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1부 3장 (3)
삐비비빅.
"드디어 왔네요."
나는 스마트워치의 알람을 확인했다. 블랙마켓을 통해 전달된 메세지의 주인인 그는 나와 안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인천보따리] : 말씀하신 약속 잡았습니다. 회장님이 뵙고싶어 하십니다. 좌표 찍어드릴테니 이곳으로 오세요.
"오, 직접?"
'대통령만큼은 아니더라도 엉덩이가 상당히 무거운 양반인데.'
나는 바로 난간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세 번째인가?'
앞의 둘은 의도적으로 만난 사람이 아니기는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이쪽에서 먼저 접근하기로 했다.
"첫만남인데 선물이라도 챙겨가야죠."
나는 스마트워치를 두드려 등대를 불렀다. 스크린 너머의 그는 막 잠을 자려던 건지, 침대에 누워있다가 화들짝놀라며 자세를 고쳤다.
[예, 예! 부르셨습니까, 단장님!]
"어. 막 쉬려던거 아니었어요? 깨워버린건가?"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잠깐 커피 한 잔 하고 이제 막 일하려던 참입니다. 뭐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잠시 다른데 볼일이 있어서 불렀어요."
[어디 가신다구요? 얼마나 다녀올 예정이십니까?]
반전된 악마눈의 검은자위 위로 핏발이 선 지화의 눈에 갑자기 생기가 도는것처럼 보였다. 나는 다른 스크린을 띄워 인천보따리, 백상우가 보낸 좌표를 확인했다.
"인천에 잠깐 다녀오려구요. 앞으로 우리 조직에 물자와 자금을 공급해줄 공급책입니다."
[앗! 거래처에 출장 다녀오시는 군요! 알겠습니다! 자리 비우신동안 문제 없도록 지시사항 잘 처리해두겠습니다!]
"...뭐, 그래서 빈 손으로 가기 뭐해서 그런데 말이죠."
나는 지화가 보고를 올린 보고서를 떠올렸다.
"선물 좀 싸가려하는데 그것 좀 가방에 넣어서 옥상으로 가져와줘요. 싹다."
[...지금요? 전부?]
"네."
지화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 * *
S급 영웅은 그 나라의 국력이라 할 수 있다.
인간핵병기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S급은 강하다. 그리고 이 S급의 수는 원작 기준으로 전 세계에 200명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그 수가 적었다.
한국은 놀랍게도 S급 히어로가 8명이나 있었다. 작은 땅덩어리, 오천만 인구에 8명이나 되는 S급 히어로는 한국을 히어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2012년, 몰락이 시작됐다.
평양 사태에 따른 S급들의 총출동.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설화공주를 제외한 7명의 S급은 평양의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38선을 넘었다.
결과는 전멸. 평양의 괴수는 S급 일곱을 상대하면서 다섯을 잡아먹었다.
한국 최고의 히어로인 광검은 큰 부상을 입고 간신히 평양을 탈출해 서울로 돌아왔다. 다른 S급 한 명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실종됐다.
결국 한국에 남은 S급 히어로는 복귀가 불투명해진 상처투성이 히어로와 아직 청소년도 안 된 어린아이.
그 둘에게 국가의 미래를 걸기에는 회의적이라는 의견이 팽배해졌고, 평양 사태의 책임으로 당시 대통령이 퇴진하며 수도를 신서울로 옮기면서 한국의 국은은 크게 기울었다.
다행히 광검이 상처를 회복하고, 설화공주는 잘 성장하여 이름을 날렸다. 이에 당시 야당대표였던 선의철은 신서울에서 세력을 모아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 광검을 신서울, 설화공주를 부산에 두고 힘을 기릅시다. 두 거점도시를 기반으로 히어로를 양성하는 겁니다.
괴수들은 S급 히어로를 두려워했다. 그들이 내뿜는 마력의 존재감만으로도 괴수들은 S급이 사는 도시-영역을 습격하지 않았다. 마치 하이에나가 사자의 영토를 건드리지 않고 도망가듯.
