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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85화 (85/1,497)

〈 85화 〉1부 5장 (18)

안녕하십니까, 총리 백세준입니다.

선의철 대통령님께서 현재 큰 충격으로 병상에 누워 거동이 불편하신바, 제가 국장을 진행하게 된 점 양해바랍니다.

2020년 5월 9일 오전 7시 13분, 우리는 광검 허윤환의 죽음이라는 비보를 전해들었습니다.

...(중략)...

...따라서 고인의 유지를 잇고자 정부는 모든 힘을 다해 국민 여러분의 안전을 지켜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

<5월 14일 오후 10시. 광검 허윤환의 묘.>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장대비 같은 비는 세상을 온통 물난리로 만들 기세로 쏟아졌다.

거리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인의 넋을 기리며, 수많은 이들이 그의 빈소를 찾아 죽음을 애도했다.

광검의 사망이 확인된 이후 정부는 곧장 그의 국장을 추진했다.

광검이 어떻게 죽었는지, 누구에게 죽었는지 말이 뒤숭숭해지기 전에 선의철은 재빨리 광검의 국장을 밀어붙였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국장은 바로 다음 날인 5월 10일에 시작되었다.

5월 14일. 5일간 이어진 국장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광검은 심장에 박힌 철검을 그 품에 안고 목관에 편안한 얼굴로 묻혔다.

고인이 따로 특별히 죽음에 대한 유언이나 언질이 없었기에, 유족이라 할 수 있는 유영호와 석하랑의 뜻에 따라 광검의 시신은 신서울 인근 공원에 묻혔다.

정부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잠잠해지는 대로 공원을 추모공원으로 바꿀 것이라 공언했다.

그 묘비 앞에 수많은 문상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모두가 몇 시간을 기다리면서 광검의 묘에 국화 한 송이를 헌화했고, 무덤 옆에는 국화꽃이 크게 둘려있었다.

"...아직 많네요."

"다 광검님께 한 번은 도움받았을 테니까."

은유하는 우산을 펼쳐 석하랑의 머리 위를 가렸다. 빗물 따위 얼려버릴 수도, 그 머리 위에 얼음의 우산을 만들 수 있음에도 석하랑은 그저 비를 맞고 있었다.

비는 하얀 머리칼을 적셨고, 검은 상복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봐봐."

은유하가 눈으로 가리킨 곳에는 대형 스크린이 걸려있었다. 아주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초대형 스크린 속에는 이승형의 나레이션과 함께 광검의 활약을 담은 추도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 고인께서는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괴수 퇴치 작전에 참가하셨으며, 수백명이 넘는 빌런을 체포하고 계도하셨습니다. 그는....

"언니야. 쌤 참 대단하지 않나?"

"그러게."

영상 속에는 젊은 광검이 금색의 쌍검을 휘두르며 괴수를 퇴치하고 있었다. 전주 탈환, 제주도 공략, 제4차 서울 방위 작전. 그 모든 전장에서 광검은 괴수를 죽이고 사람을 구했다.

"신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 광검님께 한 번은 목숨 빚진 거나 다름없지."

"그체?"

괴수에게 물려가 팔을 잃은 소년은 어느새 청년이 되어 기계의수로 국화를 놓았다.

빌런에게 인질로 잡혀 PTSD를 앓던 중년 여인은 멀쩡한 정신으로 저를 구해준 광검의 빈소에서 통곡하며 절했다.

광검이 신서울에 틀어박혀 있던 것에 수도 없이 비판했던 도 교수도 영정 앞에서 절을 하며 넋을 기렸다.

국장 사흘째, 쓰러졌다가 병상에서 일어난 선의철 대통령은 가족이라도 잃은 것처럼 대성통곡하다가 다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그 소식이 외부에 전해지며 신서울은 더욱 슬픔에 잠겼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 슬픔에 공감하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촬영용 트레일러 옆에 점퍼를 입고 있던 남자가 옆의 리포터에게 물었다.

"...야, 이제 이 나라 어떻게 되겠냐. 우리도 빨리 본사에 얘기해서 도망쳐야 하지 않겠어?"

"설마 진짜로 전쟁 일으킬까 봐요.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점퍼에 방송사의 로고를 박은 이들이 쉬쉬하며 떠들었다. 카메라 속에 광검의 장례식 현장을 담아 전 세계에 송출하는 방송국의 기자들은 들리지 않게 소곤소곤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검 누구한테 죽었대? 아직 결과 안 나왔어?"

"애초에 7시간 동안 세계가 동떨어져 있었다고 하잖아요. 지금 전세계 히어로 커뮤니티 난리에요. 학자들 지금 광검 궁극기 연구하는 것도 벅찰걸요?"

군데군데 국내 방송사의 기자는 충혈된 눈으로 묵묵히 현장을 중계했지만, 외국계 방송국의 기자들은 과장된 얼굴과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질문했다.

"과연 광검이라는 S급 히어로가 사라진 이 나라에 희망이 더 남아있을까요?"

"인류사에 최초로 화마룡이 등장하는 재난을 겪고, 이제는 빌런에게 자국 최강의 히어로가 살해당했습니다. 언제까지 한국은 협회의 국제적 지원을 거부하면서 버틸 수 있을까요?"

"광검의 개인재산은 수천억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가족도 없고, 따로 상속인을 지정하지도 않을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부에서는 광검의 제자인 설화공주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협회는 국제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고...."

까득.

석하랑이 이를 갈았다. 은유하가 조심스레 석하랑의 손을 붙잡았다. 냉동된 물건을 만지는 것 마냥 석하랑의 신체는 차가웠다.

"하랑아. 진정해."

