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1부 5장 (19)
<같은 시각, 여의도 청화단 본부.>
"가을 씨, 청개구리 동화 알아요?"
"어머니 잃은 청개구리가 우는 거? 그게 왜?"
"그냥 떠올라서요."
피닉스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몸을 뒤척였다. 그러나 가을은 허리를 감싼 두 손을 풀지 않고 더욱 힘을 줬다.
"저기요, 천가을 님?"
"왜."
"이제 좀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피닉스는 고개를 돌려 제 허리를 감싼 두 팔을 가리켰다.
라운지에 내려온 이래, 천가을은 피닉스를 곰 인형처럼 제 허벅지 위에 앉혀놓고 끌어안았다.
피닉스는 응석부리는 가을에 처음에는 순순히 따랐지만, 서서히 늘어나는 간부들의 등장에 점점 초조해졌다.
결국 모든 간부가 모일 때까지, 피닉스는 가을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싫은데. 이유를 얘기해봐. 이러는 거 싫어?"
"싫은 건 아닌데 그, 단장으로서의 품위가...."
"품위는 너보다 하늘성이랑 김지화가 더 높으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
덕배가 비꼬자 피닉스가 울컥했다. 그러나 라운지에 모인 간부들 그 누구도 덕배의 말에 딴죽을 걸지 않았다. 피닉스가 고개를 떨구었다. 가을은 촉수로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래서야 저 완전 청화단 마스코트로 전락한 느낌인데요."
"어차피 대외적으로는 지화 군이 대장이니 크게 다른 것도 아니지."
"동감. 보스는 그냥 얼굴마담이나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필요할 때만 나서는 전술 병기로."
최연장자 둘의 협공에 피닉스가 이를 갈았다.
"흥, 됐어요. 이제 그만하죠."
가을이 다시 힘을 주지만, 피닉스는 손가락을 튕겨 짧게 공간을 이동했다.
어느새 의자에 오른 미니피닉스가 불타며 피닉스가 의자에 떡하니 앉았다. 가을이 뚱한 얼굴로 노려보자 피닉스는 헛기침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흠흠. 주목. 그러면 작전 준비나 하도록 하죠. 하늘성, 서울을 빠져나간 사람 수는 얼마죠?"
"첫날 이후로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다. 우리가 딱히 도와주지 못한다고 말해도 서울을 벗어나더군. 2714명이 동작을 벗어났다."
광검의 사망은 신서울에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다. 대한민국 전역에 그 영향을 미쳤고, 광검의 국장이 진행되는 동안 해외로 출국한 사람은 거의 십만여 명에 가까웠다.
그들 중 과연 국내로 돌아올 이가 몇이나 될까. 신서울이 그러하듯 서울도 마찬가지였다.
불안을 느낀 이들이 서서히 한국에서 떠나려 했다.
"지화. 해외 반응은?"
"별다를 게 없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정보를 차단 중이고, 일본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양쪽 다 네트워크상의 여론은 광검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자국의 히어로들을 파견하고 싶어 합니다."
"역시."
류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를 통해 압박하면 자연히 명분이 서지. 광검팔이로 여태껏 협회의 지원을 거부했으니."
"명분 없이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아직 국제사회의 여론이 무섭겠죠. 미국이나 러시아도 있고."
세계는 히어로의 양과 질이 나라의 국력이 되었지만, 여전히 예전의 강대국들은 강대국이었다. 대한민국은 그 강대국의 문턱에 들어설 뻔했지만, 평양이 폭발하며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짝. 피닉스가 손뼉을 쳤다.
"그러면 전쟁 나도 대처할 수 있게 슬슬 전력의 공백을 메꿔야겠죠? 자, 작전 개요입니다."
피닉스가 간부들의 눈앞에 스크린을 띄웠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작전의 내용과 개인별 임무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간부진 모두가 제 음료를 삼키며 작전을 끝까지 읽어내려가는 도중, 가장 먼저 작전을 읽은 덕배가 피닉스에게 물었다.
"이거 네가 한 거 아니지?"
"어떤 거요? 정리? 생각?"
"둘 다."
가을과 류천성이 고개를 들었다. 아키택트 또한 스크린을 살며시 내렸다. 지화는 여전히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얼개는 제가 짰어요. 세세한 지침이나 설정은 은유하가 도와줬고. 이번 작전의 핵심은 역시...."
"저군요."
지화가 눈을 번쩍였다. 피닉스는 신뢰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시청사의 뱀. S급 괴수를 레이드 해서 서울이 안전하다는 걸 증명하는 거예요. 아키택트가 미리 필드를 구축해서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고, 나머지가 등대의 오더에 따라 뱀을 공략합니다. 참가인원은-"
"피닉스를 제외한 전원. 청화단의 전력으로."
