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1부 2장 (16)
모든 간부, 그러니까 세뇌정령과의 전투는 총 두 번을 치르게 된다.
첫번째 페이즈에서 세뇌된 간부와의 싸우다가폭주하기 시작하는 두번째 페이즈에서 승리하면 세뇌가 풀리게 된다.
이 단계가 쉐도우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첫 목숨이 인간을 죽이려는 학살 기계라면, 두 번째 단계는 세계를 파멸시키려는 파괴병기.
'드래곤으로 변하지.'
설정상 악마종이라고 불리우는 것들을 부르는 명칭은 속성-마-룡. 1페이즈에는 원본 정령의 모습을 띄지만, 2페이즈 폭주하는 단계에는 '드래곤'의 모습을 띄게 된다.
'그럼 어디 어떻게 잡는지 볼까.'
나는 캔커피를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캔이 옥상 바닥에 닿는 순간.
캬오오오오오!!
쉐도우 피닉스, 화마룡이 울부짖었다.
* * *
"크윽?!"
화마룡으로부터 내뿜어진 열기에 이승형은 팔을 교차하며 얼굴을 가렸다.
서있기조차 어려운 엄청난 마력의 파장. 악마종이 터뜨린 검은 불꽃은 히어로들의 진격을 막아세웠다.
크르르르.
실체없이 보라색 불꽃으로 타오르던 괴조는 사라지고, 온 몸이 검은빛으로 물든 드래곤이 이빨을 갈고 있었다.
"......비룡?!"
와이번이라고도 불리는 괴수. 화마룡은 유럽 등지에서 날뛰는 A급 괴수의 모습과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온 몸의 비늘 사이로 검은 불꽃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
[정신차려! 오히려 잘 된거다! 스스로 배리어를 풀었어!]
유영호의 질타에 히어로들이 정신을 차렸다.
드래곤의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은 악마종이 배리어를 벗고 실체를 드러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스스로 배리어를 벗어던진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짐작가는 부분은 있었다.
"<집정관>! 아직 불꽃이 남아있습니다!"
등이 아닌 옆구리에서 팔처럼 튀어나온 피막의 날개. 화마룡은 비대칭의 날개를 하늘로 날아오는데 쓰지않고 제 등을 가리고 있었다.
승형은 그 날개에 가려진 푸른 불꽃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한가?]
"감입니다!"
승형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히어로들이 불안불안한 눈빛으로 승형과 화마룡을 번갈아봤다.
[.......]
유영호가 침묵했다. 화마룡의 저 날개를 치우지 않는 이상 '약점'이라고 판단된 푸른 불꽃이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드래곤의 형태로 바뀌며 푸른 불꽃이 사라졌다면. 이승형이 착각한거라면.
영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휘관이 확실한 정보 없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승형.]
"네!"
[믿는다.]
그래서 영호는 이승형을 믿기로 했다. S급의 감각. 영호가 닿지 못한 경지에서 보이는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광검과 설화공주,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S급들의 기억을 떠올리며.
[전 히어로 총공격 준비! 상대는 날개로 제 약점을 숨긴 겁쟁이다! 우사! 풍백!]
"말 안해도 압니다!"
우사가 지팡이를 휘둘렀다. 허공에서 뭉쳐진 물줄기는 날카로운 창이 되었다.
새애액!
우사가 쏜 물의 창이 호선을 그리며 화마룡의 목을 스쳤다. 창끝은 정확히 날개와 몸통 사이의 빈틈을 찔렀다.
화르륵!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화마룡은 견제에 가까운 공격에도 과한 마력을 터뜨렸다.
그 순간, 바람이 화마룡의 뿔을 스쳤다.
"영감님!"
"오오냐!"
이미 등 위쪽으로 달려온 풍백은 허공에서 두 다리를 돌려찼다. 다리를 휘감은 질풍이 피막 아래를 훑으며 치솟았다.
캬아아악!
화마룡은 풍백에게 꼬리를 휘둘렀다. 하지만 풍백은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며 아래로 미끄러졌다.
[화기 사용자는 화마룡의 시선을 끌어! 이능력자는 목표 지점을 향해 쏴라!]
"들었지?! 3, 2, 1, 발사!"
성오의 카운트와 함께 사냥꾼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총탄은 화마룡의 비늘에 튕겨나갔지만, 화마룡의 신경을 긁으며 시선을 돌리는데에는 성공했다.
성오는 제 어깨에 들린 박격포 포구에 포탄을 집어넣었다. 격침을 찌른 추진체에서 가스가 폭발하며 포탄은 화마룡의 날개 위로 떨어졌다.
콰아아앙!
