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46화 (46/1,497)

〈 46화 〉1부 4장 (3)

결전의 날이 밝았다.

대한민국 히어로 전체의 1/4와 두 명의 S급을 차출한, 한국에서 동원가능한 최대 규모의 토벌대.

그 지휘를 맡은 신진광은 선의철 대통령에게 직접 지휘봉을 건네받아 작전에 임하는 포부를 밝혔다.

- 서울을 되찾겠소.

그 말을 끝으로 히어로들은 신서울로 향하는 차량에 몸을 실었다.

2020년 4월 13일 오전 09시 00분.

서울 수복 작전은 시작되었다.

* * *

<4월 13일 오전 9시 20분, 경부고속도로.>

"우리 이렇게까지 하면서 서울 올라가야겠어요?"

하랑이 덜컹거리는 좌석에 눈쌀을 찌푸렸다. 슬쩍 엉덩이 아래에 마력으로 쿠션을 만들어 놓았으니 망정이지, 그도 아니었으면 서울도 가기전에 둔부 부상을 입을 뻔 했다.

"어쩔수 없지. 도로 상황이 말이 아니니까."

승형은 씁쓸한 얼굴로 손잡이를 꾹 잡았다. 군용트럭은 차도에 방치된 괴수의 시체를 타고 넘으며 크게 덜컹거렸다.

"아으. 무슨 10분에 한 번씩 괴수 시체가 나와!"

"사냥꾼들이 오고가며 사냥한 거야. 코어는 없잖아."

"그럼 좀 치우고 가던지!!"

화를 내며 은근슬쩍 말을 놓는 게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았다. 승형은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하는 하랑에게서 시선을 떼고 도로 너머를 바라봤다.

"......할 수 있다."

손을 쥐었다 펴며 체크한 체내의 마력은 이상 무. 승형과 하랑은 적당한 타이밍에 연회장을 빠져나와 체력을 보존했다.

"으휴. 이 아저씨 또 멋 부리네. 아저씨, 여기 촬영장 아니거...."

하랑은 말을 잇지 못했다. 승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이제는."

"미안해요. 그냥 아저씨 분위기가 뭔가 지금...."

하랑은 자신이 느낀 감각을 표현하는데 애를 먹었다.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다 죽어갈것처럼 하고 다니던 남자였다. 그런데 지금은 우수에 잠긴 비련의 남주인공처럼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 사람마다 극복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아저씨는 괜찮으실 거에요. 앞으로 미래가 창창.... 하아, 미안해요. 이런 경우는 제가 처음이라서."

"괜찮아. 이해해."

어려서부터 철저한 관리속에 자라온 아가씨다. 아이 때부터 S급의 재능을 보이던 유망주였던 만큼, 주변인의 죽음과는 상당히 먼 세계에서 살아온 온실 속의 화초같은 아이다.

그래서 설화공주(雪花公主). 얼음꽃처럼 투명하고 순수한 하랑에게는 세상에 대한 경험이 많이 부족했다.

"작전 얘기나 하자. 일단 지휘본부는 안양이지?"

"네. 종합운동장. 아저씨가 화마룡을 물리친 거기요. 152명 히어로들 장비도 수용도 할 수 있고 괴수들이 오지 않는 곳이기도 하죠. 화마룡의 기운이 남아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승형은 마지막으로 서울에 있던 장소에 다시 발을 들인다는게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지휘본부를 굳이 안양에 둔 이유는 명확했다.

선의철. 그는 지휘본부를 그곳에 둠으로써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키려고 한다. 화마룡을 물리친 히어로가 서울을 수복하러 간다고.

"안양에서 팀을 세 개로 나누게 돼요. 템페스트 레이디, 운사를 중심으로 하는 서쪽팀. 풍백과 우사를 중심으로 하는 동쪽팀. 그리고 아저씨와 제가 지원팀."

하랑은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게 말이 돼요? 참나. 한강 넘어갈때까지 전력을 보존한다는 게."

지휘관으로 온 괴수대책부 장관, 신진광은 시청사의 뱀을 상대하기 위해 A급 히어로들을 주축으로 전력을 나눴다.

선발대가 관악산을 끼고 좌우로 돌아 여의도에서 합류, 그리고 전력을 유지한 S급 둘과 함께 한강을 넘어가면서 전력을 모아 서울시청의 S급 괴수를 처치한다.

