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52화 (52/1,497)

〈 52화 〉1부 4장 (9)

"......."

흑염룡은 팔짱을 낀 채 침묵했다. 약 30여명에 달하는 그의 부하들은 A급에 이른 대장의 행보에 저마다 수군거렸다.

- 대장이 회의갔다 오더니 미쳤나봐. 종교쟁이가 됐어.

- 자기가 태양교단 추기경이 될 거라나 뭐라나.

- 태양 믿어서 히어로들 쫓아낼 수 있으면 아침에 동틀 때마다 태양에 절한다.

"...아둔한 것들."

흑염룡은 부하들에게 들리지 않게 작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 분의 신위를 직접 봐야지만 눈이 깰 텐데."

흑염룡은 안타까운 눈으로 부하들을 훑었다. A급에 이르며 더욱 검어진 그의 눈동자에 부하들이 질겁했다.

'많이 줄었어.'

100여명에 달하던 부하들 중 절반 이상이 히어로와의 사투를 두고 도망가버렸다. 개중에는 히어로들보다 흑염룡이 더 무서워 도망친 이들도 있었지만, 흑염룡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원래 선지자는 고독한 법. 흑염룡은 강남에서 한창 전투가 일어나는 걸 알면서도 묵묵히 참았다. 신의 전령이 올 때 까지.

그리고 하늘을 날던 푸른 새 한 마리가 전깃줄에 내려앉았다. 흑염룡은 무릎을 꿇으며 그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 * *

찌르르.

미니피닉스가 흑염룡의 앞에 섰다. 여의도에 있던 피닉스는 미니피닉스의 입을 빌어 흑염룡에게 지시했다.

"마이크 테스트. 들리나요?"

"들립니다. 신께서 보내신 전령이 제게 전달해주는 당신의 목소리가. 이 미천한 것은 신탁을 받들 준비를 마쳤습니다."

"......."

이상하다. 이능력을 각성하더니 교인으로 전직한 모양이다. 피닉스는 속으로 쑥쓰러워하며 헛기침했다.

"흠흠. 준비는 끝났습니까?"

"물론입니다. 비록 제 부족함으로 동지들이 신을 따르지 않고 아둔하게 깨우치지 못하고 떠났으나, 다행히 신의 위엄에 따르는 형제들이 100명 넘게 신의 말씀을 듣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닉스가 슬쩍 뒤를 훑었다. 흑염룡의 뒤를 따라온 빌런들은 하나같이 두려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온 눈치였다.

신의 위엄은 공포였다.

"...좋아요. 그럼 지시합니다. 강남에 있는 하늘성 무리와 규합해 히어로들을 퇴치합니다. 쓰러뜨린 히어로들은 절대 죽이지 마세요. 인질로 잡으세요. 잡은 인질은 이곳으로 옮기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성은에 따르겠습니다! 신도들이여!"

흑염룡이 주먹을 들었다. 부하들이 어물쩍 제 무기를 들었다.

'영 사기가 낮은데.'

이래서야 원군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피닉스는 미니피닉스를 움직여 부하들의 적성을 쭉 확인했다. 마침 화속성 친화율이 50을 겨우 넘기는 이능력자가 하나 눈에 띄었다.

화르르.

미니피닉스가 불꽃을 펄럭이며 빌런의 앞에 섰다. 후미에서 두려워하던 안경의 빌런은 이능력이 없는 비능력자였다.

"히익!"

갑자기 다가온 미니피닉스에 빌런이 놀란다. 미니피닉스가 비능력자 빌런의 머리위에 안착해 부리를 정수리에 댄다.

빠듯하게 51.

콕!

미니피닉스가 부리가 빌런의 정수리를 찔렀다. 동시에 빌런의 몸에서 잠자고 있던 마력이 활기를 띠고 몸 안을 돌기 시작했다.

부우웅-!

신체에서 빛이 나는 기이한 현상. 빌런들이 경악과 감탄 어린 눈으로 안경 빌런의 변화를 응시한다.

"오, 오오, 오오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바랄 이능력의 각성. 안경 빌런의 몸에서 마력이 솟구쳤다.

"...세례! 신께서 세례를 내려주셨다! 아둔하고 미천한 것을 신의 종복으로 만들어주신 거야!"

