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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9화 (29/1,497)

〈 29화 〉1부 2장 (15)

"...당신은 알고 계셨나요?"

가을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펑펑 눈물을 터뜨릴것처럼 떨렸다. 덕배는 침음성을 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몰랐다."

피닉스가 인천에서 했던 학살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피닉스가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바위처럼 굳은 덕배의 심장을 후벼팠다.

"피닉스 씨는."

가을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닦았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고도 저렇게 있을 수가 있죠?"

직접 겪어보지 않은 자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가을은 청화가 담담히 내뱉는 '그 여자'가 누구인지 대번에 짐작할 수 있었다.

"글쎄."

덕배는 그저 말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해도 덕배는 이야기속의 가해자들과 비슷한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내가 저거에 대해서 잘은 몰라도 그거 하나는 알고있다."

덕배는 피닉스가 나간 창문틀에 손을 올렸다.

"어딘가 나사풀어놓고 사는것처럼 보여도, 이능력 하나만큼은 최정상급이라고."

"어느정도로요?"

"...원탁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저를 무기로 삼아 일격에 후드려 패 날개를 꺾어버린 불타는 괴조. 그것은 분명 악마종이라고 하는 괴물이었다.

- 5분만 가지고 놀아도 이길정도?

그런 괴물을 상대로 피닉스는 호언장담했고, 실제로 괴조를 농락했다. 피닉스가 보여준 지금까지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싸우기 귀찮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일 것이라고 덕배는 확신했다.

"원탁...."

세계 최고의 히어로들. 그들보다 강해지려면 얼마나 독하게 노력하고 또 노력했을까. 눈물을 모두 닦아낸 가을은 강의실을 박차고 나섰다.

"어디가?!"

"결정했어요!"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는 가을의 두 눈에는 의지가 충만해져있었다.

* * *

<오후 7시 10분, 구 안양종합운동장.>

"압박감 장난아닌데."

A급 히어로 <우사>는 땅에 꽂은 나무지팡이를 타고 오는 진동에 흔들리는 마력을 정돈했다.

"이거 진짜 잡을 수 있는거요?"

스마트워치에서 떠오른 화상에는 관악산의 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아군 히어로와 그 뒤를 쫓는 악마종의 신호가 계속해서 남하하고 있었다.

산 사이를 타고 내려와 민가를 피해 일직선으로 달리는 경로의 끝은 우사와 여러 히어로들이 대기하고 있는 옛 안양종합운동장의 폐허였다.

"잡아야지. 별 수 있나? 끌끌."

백발이 성성한 노인, <풍백>은 철제 스틱을 골프채처럼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다른 히어로들 모두가 제각각 무구와 마력을 정비하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악마종 토벌이라니. 영감님은 광검이나 설화공주 없이 가능할거라고 보시오?"

"불곰탱이 그 아이가 에스급 됐다 안하디. 집정관께서 말씀하신거니 믿어야지."

"각성한지 한 시간도 안 지난 애송이를?"

우사는 혀를 찼다. A급 히어로로서 촉망받던 인재가 갑자기 배우하겠다고 나선 모종의 이유는 히어로계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가십거리였다.

"여색에 빠져서 영웅의 사명도 내팽겨치는 놈이 <화권>은 무슨. 영감님은 그 이름을 승형이놈이 이어받는게 맞다고 생각하우?"

히어로의 등급별 닉네임을 가장 먼저 정하는 권한이 지휘관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화권>이 갖는 이름값은 한국에서 엄청났다.

화권(火拳). 불주먹.

평양사태에서 죽은 한국의 S급 히어로.

"껄껄. 결국 이름이 중요한게 아니지 않나? 중요한건 저 아이가 그 이름을 이어받을만한 능력이 있는지가 중요한게지."

"영감님. 불주먹 그 분을 누가 죽게 만들었습니까? 다 대통령 그 양반-"

"그만. 그 이상 말하지 마시게."

풍백이 바람을 일으켜 소리를 지웠다. 스틱을 이리저리 돌리며 눈짓을 한 끝에는 같은 제복을 입은 히어로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그들의 와이셔츠 카라에는 소나무 문양의 뱃지가 달려있었다.

우사는 혀를 차며 눈을 돌렸다.

"...정부의 사냥개새끼들이."

