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1부 4장 (5)
<히어로측, 강남.>
- 전방 600m 앞 괴수 반응. 헬하운드입니다.
"B급 괴수? 얼마나 되는데?"
- 20이 좀 넘습니다. 추정 24마리. 전부 B급입니다. 상위종은 없습니다.
우사가 입술을 깨물었다. 예정된 루트 한 가운데 산길을 점거한 헬하운드들은 무난히 뚫고 가기에는 귀찮은 괴수들이다.
- 힘으로 뚫지 못하나?
신진광이 우사에게 먼저 물었다. 그도 B급 괴수 무리의 위험성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잡으려면 30분은 걸릴겁니다. 설화공주를 보내주시면 1분만에 해결될거구요."
- 안 돼. S급은 시청사에서 투입한다. 젠장. 하필 거기에 괴수들이 둥지를 치다니.
신진광이 재빨리 지휘봉으로 루트를 재정비했다. 조금 더 동쪽으로 돌아가는 루트였다.
- B팀은 이 루트로 이동하라.
우사가 갱신된 이동 경로를 파악했다. 동쪽으로 더 걸어가 예술의 전당 방향으로 북상하는 루트. 시간은 조금 더 걸리더라도 괴수들을 직접 상대하는것보다는 나았다.
"아쉽구만. 보신탕 끌여먹기 딱 좋게 생겼던데."
풍백이 입맛을 다시며 스틱을 휘둘렀다. 우사는 혈기왕성한 노인의 과격함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헬하운드로 보신탕 이야기하는 사람은 영감님 뿐일 겁니다."
"좋지 않은감? 괴수들 독소만 제거하면 맛이야 일반 개돼지보다 나은거 자네도 알잖나. 안 그렇소들?!"
"기지! 크허허!"
"오랜만에 몸보신하는가 싶더니 아쉽네 그려."
풍백의 말에 다른 히어로들이 긍정하며 껄껄 웃었다. 우사는 평균연령이 족히 마흔을 훌쩍 넘길 B팀의 분위기에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이게 무슨 패키지 관광도 아니고.'
누군가의 스마트워치에서 뽕짝이라도 울리면 다들 부르스 타임이라도 가질 기세다. 우사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본부에 연락을 넣었다.
"...B팀, 지정 경로로 움직입니다."
* * *
<청화단, 본진.>
- 동쪽 팀이 우회합니다. 시작할까요?
"예. 헬하운드들...."
나는 강남1팀에 배치된 미니피닉스를 통해 헬하운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강남으로 달려갑니다. 실시."
캬아아아앙!!
헬하운드들이 북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풀은 뛰어넘고, 절벽은 점프해 그야말로 미친듯이 달려나간다.
"1/3은 민가에 남아서 건물을 습격. 혹시나 빌런들이 있으면 잡아 죽여도 무방합니다."
"뭐라고요?"
가을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비정한 목소리로 명령을 이어나갔다.
"나머지는 계속 강남으로 직행. 주변에 도망치는 빌런들이 있다면 모조리 죽여버리세요."
"잠깐만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을 죽이는 건-"
"빌런은 사람이 아녜요. 쓰레기지. 혹시 알아요? 저 나쁜 쓰레기들이 어디서 또 무슨 짓을 벌일 지."
서울에서 탈출한 빌런들이 내 눈밖의 히로인들을 건드릴 수 있다. 그러니 위험의 싹은 제거해야 한다.
"...그래도 죽일 것 까지는.'
가을은 주먹을 꽉 쥐며 나를 노려본다. 지화는 어쩔 줄 몰라하며 나와 가을의 눈치를 본다.
"당신은 빌런 아닌가요? 만약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면 어쩔 거예요?!"
"죽어줘야죠. 저를 이길 수 있다면."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설화공주든 광검이든, 혹은 당신을 좋아하는 화권 이승형이든…. 저를 힘으로 이긴다면 죽어줘야지요. 하지만 절대로 안 질 거예요."
나는 진심을 담아 미소를 지었다.
"저는 죽기 싫거든요."
* * *
"헬하운드 무리에 이상반응! 빠르게 북상하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신진광이 지도를 살폈다.
"가만히 있던 놈들이 왜?!"
"모, 모르겠습니다! 방향은 북동, 강남 방면입니다!"
신진광이 지휘봉을 크게 내려쳤다. B급 괴수가 강남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재산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서울을 되찾아도 그게 파괴된 서울이라면 전과가 상당히 내려가리라.
'내 빌딩!'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진광이 서울을 탈출하며 포기했던 부동산들. 그의 잃어버린 재산은 대부분 강남의 빌딩으로 묶여있었다.
"막아! B팀에게 당장 막으라고 전달해!"
"예, 예!"
B팀 담당의 오퍼레이터가 재빨리 신호를 연결해 명령을 전달했다.
그 순간, 긴박한 비상음이 본부에 퍼졌다. 신진광이 버럭 짜증을 부렸다.
"또 뭐야!!"