흑염룡이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이능력자로 각성한 안경 빌런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내가 진짜 이능력자...?"

빌런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손을 들었다. 오른손에 움켜쥔 야구방망이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비능력자였으나, 피닉스에 의해 강제로 C급 이능력자로 각성했다.

"보시다시피. 이게 청화단의 힘입니다."

피닉스는 미니피닉스를 빌런들 위에서 한 바퀴 돌렸다. 200여 개의 눈동자가 미니피닉스의 깃털을 따라 움직였다.

"이능력을 각성하고 싶나요? 더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나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피닉스가 미니피닉스의 날개를 펼쳐 방향을 가리켰다.

"노력하는 자에게 응원을. 좋은 결과를 낸 자에게 보상을. 자, 가서 히어로들을 물리치고 오는 겁니다."

미니피닉스가 다시 하늘로 솟았다.

흑염룡을 비롯한 강동의 빌런들이 미친개처럼 뛰어가며 히어로들의 옆을 습격했다. 이미 피닉스가 헬하운드를 치운 길은 고속도로나 다름 없었고, 그 선봉에는 방금 이능력을 각성한 이능력자도 있었다.

잠시 뒤. 지화가 피닉스에게 전장의 변화를 알렸다.

- 선무당, 서초에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히어로들의 후미를 잡는 위치입니다.

"강동의 움직임을 기다렸다...고 해야하나?"

- 전황이 유리한 쪽에 붙는 여잡니다. 지금은 빌런들이 우세하다 판단했을 겁니다.

"푸흐흐. 좋아요. 일단 당장은 도움이 되니까 써먹도록 하죠."

순식간에 세 방향으로 둘러싸인 히어로들이 침착하게 방진을 펼쳤다. 사거리 대로를 두고 벌어진 공방전.

구로는 함정에 빠졌고, 강남은 이제 빌런들에게 포위당할 것이다. 나는 관악 너머의 안양으로 고개를 돌렸다.

"손에 든 패 빨리 안 내려놓으면 게임 끝나버릴 텐데."

자고로 아끼다 똥되는 법이거늘.

* * *

"오호호! 아기 신령님께서 벌을 내리실게야!"

선무당이 하늘로 쌀을 뿌렸다. 한 줌의 쌀들은 선무당의 마력에 몸집을 크게 불렸다.

"벌은 개뿔!"

우사는 지팡이를 휘둘러 수탄을 쏘았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쌀들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부글거렸다. 부적과 쌀들에 마력을 실어 폭탄처럼 터뜨리는 폭탄마. 그게 선무당의 이능력이었다.

콰과광!

작은 쌀폭탄들이 수탄에 맞아 터졌다. 우사는 혀를 차며 마력을 다시 모아 물줄기를 만들어냈다. 정면에서 검은 불꽃이 번쩍였다.

"신의 불꽃을 받아라!"

괴수들의 시체를 밟고 튀어 오른 흑염룡이 양손에 검은 불꽃을 머금고 지상으로 쏘았다.

"큭!"

우사가 재빨리 거대한 물의 막을 우산처럼 펼쳤다. 두 마력이 맞부딪히며 거대한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흐하하하! 어리석구나, 아둔한 자들!"

흑염룡은 미친 듯이 웃으며 온몸을 검은 불꽃으로 태웠다. 제 몸에 불꽃을 두르고 달려드는 그 광기 어린 행동에 히어로들이 흠칫했다.

정신은 이상해 보였어도 능력 하나만큼은 A급이었다. 그리고 그 불꽃의 마력은 다른 히어로들보다 양도 압도적으로 많고 정순했다.

우사는 재빨리 빌런 데이터베이스를 뒤졌다. 검은 불꽃을 사용하는 이능력자.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데이터베이스에는 단 한 건의 빌런만이 결과로 나왔다.

"<흑염소>?!"

거부의 집을 태우고 도망친 방화범 출신의 빌런. 그의 이능력 경지는 분명 B급이었다.

"본부! 빌런 정보 갱신! 흑염소의 등급을 S, 아니 A급으로 조정한다!"

- 예?! 아, 알겠습니다!

위험도가 A급으로 갱신되는 데이터베이스를 보며 우사는 혀를 찼다. 갱신 로그의 정보에는 분명 한 달 전 강동구에서 모습을 드러냈을때만 하더라도 B급이었다.