"<소나무 부대>라는 이름이 있지않은가? 이 노인네는 70년대 생각나서 좋기만 하구만."

"거 지랄마십쇼. 영감님 다리 아작난거 그 때 아닙니까?"

"뭐 어떤가! 어차피 그 놈들 다 뒤졌는데. 반평생을 다리절면서 살았지만 그 놈의 이능력 덕분에 이렇게 늙어서라도 팔팔 뛰어다니는 재미를 알려줬으니 감사라도 해야지! 무덤 찾으면 소줏병이라도 던지고 싶은 마음일세. 끌끌."

"아, 예. 마음대로 하십쇼."

우사는 궁시렁거리며 지팡이를 들어 마력을 일으켰다. 몸에서 타고 흐른 마력이 지팡이를 돌며 증폭되어 공기중에 퍼졌다.

"신령이시여. 죄많은 아래것들을 어엿비 여기시어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대기가 습해졌다. 운동장 트랙에 난 잡초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늘은 청명(淸明)하기 이를데 없사오나, 당신의 백성들이 지금 두려움에 떨고 있나니."

떨리던 우사의 지팡이가 땅에 저절로 박혔다. 우사는 스마트워치에 대고 말했다.

"여기는 <우사>. '기우제' 준비 완료."

[<집정관> 오더. 대상이 들어오는 즉시 '치킨 파티'를 시작.]

"알겠수."

오퍼레이터가 전달한 명령을 전달받은 우사는 작전명을 곱씹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작전명이 치킨파티가 뭐요? 좀 멋들어지게 못 짓나?"

"좋은 날 아닌가! 껄껄. 에스급이 한 명 더 늘어났으니, 이 나라의 흥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기쁜 날은 다함께 축배를 들어야지."

풍백은 와이셔츠의 첫 단추를 끌러내리고 두 다리에 바람을 감아 허공을 밟았다. 우사는 풍백이 허리춤에 찬 페트병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영감님 막걸리 드시지 마쇼. 또 알코올 중독으로 쓰러질라."

"크허허! 이게 내 마력의 원천이라니까!"

수염을 쓸어내리며 병에든 흰 액체를 들이키는 풍백을 보며 운사는 지도로 눈을 돌렸다.

"거 빨리도 내려왔구만."

어느새 붉은 점으로 표시된 적은 수목원을 지나 민가에 진입했다.

"그럼 이제 슬슬...으잉?"

운사는 운동장으로 들어오는 노란색 점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직까지 혼란에 빠져있는 A급 히어로 템페스트 레이디와 그녀를 부축하는 사냥꾼 김성오가 있었다.

"<마포> 네가 여긴 무슨 일이냐?"

"오랜만입니다, 우사 형님."

김성오는 양선우의 스마트워치에 뜬 스크린을 가리켰다.

"소집 신호는 떴는데 얘가 아직 이모양이라."

"...끄응."

우사가 본부와 교신했다.

"우사. A급 <템페스트 레이디>의 전선 열외 판정을 요청한다."

[어째서죠?]

"트라우마 걸린 것 같다. 대신 마포가 왔으니 집정관께 알리도록."

성오는 자연스레 악마종 사냥에 저를 투입시키려는 우사의 횡포에 화들짝놀랐다.

"아니, 형님! 저 사냥꾼이에요!"

"전직 히어로였지. 자네 지금 등에 메고온 것도 현역때 쓰던 물건이잖나."

성오의 등에는 그가 히어로를 은퇴하기 전에 쓰던 박격포가 메어져 있었다. 그의 손은 트라우마에 떠는 양선우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크허허! 마누라 승진 누락될까봐 챙겨오는거 보게!"

"아, 풍백 어르신! 글쎄 얘랑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니라니까요?!"

삐삐삐삐!

스마트워치에 적의 접근을 알리는 신호음이 울렸다. 성오는 재빨리 제가 들고온 박격포를 어깨위로 들쳐올렸다.

"나중에 정산 제대로 해줘요. 화력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지원할테니."

"오냐. 정부에서 나가리시키면 내 사비털어서라도 돈 주마."

성오는 양선우를 풍백에게 넘기고 운동장 외곽으로 달려갔다. 이미 외곽에는 성오와 같은 사냥꾼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히어로들과는 별개로 위험을 무릅쓰고 지원을 나온 사냥꾼들. 그들은 악마종을 상대로 집단전을 벌이는 '레이드'에 참여해 협회의 참여 수당을 받을 생각이 만만이었다.

