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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97화 (97/1,497)

〈 97화 〉1부 6장 (3)

그렇게 석하랑의 데이트 필승 코치가 끝났다.

석하랑은 스킨이 은근 마음에 들었는지 원래의 바바리코트를 되돌리지 않았고, 나도 딱히 그걸 원래대로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사제복이나 베일이 방어구로서 작용하듯, 내 마력으로 변환된 석하랑의 의복도 어느 정도 보호 기능을 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카페에서 간단한 식사 이후에 있을 일에 굳이 옷을 갈아입지 않아 편했다.

옷이 찢어지거나 할 일 없이, 마음 편히 타격할 수 있으니.

* * *

[느려.]

피닉스의 손짓에 얼음 나비들이 가루가 되었다. 상대에게 데미지를 넣지도 못하고 나비들은 소멸했지만, 그 가루는 대기 중에 남아 피닉스의 몸에 달라붙었다.

쩌적. 피닉스의 갑주에 서리가 생겼다.

[과연. 그냥 죽지는 않도록 했군.]

[당연하지!]

석하랑이 피닉스의 위에서 나비 날개를 펄럭였다. 날개에서 얼음 가루가 흩날리고, 피닉스 주변을 가득 메웠다.

[확실히 관악 때보다는 무거워졌군.]

[성희롱이야!]

[마력 얘기다, 멍청이.]

나비 하나 하나에 실린 마력은 피닉스의 화염구를 아주 살짝이나마 웃돌았다. 얼음 나비는 피닉스가 쏘아낸 화염구를 부수고 피닉스에게 날아들었다.

한풀 힘이 꺾여 사방에서 나비가 날아온다. 피닉스는 아주 잠깐의 틈 사이로 몸을 날렸다.

[속력은 보강해야겠어.]

피닉스가 갑주 그대로 나비들을 들이받았다. 갑주 군데군데가 얼어붙어 찌그러졌지만, 곧 불을 일으켜 얼음을 녹였다.

[정령으로 각성하니 예전보다는 낫군.]

[당연하지. 그 굴욕을 당했는데 멍청히 있을 줄 알았어?]

석하랑은 청회색 눈을 빛내며 웃었다. 눈동자 속에는 정령의 힘을 온전히 끌어내고 있다는 증거로, 마력이 얼음 결정처럼 굳어져 빛나고 있었다.

[성장 속도도 빠르고. 이래서야 곧 날 죽일 수도 있겠군.]

['곧'이 아니라, 지금이야!]

석하랑이 손을 하늘로 쭉 뻗었다. 대기 중의 수분이 모두 얼음으로 변했다. 피닉스는 주변에 마력을 둘러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피닉스를 중심으로 약 반지름 5m의 공간이 생겼다. 나머지 모든 공간에서 생긴 얼음 결정들이 빠르게 회전하며 눈보라가 쳤다.

[광검과의 싸움이 생각나는군.]

피닉스는 허윤환과의 전투를 곱씹었다. 그는 파도를 자유자재로 일으키며 피닉스를 익사시키려 했다.

[죽어버려!]

석하랑이 하늘 높이 치켜든 손 위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결계를 절반 가까이 채울 정도로 거대한 얼음 덩어리는 흡사 북극에서 들고 온 빙하 덩어리 같았다.

피닉스가 양손에 각각 불을 피웠다.

[아직은 부족해. 반편이.]

[또, 또!]

석하랑이 짜증을 부리며 빙하를 집어 던졌다. 하늘마저 가리는 거대한 빙하가 피닉스에게 운석처럼 낙하했다.

[이래서야 교육이 안 되겠어.]

피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손을 들어 올리고,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이다, 석하랑 학생.]

두 손을 합장하듯 모았다. 푸른 막 안에 하쳐진 불꽃 두 개가 격렬하게 회전하며 마력이 들끓는다.

[마력이 무슨?!]

석하랑이 날개를 펄럭여 결계의 끝자락으로 도망쳤다. 전방을 향해 제 날개를 앞으로 당겨 보호막을 쳤다.

[집에 가서 반성하고 복습해라.]

피닉스가 마력의 막을 쥐어뜯었다. 끝없이 분열하던 창염이 터져 나왔다.

□□□□□□□----!!

고막을 찢을듯한 폭음과 함께 결계 안이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 * *

<오후 4시, 부산 석하랑 자택.>

"숙제는 없어요."

"......."

석하랑은 테이블에 이마를 처박고 쓰러졌다. 나는 빈백에 누워 석하랑의 옆구리를 발로 툭툭 찔렀다.

"정신 차려요. 원래 두 시간 더 하려다가 일찍 끝낸 거니까."

"수능 과외도 이거보다는 덜 빡셨다...."

