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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49화 (49/1,497)

〈 49화 〉1부 4장 (6)

"마력 스캔 완료! ...! 지휘관님!"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신진광은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운사가 지정한 지역을 정밀 스캔한 결과, 해당 지점에서 수많은 괴수들의 반응이 튀어나왔다. 신진광은 응집된 괴수들의 반응에 입술을 깨물었다.

"거점마다 모여있다고?"

괴수들의 반응은 무작위로 퍼져있지 않고 군데군데 뭉쳐져있다. 그 위치는 히어로들을 기습하기에 정말로 좋은 요충지였다.

모르고 지나갔다면 또 히어로들이 땅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에게 납치를 당했거나, 최악의 경우 살해당했을 것이다. 신진광은 자신이 정한 진격 루트에서 대기하고 있던 엄청난 양의 괴수들에 눈꼬리가 떨렸다.

"A급 반응 확인!"

그리고 B급 들의 반응과는 확연히 다른 마력의 반응이 검출되었다. 길게 늘어진 헬하운드 무리의 끝자락에 있는 A급 괴수는 도심 한복판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구로 디지털단지의 중앙! ...지휘관님! 위험종입니다!"

신진광이 지휘봉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젠장! 어떻게 된 거야! 작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괴수 반응 없었잖나! 어떻게 책임 질거야, 이 무능한 것들아!"

신진광은 괴수의 반응이 없는 곳으로 진격 루트를 정했다. 미리 괴수 반응을 일일이 확인하며 길을 정했던 만큼, 갑작스레 튀어나온 괴수들의 등장과 그걸 눈치채지 못한 협회 관측병들의 무능함에 신진광은 분노했다.

지휘관 님.

헬하운드 하나를 먹어치운 운사가 신진광을 진정시켰다.

- 전투의 여파로 땅 속에 숨어든 괴수들이 깨어난겁니다. 땅 밑에 숨어있는 괴수를 스캔하지 못한건 이상할 건 없습니다. 단지 문제는 적이 예상보다 많다는 것, 그리고 히어로 한 명이 지금 납치....

"여의도 공략 예정시간까지 앞으로 한 시간 조금 남았어! 이래서야 뭘 어떻게 서울을 수복하겠단 말인가!!"

- 지휘관님께 말씀드립니다. 이대로 발이 묶여 시간을 허비하느니, 진을 그대로 유지한 채 북상하는 작전을 제안합니다. 안 그러면 시간은 시간대로 허비하고 저희 마력과 체력만 고갈됩니다.

운사의 말에 신진광이 침음성을 흘렸다. 이성적 판단으로는 운사의 작전이 일리가 있다고 아우성치고 있지만, 또다시 작전의 지휘를 빼았기는 것만 같아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 지휘관님.

운사가 고개를 숙였다.

- 제 불찰로 C급 히어로 이기성이 괴수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예상컨대 적들은 이기성 요원을 적의 본거지인 '둥지'로 끌고갔을 겁니다. 만약 이기성 요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면....

"당장 그 놈의 위치를 찾아!"

오퍼레이터는 재빨리 이기성의 마력 반응을 찾았다. 마력이 고갈되어가는지 이기성의 마력은 쉽게 검출되지 않았지만, 개미가 페로몬을 남기듯 아주 희미한 흔적이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운사가 상위종의 예상 위치로 지정한 구로의 디지털단지였다.

"좋아! 명령을 내린다! 운사는 A팀을 이끌고 가서 이기성을 구하고 둥지를 파괴해!"

좋은 성과다. 히어로 한 명이 희생되었지만, 어느덧 백마리가 넘어보이는 헬하운드를 생산하는 괴수 둥지를 파괴한다니. C급 히어로 한 명과 괴수 둥지, 그리고 A급 위험종의 교환비는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뛰어난 전과였다.

'내 너의 희생을 잊지 않으마. ...히어로!'

신진광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히어로를 향해 감사의 애도를 표했다.

- 명령 받았습니다. 지시를 이행합니다.

원진 사이로 네 명의 히어로가 진을 벗어나 북쪽으로 뛰쳐나왔다. 운사, 템페스트 레이디, 적송, 그리고 철표. A급 네 명으로 편성된 선발대는 전력으로 구로를 향해 달려나갔다.

- 캬아아악!

철표의 피부가 강철처럼 단단해졌다. 광택까지 내며 달려가는 철표는 그 이명에 걸맞게 강철의 표범처럼 헬하운드들을 유린했다.

- 뒤져!

- 끝이야!

적송이 칼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망나니 칼춤 추듯 헬하운드의 목이 달아났다.