■■■■■!!

드디어 괴조의 포효가 이곳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장의 이능력자들 모두가 제 무기를 들어올리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전투에 앞서, 잘 들어라.]

집정관, 아니 유영호가 직접 육성으로 명령을 전달했다.

[절대로 죽지마라. 다쳐도 좋고, 쓰러져도 좋다. 하지만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된다. 알겠나?]

"...새끼."

우사는 살얼음판같이 냉정을 가장하는 제 친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숨을 골랐다. 그의 등에 짊어진 히어로의 목숨은 이 장소에만 무려 40에 이르렀다.

"영감. 들었죠? 뒤지지 마쇼."

"끌끌끌. 낙지 새끼 관짝 보내기 전에는 염라대왕 만날 생각 없다, 이놈아."

풍백이 넥타이마저 끌어내리며 달려갈 자세를 잡았다. 우사는 땅에 꽂힌 지팡이에 양 손을 올리며 외쳤다.

"레이드 준비! 악마종에 대한 메뉴얼대로 움직인다!"

우오오오오오!!!

히어로들과 사냥꾼들이 각자 함성을 지르며 사기를 드높였다.

그와 동시에, 북쪽의 문으로 한 남자가 달려왔다.

"으아아아아악!"

악을 써대며 전력으로 달려온 승형의 두 발은 디딘 길에 불씨를 흘렸다. 그것이 꼭 곧 나타날 거대한 손님을 맞이하는 레드카펫같았다.

콰아앙!

■■■■■■!

괴조가 북문을 통째로 부숴버리며 운동장에 들어온 괴조는 여전히 그 부리를 승형을 향해 겨누고 있었다.

[우사!]

저를 부르는 유영호의 목소리에 우사는 곧바로 지팡이를 높이 치켜올렸다. 하늘높이 솟대처럼 솟은 지팡이이 위로 엄청난 물의 덩어리가 모여 압축되기 시작했다.

"비를 내리소서!"

우사가 지팡이를 양손으로 잡고 바닥을 찍었다. 동시에 집채만큼 커졌던 물덩이가 풍선처럼 터지며 필드 전체로 흩어졌다.

■■■■!!

제 몸에 마력이 깃든 물이 튀자 괴조가 신경질을 부렸다. 데미지는 커녕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지만, 필드 전체가 수속성의 마력으로 덮였다는데 큰 의의가 있었다.

['수중필드' 구축! A팀 즉시 공격 시작!]

유영호의 지시에 히어로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총알, 화살, 마력의 구 등 온갖 공격들이 괴조에게 쇄도했다.

■■■■...!

괴조는 그것을 남아있는 한 쪽 날개를 횡으로 휘둘러 전부 태워버렸다. 우사가 혀를차며 지팡이를 빙빙 돌렸다.

"A팀 마력충전! 사수들은 준비된 즉시 쏴버려!"

사수들이 한 걸음 물러서며 마력을 충전했다. 괴조가 발을 오므리며 뛰어오려던 때, 괴조의 머리 근처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쏴! 틈을 우리가 메운다!"

김성오의 지시하에 사냥꾼들이 일사분란하게 포격을 시작했다. 대부분이 현대화기라 괴조에게 데미지는 넣을 수 없었지만,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영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B팀 접근! 데미지 넣을 생각말고 주의만 끌어!]

"노인네 차례군, 끌끌!"

풍백이 철제스틱을 꼬나쥐고 달렸다. 동시에 다른 여섯의 히어로도 괴조를 향해 몸을 날렸다.

새애애액!

바람을 타고 포연을 헤치며 뛰어올라 괴조의 머리 옆을 스쳐지나가는 풍백은 그대로 스틱끝에 마력을 뭉쳐넣었다.

"흡!"

스틱끝에 모인 칼바람이 괴조의 눈을 덮쳤다. 칼바람은 괴조의 눈꺼풀을 긁으며 터졌고, 괴조가 풍백을 향해 입을 돌렸다.

■■■■!

"어이쿠!"

풍백은 미끄러지듯 괴수의 옆구리를 질주하며 괴조가 쏘아낸 화염숨결을 피했다. 정장 상의 끝자락에 자색 화염의 잔불이 묻어있었다.

