰찼다는 식으로 해도 될 거예요."

"......."

간부들이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 다들 히어로를 죽이는 게 그다지 내키지 않아 보였다. 나는 곧장 내가 낸 의견에 사족을 달았다.

"...어디까지나 이런 마지막 수단도 있다는 겁니다. 저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이건 진짜로 마지노선이니까. 그러니 좋은 아이디어를 좀 내줘요."

"...일단 조건부터 확실하게 하지."

하늘성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단장이 지금 제일 걱정하는 건 역시 평양 괴수가 깨어나는 건가?"

"네."

하늘성이 질문하고 내가 답한다. 그걸 등대가 빠르게 정리를 하고, 궁성이 타이핑으로 스크린을 띄웠다.

"그럼 두 번째, 중국 히어로들을 꼭 죽여야 하는가?"

"그건 아녜요. 안 죽이고 쫓아내기만 해도 좋죠."

나라는 다르지만, 그들은 악당이 아니라 정말로 평양의 위협을 제거하고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나서는 정의의 용사들이다. 굳이 죽일 이유는 없었다.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자, 모택평이 중국 내 악의 축이다.

"다만 방해가 되면 죽입니다. 괴수를 깨우거나 하려는 자는 곧장 죽일 거예요. ...운장이라도."

"각오는 알겠네. 그럼 마지막. 만약 청화단 전체를 데리고 싸워야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평양 북쪽으로 전원을 데려갈 수 있나?"

"청화단 전체요? 그건 좀 애매한데. 간부들만? 아니면 일반 단원들도 전부?"

하늘성이 등대에게 시선을 돌렸다. 공이 등대에게로 넘어갔다.

"간부진들로만 한정하겠습니다. 푸른 깃털을 포함해서."

"...그럼 한 20명 정도네요. 네, 가능해요. 방법 두 가지 정도가 있어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부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유대감이 쌓이기라도 한 걸까 싶어 순간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팬텀이 지도, 평양의 북쪽을 가리켰다.

"그러면 싸움터를 이쪽으로 하는 건 어때? 선양에서 육로로 내려올 거잖아. 그럼 굳이 평양에서 싸울 필요 없이, 평양보다 위에서 싸우면 되지 않을까?"

"4천 명이라고 해도 죽어라 달리면 최소 한 시간 내로 다 도착할걸? 넉넉잡아 두 시간."

아키택트가 지도의 거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신서울의 히어로들이 부산으로 내려가듯, 선양의 중국 히어로들도 빠르게 남하를 시작할 것이다. 한국에서 모비딕으로 인한 혼란을 가라앉히기 전에 승부를 보려고 할 터.

등대가 턱을 괴던 손을 풀고 중국 히어로들이 움직일 동선을 그렸다.

"육로를 따라 움직일 겁니다. 있는 도로를 두고 굳이 산을 넘으려 들지는 않겠죠."

"그럼 어디로 가냐?"

"신의주. 아마 그곳일 걸세,"

과거,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가 있는 곳. 압록강이 흐르는 한반도의 서북단. 하늘성은 그곳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면 되겠지. 단장, 여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리겠나?"

"전력으로 5분이면 왕복 가능하긴 한데.... 잠시만, 잠시만요."

내가 손뼉을 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얘기하던 간부들의 이목이 내게로 돌아왔다.

"뭔가 갑자기 중간이 크게 생략되지 않았나요? 왜 다 같이 싸운다는 전제하에 말하는 거죠? 어디까지나 가정이잖아요, 가정."

"어차피 싸울 거잖아. 그럼 우리도 싸워야지."

덕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른 간부들도 은근히 그에 동조하는 추세였다. 유이신 만이 어색하게 눈을 깜빡였다. 덕배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그 1% 걱정돼서 4천 명 다 몰살시키려는 학살자를 막으려면 당연히 우리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냐. 너 진짜로 그래 봐. 또 후폭풍 감당 못 해서 혼자 끙끙대다가 사고치고 다닐걸? 나는 그런 미래 감당 못 한다."