그리고 신서울과 부산은 안전해졌다.
신서울과 부산'만' 안전해졌다.
- 우리도 신서울, 부산만 가면 괴수 걱정없이 살 수 있다!
신서울과 부산의 인구가 과포화되는 계기였다. 선의철은 괴수의 습격에서 해방된 신서울과 부산의 주민들에게 외쳤다.
- 언젠가 힘을 길렀을 때, 그 때 서울을 탈환합시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읍시다.
옛 S급 강국의 영광을 되찾는 순간, 서울 또한 되찾을 것이다. 그 열의는 지난 수 년간 계획으로만 존재했던 '서울 수복 작전'으로 현실이 되었다.
* *
<2020년 4월 11일, 신서울 히어로 협회 본부>
"반갑소. 신진광이오."
짧은 백발의 남자는 제식을 갖추어 경례했다.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군의 냄새가 강하게 묻어있었다.
"반갑습니다. 괴수대책부 장관님. 저는 집정관, 유영호라 합니다."
"선생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 강원에서 있었던 그 신묘한 전술은 우리 군에서도 좋은 교본이 되었소."
"역시 군부 출신이셨군요."
"그렇소. 유명무실해진 군의 말석에서 이렇게 괴수대책부의 장관에 임명되었으니, 열과 성을 다해 분골쇄신해야지. 앞으로 잘 부탁하오, 선생."
유영호는 떫은 표정으로 신진광과 손을 맞잡았다.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괴수에 대한 전술을 일반 현대전의 전술과는 다릅니다. 특히 히어로들의 지휘에 대해서는."
"그만. 그 부분은 이미 청문회에서 숱한 질타를 받고 왔소. 더이상 듣고 싶지는 않구려."
신진광이 손에 힘을 풀었다. 유영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또 바뀌겠어.'
일본으로 도망간 괴수대책부 장관 다음으로 이 남자가 몇 번째 장관이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영호는 신진광과 마주앉았다.
"그래서 장관님께서는 이번 서울 수복 작전, 어찌 하실겁니까?"
"대통령 각하께서 명령하신 것이니 응당 결행해야지 않겠소? 언제까지 서울을 괴수와 악당들의 손에 쥐어주고 있을수도 없는 노릇이니. 하하. 이번 작전은 아무 문제없이 성공할 것이외다. 하하."
영호의 눈쌀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협회의 전술기획과 팀장이자 한국 지휘관들의 대표를 맡게되면서 봐온 여러 장관들 중, 눈앞의 머리가 반쯤 벗겨진 반백의 남자는 여러모로 첫인상이 최악이었다.
영호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떠나고 싶은 생각을 꾹 참았다.
"협회측에서도 최대한 협조를 할 예정입니다. 이미 서울 수복 작전의 소문을 듣고 자원한 히어로의 수만 80이 넘구요."
"좋구려. 다다익선 아니겠소? 히어로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그 자원자 중에는 광검도 있구요."
껄껄 웃던 신진광의 삽시간에 굳었다. 그에게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절대 안되오. 광검은 신서울을 지켜야 하오. 그가 신서울을 비운다면 누가 신서울을 수호한다는 말이오?"
"이승형이 있지 않습니까?"
신진광이 기가 차다는듯 콧방귀를 뀌었다.
"하! 서른도 안 된 애송이를 너무 두둔하시는구려. 아무리 대통령님의 조카라도 안 되오. 광검이 서울로 올라가도 그 공백을 불곰이 메꾸리라 정녕 믿으시오?"
"화권입니다. 마룡살해자구요. 그가 S급의 경지에 올랐다는건 광검께서도 공언하신 바입니다."
"그만. 광검이 그를 높이 평가한다는 것은 내 익히 들었소. 하지만 각하께서 광검이 신서울로 가는걸 바라지 않으시오. 그 분은 이승형이 서울로 가기를 바라시지."
영호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그는 승형과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지 오래였다.
"본인이 원치 않다는걸 알고 계십니까? S급 없이 서울 수복 작전을 결행한다는거,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시청사의 그 괴물을 상대하려면 최소 S급 둘 정도의 전력은 필요할겁니다."