"수능 조질래요, 아니면 세계멸망 당할래요?"

"......내 고3이었으면 전자였다. 분명."

석하랑이 대학교 2학년인 것에 감사해야 할까. 나는 손에 든 팩음료의 빨대를 빨아당겼다.

"잘 좀 해요. 내가 해외 나가면 당신이 집 지켜야 해요."

"그야 당연한 거 아이가. 화권 아저씨 서울만 가면 각혈해서 영 믿지 못할...."

석하랑이 테이블에 얼굴을 박은 채 고개만 돌렸다. 표정에 긴가민가한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아저씨 불꽃에 니 색깔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아, 그거 제가 각성시켜줬어요."

"...글나? 어쩐지. 연예인 따라댕기면서 훈련도 하지 않던 한량이 왜 갑자기 S급 됐나 했다."

석하랑이 테이블에서 넘어지며 내게 기어왔다.

"그러면 내도 협회 히어로들 막 각성시키면 되는 거 아이가? 딴 사람은 몰라도 우사 아재는 바로 S급 띄울 것 같은데."

"우사랑 결혼하고 싶으면 해보시던가. 서울에서 있었던 일 잊었어요?"

"......끄으응."

석하랑은 제 이마를 감싸 쥐며 바닥을 뒹굴었다.

"아마 이틀 만에 그렇게 많은 사람한테 반한 건 당신이 기네스일 거예요. 5천 명? 풉."

"니 뒤질래?"

"나 없이 괜찮겠어요? 만나는 사람이 수속성 친화율 조금만 높아도, 헤벌레~ 하시는 분이."

"......그건 안 되지."

석하랑이 바둥거리다 내 무릎에 제 머리를 올렸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야. 니는 좋겠네. 불속성 이능력자 세상에 거의 없다 아이가."

"대신 판단력이 흐려지죠. 원래 이승형도 그냥 무시하거나 죽일 생각이었는데, 처음으로 만난 불속성이라 반가워서...."

"...그럼 아저씨 다른 속성이었으면 우짤라 했노?"

"뭘 당연한 걸 물어요?"

나는 엄지로 목을 그었다. 석하랑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니 혹시 아저씨한테 반한 거 아이가? 그케서 S급도 만들어주고!"

"제가요? 미쳤나 이게."

나는 허벅지를 튕겨 올리며 석하랑을 떨어뜨렸다. 옆으로 360도 구른 석하랑이 내가 누운 빈백 옆으로 올라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제?! 그카이까 살려두는 거네. 우리 아빠도 죽인 악랄한 새끼가 이승형 살려두는 이유가 그거 말고는 없다 아이가!"

"저기요. 살려두는 이유가 없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죽일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뭣보다......."

얘기할까, 고민했다. 석하랑이 내 어깨에 제 턱을 올리며 손으로 옆구리를 찌른다. 숨결이 닿는 위치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낭창하게 웃었다.

"먼데, 먼데? 내가 모르는 에피소드가 또 있나? 말해도. 말해주면 오늘은 안 죽일게. 응?"

"......."

만약 평범한 사람이 피닉스의 몸에 이런 만행을 저지른다면 닿은 몸을 태워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석하랑과의 인연이 떠올라 그냥 내버려 뒀다.

"...저는 그런 취향 아니에요."

두근, 두근. 맞닿은 가슴에서 석하랑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괴인의 코어 박동과는 다른 살아있는 인간의 살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석하랑의 차가운 숨결이 내 이마를 볼을 스쳤다.

"왜? 아저씨 얼굴 잘생기긴 했잖아. 심장폭격기 이승형 모르나?"

"지금 제 심장이 폭격당하고 있거든요?"

석하랑은 항상 이런 식으로 몸을 찰싹 붙여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자기는 얼음 속성이라 체온이 잘 느껴진다나 뭐라나. 내 손이 습관처럼 석하랑의 머리를 쓸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야, 석하랑아."

"......?"

"너까지 나 공략하려고 들지 마라."

석하랑이 어안이 벙벙해 아무말도 못하고 있다가, 내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이게 미쳤나. 자뻑 오지네, 또라이가? 지난번에는 지 제일 좋아한다 카드만 이거 완전 도끼병이네? 니나 내 홀리지 마라."

"그럼 다행이고."

나는 석하랑의 머리에서 손을 떼냈다.

"......천가을 알아요?"

"엉. 죽은 이승형 짝사랑 아이가. 내 얼마나 울었는데. 마지막 사랑 막판에 그 꼬라지나서. 시청률 한자리까지 떨어졌더라."

"살아있어요. 서울에. 청화단으로."

"......대박. 대박사건."