화약대신 들어있는 마력 덩어리가 화마룡의 등을 때렸다. 화마룡의 한 쪽 다리가 주저앉았다.
화아아악!
화마룡이 머리를 들어올리며 입을 벌렸다. 가는 혓바닥 위로 응집되는 마력 반응에 영호가 소리쳤다.
[브레스!]
영호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여 화마룡이 쏘아낼 브레스가 덮칠 예상 경로를 표시했다.
"으억!"
사선에 들어가있던 히어로들이 황급히 사선에서 물러서며 피했다. 김성오를 따라온 동료 사냥꾼이 옆에 있던 김성오를 찾았다.
"형님?!"
김성오는 사선을 따라 운동장 벽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사선의 끝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양선우가 있었다.
[뭐?!]
성오의 이상행동을 눈치챈 영호가 경악했다.
[쟤가 왜 아직 여기있어?!]
전선 열외 판정에 따라 D급 히어로에게 양선우를 데리고 전장을 이탈하라고 지시했었다. 영호가 재빨리 사라진 신호를 추적하자, D급 히어로는 홀로 안양을 벗어나고 있었다.
[풍백!]
영호가 부르기도 전에 이미 풍백은 바람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화마룡은 이미 고개를 아래로 숙였고,
콰아아아아----!!
종합운동장의 바닥을 긁으며 브레스를 쏘았다. 풍백의 재빠른 발놀림보다 브레스는 더 빨랐다.
"!!"
양선우를 부축하던 성오는 쏘아지는 검은 불꽃에 두 눈을 질끈감고 선우를 감싸안았다.
'죽는건가.'
성오의 앞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승형!]
"흐아아아!"
언제 이곳까지 온건지, 성오의 앞에 선 승형이 주먹에 불꽃을 휘감아 땅바닥을 내려쳤다.
콰앙!
땅을 가른 사이로 붉은 불기둥이 치솟아올랐다. 화마룡의 브레스가 승형의 불꽃과 부딪혔다.
"!!"
화마룡의 브레스는 승형의 불기둥을 뚫지 못하고 빗겨나갔다. 검붉은 불줄기는 양 옆으로 퍼지며 흩어졌다.
[이승형!]
영호의 질책어린 목소리가 워치에 울렸다. 승형은 숨을 고르며 꿇었던 한 쪽 무릎을 들어올렸다. 아직 승형의 주먹에는 불꽃이 감아져 있었다.
푸쉬이이....
승형의 마력을 이기지 못한 검은 불꽃이 그 힘을 잃고 꺼졌다. 화마룡으로부터 승형까지 브레스가 훑은 길에는 아직 검은 불꽃이 운동장을 태우고 있었다.
* * *
"오. 주제에 활용은 잘하네요?"
나는 베일을 만지작거리며 감탄했다. 화속성 청년 히어로는 제 심장에 박힌 창염의 마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고 있었다.
오로지 창염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속성, '정화'.
부정한 것을 태우는 순수한 불꽃은 부정에 오염된 마력을 근원으로 하는 이계신의 하드카운터다.
그래서 창염의 힘을 온전히 이어받은 원작 주인공이 이계신을 죽일 수 있었던 거고.
"...아, 씁."
괜시리 씁쓸해졌다. 내가 '정령'만 아니었어도 테라에 쳐들어가 이계신 한 줌도 남김없이 태워버릴텐데.
정령의 힘을 이어받은 인간만이, 이계신을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창염이 뿜어내는 무한한 화력에 취해있는 저 청년으로는 이계신을 이길 수 없다. 오직 주인공만이 창염을 온전히 심장에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아. 좋은 생각났다."
나는 미니피닉스의 마력을 움직여 그 형태를 불씨 형태로 바꾸었다. 인간은 커녕 이능력자에게도 보이지 않을 아주 미세한 마력 입자.
나는 원격으로 그 입자를 화속성 히어로를 향해 움직였다.
"역시 직관이 꿀잼이죠."
* * *
"괜찮아요?"
승형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성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 감사합니다!"
"뭘요. 당연한 것을."
생긋 웃으며 발걸음을 앞으로 옮기는 승형의 뒷모습이, 성오는 꼭 옛 불주먹을 떠올리게 해 감정이 북받쳐올랐다.
"아주 겁이 없구만."
승형의 옆에 내려앉은 풍백이 스틱을 들어 승형의 머리를 툭툭 쳤다. 승형은 걱정어린 그 훈계에 머쓱하게 웃었다.
"아하하."
[이승형! 무슨 위험한 짓을 하는거야?!]
워치를 타고 영호의 고함소리가 울렸다.