그것이 오늘의 1차 플랜이었다. 하랑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차피 조무래기들 상대로 마력도 별로 안 쓰는데."

"쓰는건 쓰는거니까 이해해야지."

"아저씨는 마력 많다고 지금 자랑하는 거에요? 저랑 비교해봐야 아아아아아아주 약간 많은 정도거든요?"

하랑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평소에 뭘 먹고 다니길래 각성하자마자 그렇게 마력이 폭발하듯 늘어난 거예요? 어디 마력 먹고 자란 산삼이라도 먹었어요?"

"그런건 아닌데 그냥 간절해지다보니.... 너는 어쩌다 S급 된거야?"

하랑이 두 손으로 얼굴에 꽃받침을 하며 으쓱였다.

"전 태어날때부터 S급이었어요. 광검님이 저를 발견하시기 전까지 고아원에서 자라서 알지 못했지만."

"...이건 자랑이야, 아니면 슬픈 과거야?"

"둘 다죠! 나중에 저 버리고 간 부모님 찾으면 이렇게 얘기하려구요! 부모님! 당신이 버린 아이가 S급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히히."

"어, 음. 그래. 장하네."

승형은 볼을 긁적이다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러니까 말이죠, 일단 부모님 앞에 제 재산부터 보여주고...."

신이나서 떠들기 시작한 하랑의 말을 백색 소음처럼 여기며 승형은 생각에 빠졌다. 서울 어딘가에 있을 천가을.

4월 중순의 봄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티없이 선명했다.

* * *

<오전 10시, 63빌딩 옥상.>

"거 악당 짓 하기 딱 좋은 날씨네요."

나는 63빌딩의 옥상에 누워 햇빛을 만끽했다. 태양광은 내게 있어 소모된 마력을 회복시켜주는 좋은 공급원이다.

- 준비 끝났다.

스마트 워치에서 들려온 덕배의 말에 나는 눈 위에 스크린을 띄웠다.

"등대는요?"

- 등대, 준비완료입니다.

- .......

등대와 함께 있을 가을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가을의 응답을 재촉했다.

"가을 씨?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 ...마스커레이드, 준비완료. 아니 그런데 제가 무슨 준비를 할게 있다고 이걸 하는 거죠?

"당연히 준비할 게 있죠. 결계 안에서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는 다짐?"

스크린에 뜬 가을은 국회의사당 안 쪽 의장실 소파에 앉아있었다. 의장실 문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불꽃의 결계가 쳐져있었다.

- 감시까지 붙여놓고 뭐가 그리 걱정이에요?

- 아하하. 감시라고 말씀하시면 제 입장이 조금....

"전장 전체를 관음하고 있으면서 감시에 신경을 쓰는거에요? 가을 씨. 등대가 혹시 덮치려고 들면 눈을 찔러버려요. 나중에 내가 고치면 되니까."

- 점점 제 취급이 박해지는것 같습니다....

지화가 눈에 손을 붙이고 훌쩍거렸다. 하지만 그가 전장을 관음하고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

하늘을 날던 작은 카나리아가 내 손가락에 내려앉았다. 내 본체의 모습을 딴 미니피닉스는 이 한 마리 말고도 수 십 마리가 전장 곳곳에 배치되었다.

그들은 모두 등대의 이능력을 보조하는 마력 중계기가 되었다. 등대는 지금 모든 미니피닉스의 시야를 공유하고있다.

관악산 정상에서 서울 남쪽을 주시하던 미니피닉스로부터 의사가 전달됐다. 무언가 눈에 띄었나보다.

- 도착한 거시야.

"등대!"

미니피닉스-이하 줄여서 미닉스-의 중계에 제 눈을 덮은 등대의 손등에 청백의 눈동자 무늬가 그려졌다.

화륵.

국회의사당 옥상 위에 눈동자 형태의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미닉스를 등대에게 연동시킨 것으로 등대는 정찰 만큼은 한 단계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서울 남부 전역을 한 눈에 파악하는 원견(遠見)의 이능력. 지금만큼은 등대가 전장 전체를 비추는 CCTV요, 인공위성이다.

"적의 위치는?"

- 안양 종합운동장에 지휘본부를 차렸습니다. 상태를 봐선 전력을 셋으로 나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세 방향으로 나뉘어 올라올 모양입니다.