나는 석하랑의 입술을 붙잡아 흔들었다가 뗐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말하지 말아요. 괜히 이승형 죽였다가 가을 씨 신경쓰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당신이 어디 가서 얘기 안 하겠다고 말해도, 저는 손톱만큼도 믿지 않지만."

"...아니, 최소한 나한테 기회라도 줘야 하지 않나? 내가 어디 가서 얘기할 것 같나?!"

"글쎄. 은유하 만나면 시작부터 떠벌릴 것 같은데."

"내가 니처럼 촉새인 줄 아나!"

요것이. 나는 석하랑의 정수리를 잡아 흔들었다.

"당신 몸처럼 입도 무거울 거라고 믿어요.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한테 말해버리거나 하면...."

내가 석하랑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은유하는 내 아내가 될 겁니다."

"......광검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어. 입도 뻥긋하지 않겠다고."

나는 한숨을 쉬고 빈백에서 일어났다. 석하랑은 결연한 눈빛으로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잘 마셨어요. 저는 이대로 서울 올라갑니다."

"엉. 근데 왜 이렇게 빨리 가는데? 좀 더 있지 않고."

"나한테서 은유하 좋아하는 거 또 뜯어내려고 하는 거죠? 안 돼요."

"마 촉은 드럽게 좋네. 됐다. 퍼뜩 끄지라. 가스나 도움 하나도 안 되네."

석하랑이 누운 상태로 내 허벅지를 툭툭 밀었다. 나는 그 발목을 잡아 빈백에 석하랑을 집어던지고는 창문으로 날아올랐다.

와장창!

"야 이 새 개 끼 야 ! ! !"

모르는 일이다.

* * *

<오후 7시, 신서울 정부 청사.>

선의철은 허브티를 마시며 테이블에 놓인 수많은 결재서류에 서명했다.

"각하. 류천성이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석찬은...."

"됐네. 그자도 나와 겸상하고 싶어 하겠는가."

괴수대책부 장관 장후정은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악당은 신분을 세탁하고 6만 서울 시민들의 시장이 되었다. 총리 백세준이 염려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부시장이라도 파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에서 서울을 견제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으면 서울은 거의...."

"다 같은 대한민국 아닌가? 됐네."

선의철은 손을 들어 백세준을 제지했다. 그 모습이 어딘가 해탈한 도인과도 같았다.

"괜히 우리가 손을 대면 방해야. 빨리 서울이 수복되면 누가 좋겠나? 다 대한민국의 복이지."

"각하, 크윽!"

장후정이 감복했다. 백세준도 침을 꿀꺽 삼켰다.

"류천성 4선, 아니 류천성 시장도 그렇고 우리 모두 의원 출신 아닌가. 하하하. 여의도에서 치고받고 하던 시절이 그립구먼."

선의철이 안경의 상처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서울이 안정되면 한 번은 올라가야지 않겠나? 광화문도, 서초도, ...여의도도."

"그렇습니다. 각하. 그런데...."

장후정이 우물쭈물하며 선의철이 막 사인하려던 서류를 가리켰다.

"일본의 요청,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S급 파견?"

백세준이 묻자 장후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키나와의 괴수가 북상 중 사라졌다고 합니다. 소재를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굳이 파견할 이유는 없지 않나."

선의철이 서류를 집어 들었다. 외교부를 통해 정식으로 들어온 문서를, 선의철은 두 손으로 부욱 찢어버렸다.

"왜놈들 일은 왜놈들 알아서 하라고 하지. 그쪽은 원탁도 있지 않은가. 크큭."

"...각하, 광검이 없는 현재 만약 싸울 때 처럼 차원문이 생기기라도 하면-"

"내 조카가 해결해 줄 걸세. 하하하!"

선의철이 호탕하게 웃었다. 백세준과 장후정은 어색한 미소로 맞장구쳤다.

"요즘 들어 부쩍 친해지신 것 같습니다. 이승형을 협회 숙소에서 탈출시켜 정부 청사 근처에 집도 구해주셨잖습니까?"

"그렇습니다. 각하께서 조카 보살피시는 것을 보면 정말 제가 다 부러워질 지경입니다."

"그런가? 하하하!"

광검이 대전에서 살해범과 첫 전투를 벌인 이후로, 선의철은 더욱 이승형을 아끼고 어루만졌다. 선의철은 백세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웃었다.

"총리! 따님이 이제 혼기가 다 차지 않았나?"

백세준이 반색하며 몸을 선의철에게 돌렸다.

"부, 부족한 자식입니다. 어디 내놓기 부끄럽습니다만...."

"언제 한 번 여기 불러서 식사라도 한 끼 하지! 흐허허, 내가 참 인복이 좋아서 총리님 같은 좋은 분을 다 만나서 도움을 받는군. 어떨 때는 가족처럼 느껴지고 말일세!"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대통령과 총리를 보며 장후정은 속으로 말을 삼켰다.