덕배의 말이 끝나자, 등대가 곧장 말을 이었다.

"청화단의 인간 전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저희에겐 괴수가 있지 않습니까? 단장님께서 대전에서 구해오신 큐브로 괴수를 만들고,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다행히 중국은 운장 빼고 S급은 없으니까요."

"...아, 그래요?"

그건 몰랐다. 당장 한국의 일만 신경 쓰느라 해외의 일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고, 원작에서 다루지 않은 과거의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천가을을 괴인으로 부활시키고 광검을 죽이면서 원작은 이제 가급적 신경 안 쓰기로 했는데, 원작과 다른 정보로 인해 실수가 하나 튀어나왔다.

나중에 외국의 일들도 파악하기로 하고, 당장은 내가 모르는 부분을 파악해야 했다.

"......혹시 지금 중국 히어로들 전력 어느 정도인지 파악되나요?"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 4천여 명이 선양 지부에 등록된 히어로들이라고 가정한다면...."

"A급 20에 B급 120. 나머지는 다 C급이나 D급이다."

"미친 새끼들. 겨우 그걸로 평양 공략을 한다고?"

앗차. 말이 헛나왔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

"......단장이 욕하는 건 의외군."

"저도 욕할 때는 하거든요?"

단지 단장으로서, 피닉스로서 품위를 지킬 뿐이다. 나는 다시 헛기침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좋아요. 그 정도 전력이면 그다지 어렵진 않네요. 저 혼자 금방-"

"단장."

팬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팬텀이, 천가을이 나를 '단장'이라고 부르는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리도 싸울 수 있어. 왜 또 혼자 싸우려고 그래?"

"맞습니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지금까지 서울의 잔존 괴수들을 사냥해 온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저희의 전력은 시청사의 뱀을 공략한 것으로 입증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운장만 떼고 생각해봐요. 나랑 운장이 1:1로 싸운다고 하고. 그러면 여러분은 고작 스무 명도 되지 않는 수로 4천을 상대해야 해요."

"대신 죽었다가 부활할 수 있지."

하늘성이 괴인들을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나 아키택트같은 인간은 불가능하지만, 단장이 괴인들을 부활시켜주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그래. 코어만 잘 지키면 네가 부활시킬 수 있잖아. 그리고 여기 전력 잘 생각해봐라. 팬텀 준 S급이지? 나머지 다 A급에 B급이야. 저 돌덩어리 C급 빼고."

아키택트가 삿대질을 하며 실실 웃었다. 덕배가 불편한 얼굴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령석 내놔. 나도 화염 거인 돼서 A급으로 날뛰어줄 테니."

"......아니, 당신들 그러다 잘못해서 코어라도 망가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야. 너, 착각하지마."

팬텀이 나를 쏘아붙였다. 가면 사이의 눈에 살짝 짜증이 서려 있었다.

"네가 암만 우리보다 강하더라도 너 죽으면 우리 다 죽어. 괴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늘성이나 아키택트도 죽게 될 거야."

"팬텀이 죽으면 청송이 다시 살아날 테니, 서울 6만 시민들도 죽은 목숨이 될 테지."

"그러니까 여기서 제일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단장님입니다. 저희가 아니라."

반박하고 싶은데 반박할 수 없다. 결연한 의지를 보이는 괴인들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몸이 근질근질해요?"

"어머. 착각도 유분수네. 우리가 싸우고 싶어서 지금 싸우러 가니?"

"...중국 히어로 4천 명 목숨 구하러 가는 거죠."

"그리고 말이야, 이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덕배가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서울 수복 작전을 방해했던 것처럼, 똑같이 저지르면 되는 거 아니냐?"

말문이 막혔다. 나는 고개를 뒤로 꺾으며 두 손을 들었다.

"...등대."

"네."

"제가 운장을 마크할 테니, 전장과 전술을 기획하세요."

