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염의 피닉스-33화 (33/1,497)

〈 33화 〉1부 3장 (2)

차원문 발생으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신성의 탄생.

불주먹의 재림.

신세대의 영웅.

대한민국 세번째 S급 히어로.

한국 어디를 가도 오로지 이승형, 화권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다.

"빽으로 S급 된 주제에."

<철표> 박성태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같은 A급, 그리고 이승형보다 오랜 기간동안 A급에 정체되어있던 그는 이승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능력도 전 세계에 아주 희소한 화염술사.

연예계에서도 돋보일 정도의 호감형 외모.

한국 최고의 지휘관 유영호의 직속 히어로.

현 대통령의 조카라는 무시무시한 배경.

아무리 세상이 불공평하더라도 이건 심했다싶을 정도로 이승형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흔하다면 흔한 A급이라는 경지마저도 S급으로 각성하면서, 이승형은 뭐하나 빠지지 않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마룡살해자.

사실상 혈혈단신으로 화마룡을 일격에 쓰러뜨린 그 위용은 전 세계 많은 히어로들과 히어로 팬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이런 영웅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조속히 원탁의 13번째 영웅으로 추천해야 합니다!

이미 항간에서는 그를 원탁의 공석에 올려야한다는 설레발까지 있을 정도였다.

검토하겠습니다.

영국의 원탁 히어로 <가웨인 경>은 이승형의 위용을 높이 사면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에둘러 거절했지만, 이미 그 정도만으로 이승형의 주가는 하늘을 찔렀다.

"퉷."

가래가 재떨이에 떨어졌다. 박성태는 마력으로 담배의 잔향을 날려버리고 넥타이를 고쳐맸다.

박성태가 있는 곳은 장례식장. 졸지에 장례식장의 경호를 맡게된 그는 장례식장의 상주마저 자처하는 이승형이 너무나도 고까워보였다.

* * *

"정말 고맙습니다. 이승형 히어로님."

"정말 화권님 없었으면 우리는...."

"아닙니다. 어머님, 아버님. 말씀 편하게 해주십시오."

이승형은 검은 상복의 연로한 노부부를 휴게실로 이끌었다. 초로의 노모는 휠체어를 끌던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어찌 저희들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 노인네 대신 상주도 자처해주시고....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제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승형을 대하는 노부부의 태도는 과할 정도로 공손했다.

"화권 님 덕분에 우리 아이를 편히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승형은 자신를 과도하게 대접하는 사람들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누가 비꼬듯 승형을 그리 대하면 슬슬 폭발해버릴 정도로.

하지만 승형은 이 두 노부부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승형은 이 노부부에게 죄 아닌 죄를 지었다.

"제가 서울에서 촬영을 하지말자고 했어야했는데...."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가을이 지가 결국에는 따라간 것 아닙니까. 하필이면 그 날 서울에 차원문이 열릴거라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이 노인네들은 그저 이승형님이 우리 딸아이 가는 길 지켜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뿐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됩니다. 이 나라의 새로운 대들보가 되셨잖습니까."

이승형은 왈칵 눈물을 터뜨릴뻔해 고개를 돌렸다. 하나뿐인 천금같은 딸을 잃고 억장이 무너질 노부부는 오히려 이승형을 위로하고 있었다. 이승형은 그들의 위로에서 천가을이 떠올라 더 울컥했다.

"그러니까 딱 하나만 부탁드립시다."

휠체어에 앉은 노인이 승형의 두 손을 잡았다. 잔주름이 짙은 두 손은 굳은살 투성이었다.

"이번에 꼭 서울가셔서 우리 가을이, 무덤이라도 만들어주게 몸이라도, 아니 유품이라도 찾아주십시오."

"......."

승형은 그저 두 눈을 감을 수 밖에 없었다.

장례식장의 관은 주인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 * *

<2020년 4월 11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꺄아아악!!"

천가을이 비명을 지르며 조덕배의 팔에 메달렸다.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점액질이 가을의 머리칼을 스쳤다.

"그러게 왜 따라와서는!"

덕배는 가을을 짐짝처럼 집어들고 옆으로 크게 뛰었다. 천장에서 채찍처럼 휘둘러진 무언가는 가을의 옆을 스치며 본회의장의 책상들을 날려버렸다.

"이런 건 줄 몰랐죠! 꺄아악! 또 날아와요!"

천장에서 다시 무언가가 휘둘러졌다. 덕배는 본회의장 아래로 가을을 굴리며 몸을 피했다.

츄릅.

점액질의 액체가 떨어지며 덕배의 바위피부를 핥았다. 덕배는 혐오스러움을 간신히 참아내며 선홍빛의 물체, 촉수를 팔꿈치로 쳐냈다.

푸쉬이....

바위피부가 강한 산성에 녹아내렸다. 가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괜찮아요?!"

"안 괜찮으니까 이제 여기서 좀 나가!"