'그 이승형이 지금 어디 있는 지도 모르면서.'

장후정은 스마트워치에 온 연락을 슬쩍 감추었다. 강소연 팀장의 행방불명 이후, 집정관은 모든 히어로들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또 무슨 사고가 일어날까.'

신서울의 밤이 깊었다.

* * *

<오후 8시, 서울 S대학교.>

이승형은 그 누구도 없는 S 대학교의 부지에 서 있었다.

이승형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모르게, 스마트워치까지 벗어놓고 혈혈단신으로 관악산을 넘어왔다.

"......."

이승형은 품에 쥔 국화를 폐허가 된 주차장 가운데 올렸다. 묘비는커녕 묫자리도 없었지만, 이승형은 국화를 아스팔트 바닥에 놓고 묵념했다.

"흐응, 누군가 했더니."

건물 옥상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렸다. 구두 굽 소리가 아스팔트를 울렸고, 달빛에 비친 여인의 피부는 혈색 없이 하얬다.

"누구에게 기도하는 거야?"

"......그 쪽은 알 필요 없습니다. 빌런."

"<팬텀>인데?"

가면 아래 입꼬리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이승형은 가슴을 찌르는 아픔을 참으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구미호 장기가 사람으로 둔갑하는 거라더니."

가면 아래의 입술은 유독 천가을을 닮아있었다. 키스씬을 위해 수없이 천가을을 연구했던 이승형은 너무나도 닮은 입술에 정신이 아뜩해질 정도였다.

"어머. 구미호라고 불러주는 거야? 그건 고맙네."

팬텀의 뒤에서 부정형의 아홉 꼬리가 흔들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회백색으로 물든 팬텀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이승형은 자세를 잡았다.

"다르게 불리기도 하지만, 여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힐 수는 없습니다."

"사람 궁금하게 하면서 그러기야? 너무한걸."

"...그 변태들 사고방식은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신사라는 이름의 변태들은 네트워크상에서 팬텀을 '촉수녀'라고 불러댔다. 이승형은 차마 여인에게 그런 망측한 이름으로 부를 수 없었다. 팬텀이 코웃음을 쳤다.

"아무렴 어때. 아무튼 여기는 왜 왔어? 야근은 피부 미용의 적이야. 빨리 용건을 말해. 누나 바쁜 사람이라 빨리 침대 데워놓고 있어야 한다고."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주민 등록 부활한 거 목록 보면 되잖아."

이승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서울 어딘가에 있을지 모릅니다. 저는 찾아야 해요. 그러니 비켜주십시오."

"미안하지만, 이 시각에 당신 같은 히어로는 서울에 발을 들일 수 없어. 시민 여러분께는 서울의 히어로가 호환마마보다 무섭거든."

"......저는, 제가 지키지 못했던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천가을 씨를!"

이승형의 절규에 팬텀의 손이 멈칫했다. 이승형의 눈썰미가 그걸 바로 알아챘다.

"호, 혹시?!"

"......궁금해? 천가을이 어디 있는지?"

이승형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팬텀이 손을 제 가면 위로 올렸다.

슥. 팬텀의 가면이 사라지고, 몸이 회색 안개에 휩싸였다. 곧 안개가 가라앉자 아홉 개의 부정형 꼬리를 달고 있는 이승형이 나타났다.

경악하는 이승형에게, 팬텀이 이승형의 목소리로 말했다.

"내 능력은 한 번 본 상대방을 그대로 복사하는 거야. 보시다시피 ㅊ...꼬리는 남아서 금방 티가 나지만...."

팬텀이 어느새 손에 들린 가면을 얼굴에 쓰고, 다시 손을 쓸었다. 안개가 일렁거리며, 여인의 실루엣이 드러났다.

"!"

이승형의 표정이 굳었다.

무려 2개월 가까이 그리워하고 가슴에 파묻었던 여인이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옷으로 나타났다. 아홉개의 꼬리를 단 채, 바로 그들이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그 장소에.

팬텀이 낮게 웃었다. 그 미소가 마치 누군가가 웃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기시감에 이승형은 머리가 순간적으로 아파졌다.

"하...!"

그러나 이승형은 흔들리는 마력을 진정시키며 주먹에 백염을 둘렀다. 상대가 준 힌트. 그건 누가 듣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 좋아. 대-단하신 화권 님. 어디 한 번 나를 쓰러뜨려 봐. 그러면 당신이 그토록 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 테니."

팬텀이, 가을이 아홉 촉수의 날을 세웠다.

"당신이 지키지 못한 여자, 천가을이 어디에 있는지."

"으아아아아!!"

이승형의 기합과 함께, 주먹과 촉수가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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