"이런!"

풍백은 정장 상의를 벗어던지고 그대로 허공을 밟고 달렸다.

괴조의 꽁지깃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아슬아슬한 그 움직임에 영호가 소리를 질렀다.

[조심하십시오, 주옹!]

"아직은 쌩쌩하다, 이 놈아!"

관중석 벽을 짚은 풍백이 마력을 재충전하는 사이, 괴조가 땅을 크게 굴렀다.

끼아아아아아-----!

세상을 증오하는듯한 절규어린 비명. 마력이 실린 음파 공격이 히어로들의 고막을 때렸다.

"큭?!"

막 큰 공격을 준비하려던 우사의 마력이 크게 흔들리며 주문이 끊겼다. 주변에 용솟음치던 물들이 한순간에 바닥에 흩어졌다.

[우사는 다시 캐스팅! 샤우팅 뒤의 공격에 대비하라!]

영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조의 몸이 꿈틀댄다. 자염(紫炎)의 마력이 뭉친 괴조의 옆구리에는 새로운 날개라 펼쳐졌다.

콰직!

괴조는 비대칭의 날개로 하늘을 날아올랐다. 날아올랐다기보다는 닭이 뛰어오르는듯 점프했다.

"산개!"

사선에 있던 히어로들이 재빨리 옆으로 달렸다. 괴조는 허공에서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마력을 방사했다.

캬아아아아악!!

브레스. 악마종 고유의 공격. 운동장 바닥을 긁으며 관중석까지 파괴한 그 파괴광선의 궤적에는 잔불이 타들어가며 수증기를 내고 있었다.

"집정관! 역시!"

[그래! 신종이다!]

기존 여섯 종의 악마종과는 전혀 다른 특성을 보이는 형태와 마력패턴. 긴가민가하던 예상은 방금의 화염 브레스로 확신이 되었다.

[지금부터 적을 '화마룡(火魔龍)'으로 확정한다!]

히어로들은 졸지에 공략교본도 없이 신종의 괴수, 화마룡와 맞딱뜨리게 된 것이다.

"놈!"

가장 빨리 마력을 재정비한 풍백이 하늘을 달렸다. 바람의 마력을 두 다리에 두른 허공답보의 질주는 하늘에 떠오른 화마룡보다 더 높을 곳에 이르렀다.

[영감님! 위험합니다!]

"시간이 없잖나! 내는 왜놈들 이 땅에 들어오는거 죽어도 못 본다!"

풍백이 다리에 휘감았던 바람을 그대로 화마의 날개에 내려찍었다. 돌풍이 화마룡의 등을 긁었다.

■■■■?!

화마룡이 고통스런 괴성을 지르며 날개짓했다.

풍백이 날린 바람은 미약했지만, 화마룡의 날갯죽지에 있던 아주 작은 창염(蒼炎)의 불씨를 흔들리게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불꽃. 그것이 풍백의 바람에 흔들려 횃불만큼 커졌다.

"...!"

풍백은 다급히 스마트워치를 들었다.

"약점발견! 등 위에 날갯죽지! 거기에 색깔이 다른 불꽃이 타고있다!"

[피하십시오!]

"뭣?!"

충격에 화마룡이 균형을 잃고 지상으로 낙하했다. 그 과정에서 마구잡이로 날뛰며 움직이던 날개가 풍백을 덮쳤다.

[엄호!]

"영감님!"

우사가 바닥을 지팡이로 때려 굵은 물줄기를 쏘았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솟아오른 물줄기는 화마룡의 날개를 뚫는데 성공했지만, 아직 그 깃털이 풍백을 쓸어버리려했다.

"칫!"

풍백이 급히 다리에 바람을 일으켜 깃털을 피하려했다. 하지만 이미 화마룡의 깃털은 풍백의 지척까지 쏘아져있었다.

'육시럴.'

풍백은 두눈을 부릅뜨고 제 심장을 찌르려는 깃털을 노려봤다. 진보라색으로 타오르는 깃털끝은 창처럼 날카로웠다.

화르륵!

풍백의 몸이 누군가의 손에 붙들렸다. 깃털은 풍백의 발밑을 스치며 벽에 박혔다.

"괜찮으십니까?!"