[브레스를 정면에서 맞으려는 미친놈이 누가 있어! 원탁도 피하라는게 마룡들 브레스인데!]
"괜찮습니다."
승형이 다리에 불꽃이 휩싸였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앞에는 검은 불꽃의 잔불씨가 아직 남아있었다.
푸스스....
승형의 발이 닫는 곳마다 검은 불꽃은 힘없이 사그라들었다. 승형이 워치에 대고 말했다.
"이 힘이라면, 가능해요. 이제 시간 얼마 안남았잖아요."
청화의 거신은 말했다. 오염된 마력을 태우는 정화의 불꽃이라고.
"제 안의 불꽃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승형이 앞으로 달렸다. 그 속도는 풍백마저도 놀랄 정도로 빨라, 영호가 뭐라 명령을 내리지도 못할 정도였다.
캬아아악!
승형이 워치의 시각을 확인했다.
7시 28분. 악마종의 출현에 따라 외국 히어로들의 개입이 가능해지는 '카운트다운'이 발동되고 벌써 58분이 지난 시각.
앞으로 2분 안에 괴조를 쓰러뜨리지 못하면 영해 밖에서 대기하던 중국과 일본의 히어로들이 달려올 것이다.
'일격에!'
승형이 한 걸음 크게 앞으로 뛰며 마력을 쥐어짰다.
온 몸의 막힌 혈관을 뚫으며 내달리는 마력은 폭주기관차와도 같았다. 승형의 피부가 시뻘게지며 전신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으으윽!"
오버히트. 화염의 이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들에게 발생하는 마력의 폭주현상. 습기로 가득찬 필드는 승형의 주변에서 빠르게 수증기를 일으키며 기화되고 있었다.
"집정관! 이승형 오버히트!"
[그만! 이승형! 멈춰! 다른 방법을 찾으면 돼!]
영호가 만류한다. 아무리 시간이 급하더라도 미래가 창창한, 특히 갓 S급으로 각성한 젊은이를 희생시킬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허공에 뛰어오른 승형의 귀에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 이 힘을 원하는가?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 두 눈에 핏줄까지 터지며 흐릿해지는 시야 끝에는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는 거대한 새가 있었다.
검은 불꽃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정순하고 맑게 타오르는 창염의 불사조.
승형은 심장 안쪽에서 타오르는 따스한 기운을 느꼈다.
'오염된 마력마저 태워버릴 정화의 불꽃.'
승형은 가슴 안쪽에서부터 차오르는 뜨거운 마력에 몸을 맡겼다. 온 몸에서 피어오르던 붉은 불꽃이 순식간에 하얗게 물들었다.
"으아아아아아!!"
고통과 환희가 뒤섞인 포효와 함께 승형은 주먹을 크게 어깨뒤로 넘겼다. 하얗게 불타오른 불꽃 사이로 미약한 연청색을 띄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악!!
화마룡은 승형의 불꽃에 서린 정령의 기운을 느꼈다. 비룡의 머리 전체가 검은 불꽃으로 타올랐다.
덥썩!
화마룡의 목이 순식간에 길어지며 승형을 집어삼켰다. 성냥불같은 승형의 불꽃은 거대한 흑염에 잡아먹혔다.
"!!"
빛 한 점 없는 칠흑같은 어둠. 승형은 화마룡의 입 속에서도 타오르는 검은 불꽃의 기운에 마음이 꺾일 것 같았다.
분노, 살의, 죽음, 증오. 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찌꺼기만 남은 가운데, 승형은 그 검은 불꽃에서 단 하나의 강렬한 의지를 느꼈다.
- 이 세상 모든 것을 파괴하겠다.
승형의 온 몸에 검은 화염이 휩쌓였다. 말아쥔 주먹의 흰 불꽃이 서서히 검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시야가 어두워졌다.
순간, 머릿속에 한 인영이 스쳐지나갔다.
- 겨우 이 정도인가요?
청화의 거신과 함께 있던 사제복의 여인. 베일을 둘러쓴 그녀는 승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는 푸른 불꽃이 작게 피어올라있었다.
- 겨우 이 정도로 세계를 지키겠다고 한 건가요?
승형은 여인이 내미는 푸른 불꽃을 건네받았다. 여인의 몸은 푸른 불꽃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번쩍!
승형이 푸른 안광을 띄며 눈을 떴다. 푸르게 물든 눈동자 속에는 창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화르르륵!
검은 불꽃이 더욱 승형의 몸을 휘감았다. 승형을 타락시키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부수고 태워버리게 만들려는 달콤한 유혹.
승형은 그에 굴복하지않고, 건네받은 힘의 대가를 떠올렸다.