그 한 달 사이에 A급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그것도 거의 S급의 문턱에 닿았을 정도의 높은 경지에.

"후우, 너. 도대체 뭐지?"

우사가 흑염룡에게 말을 붙였다. 다른 히어로들이 빌런들과 한창 전투 중이었지만, 어떤 기연을 통해 능력을 상승시켰는지는 모든 이능력자들의 공통 관심사였다.

"후후, 후후후, 우흐흐흐흐흐!!"

흑염룡의 어깨가 흔들렸다. 그는 양손에 감아두었던 붕대를 풀었다.

"보이는가! 신의 은총을 받아 다시 돋아난 나의 피부를! 의사조차도 포기한 이 화상 자국들! 세례를 받아 화염 속에서 다시 태어난 이 미천한 것, 신을 위해 적을 태우는 용이 되었도다! 그 이름도 광오한 흑, 염, 룡!"

"미친 새끼."

우사가 질린 듯 인상을 찡그렸다.

간혹 히어로의 이능력 각성에 정신이 망가져 광인(狂人)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저자는 그 정도가 다소 심했다.

"그 나이 먹고도 중2병이라니, 세상 참 말세군."

"크크큭. 중2병? 아니, 너는 모른다! 직접 신께서 내려주신 은총을 받지 않은 자는 알지 못해!"

흑염룡이 분노와 함께 발을 굴렀다. 두 발에서 타오르는 검은 불꽃은 도로 위의 아스팔트를 녹여내면서까지 위로 솟구쳤다.

키아아아아악!!

흑염룡의 등 뒤로 솟아오른 거대한 불꽃의 괴수. 뱀처럼 긴 몸통과 머리에 단 뿔은 정말로 그가 용이라도 된 것처럼 불꽃을 토해내며 포효했다.

그 열기에 우사의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 우사는 지팡이를 땅에 꽂으며 마력을 갈무리했다.

"...요즘 보기 힘든 불계열 정말 자주 보는군."

차원문에서는 전 세계 최초로 화마룡이 튀어나오더니 이제는 지휘관 다음으로 드물다는 화염술사들을 S급과 A급 두 명을 마주하게 됐다.

비록 한 명은 정신 나간 A급이지만, 아직 갱생의 여지는 있다.

"네게는 미안하지만 너는 체포하고 바로 교정시설로 보내주마! 우리가 너 같은 중2병 고치는 건 정말 잘하거든!"

"중2병 아니라니까! 신을 모독하지 마라!"

흑염룡이 우사를 덮쳤다. 우사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흑염룡이 그를 따라 입을 틀었다.

"영감님!"

"오냐!"

하늘성을 농락하던 풍백이 우사의 아래에 붙었다. 풍백이 다리에 휘감은 바람은 질풍이 되어 흑염룡의 돌진을 저지했다.

우사가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었다. 대기중의 수분이 우사가 든 지팡이 끝에 이끌려 뭉치기 시작했다.

"놔둘줄 알고?!"

선무당이 부채를 펼쳐 칼바람을 일으켰다. 흑염룡 또한 그에 맞추어 원거리에서 불꽃을 쏘아냈다.

우우우웅--!

우사를 보호하듯 막대한 양의 바람이 땅에서 용오름처럼 솟구쳤다. 우사는 마치 태풍의 눈에 들어간것처럼 바람의 보호막 속에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막아! 합동기 쓰려 하잖아!"

선무당이 부적을 허공에 뿌렸다. 피를 머금은 장지(壯紙)는 하늘하늘 날리다가 선무당의 부채질에 총알처럼 풍백을 습격했다.

"어딜!"

B팀의 다른 히어로들이 풍백과 우사를 보호하며 진을 쳤다. 선무당의 부적은 애꿎은 이들에게 부착되어 폭발했다.

쾅, 콰광!

"크윽!"

풀 플레이트의 갑옷을 입은 전사 히어로가 투구 사이로 피를 토했다. 전방에서 가장 많은 부적을 막아낸 그의 갑옷은 곳곳이 찌그러져 있었다.

"비켜라! 우매한 자들아!"