얼떨떨해진 풍백의 눈에는 자신을 낚아챈 승형이 들어왔다. 움직이는 경로에 잔불씨를 흘리며 날아다니는 승형에 풍백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얼마나 강해졌길래 그리도 마력이 넘쳐흐르는감?"

"저도 모를 정도로요!"

뛰어오른 승형의 몸이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졌다.

풍백이 다시 다리에 바람을 둘러 땅에 안전히 착지했다. 우사가 성을내며 소리질렀다.

"영감님!"

"아, 그래. 미안하다."

약점은 발견했지만 죽어서야 말짱도루묵이다. 영호는 남들 모르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풍백의 워치에서 찍힌 화상을 모두에게 전송했다.

[화마룡의 '약점'이다! 집중적으로 노리도록!]

확대된 화상에는 푸른 불꽃이 날갯죽지 근처에서 잔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김성오는 떨떠름하게 웃었다.

"...이거 혹시?"

제가 마지막 일격 을 넣었던 화염의 거인. 그 거인은 차원문을 향해 달려가다가 갑자기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화염 거인의 푸른 불꽃이 화마룡의 날개에 남아있다.

"......."

성오의 눈이 승형을 스쳤다가 다시 화마룡으로 향했다.

"아직 배리어는 안 벗겨졌지 않나?"

우사가 의아함에 혼잣말로 물었다.

화마룡의 육체를 뒤덮은 마력의 불꽃. 저 마력의 보호막을 파괴해야만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풍백은 막걸리병을 뒤로 던지며 철제스틱을 다시 쥐었다.

"우리가 아는 그런 약점은 아니여. 근데 그것 하나는 알겠더구만."

화마룡이 운동장 한 가운데 떨어졌다. 지축을 울리는 지진이 안양 전체를 울렸다.

"저 불꽃이 우리의 생명줄이 될 거라는거. 안 그러냐, 아가야?"

"네!"

승형의 두 주먹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화권>이 알립니다! 화마룡의 등에 있는 푸른색의 화염! 그것을 이용해야합니다! 파괴하거나 지우는게 아니라, 저 불씨를 더 크게 키워야 합니다!"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푸른 불꽃은 깜깜한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서울의 히어로들을 위해, 청화의 거신이 직접 남기고 간 '희망의 불씨'가 되리라는 것을.

땅에 끌려내려온 화마룡이 눈을 부라리며 날개를 펼쳤다. 등에서 피어오른 자염은 어떻게든 푸른 불꽃을 가리려고 퍼져있었다.

영호는 직감했다. 동시에 승형도 그것을 느꼈다.

"화마룡은 저 불꽃을 스스로 꺼뜨리지 못해요!"

[악마종에게 약점이 있다고?]

혼잣말을 그대로 마이크에 내뱉을 정도로 영호는 평정심을 잃었다.

현재 시각 7시 20분. 6시 30분 부터 발동된 '카운트다운'이 끝나기까지는 이제 10분 남았다.

'할 수 있다.'

배리어를 부수느라 드잡이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영호는 스크린을 옆으로 쭉 늘어뜨리며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무조건 10분안에 잡는다! 설마 약점 있는 괴수도 못 잡는 히어로들이 여기 있을거라고 생각은 않는다!]

"""우오오오오오오!!"""

히어로들이 고무되며 명령에 따라 달려들었다. 화마룡은 사방에서 달려드는 히어로들을 상대로 잔뜩 몸을 웅크렸다.

그 전장의 하늘, 아주 작은 푸른 불꽃의 카나리아가 날개짓을 하며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

"아. 도트뎀."

피닉스는 탄식했다.

덕배를 휘두르며 붙였던 창염이 아직까지도 남아 쉐도우 피닉스의 배리어를 갉아먹고 있었다.

"저러면 뭐 다 잡았네요."

피닉스는 아쉬운대로 옥상 자판기에 있던 캔커피를 따서 들이켰다. 물론 자판기는 박살나있었다.

"그러면."

정중앙의 쉐도우를 두고 히어로들이 달려들었다. 그 선봉에는 피닉스가 창염을 심어둔 불속성 히어로도 있었다.

"세컨드 페이즈는, 이제 어쩌려나?"

쉐도우 피닉스의 몸 전체에서 검은 불꽃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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