세계의 평화.
"으 아 아 아 아 아!!"
승형은 기합과 함께 주먹을 앞으로 내질렀다.
청명한 하늘의 색을 담은듯한 연청의 불꽃이, 화마룡의 목을 꿰뚫었다.
콰아아아앙!
화마룡의 뒷통수를 뚫고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2020년 4월 4일 7시 29분.
미발견 악마종, '화마룡'. 퇴치.
* * *
가을은 굳게 닫힌 옥상 문을 열었다.
끼이익.
녹슨 철문이 쇳소리를 내며 서서히 밀렸다. 차가운 밤공기가 가을의 볼을 스쳤다.
"참 아름다운 저녁이에요. 그렇죠?"
피닉스는 불꽃을 엮어 짠 흔들의자에 몸을 기대어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태양이 사라지고 달이 떠오르기 시작한 밤하늘에는 뉘엿뉘엿 별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서울 밤 하늘이 이렇게 맑은건 정말 오랜만에 보는것 같아요."
"...그래요?"
가을은 고개를 들었다. 청명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었다. 피닉스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제복은 구김없이 펼쳐져있었다.
"그래서 마음은 정했나요?"
"네."
"오호.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가을은 제 가슴에 오른손을 올렸다. 부릅뜬 눈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피닉스가 걸어와 가을의 앞에 마주섰다. 저보다 주먹 하나는 작은 피닉스가 내뿜는 기세에 가을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려다 간신히 발을 멈췄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지키고 싶은 거?"
가을은 손바닥으로 제 가슴을 두드렸다.
"제 몸, 제 가족, 제 꿈."
"가을씨의 꿈이요?"
피닉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가을은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천가을이라는 배우을 알게 할 거에요. 한국 최고의 여배우. 전 세계 모두가 여배우하면 '천가을'을 떠올릴 수 있도록."
피닉스가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그는 천가을이라는 존재가 품고있는 꿈을 알지 못했다.
그가 알던 천가을이 바라던 것은 단 하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며 끔찍한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 뿐이었다.
"배우, 군요."
"네. 아직 하고 싶은 배역도 많아요. 천만 영화도 필모그래피에 넣고 싶고, 헐리우드도 가보고 싶어요. 서울에 온 것도 결국에는 좀 더 사람들에게 제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었죠."
스크린 위에서 빛났어야 할 배우는 시궁창에 처박혔었다. 천가을은 살아남기위해 목숨같이 소중히 여겼던 '연기'는 어느순간부터 사람을 죽이기 위한 수단이 되어있었다.
피닉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제가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부탁해요."
천가을은 고개를 떨군 피닉스의 얼굴을 들어올렸다. 피닉스는 고운 아미를 일그러뜨리며 금방이라도 울것만 같았다.
"저를 이능력자로 만들어주세요. 제가 제 자리로 돌아가서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이능력자가 되었는데도 배우를 계속 할 거에요?"
가을은 그저 눈을 감았다.
"후우, 정말...."
피닉스는 눈물을 터트릴것처럼 미소지었다.
"정말 당신은, 제가 아는 그 사람이랑 너무 다르네요."
"네?"
피닉스는 천가을을 다시 끌어안았다.
"그래서 정말 고마워요. 당신에 대해 알려줘서. 내가 당신을 죽이거나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게 해줘서."
"진짜로 그럴 생각이었어요?"
"네. 아까 강의실에서 말했던 여자의 이야기. 누구일 것 같아요?"
가을은 대답을 우물쭈물했다.
"피, 피닉스 씨 아닌가요?"
"아니에요. 당신 이야기에요."
순간, 가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네?"
"제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괴수들에게 윤간당했을 거에요. 차원문이 닫히고 힘을 잃은 괴수를 사냥꾼들이 사냥해, 천가을을 데려가서 지하에서 윤간하는거죠."
"......설마."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요. 하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잊지마요."
피닉스가 가을을 더 꼭 끌어안았다.
"제가 옆에 있어줄게요. 당신이 그런 고통스러운 미래를 겪지 않도록. 가을씨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며 당신의 꿈을 놓지 않도록, 제가 힘이 되어 줄게요."
"어, 그, 그러니까...."
가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이승형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진한 감정이 가을의 마음을 간질였다. 피닉스는 왼 손으로 가을의 앞머리를 넘겨주며 볼을 감쌌다.
"천가을씨."
"네, 네?!"
피닉스가 웃으며 까치발을 들고 가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니까 죽어줘야겠어요."
"예?"
창염이 가을의 심장을 꿰뚫었다.
가을의 피가 옥상에 흩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