"그렇죠."
청화단에 실질적인 S급은 없다. 그래서 은유하는 피닉스를 제외한 청화단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를 하고자 했다.
"아키택트가 만들 벽 밖에 있는 괴수들을 제가 다 처리할게요. 등대는 제가 알려준 뱀의 약점에 따라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뱀사냥을 성공시키세요. 알겠습니까? 단,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돼요."
"그럼...."
지화의 눈이 자연스레 덕배와 가을을 스쳤다.
"괴인은 죽어도 됩니까? 부활하는데."
"뭐?"
"야, 너도 괴인이다?"
덕배와 가을의 시선에도 지화의 눈은 피닉스에게 고정되어있었다. 피닉스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심정적으로는 막고 싶은데, 등대 알아서 하세요. 이번 뱀사냥은 제가 자리를 비운다는 조건하에 있을 전투를 가정한 거니까. 대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제가 나섭니다. 알겠죠?"
모두의 시선이 지화에게 쏠렸다. 지화는 선글라스를 치켜올리며 웃었다.
"아무도 죽이지 않고, 단장님 도움 없이 뱀사냥을 성공시켜 보이겠습니다."
가을이 촉수로 덕배의 허리를 슬쩍 찔렀다. 덕배는 불쾌해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다.
"쟤 왜 저래? 뭐 잘못 먹었어?"
"...한 자리 얻고 신난 거지."
"다 들립니다."
지화가 제 가슴을 두드리며 젠체했다. 덕배와 가을은 호가호위하는 그 모습이 살짝 아니꼬웠지만, 일단 작전상으로는 지화가 총 책임자였다.
"지휘 이상하게 하기만 해봐. 바로 눈 뽑아버릴 테니."
"자살 특공 같은 거 시키지 마라. 나 그거 좀 비슷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피닉스는 휘파람을 불며 덕배의 시선을 무시했다. 다른 간부들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아, 예전에 뭔가 저질렀구나.
"아니.... 뭐 그래도 그 뒤로는 안 했잖아요? 굳이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교."
피닉스는 볼을 긁적이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깃털>도 데려가요. 이제 동작 근처에 괴수 더 안 나타나니까, 모든 방위 병력도 싹 다 데려가도 좋아요."
"...푸른 깃털 말씀하십니까?"
"네. 걔들 대장도."
지화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키택트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표정 또한 어두워졌다. 지화가 피닉스의 말에 반박했다.
"...그 친구는 여기 있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나름 혼자서 마포대교 넘어오는 괴수들 잘 때려잡던데."
"'전력'이라고 했잖아요? A급 이능력자가 어디 흔한 줄 아시나. 지화 씨. 앞으로도 그 사람보다 더한 사람이 들어올 텐데, 미리 예습해둔다고 생각해요."
지화가 고개를 떨구었다. 피닉스는 제 앞의 스크린을 내렸다.
"시청사의 뱀은 우리 최강의 조력자를 위해서라도 꼭 잡아야 하는 S급 괴수입니다. 알겠죠? 코어, 무조건 확보해야 해요."
"잠깐만."
가을이 손을 들어 피닉스의 말을 끊었다.
"자꾸 조력자, 조력자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누군데?"
"어, 음, 서프라이즈?"
"너 은유하한테는 다 알려줬잖아?"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피닉스를 노려봤다. 1:5에 의한 간부들의 쿠데타에 피닉스는 볼을 긁적이다가 두 손을 올려 검지를 폈다.
"1+1은?"
"귀요미하면 너 자다가 나한테 먹힌다?"
가을이 촉수 두 가닥을 들어 올렸다. 피닉스는 땀을 삐질 흘리며 답했다.
"...2죠. 그러면-"
피닉스의 양 검지 위에 불꽃이 타올랐다. 곧게 뻗은 불꽃은 좌우로 흔들거리며 몸을 비틀었다.
"S + S는, 당연히 SS 아닐까요?"
* * *
"국장이 끝났습니다, 아가씨."
백상우가 전화로 보고를 마쳤다. 스크린 속 은유하는 마스크를 쓴 채 이불을 돌돌 감고 있었다.
[수고했어. ...엣취!]
"이능력자도 감기 걸립니까?"
백상우의 순수한 질문에 은유하가 째려봤다가, 다시 기침하며 고개를 돌렸다.
[백상우 너 이, 내가 닷새 동안 얼마나 추웠는지 알아?]