필터링 이후로 언어의 제약이 걸린 덕배는 속내와는 달리 몹시 건전한 부탁조로 가을을 쫓아내려했다.

"그, 그치만 밖에도 괴수들이-"

"그딴거 수 백마리 몰려와도 저거보다 약해!"

"저는 아직 아무런 힘도 없다구요!"

순간적으로 열이 챈 덕배는 괴인도 혈압이 오르나싶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촉수를 팔로 쳐낸 덕배가 집게처럼 가을의 가디건을 잡아끌었다.

가을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야! 좀 살살!"

"지금 살살하게 생겼냐?!"

덕배가 머리 위를 스치는 촉수를 피해 본회의장 입구로 달렸다. 회의장 곳곳에는 촉수가 휩쓸고 간 흔적이 가득했다.

새액-!

덕배와 가을을 노리는 촉수는 단 하나. 본회의장 천장에 붙은 괴수가 휘두르는 수 십 가닥의 촉수는 그 아래에서 날아다니는 푸른 소녀-피닉스를 노리고 있었다.

"꼭 물에 내놓은 아이같네요."

피닉스는 산책나온 듯 유유히 하늘을 날아다니며 촉수를 피했다. 중간중간 가을을 노리는 촉수가 과하다 싶으면 곧바로 날아가 손톱을 휘둘러 촉수를 끊었다.

"서울에 S급 괴수는 딱 둘 뿐입니다. 저기 시청에 숨어사는 '한강의 주인', 그리고 여기 국회의사당 천장에 숨어있는 히든 보스 '촉수꺼비'."

피닉스가 창염을 피어올려 어두운 천장을 밝혔다.

꾸르륵?!

천장에는 등에 수 십 가닥의 촉수를 달고있는 트럭만한 두꺼비가 거꾸로 매달려있었다. 두꺼비는 등에 단 촉수를 날름거리며, 천가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므흐흣.

"꺄아아악!!"

그 압도적인 자태에 가을이 또 비명을 질렀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라기보다는 생리적인 혐오감이었다. 피닉스는 불길을 꺼뜨려, 다시 촉수를 피해 날아다니면서 가을에게 설명했다.

"천장에 숨어있다가 촉수로 낚아챈 인간을 입에 삼켜 녹여먹는 괴수죠. 입안에서는 먹은 인간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물질이 나오는데....'

"설명은 그만! 빨리 처리해주세요!"

가을이 빽 소리지르자 피닉스는 그럴줄 알았다는듯 입꼬리를 올렸다. 피닉스가 날개를 멈춰 허공에 정지하자, 그를 향해 모든 촉수가 쇄도했다.

"그럼."

피닉스가 날개를 펼치며 수직으로 날았다. 아슬아슬하게 촉수를 피해내며 촉수꺼비의 등에 손바닥을 댄 피닉스는 그대로 마력을 뿜어냈다.

화르륵!

피닉스의 손바닥에서 터져나온 창염이 촉수꺼비의 전신을 감쌌다. 단백질 타들어가는 매케한 냄새가 본회의장을 가득 채웠다.

케에엑....

창염의 열기에 천장에 붙이고있던 빨판의 점액이 말라비틀어졌다. 촉수꺼비는 그대로 중력에 이끌려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S급 괴수는 그렇게 죽었다. 간단히 도시 하나를 날려버릴 괴물을 제압한 피닉스는 날개를 접고 내려와, 촉수꺼비 시체의 점액질 속에 오른손을 쑤시고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

"그냥 태워버리고 남은거 챙기면 안 되냐?"

덕배의 지적에 피닉스는 다른 손으로 손가락을 까닥였다.

"쯧쯧. 이래서 S급도 못 잡아본 뉴비들이란. 잘 들어요. S급 괴수들은."

막 설명으로 이어나가려던 피닉스가 가을과 눈이 마주쳤다. 피닉스는 왠지 말이 빼앗길 것 같은 불안함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괴수의 핵이라는게 참 섬세하기 이를데 없어서-"

"꼭 산삼캐는것 같네요."

콰직. 피닉스가 점액질 안의 손을 움켜쥐었다. 둘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촉수꺼비의 내장을 터뜨린 그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하아. 아무튼 가을씨. 위기속에서 이능력을 각성하겠다는 미친 생각은 이제 그만...."

"안 돼요!"

가을이 두 팔을 뻗으며 거절했다.

"미래의 저는 위기 속에서 각성했다면서요! 그럼 저도 똑같이 위기를 겪으면 이능력자로 각성하겠죠?"

"...이 여자가 이능력자 못 돼서 정신을 놓았나."

덕배의 지적에 가을은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이미 덕배는 피닉스가 말한 여자 이야기의 진상을 가을에게서 들었다.

"네가 이능력자로 각성하는 계기가 괴수의 습격이라고 치자. 그래서 지금 이런 짓을 하는게 맞다고 보냐? 엉?"