템페스트 레이디가 양 팔을 크게 들어올리자, 손바닥 위로 거대한 바람이 구체처럼 뭉쳤다.

- 팀장!

- 흐아아아아아!!

운사가 기합과 함께 폭풍이 휘몰아치는 공기의 구체를 창대로 후려쳤다. 마력으로 압축된 질풍이 앞을 가로막는 헬하운드 무리를 으깨버렸다.

키기익?!

"그래, 잘 하고 있어! A팀 모두 북진!"

유혈이 낭자한 전장에 신진광이 신이 나 진격을 명령했다.

"헬하운드 무리가 A팀을 따라 이동! 진로를 막으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사거리를 에워쌌던 헬하운드들이 포위를 풀고 북쪽으로 달린다. 처음에는 후방을 급습하나 걱정했지만, 헬하운드들은 히어로들보다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 대로를 점거하려했다.

'지휘 개체가 있다고 해도...!'

아무리 100마리가 넘는 헬하운드를 지휘하는 상위종이라고 하더라도 상대는 괴수일 뿐이다. 한낱 괴물 따위가 지성체인 인간을 넘보려는 게 가당찮은 일인가.

"B팀! 강남에 도착! 헬하운드 무리가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뭐?! 보고도 없이?!"

신진광이 스크린을 확인했다. 아직 오퍼레이터의 말과는 달리 B팀은 아직 강남에 들어서기 전이었다.

"빌런, 빌런입니다! 강남의 빌런들이 헬하운드들을 요격하러 나타났습니다!"

도로를 헤집고 건물을 들쑤시는 통에 나타난 부랑자들. 옛것들을 거적데기처럼 두른 이들은 저마다의 무기를 챙겨나와 헬하운드들과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 크르르르

강남을 향해 내려와 날뛰려던 헬하운드 무리가 상대의 눈치를 보며 대치했다. 빌런들의 최전방에는 중절모의 중년 신사가 전기톱의 모터를 예열시키고 있었다.

"빌런 수배 명단 확인! A급 빌런 <하늘성>입니다!"

"!!"

신진광이 남들 보이지 않게 교묘히 스크린을 띄웠다. 이번 작전을 결행하기에 앞서 대통령이 직접 전달해준 처형 명단.

살아있다면 죽여버리고, 죽어있다면 시체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야할 악의 씨앗들.

흑염소, 선무당, 등대, 땅개, 아키텍트, 피바다, 스투키 등등. 첩보를 통해 파악한 한강 이남의 빌런들.

하늘성은 그 중에서도 강남을 지배하는 수괴였다.

'이들을 전부 체포해야해...!'

그냥 단순히 죽여서는 안 된다. 체포하여 사형대에 목을 올리게 함으로써 대한민국 악인들에게 빌런의 최후에 대한 모범을 보이도록 만들어야한다.

"B팀! 난입하라! 괴수는 죽이고 빌런은 사살, 아니 체포한다!"

간신히 나온 본심을 억누른 신진광의 명령에 B팀이 헬하운드 무리의 후미를 습격했다.

히어로와 빌런. 성향은 다르지만 괴수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싸우는 이들.

헬하운드 무리가 양쪽으로 흩어져 인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 * *

- 몰이가 끝났습니다. 서초와 강동에서 움직임이 있습니다. 빌런 입니다.

지화의 보고에 나는 헬하운드들을 조종하던 손을 멈췄다. 개별 개체들을 군집으로 묶어 단순 명령을 내린 뒤, 지화와의 대화에 집중했다.

"어떤 움직임요?"

- 둘 다 강남으로 이동합니다. 지원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흑염룡은 그렇다치고 선무당은 조금 의외인데요."

도망칠줄 알았는데. 명령을 느슨하게 한 바람에 히어로들이 다시 승기를 잡았다. 헬하운드들은 오직 상대를 죽이겠다는 본성만으로 히어로에게 달려들고, 히어로들은 헬하운드를 아주 가볍게 처치했다.

"역시 아직 대규모 조종은 어렵네요…."

'그래도 1차 목표는 달성했다.'

어차피 큐브로 양산한 헬하운드다. 구로와 강남 양쪽에서 빠르게 제거당하는 헬하운드 무리들에 나는 각 팀의 팀장들에게 퇴각 지점을 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강남팀, 구로팀 모두 지정 위치에서 숨어있어요. 지금부터는 이능력자들의 전쟁입니다."

이미 모든 헬하운드들은 목적지로 이동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히어로들을 상대로 시간을 버는 사이, 헬하운드들의 고삐를 쥐고 있던 청화단의 조직원들은 히어로의 눈을 피해 곳곳에 숨기 시작했다.

"전투원들의 퇴각은 당신에게 맡깁니다, 지화."