영호의 지적에 신진광이 씨익 웃었다.
"각하께서 이승형을 설득할 것이오. 그건 각하께서 장담하신 바외다. 그리고 또다른 한 명의 전력...선생도 이미 짐작은 하고 계시지 않소? 협회에서 선생을 부산에 내려보낸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흠칫. 영호의 표정이 굳었다.
"...설마 그 아이를 올릴 생각이십니까? 이제 갓 성인이 된 아이입니다."
"경력은 선생보다 더 많지. 그리고...."
신진광이 스크린을 띄워 넘겼다. 영호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이미 설화공주는 참전 의사를 밝혔소이다. 그 공백을 메우는게 선생이 부산에 배치되는 이유지. 이 시각이면 슬슬...그렇지."
신진광이 스마트워치의 알람에 웃으며 화상을 눌렀다. 짤막하게 제목만 걸려진 속보는 불과 10초전에 올라온 것이었다.
[속보] 설화공주 석하랑, 신서울 상경.
* * *
<같은 시각, 인천항 부두 컨테이너.>
타닥, 탁.
전기가 튀어오르며 컨테이너 안의 어둠을 밝혔다. 백상우는 쌓인 먼지에 기침을 콜록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어, 상우 왔냐."
"먼길 오시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회장님."
드럼통 위에 걸터앉은 덩치의 사내가 상우를 반겼다. 상우는 회장이라 부른 남자 옆, 어깨들의 시선을 받으며 회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난번에 네가 보내준 코어는 잘 썼다. 상태가 아주 제대로 더라. 한 점 들어라."
숯불 위에 익어가는 삼겹살의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이거 제 월급에서 까이는 겁니까?"
"아니. 네 보너스에서. 크하하하!"
상우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나무젓가락을 집어들었다. 회장은 여전히 짠돌이였다.
"회장님 여기까지 오신 경비까지 저한테 달아두시면 저 해외로 뜰겁니다."
"안 되지. 너 계약 끝날때까지 인천 못 떠나. 모처럼 큰 손 만났는데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쉽지 않냐?"
큰 손. 상우는 그 문제의 빌런을 떠올리며 고기를 씹었다. 분명 최고급에 잘 익어있음에도 어딘가 걸린것처럼 잘 씹히지가 않았다.
"내가 지난번에 A급 3개 보고를 듣고 욕해서 미안했다. 그건 너도 이해하지?"
"이해합니다."
상우 본인도 직접 눈앞에서 보고도 믿지 못했는데, 하물며 신서울에서 사진으로 보고받은 그야 오죽할까.
"이름이...뭐? 창렬의 피닉스? 거 이명은 쪼잔할 것 같은데 참 통은 큰 고객이야, 크허허!"
회장은 제 옆에 놓여진 A급 코어 하나를 보물처럼 쓰다듬었다.
"이런걸 '선물'로 주고말이지. 상우야. 어떤 사람이냐? 남자지? 싸나이지? 크, 내가 그 화끈함에 반할 뻔 했다니까. 고작 인천 지부에다가 앞으로 거래 잘 봐달라고 A급 코어를 던져두고 가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크흐흐."
"...성격 하나는 파천황이죠."
상우는 제 사무실을 휩쓸고간 그 자의 행보를 떠올렸다. 그리고 사흘전 블랙마켓에 저지르려 했던 대참사 미수가 떠올라 상우는 저도 모르게 소주 잔을 들이켰다.
"응? 너 술 안 마시지 않냐?"
"...맨정신으로 그 손님 맞이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오오, 주당이시라고? 한 궤짝은 자셔야 나랑 잔 부딪힐 수 있으실-"
덜컹!
회장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삼겹살과 숯이 다 바닥을 굴렀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꼬리밟혔나?"
"아닙니다."
옆에 서있던 정장 여인의 대답에 회장이 코어를 품안에 넣었다.
똑, 똑, 똑.