- 여기는 운사! 헬하운드가 땅 밑에서 습격! 수가 너무 많습니다!
운사가 보낸 현장에는 헬하운드들이 사거리를 에워싸며 다리밑의 히어로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아아, 이건 버로우라고 하는겁니다."
- 그냥 숨어있다가 튀어나오는걸로 뭔 잘난체하냐?
"칫."
* * *
<11시 40분, 시흥나들목.>
헬하운드 무리가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땅에서 솟아났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히어로들이 나들목의 도로 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교차로 인근의 도로가 전부 뒤집어지며 헬하운드들이 뛰쳐나왔다.
"원진!"
운사의 빠른 지시에 근접 계열의 히어로들이 원을 만들었다. 원거리 계열의 히어로들이 황급히 원 안으로 달렸다.
"크아악!"
후미에서 정신을 놓고있던 히어로 하나가 헬하운드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C급이었던 남자는 헬하운드의 기습에 당해 그대로 고꾸라졌다.
"큭!"
템페스트 레이디가 재빨리 바람을 일으켰다. 마력의 돌풍이 진을 친 히어로 사이로 움직여 헬하운드를 덮쳤다.
키킥.
템페스트 레이디와 헬하운드가 시선이 맞았다. 히어로의 뒷목의 장비를 물어챈 헬하운드가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고?'
시흥나들목. 지휘관이 지정한 루트에 나타난 교차로로 히어로들은 그대로 직진했다. 그리고 히어로들이 다리 아래로 들어가는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괴수들이 땅에서 솟아났다.
'괴수의 기척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캬아악!
양옆에서 헬하운드 두 마리가 앞을 가로막으며 입에서 화염을 토해냈다. 급하게 쏜 마력의 돌풍은 헬하운드의 화염방사에 빗겨가 애꿎은 도로만 긁었다.
"안 돼! 기성아!"
히어로 하나가 곧 벌어질 참상에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이제 C급 히어로 이기성은 헬하운드에게 뜯어먹힐-
크르르.
"...!!"
기성을 입에 문 헬하운드가 옆으로 내달렸다. 히어로들이 진을 친 다리 밑을 빙 둘러가는 헬하운드는 북쪽의 구로 방면으로 기절한 기성을 물고 도망쳤다.
"?!"
도망이 아니다. 사냥감을 둥지에 숨기려하는 것이다. 운사는 창을 앞으로 내질렀다. 창끝이 발톱을 세우며 달려드는 헬하운드의 목을 찔렀다.
꾸룩, 꾸룩.
창끝에서 나온 구름이 헬하운드의 목을 씹어뜯었다. 고통스러워하던 헬하운드는 제 목에 불을 지르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
운사가 창을 회수하고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기성이 납치된 것을 보고 다들 주의태세를 갖추었지만, 헬하운드들은 그런 히어로들을 교묘히 몰아세우며 어떻게든 물어뜯을 기세가 만만이었다.
"으아악!"
히어로 하나가 정신을 놓은 것처럼 화살을 쏘았다. 마력이 실린 철제 화살이 히어로의 얼굴을 빗겨나가며 헬하운드의 눈을 노렸다.
콰직!
헬하운드는 그것을 고개를 살짝 돌려 입으로 물었다. 프리스비를 낚아채기라도 하는듯한 묘기에 히어로들이 어이가 없어질 정도였다.
"이, 이게!"
궁수 히어로가 다시 활을 겨눴다. 헬하운드는 화살대를 부러뜨리고는 슬쩍 몸을 옆으로 옮겼다.
"야! 어딜 노려!"
프렌들리 파이어. 괴수를 따라 움직인 궁수 히어로의 사선에 근접 히어로의 뒷통수가 들어왔다.
원거리 공격을 받을 것 같으면 그 사선에 원진 바깥의 히어로들이 걸리적거리도록 몸을 움직이는 헬하운드 무리.
운사는 직감했다.
'지휘하는 상위 개체가 있다.'
헬하운드들이 다시 덤벼들었다.
"하앗!"
창끝에서 피어오른 뭉게구름이 원진 바깥을 에워쌌다. 마력이 뭉터기로 빠져나간 운사는 크게 숨을 고르고 소리쳤다.
"우두머리가 있습니다! 지휘를 받는 괴수들입니다!"
"헬하운드들 대가리면 케르베로스잖아! 그게 왜 여깄어?!"
적송이 구름에 잡아먹힌 헬하운드의 이마에 칼을 꽂았다. 푸른 피를 흘리며 경련하던 헬하운드가 구름에 그대로 잡아먹혔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헬하운드들은 원진 밖에서 구름을 경계하며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육안으로 보이는 그 수만 하더라도 거의 마흔 이상.
운사가 워치를 눌렀다.
"여기는 운사! 헬하운드가 땅 밑에서 습격!"
히어로들이 착용한 워치에서 보내지는 영상 정보가 본부로 전송되었다. 마력을 다한 뭉게구름이 연기처럼 흩어졌다.