예. 다 살려서 퇴각시키겠습니다.

가진 무기라고는 잡동사니 코어웨폰말고 없는 부하들을 괜히 전장에 내세워 총알받이를 시킬 이유는 없었다.

"히어로들이 미끼를 물 때 까지 대기합니다."

지하로 숨어. 지하철 노선을 따라서 모두 집결지로 모이도록.

지화가 명령하고 미니피닉스의 중계에 따라 부하들이 흩어진다. 다들 부랑자 출신이었던만큼 어떻게 숨어야하는지 훤히 꿰뚫고 있다.

'그럼 이제 문제는 히어로들인데.'

"역시 썩어도 준치. 다들 강하네요. 1차 토벌 작전이라 하나같이 에이스들만 모였고."

전장을 훤히 내려다보는 맵핵을 키고, B급 헬하운드를 양산해 풀어 기습을 펼치는데도 고작 C급 히어로 한 명밖에 낚아채지 못했다. 사고가 '파괴와 살육'밖에 없는 괴수로는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인간을 이기기 어렵다.

"괴인을 좀 더 늘려야할까요?"

- 혹시 염두에 두신 사람이라도?

내 혼잣말에 지화가 바로 반응했다. 연결을 끊지 않아서 그런지 자기한테 물은 건 줄 알고 반문했으리라. 이왕 화가 시작된 것, 나는 지화에게 괜찮은 매물이 누가 있을까 의견을 구했다.

"흑염룡 어때요? 그 남자 괴인되면 진짜 흑화할 것 같은데."

-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강남 전장으로 빠르게 합류하는 흑염룡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는 A급으로 각성시켜준 것을 정말로 신의 은총이라 여기고 청화단을 따르고 있었다.

'죽기라도 한다면 괴인으로 만들어서 써먹어야지.'

"그럼 흑염룡말고 다른 빌런은? 꼭 빌런이 아니어도 돼요."

- 그러면 히어로들을 괴인으로…이런, 단장님. 히어로들이 필드에 들어섰습니다.

시야가 구로로 돌아간다. 잠깐의 휴식도 끝. 나는 손가락을 비비며 작전의 2단계 돌입을 준비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슬슬...."

히어로들이 디지털단지에 들어왔다. 나는 건물들의 곳곳에 박아두라고 지시한 내 화염구들의 마력을 일깨웠다.

우우웅--

유리구슬처럼 벽에 박혀있던 화염구들이 떨리기 시작했다. 농구공 크기의 화염구들은 그 하나하나가 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폭탄.

"어디 퇴로가 막히고나서도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죠."

히어로들이 헬하운드들을 처리해나가며 전진한다. 최후미의 히어로까지 사거리에 들어선 즉시, 나는 손뼉을 쳤다.

짝.

"웰컴! 구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환영의 의미로 폭죽을 터트리자. 아주 크고 거대한 폭죽을.

콰------------!!!

화염구가 폭발했다. 외곽의 것부터 시작해 건물 안쪽에 박힌 모든 화염구가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숙여!"

히어로 하나가 자세를 낮추며 머리를 보호한다. 건물을 무너뜨려 공격할 생각은 없지만, 도시 전체가 무너지는 폭발에 절로 몸이 숙여지리라.

콰앙, 콰아아앙!

하늘 높이 불기둥과 흙먼지가 치솟는다. 폭음과 건물 무너지는 소리가 교차로 울리며, 그 굉음은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청력의 한계를 넘었다.

쿵, 쿵, 쿵!

구로 외곽의 건물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진다. 폭발로 인해 땅이 꺼지고 지지대가 박살나며 기울어지는 건물들은 미끄러지듯 도로를 틀어막았다.

"현대 문명에 감사를."

십수층이 넘는 고층 빌딩은 그대로 대로에 누워 도로를 틀어막았다. 그 빌딩을 돌파하려면 높이 십수미터 가량의 건물 잔해들을 뛰어넘어야 했다.

"퇴로는 없음. 도망치려면 건물을 타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구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헬하운드들이 무너진 건물의 잔해 위로 올라섰다. 시흥나들목에서의 포위가 애피타이저였다면, 이곳에서의 포위가 메인 코스.

"아마 여기 A급의 반응을 지휘 개체로 착각하고 달려온 모양이지만…."

'나는 구로에 없지.'

콘크리트 잔해로 둘러싸인 투기장의 주인은 이미 정령석을 삼키고 준비를 마쳤다. 나는 미리 사놓은 편의점 팝콘의 봉지를 뜯으며 명령했다.

"시작하세요, 부하 2호."

콰아아아앙!

20층짜리 건물의 외벽을 부수며 화염거인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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