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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06화 (106/1,497)

〈 106화 〉1부 6장 (12)

애애애앵-----!

복도에 붉은 경고등이 반짝인다. 괴수 경보보다 더 거센 사이렌이 객실 전체에 울려 퍼진다.

- 현재, 이 배는 부산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동요치 마시고....

콰앙!

선체가 크게 흔들렸다. 선장의 방송이 잠시 멈추고,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복도를 짚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제가 어떻게 알아요!"

"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괴수가 덮친 건가?!"

히카리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마를 짚은 머리에 질척한 감각이 느껴졌다.

"......으."

붉은 피가 손을 타고 흘렀다. 모비딕의 첫 공격에서 벽에 부딪혔던 순간, 이마를 크게 찧었던 모양이다. 안 그래도 빈혈기가 있는 와중에, 상처에서 흐른 피로 더 정신이 혼미해졌다.

"안 돼...."

그러나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 해킹한 선체의 데이터는 후미가 크게 파손되었지만, 아직 항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부산까지의 거리는 앞으로 20km가량 남았다. 모비딕의 비정상적인 속도와 브레스에 따라잡히기는 했지만, 다행히 두 S급 히어로가 인근 상공에 도착하기는 했다.

설화공주 석하랑, 그리고 제 오빠인 질풍객 히메지 하야테. 광검의 제자와 원탁의 일원이라면 능히 모비딕을 대처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지금 둘이서 뭐하는 거야...!"

위성 영상에 찍힌 둘은 허공에서 언쟁을 벌이며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 * *

"소용없다니까!"

"시끄러워!"

질풍객의 참격이 바다를 다시 가른다. 파도가 크게 솟구치지만, 모비딕은 유유히 바닷속으로 들어가 그 참격을 피한다.

동시에 모비딕을 따라온 해양괴수들이 크루즈를 향해 헤엄친다. 하늘에 있는 히어로들을 당장 죽이지는 못하니, 눈앞의 손쉬운 사냥감을 쫓겠다는 판단인 듯 보였다.

하랑이 팔을 들었다 거세게 내렸다.

"잔챙이들이!"

얼음창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물 위를 헤엄치던 해양괴수들의 등에 얼음창이 꽂혔다. 약 절반의 괴수들이 그대로 바다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강한 괴수들은 금방 마력의 파동을 느끼고 바닷속으로 숨어버렸다.

그리고 바닷속에 들어간 얼음창들은 금방 모비딕의 브레스에 파괴되었다.

"쳇!"

저 고압의 물대포 때문에 하랑은 물 위로 뛰쳐나왔다. 아무리 하랑이 수속성 정령의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 정령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수마룡을 상대로 바다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파아앗-! 질풍객의 참격이 다시 수면을 갈랐다. 바닥까지 닿는 마력의 참격이 바닷속을 헤엄치던 괴수를 반으로 갈랐다.

그러나 그 수는 고작 셋. 이미 그 옆으로 수십의 괴수들이 크루즈를 뒤쫓고 있다.

"젠장! 어떻게 좀 해봐!"

"하고 있잖아!"

크루즈를 구해야 한다는 공통 목표는 있지만 합이 맞지 않는다. 애초에 둘은 이 상공에서 마주한 게 사실상 첫 만남이었다.

통하지도 않는 언어를 스마트워치가 자동으로 번역해주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들은 통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캬아악!

양쪽에서 괴수들이 크루즈의 지적이 닿기 직전. 하랑과 질풍객이 동시에 얼음창과 참격을 쏘았다.

"내가 왼쪽!"

"오른쪽을 맡아라!"

서로가 동시에 말하고, 그 번역이 잠시 지연되었다. 상대방의 뜻을 눈치챈 것은 이미 둘의 공격이 크루즈의 왼편에 닿은 순간이었다.

캬아악!

크루즈 오른쪽 후미에 심해아귀들이 뛰어들었다. 하랑이 급히 얼음창을 날려 괴수들을 꿰뚫었지만, 이미 대여섯에 이르는 심해아귀들이 크루즈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젠장!"

질풍객은 당장에라도 크루즈를 향해 달려가고 싶었지만, 심해아귀같은 잔챙이를 신경 쓰기에는 바다 아래에 그들이 처리해야 할 B, A급 괴수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B급만 50, A급이 거의 10에 이르렀다. 위험 등급만 따지면 S급 하나에 이를 정도.