천장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 그것은 분명 누군가 컨테이너 위에 있음을 의미했다. 회장이 노란 안광을 빛내며 상우를 노려봤다.
"상우야. 너 나 배신한 거냐?"
"...회장님."
상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두 귀를 막았다.
"그 손님일겁니다."
"뭐?"
콰아앙!
천장 일부가 폭발과 함께 내려앉았다. 회장의 옆에 있던 이능력자 부하들이 제 능력들을 사용하며 내려앉은 천장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우는 슬쩍 컨테이너 벽으로 달려가 몸을 붙였다.
짝.
경쾌한 박수소리와 함께 부하들의 몸이 폭발하며 쓰러졌다.
회장은 폭연 사이로 보이는 참상에 이를 갈았다.
소수정예로 데려온 부하들이 일격에 당했다. 비싼값을 치르고 데려온 전직 A급 히어로는 전신이 그을려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 씨. 누가 이런데서 삼겹살 구워먹어요? 암 걸리게."
연기를 휘휘 저으며 걸어오는 푸른 사제복의 여인, 피닉스에 회장은 떨떠름하게 웃으며 상우를 바라봤다.
"저거냐?"
"네."
"암만봐도 종교쟁이인데?"
회장의 지적에 상우는 볼을 긁적였다. 지난번에 봤던 여고생 교복은 어디다가 팔아먹었는지, 천장을 뚫고 들어온 고객은 머리에 베일까지 두른 본격적인 사제복이었다.
"......히어로건 빌런이건 요즘 대세가 컨셉종자 아니겠습니까. 중국에는 관우도 부활해서 청룡언월도들고 괴수 썰고 다니는데요."
"그건 그렇지."
"뭘 그렇게 속닥속닥거려요?"
피닉스가 발을 쿵 구르자 컨테이너에 가득찬 연기와 먼지가 천장의 구멍으로 빠져나갔다. 회장은 그 발구름을 통해 퍼진 섬세한 마력 컨트롤에 혀를 내둘렀다.
"얼굴은 예쁘장하군."
"이 얼굴이 좀 예쁘기는 하죠."
피닉스는 양 어깨에 대형 더플백을 두 개 메고 있었다. 진녹색의 천 너머로 오돌토돌 튀어나온 덩어리들에 백상우는 기시감이 들었다.
"자요, 선물. 하나만 주려고 했는데 두 개 다 주는 거에요."
피닉스가 더플백 두 개를 풀어 회장에게 던졌다. 회장은 손에 대기도 싫다는듯 뒤로 크게 물러서며 소리질렀다.
"으악! 어디서 땀내나는 쓰레기를...."
데구르르.
찢어진 천 사이로 무언가가 삐져나와 바닥을 굴렀다. 회장은 홀린듯이 제 구두에 닿은 반투명의 구슬을 들어올렸다. 구슬에는 푸른 색의 막이 씌어져있었다.
"일단 백사장님 말대로 마력 냄새 안 세어나오게 다 조치해뒀어요. 이제 공방가서 코어로만 바꾸면 돼요."
"...저거 둘 다?"
백상우가 더플백 두 개를 번갈아 가리켰다. 피닉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구로랑 영등포, 여의도에 있는거 싹다 긁어왔어요. 어...D급만 200? 그 정도 될듯."
회장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더플백의 옆구리를 잡아 뜯었다. 그곳에는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괴수의 코어들이 푸른 막에 씌어져 빛을 내고 있었다.
피닉스는 회장의 앞에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회장님."
"어, 응, 예?"
회장은 얼떨결에 손을 마주 잡았다. 솥뚜껑같은 손이 조막만한 피닉스의 손을 거의 잡아먹다시피 했다.
회장은 그 작은 손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열기에 놀라 저도 모르게 손을 뺄 뻔했다. 하지만 피닉스의 손은 먹이를 낚아챈 독수리의 발톱처럼 회장의 손을 놓지 않았다.
씨익.
피닉스가 입꼬리를 들어올리며 오른 손을 제 왼 쪽 어깨에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창염의 피닉스>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