"왜 거기를...뭐, 좋아요. 그럼 화권과 설화공주는 어디인가요?"

- 움직임이 없습니다. 안양에서 대기중입니다.

등대의 보고에 의아함이 생겼다. 최고 전력인 둘을 대기시키는 이유가 뭘까.

'상대 지휘관은 군 출신. 히어로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은 꽝이라고 본다면....'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 머릿속에 수만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사라진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우라면-

'단순히 생각하자.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전력 보존이다.'

잔챙이들을 C~B급 히어로로 처리하고, 네임드나 위험종에 A급 이상을 투입시킬 것이다. 서울 전역에서 S급이 필요한 경우라면 역시 단 하나.

'시청사의 뱀을 공략하기 전까지 전력을 보존하려고 하는 거다.'

"등대, 상대 부대의 움직임은 어때요? 변화가 있나요?"

- 인원이 대략 1/3씩 나뉘어졌습니다. 큰 덩어리가 좌우로 찢어지고, 지휘본부에는 대부분 비전투원이 남아있습니다. 관악산을 넘어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요?"

아직 청화단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히어로들이 주의하는 적들은 괴수나 빌런이 전부일 것이다.

서울 전체를 수복하려고 드는만큼 상대적으로 더 난이도가 높은 한강 이북 수복을 위해 전력을 보존하려들 터.

지도위에 적의 예상 경로를 그린다.

'적이 베테랑 지휘관이라고 가정해도....'

관악산을 좌우로 빙둘러 북상. 이동하는 길에 괴수들을 퇴치하고 빌런들을 체포.

분산된 전력은 한강을 넘어가는 유일한 길이 있는 곳, 여의도로 합류할 것이다.

"관악산 넘어오면 어쩌나 싶었는데 잘 됐네요. 계획대로 합니다. 우리쪽에 특별히 주의할만한 적이 있나요?"

- 스톰걸이 있습니다. 대부분 젊은 연령대로 보입니다.

"오호. 그렇다는 말은?"

- 말씀하신 삼사 중 풍백, 우사가 동쪽 부대에 배치되었습니다. 저희쪽에는 운사가 있습니다.

동쪽으로 간 히어로들은 예상대로 서초로 향했다.

서쪽으로 간 히어로들은 1호선 노선을 따라 여의도로 올라올 것처럼 움직였다.

다행히 상대는 예상대로 움직였다.

"그럼 슬슬 시작하죠. 조덕배 씨, 들리나요?"

- 김지화는 등대로 부르면서 왜 나는 덕배냐?

스크린 너머로 덕배가 투덜거린다. 바위괴인이라는 코드 네임이 그리도 싫다더니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조금 민망한 모양이다.

"청화단은 능력지상주의라서 B급 밑으로는 전부 평대원입니다. B급부터 간부 닉네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니 분발하십시오, 조무래기 1호."

- 이게 진짜.

덕배가 짜증을 내며 손에 든 물건을 내던지려했다. 나는 제스쳐만 취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덕배를 보며 킬킬 웃었다.

"화내지 마요. 이번 건만 제대로 처리하면 코어 나오는거 좀 몰아 줄테니까."

- 또 난동부리면 된다는거잖아.

"다르죠. 지난번처럼 덕배 씨가 마구잡이로 날뛰었지만."

나는 지도에 경로를 그려 덕배에게 전송했다. 4차선도로부터 골목길까지 갈지자로 금천구 전역을 헤집으며 구로를 향해 북상하는 루트.

그 끝에는 구로의 디지털단지가 있었다.

"지금은 골목에 숨은 괴수들 다 대로로 끌어들여야하는거에요. 알겠죠?"

덕배의 손에는 마력이 충전된 정령석이 들려있었다.

* * *

<오전 10시 10분, 안양 지휘본부>

신진광은 떨리는 두 손을 애써 지휘봉을 꽉 쥐는 것으로 감추려했다.

긴장? 아니다. 두려움도 아니다.

'이건 기회다...!'

고양감.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는 책임감. 임무를 성공하고 난 뒤 얻게될 명예와 권력에 대한 달콤한 꿈.

그리고 그 무엇보다 신진광을 행복하게 만드는건 다름아닌 손에 쥔 지휘봉 그 자체였다.

"A팀, 응답하라."