나는 등대의 앞에 불꽃을 피웠다. 불꽃은 글씨가 되고, 여러 개의 문구가 모여 간단한 정리표가 되었다. 등대가 선글라스를 치켜세우며 물었다.

"단장님, 이건?"

"현재 여기 있는 청화단 간부진의 전력을 간단히 정리한 거예요. 다른 것 다 집어치우고 개인의 전투력만 판정한 겁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그 준 S나 준 A등급은 옆에 + 붙여놨으니, 유념하세요."

간부들이 등대의 옆으로 모여 리스트를 확인했다. 나도 잘못 측정한 게 있을까 싶어 다시 한번 더 확인했다.

<청화단>

피닉스 - 인간형 : S+

피닉스 - 괴인형 : SS+

조덕배 : C (화염 거인 A)

등대 김지화 : B

팬텀 천가을 : A+

하늘성 류천성 : A+

아키택트 제임스 리 : A

궁성 유이신 : A

"...광검은 지금 은유하를 따라 부산으로 갔으니 논외. 나머지 부족한 전력은 헬하운드나 푸른 깃털로 채우면 될 거예요."

간부들이 잠시 말이 없었다. 등대는 펜을 꺼내 무언가를 빠르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저기...."

유이신이 손을 조심스레 들었다. 나는 말해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푸른 깃털에는 전 A급, 철표도 있습니다. 뭣보다 A급으로는 대장님도-"

"잠시만."

팬텀이 손을 들어 유이신을 제지했다.

"설마 그 남자를 부르자는 건 아니지? 마포대교를 지킬 사람은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 데려가시게. 전력으로서 충분하다는 건 이미 입증되었잖는가."

하늘성이 팬텀의 의견에 반대하고, 아키택트가 맞장구쳤다.

"그래! 푸른 깃털 구성원들이 다 가는데, 대장만 덩그러니 서울에 남아있어봐. 기분이 어떻겠어?"

"...인간 분들은 지금 대장이 서울을 떠나기를 바라시는 것 같습니다?"

유이신의 지적에 인간 간부들이 헛기침한다. 나는 그 묘한 분위기를 금방 알아채고 씩 웃었다.

"유이신."

"녜, 네?!"

"당장 마포대교로 가서 그 남자를 불러와요."

"......네!"

유이신이 아찔한 얼굴로 문을 나섰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가리켰다.

"지금 시각 4시 57분. 정확히 5시 5분에 옥상에 모여서 출발합니다."

간부들이 모두 일어섰다.

"자, 그러면 모두 준비하세요. 1%의 가능성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디 다 같이 한 번 막아봅시다."

* * *

<5시 1분, 마포대교.>

"대장!"

유이신은 가쁜 마력을 몰아쉬며 다리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무슨 일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인 남자가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물었다. 남자는 자살 방지 문구가 적힌 난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유이신이 침을 꿀꺽 삼키며 겨우 해야 할 말을 토해냈다.

"신께서 찾으십니다."

"...!"

남자의 눈빛에 생기가 돌았다. 곧 난간에서 도로로 뛰어내린 남자는 세로로 찢어진 눈을 빛내며 유이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나를 찾으시는 연유는?"

"...평양 너머 북쪽에서 남하하는 중국 히어로들을 저지하신다고 하십니다. 괴인들은 모두 총출동-"

"괴인이 아니지. 우리는 신의 사도(使徒)임을 명심하라."

"...네."

이 남자는 이게 문제다. 괴인이 되고 난 이후 평소에는 본래의 성격대로 지내다가, 유독 '신'으로 떠받드는 피닉스와 엮이면 이렇게 폭주하기 십상이었다.

남자는 왼손의 검은 장갑을 벗었다. 장갑 아래 드러난 왼손은 흰 붕대가 감겨있었다.

"드디어 이 왼손의 봉인을 풀 때가 되었나."

"...제발 거기까지는 좀 안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그건 무리입니다."

"...? 신께서 내리신 힘이 여기 있는데, 어찌?"

남자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반문했다. 유이신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흑염룡 곽용우. A. <- (New!)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