"괴수에게 습격당해 죽을뻔한게 일주일 전이에요. 잊었어요? 도대체 뭐가 그렇게 급한거에요?"

가을은 초조한 눈빛으로 입을 꾹 닫았다. 두 눈은 피닉스의 손목에 걸린 스마트폰에 걸려있었다.

피닉스는 눈치를 채고 손목을 가렸다.

"안 돼요."

"전화도 아니에요! 문자 한 통이면 되잖아요!"

"문자 한 통이라도 살아있다는걸 알게 되겠죠. 그게 부모님이시라면 더더욱. 그러면 서울에 구조대가 투입되고 가을 씨를 추적할 거에요. 아직은 안 됩니다."

"그건...."

가을은 고개를 떨구었다. 덕배가 알음알음 알려준 신서울의 근황 속 천가을은 이미 망자가 되어 있었다.

시신조차 없는 관을 붙잡고 늘어지는 부모를 보며 가을이 얼마나 오열했는지 덕배는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진짜 잠깐이라도, 1분이라도 하게 해줘요. 지금 서울에 있다. 당장은 못 내려간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달라. 그 정도는 해줄수 있잖아요?"

"해줄수 없네요. 이능력자로 각성하면 연락하게 해줄게요."

그래서 덕배는 피닉스가 정말 지독한 자라고 생각했다. 가을이 몸을 돌려 덕배의 스마트워치로 달려들었다.

"큭!"

가을에게 향하려던 손이 번쩍들어올려졌다. 자의로 올린게 아님을 표정에서 읽은 가을이 피닉스를 노려봤다.

"조덕배씨에게는 이미 명령을 내려뒀어요. 이능력자 각성 이외에는 절대 도와주지말라고. 특히 그 연락은 더."

"...피닉스 씨는 참 나쁜 사람이에요."

"나흘만 더 기다려요. 청화단이 자리잡을때까지. 그때까지도 각성 못하면 그 때는 제가 직접 신서울에 데려가 줄게요."

"...약속한 겁니다."

어깨를 으쓱인 피닉스가 오른손를 촉수꺼비에게서 뽑아냈다. 핵을 잃은 촉수꺼비의 몸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가을은 온전한 의자에 앉아 책상에 엎드려 얼굴을 파묻었다.

덕배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었다.

"꼭 이렇게까지 몰아세워야하나? 그냥 신서울에 잠깐 내려다주고 오면 되잖아?"

"제가 그동안 평생 옆에서 있어줄 수도 없잖아요. 스스로 지킬 힘 없이는 못 보내요. 절대로."

"내가 보기엔 네가 천가을에게 과도하게 집착같은데. 쓸데없이."

"...조용히해요."

텅.

촉수꺼비의 몸 안에 있던 무언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피닉스는 그것을 재빨리 낚아 챘다.

"그거 국회의원 뱃지 아닌가? 근데 이렇게 커?"

"네. 신서울로 내려가지 않은 국회의원이 괴수로 변해버린거죠. 이건 그냥 외부 껍질에요. 촉수꺼비의 코어를 지키는 외피."

피닉스는 제 손바닥을 가득 채우는 뱃지를 손으로 꽉쥐고 태워버렸다. 창염의 초고온에 녹아버린 뱃지는 피닉스의 손을 타고 바닥에 흘렀다.

화륵.

뱃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붉은 불꽃을 일으켰다. 덕배가 화들짝 놀라 소화기를 찾으러다녔다.

"그럴 필요없어요. 일부러 불지르는 거니까."

피닉스가 생긋 웃으며 불씨를 발로찼다. 화속성 마력을 실은 발길질에 불은 기름을 부은듯 거세게 퍼져나갔다.

"여기 국회의사당이야!!"

"이제는 버려진 곳 일 뿐이에요. 그리고 신서울에 제대로 돌아가는게 있으니까 이제 문제 없습니다."

피닉스는 주먹쥔 손을 그대로 사제복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촉수꺼비는 대외적으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괴수에요. 하지만 정부에서는 그 존재를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죠. 촉수꺼비의 존재는 그들에게 있어 치욕인 동시에 알려저선 안 될 흑역사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가을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피닉스는 불꽃을 더 키우며 촉수꺼비의 점액질을 태웠다.

"현 대통령, 그러니까 당시 제2야당의 대표였던 사람의 어두운 과거중에 하나에요."

피닉스는 본회의장 입구에 섰다.

"정적을 제거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람. 행동만 두고보면 빌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에요."

목적과 의도는 거창하고 숭고하다고 포장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는 온갖 피와 어둠이 점철되어있다. 가을은 피닉스가 들려준 대통령의 비사에 떨떠름하게 웃었다.

"그럼 그 두꺼비 괴수가 혹시...."

"우울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러면 이제 슬슬 점심시간도 됐고 하니까."

피닉스는 스마트워치를 두드리며 웃었다.

"아지트로 돌아갈까요?"

스크린에는 구로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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