배 안에 심해아귀를 대처할 수 있는 이능력자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야 했다. 질풍객은 재빨리 발을 놀려 해저에서 쏘아진 물대포를 피했다.

뿌우우-!

모비딕은 놀고만 있지 않았다. 부하 괴수들에게 크루즈를 쫓도록 지시하고, 모비딕은 가장 걸림돌이 되는 S급 영웅 둘을 해저에서 미친 듯이 견제했다.

콰앙! 물대포가 쏘아지고, 하랑의 날개를 덮쳤다. 날개는 꿰뚫리지 않았지만 하랑의 자세가 크게 무너졌다.

날개에서 얼음 가루가 떨어졌다. 하랑은 이를 악물고 그 얼음 가루들을 핵으로 삼아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크게 간다!"

하랑이 만들어낸 빙하 세 덩이가 허공에서 낙하했다.

쾅, 쾅, 쾅! 하랑이 크루즈가 지나간 루트에 만든 거대한 빙하가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 괴수들은 황급히 운석처럼 떨어지는 빙하를 피했다. 질풍객이 해수면으로 튀어 오른 괴수를 베며 소리쳤다.

"쓸모없는!"

"아직 안 끝났어!"

하랑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 동시에 빙하 세 덩이를 감싸던 흰 막이 터지며, 주변 바다를 빠르게 얼려나가기 시작했다.

퍽, 퍽퍽! 빙하 사이를 빠져나가려던 괴수가 머리를 그대로 머리를 받고 절명했다. 간신히 빠져나간 괴수는 그 꼬리가 얼어붙어 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야! 너도 좀 죽여봐!"

"말 안해도 알아!"

질풍객이 수면 가까이에 다가가 크게 검을 휘둘렀다. 몸을 크게 회전하며 수평으로 날린 참격은 빙하 근처의 괴수들을 일격에 몰살시켰다.

캬아악!

그러나 아직도 많다. 더욱이 진짜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았다.

콰아아아앙!

모비딕이 빙벽을 들이받았다. 사정없이 부하들의 사체 위에 머리를 들이받은 모비딕의 박치기에 빙벽은 그대로 부서졌다.

"미친!"

하랑이 욕지기를 내뱉으며 빠르게 크루즈를 뒤쫓았다. 질풍객도 물 위를 달리며 수면 아래를 훑었다.

바닷속 모비딕의 속도는 두 인간보다 훨씬 빨랐다.

삑삑!

하랑과 질풍객의 스마트워치에 신호가 들어왔다. 누가 보낸 신호인지 확인할 틈도 없이, 둘은 스크린에 뜬 모비딕의 경로를 확인했다.

"그대로 들이받는다고?!"

약 10초 뒤, 모비딕은 그대로 수면으로 솟구치며 크루즈를 들이받으려고 한다. 미래 예지인지 아니면 행동 분석에 따른 예상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걸 의심할 틈은 없었다.

"하아아아---"

질풍객이 제자리에 멈춰 검을 머리 위로 올린다. 질풍객을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치며, 마력이 칼날을 휘감으며 세찬 칼바람을 만들어낸다.

하랑은 날개를 해제하고 마력을 터뜨렸다. 질풍객을 스쳐 가며 허공을 가로지른 하랑은 곧장 배의 후미에 발을 디뎠다.

뿌우우우-----!

바닥을 스치듯 헤엄치던 모비딕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미사일의 각도가 올라가듯, 모비딕의 거구가 사선으로 수면을 향해 기울여졌다.

■■■■■■!

모비딕이 몸 뒤로 마력을 분사했다. 등에 만든 두 개의 구멍은 마치 스러스터처럼 마력을 뿜었다. 모비딕은 그대로 로켓처럼 크루즈를 향해 쏘아졌다.

질풍객은 때를 놓치지 않았다. 직선으로 솟구치는 모비딕의 예상 경로를 향해, 질풍객은 횡으로 검을 내려쳤다.

"발(拔)!"

뒷생각은 하지 않고 모든 마력을 욱여넣은 칼바람이 파도를 갈랐다. 모세의 기적처럼 칼바람은 파도를 가르고, 예상경로의 위치에 정확히 닿아 모비딕의 등을 베었다.

서걱! 흠집조차 나지 않던 모비딕의 등이 사선으로 갈렸다. 비늘을 가르고 두꺼운 피부를 찢어, 갈라진 혈관에서 피분수가 솟구쳤다.

질풍객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가, 곧 굳어버렸다.