흑염룡이 두 주먹을 휘두르며 어떻게든 진을 뚫어보려 한다. 하지만 히어로들이 흑염룡의 공격을 피하고 원거리에서 어떻게든 흑염룡을 저지했다.

쿠웅! 쿵!

하늘성이 황소처럼 돌진했다. 그에 A급 히어로 셋이 저마다 무기를 세워 하늘성을 저지했다.

"크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히어로들을 밀쳐내려 하지만 세 명의 힘을 뚫어내기에는 살짝 역부족이었다.

같은 A급임에도 세 명이 달라붙어야 막아내는 괴력의 하늘성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도 우사와 풍백이 함께 사용하는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갑니다!"

"그려!"

풍백의 마력이 하늘로 치솟고, 우사가 그 마력을 지팡이에 끌어당겨 지팡이 위에 뭉친 거대한 물덩이 속으로 흘려보냈다.

우우웅---!!

물덩이 안에서 바람이 휘몰아쳤다. 풍백이 우사의 근처에 둘렀던 용오름의 장막이 시간이 지나 소멸했다.

"이런 미친!"

선무당이 우사 위로 떠 오른 물덩이에 크게 뒤로 물러섰다. 물덩이는 얼핏 맨눈으로 봐도 작은 주택 크기였다.

삼사의 합동기, 폭풍우(暴風雨).

바람과 비라는 직관적인 기술명과는 달리 그 파괴력은 강남 일대의 빌런들을 휩쓸고도 남을 정도였다.

우우웅---!

비바람이 히어로들의 진 밖에서부터 몰아치기 시작했다.

"으아악!!"

조금씩 폭풍이 몰아치는 반경이 넓혀졌고, 그 안에 들어있던 빌런이 그대로 용오름에 휩쓸렸다. 빌런의 몸이 나선을 그리며 우사가 띄운 물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꿀렁, 꿀렁!

물덩이 속에 잡힌 빌런으로부터 마력을 뽑아낸 우사는 비바람을 더욱 가열차게 회전시켰다.

"역시 안 돼, 도망쳐야 해!"

"...큭!"

선무당이 발을 뺐다. 하늘성은 여전히 히어로들과 드잡이질을 하고 있었다.

고오오오!

흑염룡은 꿋꿋이 제자리에 섰다. 휘몰아치는 영역을 넓혀나가는 비바람은 흑염룡의 옷을 적시며 불꽃을 꺼드렸다.

"보고 계십니까, 태양이시여!"

흑염룡은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풍백과 우사가 불러낸 회색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당신이 주신 이 힘, 지금 당신께 보여드리겠습니다!"

흑염룡이 제 불꽃의 용 머리로 올라탔다. 용은 마치 의지를 가진 생명체처럼 포효하며 하늘로 올랐다.

"뭣?!"

히어로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며 불타는 검은 용. 흑염룡은 비바람을 뚫고 우사가 모은 물덩이를 향해 날아갔다.

"막아!"

원거리 계열 히어로들이 황급히 총구를 들어 흑염룡을 견제했다. 불꽃의 용은 몸통이 마탄에 꿰뚫리면서도 물덩이를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놈!"

풍백이 황급히 날아올라 용의 아래를 공격했다. 비바람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우사는 모든 마력을 비바람에 집중하는 통에 무방비상태였다.

"하앗!"

흑염룡이 용의 머리를 딛고 뛰어올랐다. 불꽃의 용은 풍백에 의해 터져버렸지만, 멀리뛰기를 하듯 앞으로 쏘아진 흑염룡의 발은 물덩이를 정확히 노리고 있었다.

화르륵!

흑염룡의 발에서 검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공중에서 두 발을 몸으로 당긴 흑염룡은 모든 마력을 양 발끝에 끌어모았다.

"화이야아아아아앗!!"

정체불명의 기합과 함께 흑염룡의 등에서 마력이 터졌다. 공중에서 가속도를 얻은 흑염룡의 몸이 벌처럼 우사의 물덩이에 쏘아졌다.

"당할까 보냐!"

우사가 마력을 모두 짜내 물덩이의 외벽을 견고히 만들었다.

흑염룡의 플라잉 드롭킥이 우사의 물덩이를 때렸다.

□□□□□□□----!!

강남 대로 한 복판에 두 거대한 마력이 부딪혀 폭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