"내 지금 괘안타."

석하랑은 울지도 웃지도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히 말했다. 그러나 은유하와 맞잡은 손을 떼지는 않았다.

"쌤도 웃으면서 갔다 안 카드나. 그카면 빌런은 아닐끼다. 뭐 과거의 악연이랑 맞붙어가 져서 죽은 거 아이겠나? 와 그 영화 보면 막 그칸다 아이가. 남자들 서로 싸우다 한쪽이 패배해서 죽는 거."

석하랑의 손이 은유하의 손을 꾹 잡았다. 은유하는 몸을 석하랑의 앞으로 돌려 석하랑을 끌어안았다.

"울어도 돼. 여기 지금 아무도 안 봐."

은유하는 우산을 살짝 내려 석하랑의 얼굴을 가렸다. 주변에 있던 은유하의 인형들은 저마다 주변인들과 담화를 하며 시선을 분산시켰다.

"언니야. 내 진짜 독한 년인 것 같다."

석하랑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나뿐인 스승님이 돌아가셨는데, 내를 그 진창에서 꺼내주신 생명의 은인이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말이다...."

석하랑은 고개를 들어 은유하와 두 눈을 마주했다.

석하랑의 두눈은 심해처럼 빛 한 점 없이 가라앉아있었다.

"눈물 한 방울 안 나온다. 속은 끓을 것처럼 아프고, 스승님한테 뭐라카는 저 새끼들 다 얼려서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분한데, 어떻게 사람이 눈물 한 방울 안 나올까?"

"...사람마다 슬픔의 표현 방법은 다르니까."

석하랑이 은유하의 어깨에 머리를 대었다. 피부를 드러낸 쇄골이 아이스팩을 댄 것처럼 시렸다. 은유하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석하랑의 등을 쓸었다.

석하랑이 그대로 은유하를 끌어안았다.

"나 쌤한테 줄 선물도 사놨었는데.... 그렇게 술 마시지 말라고 했던 거 미안해서 저 외국에서 경매까지 붙여가 비싼 술 사놨는데.... 이제 그것도 드리지 못하게 됐다."

"...언젠가 드릴 일이 있을 거야."

"어디? 무덤에?"

석하랑의 차가운 목소리에 은유하는 흠칫 손을 멈췄다. 곧 석하랑이 은유하를 떼어내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타."

"괜찮아."

석하랑은 은유하를 다시 끌어안았다. 석하랑의 몸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벌벌 떨렸지만, 유독 눈물만큼은 흐르지 않았다.

눈물샘이 얼어붙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언니야가 지금 내 옆에 있어서.... 진짜 고맙다."

"그래, 그래."

은유하는 동상에 걸릴 것 같은 차가움을 감내하며 석하랑을 토닥였다.

"저기 언니 방 가서 자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여전히, 비는 그칠 기미 없이 추적추적 대지를 적셨다.

* * *

장례는 끝났다.

광검은 무덤 속에서 영면에 들었고, 석하랑은 멍하니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

말할 기력조차 없다. 한 명 뿐인 제자라는 이유로 기자들은 석하랑을 수도없이 물어 뜯었다.

비록 직접적으로 묻지는 않았지만, 언론과 네트워크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석하랑에게서 광검의 정보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캐내려 들었다.

광검은 힘을 숨기고 있었나?

광검이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나?

광검이 누구와 싸웠는지 알고 있는가?

광검을 살해한 자에게 복수할 생각은 있는가?

광검의 유산을 당신이 상속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가?

광검이 죽었으니 이제 화권과 설화공주 중에 누가 대한민국 최강의 히어로라고 생각하는가.

"다, 대가리 깨버릴까보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과격한 말이 튀어나왔지만, 석하랑은 그 정도로 정신적으로 몰려있었다.

부산의 고아원에서 아동학대에 가깝게 방치되었던 하랑을 발견해 구해준 이가 바로 광검이었다.

그가 발견해 준 덕분에 S급 빙결술사로 각성할 수 있었고, 그가 후원해 준 덕분에 대한민국 최고의 히어로 자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석하랑의 인생은 광검을 만난 이후부터 꽃을 피웠다.

그런데 그 광검이 사라져버렸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석하랑의 마음은 북풍한설의 대지보다 더욱 시리고 차갑게 얼어붙었다.

삐빅. 삐빅.

스마트워치에서 알람이 울렸다. 석하랑은 고개를 돌려 제가 설정해 둔 기념일을 확인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 쌤한테 선물 드리기★]

"하하, 하."

무미건조한 웃음이 흘러나온다.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비싼 최고급 와인. 술도 마시지 않는 석하랑이 일부러 와인에 대해 공부하면서까지 한국에 들인 물건은 먼지만 쌓인채 방치되었다.

광검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술 마시지 마라 그렇게 얘기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얼마든지 마시라고 직접 사다줄 걸 그랬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그게."

석하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손은 시체처럼 차가워 석하랑 본인이 죽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하, 그새 능력 또 오른기가."

검지를 들어올려 얼음의 새를 만들었다. 그 정체불명의 창염과 맞서기 위해 지난 몇 주간 맹훈련을 거듭한 끝에, 석하랑은 다음 경지로 넘어서는 초입에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그걸 자랑하고 싶었던 유일한 사람이 죽어버렸다.

"신 님. 거기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세요?"

석하랑이 두 손 사이로 천장을 노려다봤다.

"이번에 각성한 이 힘, 아니 아예 내 힘 모두 가져가도 좋으니까...."

손가락 사이의 눈이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쌤, 다시 돌려주면 안 됩니까...?"

대답이 없다. 그 누구도 하랑의 소리없는 절규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석하랑은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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