■■■■■■■!!

모비딕은 상처에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상처에 더욱 흥분한 듯 크루즈를 향해 거세게 날아올랐다.

질풍객의 눈이 크루즈를 향했다.

"흥!"

크루즈의 최후미에 석하랑이 서 있었다. 질풍객은 원탁도 아닌 석하랑이 모비딕을 맞이하는 모습이 꼭 당랑거철 같았다.

"저 멍청이가?!"

마력을 다시 갈무리하지만 이미 늦다. 질풍객은 저를 노리는 괴수들을 피해 하늘 높이 뛰어올라야만 했다.

■■■!!

동시에 모비딕이 수면에 머리를 드러냈다. 모비딕은 머리로 크루즈 전체를 박살 낼 기세였다.

히카리가 죽는다. 질풍객이 숨을 헛들이킨 순간.

"뭐?!"

석하랑은 웃으며 배에서 뛰어내렸다.

* * *

아름답지만 실속이 없다.

언젠가 피닉스가 제게 했던 평은 틀린말이 아니다. 이미 몇 년 전에도 들었던 평가였다.

원탁의 히어로들은 S급에 등극한 히어로들을 찾아다니며 항상 심사를 거쳤고, 하랑도 그 심사를 받았다. 여왕의 호위로 왔던 가웨인 경은 광검의 소개로 하랑을 즉석에서 심사했고, 17세의 여고생은 그 자리에서 제가 펼 수 있는 전력을 쏟아부었다.

재능과 능력은 넘치지만, 너무 꾸미기만 하지 않는가. 그게 설화공주에게 내려진 가웨인 경의 평가. 얼음 나비들은 가웨인이 들어 올린 검에서 반사된 태양 빛에 그대로 녹아버렸다.

광검은 석하랑을 발굴하고 스승을 자처했지만, 딱히 대련을 해주거나 조언을 해주지는 않았다.

어렸을 때는 그게 다 스스로 성장하라는 혹독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봤지만, 지금은 아내인 루살카의 힘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에 하랑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었다.

'강해지고 싶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하랑에게 그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하랑보다 강한 광검은 하랑을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고, 일부러 해외로 돌아다니며 사사하기에는 한국의 사정이 너무 열악했다.

이능력을 각성하고 약 9년. 하랑의 전투 경험은 쌓여갔지만, 이렇다 할 '성장'은 하지 못했다.

그 고여있던 경험치가 피닉스와의 대련을 통해, 둑이 터지듯 폭발하며 석하랑을 성장시켰다.

■■■■■■!!

모비딕이 물 위로 솟구친다. 하랑은 아주 단순하게 결론을 내렸다.

막아야 했다.

그러나 9년간의 전투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이 그 수단과 방법을 찾아내지만, 이렇다 할 결론에는 이르지 못했다. 길이 약 50m, 무게 100톤에 이르는 짐승의 돌진을 막을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그 새끼라면.'

피닉스라면, 아마 돌진하는 힘 이상의 화력을 뿜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런 화력이 없다.

그래서 하랑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얼린다!'

기교도, 심미성도, 복잡한 수식도 필요 없다. 그저 몸에 있는 모든 마력을 끌어올려, 모비딕을 그 자리에 얼려버린다.

하랑은 배에서 뛰어내렸다. 크루즈가 스쳐나간 하얀 거품을 향해 하랑의 몸이 낙하했다.

하랑은 수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실패하면 모비딕에 의해 제 몸이 배와 부딪혀 압사(壓死)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실패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하랑은 바다 깊숙한 곳의 마력을 끌어내듯 전신의 마력을 손끝에 집중시켰다.

순간, 하랑의 손바닥 위에 새하얀 손이 포개어졌다.

"어?"

어린아이와도 같이 가냘픈 손이 하랑의 손등을 덮는다. 차갑지만 따스했다. 그 상반된 감각에 놀랄 순간도 없이, 누군가의 목소리가 하랑의 속에서 울렸다.

해버리렴.

머리핀에서 전해진 피닉스의 목소리일까, 아니면 환청일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 목소리에 하랑은 절로 힘이 솟아났다.

'아무렴 하고말고!'

하랑이 모비딕과 눈이 마주쳤다. 모비딕의 자색 눈동자에 당혹감이 스친다.

피식. 하랑은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얼어붙어라!!"

하랑의 손이 수면에 닿았다.

쩌적!

바다가, 얼었다.

* * *

"집정관! 도착했습니다!"