"저야 모르죠.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슬슬 작업을 시작해도 될까요?"
[빨리 시작해. 씨, 저쪽에 밀리면 안 된단 말야.]
"...회장님. 이런 데서 승부욕 태우시면 곤란합니다만."
은유하가 마스크를 벗고 빽 소리쳤다.
[시끄러워! 이 거래에 얼마가 걸린 지 알아? 거래에서 상대보다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하는 거 몰라?]
"......어차피 그 아가씨, 또 S급 코어보다 더 미친 거 내놓을 것 같습니다만."
[그러니까 더 이쪽에서 준비를 잘 해야 한다고! 씨이, 하루도 못 쉬고 이제는 감기까지 걸렸어. 이게 뭐 하는 거야.]
은유하가 계속 불평불만을 내뱉었다.
"그래서 그냥 처음부터 저지르자고 했잖습니까."
[하랑이 고것이 감은 엄청 좋아서, 시체 바꿔치기할 빈틈이 없었다고. 훌쩍. 눈치챘어 봐. 난리 났어. 킁.]
코를 삼킨 은유하는 서러운 얼굴로 코를 팽 풀었다. 백상우는 잠깐 눈을 껌뻑이다가 곧 시각을 확인했다.
"자정 1분 전입니다."
[엣취! ...그럼 시작하자.]
"옙."
스크린이 꺼지고, 예정된 시각이 되었다.
5월 15일, 자정.
백상우는 땅굴 속에서 삽을 들었다. 흙이 움푹 파이고 그 너머로 나무로 된 관이 나타났다.
"살다 살다 이젠 사람 시체도 바꿔치기하네."
땅굴의 저 너머, 은유하의 기계 인형들이 똑같은 크기의 목관을 들고 나타났다.
덜컹. 백상우의 지시에 기계 인형들이 흙 속에 파묻힌 목관을 통째로 꺼냈다. 관에는 태극기와 히어로 협회의 기가 함께 묶여있었다.
백상우는 갈아 끼워지는 목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천가면 씻김굿 한 번 해야겠어."
* * *
<2020년 5월 15일 새벽 3시, 관악산 어귀.>
"자, 여기 광검의 시체가 있습니다!"
피닉스가 목관에 발을 올리며 떠들었다. 간부들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아무리 그래도 고인의 관을 밟고 올라가는 건 조금...."
류천성이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내며 피닉스를 나무랐다. 맞은편에 서있던 백상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언젠가 하늘에서 벼락맞을 겁니다."
"그러면 나도 맞아야 한다는 거야?"
은유하가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백상우를 추궁했다. 비인외도를 거리낌없이 저지르는 두 우두머리의 파격행보에 간부들만 속이 타들어갔다.
"...진짜로 한다고?"
가을이 몹시 당황스런 얼굴로 목관과 피닉스의 손을 번갈아봤다. 피닉스의 손에는 금빛으로 반짝이는 괴수의 핵이 들려있었다.
피닉스가 마력으로 감싼 핵을 가슴께에 올리고 말했다.
"저 괴인제작장인 피닉스. 십여명이 넘는 괴인을 제작하며 깨달은 게 있습니다. 바로...."
"이능력자를 괴인으로 만들 때, 코어의 등급과 이능력자의 경지가 비슷하면 최고의 효율로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은유하가 피닉스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화장으로 가린 눈두덩이 아래에 짙은 다크서클이 언뜻 스쳤다. 피닉스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은유하에게 쏘아붙였다.
"...은유하 아가씨? 저 지금 엄청 삘받아서 설명할 타이밍이었거든요?"
"나중에 다른 사람 잡고 설명해요. 지금 좀 졸리니까."
은유하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하품했다. 이능력자용 감기약에서 나온 수면성분에 잠이 쏟아지려는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피닉스는 축 처진 어깨로 광검의 목관을 열었다. 안에는 철검과 함께 웃으며 눈을 감고 있는 광검이 있었다. 피닉스는 손가락을 들어 까딱거렸다.
"덕배 씨?"
"야. 암만 그래도 나한테 이런 거 까지 시키는 건 조금 아니지 않냐? 왜 나까지 쓰레기 만들려고 해."
"......그래요? 꺼내는 게 나은데."
피닉스가 간부를 한 명 한 명 바라보지만, 그 누구도 피닉스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피닉스는 손에 든 코어를 만지작거렸다.
"그럼 그냥 이대로 제작하죠."
피닉스가 자세를 세워 은유하의 앞에 섰다. 은유하는 어떻게든 잠을 깨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피닉스가 손에 든 S급 코어를 은유하에게 건넸다.