캬아아앙!!
동시에 헬하운드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운사는 입술을 깨물고 소리쳤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전체 제압에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 뭐? 거기도 갑자기 헬하운드가?
워치에서 들려온 신진광의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깨갱!
운사는 달려드는 헬하운드의 대가리를 창대로 후려쳤다. 땅을 구르는 헬하운드의 몸에 마탄이 쇄도하며 헬하운드를 사살했다.
"B팀도 습격을 당했습니까?"
- 현재 헬하운드 무리가 강남을 향해 빠르게 이동중! B팀이 퇴치하러 갔습니다!
오퍼레이터의 말에 운사가 혀를찼다.
"지휘관! 적 괴수는 단순한 짐승 무리가 아닙니다! 헬하운드에게 지휘를 내리는 수괴가 있습니다!"
- 무슨 소리야, 그게!
캬아악!!
헬하운드가 이빨을 세우며 내지르는 포효가 워치를 타고 본부로 흘렀다. 운사는 급히 창끝을 튕겨올려 구름을 펼쳤다.
탐식운이 헬하운드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콰득, 콰드득!
"하아, 헬하운드는 이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는 괴수가 아닙니다! 땅에 숨지도 않습니다. 분명 어딘가 이들을 조종하는 상위종이 있습니다!"
유럽 등지에서도 그 개체수가 적기로 소문난 헬하운드다. 그런 괴수가 서울 한복판 땅밑에 숨어있다가 기습을 하고, 일사분란하게 강남으로 달려갔다는 것은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
운사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떠올렸다.
A급 괴수이자 헬하운드의 상위종인 지옥의 삼두견, 케르베로스.
"그 지랄견이 서울에 있다고?!"
적송이 칼로 헬하운드의 목을 내려쳤다. 서울에 A급 괴수, 그것도 케르베로스가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못했다.
"차원문 발생 이후로 서울에 숨어든 것 같습니다! 젠장, 물속성! 마법사 계열 중에 물속성 마법 쓸 수 있는 히어로 없습니까?!"
운사가 팀을 훑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물가촉천민이 여기 너말고 더 있을리가 없잖아!"
적송이 칼을 세워 헬하운트의 발톱을 막았다. 바로 옆의 소나무부대원이 도끼를 휘둘렀지만, 공격이 막힌 헬하운드는 곧바로 뒤로 크게 풀쩍 뛰어 도끼를 피했다.
"큭!"
운사는 체내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탐식운이 습기를 머금고 침을 흘리며 헬하운드를 물어뜯었다.
캬아아아악!!
헬하운드는 그 어떤 때보다 더 고통스러워하며 절명했다.
"윽!"
운사는 현기증에 휘청거렸다.
"팀장!"
템페스트 레이디가 달려와 운사를 부축했다. 마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며 순간적으로 생긴 탈력 증상이었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헬하운드들이 크게 거리를 벌렸다. 원진을 짠 히어로들이 생각보다 방어를 잘 하는것도 있지만, 그보다도 운사를 흘끔거리는게 유독 그를 경계하는것 같았다.
"본부!"
운사가 워치를 두드렸다. 운사는 스크린이 뜬 지도 위에 몇몇 구역을 누르고는 본부를 향해 외쳤다.
"해당 지점에 마력 스캔을 요청합니다! 지휘하는 A급 상위종을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흥나들목에서 연결되는 여러 지점들. 그중에는 구로의 디지털단지도 있었다.
* * *
"역시 바람과 물의 이중속성. 수속성으로 화속성 카운터치는건 타고났네요, 정말."
운사 박라온.
주인공의 초반 세 동료 중 한 명이자 풍속성과 물속성의 이중속성 보유자. 원작에서는 큰 상처를 입고 D급부터 재활훈련을 위해 주인공 일행에 합류하지만, 상처없는 지금은 삼사의 일원으로 쌩쌩하게 날아다니는 모양이다.
그 A급의 감각은 정확히 헬하운드를 숨겨둔 위치를 잡아냈다. 스캔에 걸린 이상 버로우는 의미를 잃었다.
- 위험한 것 아닙니까?
등대는 운사가 찍은 지점을 보고는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그렇겠죠. 일단 전부 들킬거니까 그냥 다 풀어버려요. 최종목적지로 오도록."
- 지시하겠습니다.
등대의 명령에 각지에 흩어져있던 부하들이 헬하운드의 고삐를 풀었다. 괴수들은 청화단의 조직원들을 신경도 쓰지않고 목적지로 달렸다.
- 괜찮습니까? 혹시 히어로들이 다른 루트로 빠져나가면....
"문제없어요. 어떻게 하든 제일 마력 반응이 강한 곳은 구로로 나올테니까."
마력 스캔을 돌려 탐색한 일대에서 가장 많은 마력이 검출될 위치는 한 곳 뿐이다.
청화단의 함정이 있는 그 곳.
"덕배 씨, 슬슬 일어날 때입니다. 자나요?"
- 안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