이승형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며 심해아귀를 짓밟았다. 아귀의 머리통을 터뜨리며 다시 뛰어오른 승형의 발이 백사장에 닿았다.

[좋아! 길은 아직 있을 거다! 녹이지 말고 달려!]

승형의 눈에 바다로 이어진 얼음길이 보였다. 아마 석하랑이 움직인 길일 터.

"먼저 갑니다!"

저 멀리 뒤에서 삼사가 뒤쫓아 오는 것을 지도로 확인하며, 승형은 땅을 박차고 얼음길로 뛰어올랐다.

"우왓?!"

청새치 같은 괴수 하나가 뛰어올랐다. 놀란 승형은 마음을 가다듬고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파앙! 청새치 괴수가 그대로 터졌다. 괴수는 수면을 그대로 굴렀다가 가라앉았다.

"벌써 여기까지?!"

저 멀리 크루즈의 빛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얼음길 아래에 괴수들의 신호가 하나둘 모여들었다.

[일단 크루즈로 가! 배를 구해!]

"알겠습니다!"

승형이 발아래에 불꽃을 피웠다. 수면에 폭발을 일으킨 승형은 그대로 멀리뛰기를 하듯 뛰어올라 다음 지점에 발을 디뎠다.

콰앙! 콰앙!

발이 해수면에 닿는 순간 마력을 폭발시키며 뛰어오른다. 얼음길 근처 수면을 오르는 괴수를 공격함과 동시에, 얼음길을 부수지 않고 최고 속도로 바다를 뛴다.

저 멀리 눈앞에 크루즈가 보인다. 승형은 허공에서 두 다리를 모아 발아래에 마력을 모아 터뜨렸다.

콰앙! 폭발을 추진력 삼아 크루즈로 뛰어오른다. 포물선을 그리며 크루즈를 향해 날아오른 순간, 승형의 스마트워치에 신원미상의 신호가 도착했다.

"모비딕이 10초 뒤에, 크루즈를 공격?!"

[뭐?!]

집정관도 그 신호를 받은 듯, 눈에 당혹감이 스쳤다.

탁. 승형이 선미에 착지했다.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승형의 출현에 놀라기도 잠시, 승형은 곧장 다시 마력을 폭발시키며 배 위로 뛰어올랐다.

[너 또 설마?!]

"방법이 없잖아요!"

점프로 마스트에 오른 승형의 눈에 질풍객이 바다로 참격을 날리는 게 들어왔다.

■■■■!

모비딕의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바다에서 피분수가 솟구친다. 승형은 그에 안도할 새도 없이 바로 마스트를 박차 후미로 뛰어올랐다.

마룡을 죽인 감각이 본능적으로 말하고 있다. 절대 모비딕은 저 정도 상처로 돌진을 멈추지 않으리라.

예상대로, 모비딕이 수면에 이마를 드러냈다.

"하아아!"

승형은 심장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주변에 퍼진 마력에 공명하듯 심장에 자리 잡은 불꽃이 빠르게 타오르며, 승형의 오른 주먹에 두른 백염이 푸르게 물들기 시작했다.

배의 후미, 백발을 흩날리는 소녀가 눈에 띄었다.

"하랑아?!"

승형이 그 이름을 외치기도 전에 하랑이 후미에서 뛰어내렸다. 하랑을 중심으로 엄청난 마력이 일렁거려, 승형은 현기증이 나 갑판에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크윽?!"

심장이 두근거린다. 또 구로에서처럼 마력이 역류하려는 걸까. 하지만 지금의 두근거림은 그때와는 달랐다.

마치 무언가를 느끼고 반기는 거센 박동이었다.

승형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보았다.

부채꼴로 얼어붙은 바다를. 물 위로 들어 올린 흉포한 이빨째로 꽁꽁 얼어버린 S급 괴수, 모비딕을.

탁, 탁. 수면, 이제는 얼려버린 바다에 손을 짚고 있던 하랑이 손을 털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씩 웃었다.

"아저씨, 늦었어요."

승형은 직감했다. 하랑이 저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접어든 것을. 바다에 얼음으로 된 섬을 만들어내고도 멀쩡한 하랑을 보며, 승형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랑이 곧장 표정을 굳히며 소리질렀다.

"고래는 제가 잡을테니까, 아저씨는 크루즈 안을 지켜요! 괴수가 안에 들어갔어요!"

"어, 어어!"

승형은 곧장 갑판을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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