"자요. 약속한 선물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의뢰를 맡길게요?"
"물론이지요."
은유하가 다시 코어를 내밀었다.
"이 코어를 사용해서 광검님 다시 살려주세요."
"...거래 조건을 다시 확인해봅시다. 지화!"
선글라스를 낀 김지화가 종이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문구를 읽어내려갔다.
"조건 첫번째. 광검의 부활은 오로지 괴인으로만 가능함."
"수용합니다."
은유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화는 곧 다음 문구를 읽었다.
"조건 두번째. 괴인 광검에 대한 소속은 청화단이며, 은유하가 만들 PMC <기사단>에 장기 임대...형식으로 파견한다."
"수용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피닉스가 끼어들었다. 지화는 입을 금붕어처럼 껌뻑거리다 뒤로 물러났다.
"괴인 광검 부활 이후, 광검에 대한 설득은 전적으로 은유하가 책임진다. 만약 광검을 설득하지 못하고 광검이 명령을 거부할 경우, 괴인 광검은 다시 죽는다. 잊지 않았죠?"
"당연하죠."
한사코 광검을 죽이길 바란 피닉스가 광검의 괴인화를 받아들인 결정적 이유.
"제가 설득에 성공하면 광검님은 괴인으로나마 계속 살아계신거고, 제가 설득에 실패하면 청화단에 양도하기로 했죠. 은유하를."
"아가씨?!"
백상우가 놀라 소리쳤다. 그는 설득에 실패한 경우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다.
피닉스는 은유하의 손에서 코어를 집어들었다.
"설득에 실패하면 저는 책임 못 집니다. 봐주거나 그런 것 일절 없어요. 광검을 되살린다는 거, 저로서도 큰 모험입니다."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명령에 대한 반발력이 심해진다...였죠?"
순간 덕배의 눈초리가 빛났지만, 피닉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좋아요. 그럼 시작하죠."
피닉스가 코어를 들고 목관 안에 허리를 숙였다. 옷을 드러낸 광검의 가슴은 피닉스가 꿰뚫어놓은 상처가 바늘로 봉합되어있었다.
찌직. 찍.
무언가 찢기는 소리가 목관 안에서 들리자, 모두가 표정을 찡그렸다. 아키택트는 아예 구토를 참지 못하고 흙바닥에 맥주를 쏟았다.
"마력은 됐고, 코어도 됐고. 문제는 주문인데...."
피닉스가 상체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머쓱한 얼굴로 웃었다. 괴인 영창의 주문을 남들 들려주기에는 좀 부끄러웠다.
"...필수는 아니니까."
천가을을 팬텀으로 부활시키며 피닉스는 깨달았다. 그 감수성 폭발하는 간부들의 영창은 사실 괴인 제작에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푹. 피닉스가 광검의 상처에 코어를 밀어넣었다. 시청사의 뱀이 가진 금색의 빛이 광검의 심장 속으로 파고들었고, 곧 큐브에서 뽑아낸 정화된 마력이 광검의 심장에 스며들었다.
"이봐요, 장인어른."
피닉스가 그 누구도 듣지못할 작은 소리로 광검의 귀에 속삭였다.
"하랑이 임신시켜서 미안해요."
번쩍.
광검의 눈이 반짝였다. 광검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묵묵히 피닉스를 노려다봤다.
"......."
"......."
서로가 아무 말도 없이 쳐다보기를 수 초. 어느새 머리칼마저 금색으로 물든 광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딸 임신시킨 그 신관이란 놈팽이가 너냐?"
"......."
피닉스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광검은 조용히 몸을 일으켜 제 몸위에 놓인 철검을 들어올렸다. 피닉스가 손사래를 치며 황급히 변명했다.
"조, 조크! 농담! 살아나신 기념으로 한 서프라이즈!!"
"아버님."
광검이 목관에서 일어서고 피닉스가 거리를 벌린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이들이 모두 물러섰다.
"너, 대전에서 나보고 아버님이라고 했지."
"와...."
특히 은유하가 피닉스를 바라보는 눈빛이 썩어들어갔다. 피닉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아, 농담이라고요! 내가 왜 석하랑같은 애랑 결혼하겠어요!"
"휴우."
"흐음."
천가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은유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검은 조용히 손을 들어올리며 빛의 결계를 펼쳤다.
"그럼 하랑이가 못났다는 얘긴가?"
"그럴리가요! 제가 석하랑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그럼 일단 나랑 이야기 좀 하지."
"아 글쎄 아니라니까!!"
광검의 궁극기가 관악을 덮었다.
약 세 시간 뒤, 관악에는 엄청난 전투의 흔적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