- 여기는 A팀, <운사> 대기중.

"B팀, 응답하라."

- B팀 <풍백>이오.

신진광은 귀에 꽂은 마이크의 연결을 끊고 숨죽여 웃었다.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늘같이 떠받들어 모셨던 A급 이능력자들이, 제 명령에 따라 병정처럼 대답하고 움직였다.

마음같아서는 병사들을 연병장 돌리듯 굴리고 싶었지만, 아직 그러기에는 신진광의 권력과 자신감이 부족했다. 그 이상의 행위는 언젠가 서울을 수복하고 평양에 진격했을 때 해보리라 속으로 마음먹은 신진광은 지휘봉으로 스크린상의 지도를 두드렸다.

"A팀, 경수대로를 따라 이동하도록. B팀은 지시에 따라 과천 방면으로 움직이도록 해라."

- 지시 확인. 북상 중 이상징후 발견시 보고하겠습니다.

- 껄껄, 노인네들 가는길 편히 가게 해주시구려.

풍백의 비꼼에 신진광은 눈살을 찌푸렸다. A급 이능력자에 저보다 연배가 높은 이능력자이지만, 엄연히 현 작전에서 지휘관은 신진광이었다.

"언사에 주의하라, 풍백 요원. 경고다."

- 다 죽어가는 노인네 괴롭혀서 무엇하려고? 어디 전기의자에다 앉히려고? 껄껄! 알겠수. 내 따르리다, 크하하!

- ...죄송합니다, 지휘관. B팀 오더는 제게 내려주십시오.

"...B팀의 팀장을 변경한다! 우사에게 권한을 옮겨!"

짜증서린 신진광의 명령에 상황실의 히어로들이 황급히 조치를 취했다. 대부분이 D급으로 편성된 히어로들은 언제나처럼 명령의 중계, 색적 등을 맡는 오퍼레이터 역할이었다.

"뭐 해! 바꾸라니까!"

언사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현장 책임자를 바꿔버리는 폭거에 오퍼레이터들이 안보이게 인상을 썼다. 하지만 풍백의 과거와 신진광의 출신에 대해 알고있는만큼, 그 명령을 싫어도 따라야했다.

"B팀의 현장 지휘 권한을 우사에게 이양합니다."

- 라져. ...지휘관님께 말씀드립니다. 히어로들의 지휘는 일반 군대와는 상이한-

"통신병! 끊어버려!"

오퍼레이터들이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다 황급히 통신을 끊었다. 신진광은 목부터 정수리까지 붉어졌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지휘봉이 부러질듯 떨렸다. 서슬프런 그의 기세에 오퍼레이터들은 아무말도 못한채 제 담당의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했다.

누군가 이 살얼음판같은 분위기를 깨줬으면 좋겠다. 다행히 신진광의 화를 누그려뜨려줄 보고가 들어왔다.

- 여기는 운사. 전방 200m 앞에 괴수 파장 확인. C급입니다.

옳지. 그나마 여기는 조금 마음에 든다. 신진광은 목을 가다듬고 지휘봉으로 지도를 두드렸다.

"A팀! 준비된 히어로부터 공격 개시!"

* * *

"운사, 군대 출신이야?"

"아닙니다. 그냥 적당히 맞춰준 겁니다."

운사는 워치를 두드렸다. 서쪽 루트로 북상하는 A팀에서 운사보다 히어로 경력, 속된 말로 짬이 높은 이는 없었다.

"팀을 나눈 기준부터가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제가 그나마 여기서 경력이 제일 많으니 총대를 메는겁니다."

"운사는 나보다 동생인데 꼭 언니같아."

"칭찬 감사드립니다."

풍백, 운사, 우사. A급 히어로 중에서도 평양 사태 이전부터 활약하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

그 중에서도 운사는 어린 여중생의 몸으로 히어로로 활약한 신성 중의 신성이었다.

키아아악!

귀에 괴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대로에 삼삼오오 모인 괴수들이 A팀을 발견하고 대로를 달려오기 시작한다.

"A팀, 요격 시작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괴수."

등에 메어둔 창을 움켜쥔 운사가 전방으로 내달렸다. 동시에 근접계 히어로들이 운사와 함께 돌진했다.

"한 놈도 남김없이 전부 죽여버립시다."

히어로들이 괴수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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