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1부 2장 (13)
"...뭐야."
가을은 가슴이 금방이라도 터질것만 같았다. 그게 나라고? 남자를 죽일듯이 목을 졸라대면서 개처럼 헐떡이던 천박한 여자가?
두근, 두근, 두근.
콩닥거리는 가슴이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달빛 속에서의 길고 긴 밤의 정사는 가을이 지금까지 겪어온 그 어떤 경험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정적이고 뇌쇄적이면서도 애달펐다.
도대체 누구길래.
아무리 떠올려보려고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을 따스하게 끌어안아주던 푸른 불꽃만이 떠오를뿐, 남자의 얼굴도 이름도 몰랐다.
단지, 그 푸른 불꽃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아?! 아아!"
내가 왜 이걸 잊고있었지. 가을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살아있어."
가을은 제 몸 구석구석을 만지작거리며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손에는 보드라운 천이 잡혔다.
"이건?"
청록색의 반투명한 비단천. 가을은 제 목에 둘러진 그 베일을 그대로 끌어안고 소파에서 일어섰다. 사라진 하이힐 대신 가을의 발에 꼭 맞는 사이즈의 푹신한 슬리퍼가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누구지?'
상황을 보아하니 분명 누군가가 자신을 구해주고 이곳에 뉘어준 것 같았다. 가을이 의식을 잃기전의 기억을 더듬자,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떠올랐다.
'정말 예뻤지.'
연예계에서도 한 수 알아주는 미모의 가을조차도 명함을 못내밀만큼 아름다운 외모였다. 등뒤로 타오르는 푸른 불꽃의 날개는 천사가 지상에 내려온것처럼 예뻤다.
...푸른 불꽃?
"아. 그래서 그랬구나."
사람이 죽을 위기 직전에 생존와 번식의 욕구가 강해진다더니, 가을은 그것이 음몽이라는 형태로 나타난것에 부끄러워 얼굴이 다 화끈거릴 지경이었다.
'여자애를 남자로 여기다니. 으으, 내가 그런 쪽으로 취향이었나?'
자신의 성벽에 대한 혼란도 들었다. 가을은 뺨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복잡한 머리가 서서히 개운해지자, 주변을 살펴볼 여유가 생겼다.
"여기는...."
헤진 소파와 다리가 어그러진 탁자. 그리고 약간의 탕비품과 낡은 커튼. 낯이 익다.
"남자휴게실?"
학부생일 때 한 번도 들어오지 못했지만 촬영을 위해 잠깐 들렸던 곳이다. 차량으로 돌아가 준비를 해야할 정도로 먼지가 가득 쌓여있던 버려진 휴게실.
그 휴게실이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했다. 마치 청소의 요정이 다녀간것처럼.
"차원문은...이제 끝이야?"
신서울에 들어가기 전까지 괴수 경보는 자주 들었어도 직접 괴수와 얼굴을 맞댄건 처음이었다. 가을은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찾았다.
"고장났네."
액정은 박살났고 전원은 아무리 눌러도 켜지지 않는다. 괴수에게 공격당했을 때 부숴진게 아닐까 생각한 가을은 슬리퍼를 신고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안나오는게 좋을거다."
"히익?!"
갑작스레 문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가을은 화들짝놀라 소파에 주저앉았다.
쿵, 쿵.
후드의 거한이 고개를 숙여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형광등 불빛에 비친 남자의 피부는 연석같은 회색빛이었다.
"이능력자? 히어로...신가요?"
"아니."
조덕배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오자 가을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럼 사냥꾼?"
"그것도 아니다."
가을은 소파 뒤로 숨으며 빠져나갈 곳을 훑었다. 히어로도 사냥꾼도 아닌 이능력자. 남자는 빌런이었다.
"저, 저를 어떻게 할 생각이죠?!"
"아무것도 안해. 나는."
덕배는 가을이 숨은 맞은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을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듯 그저 앉아서 눈을 감았다. 팔짱까지 끼고 머리를 소파뒤로 꺾는게 꼭 누구를 기다리는 모양새였다.
"...저, 저기요?"
"왜."
소파위로 고개만 빼꼼히 꺼낸 가을이 물었다.
"혹시 저 구해주신 분은...아니죠?"
"나는 아니다. 그...."
머리를 내린 덕배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것을 지칭할만한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피닉스가 구해줬을거다."
"피닉스요?"
덕배는 스마트워치를 슬쩍 보고 시각을 확인했다. 오후 7시 12분.
"그 피닉스라는 분이 혹시 파란색 머리칼의...?"
"여고생 교복입고 다니는 이능력자."
"아!"
가을이 박수를 치며 놀랐다. 의식을 잃기전 봤던 천사는 환상이 아니라 진짜 푸른 불꽃의 날개를 가진 이능력자였다.
"그럼 당신은 그 분의 동료이신가요?"
"......."
덕배는 아무말없이 두 눈을 감아버렸다. 가을은 그것을 긍정의 침묵으로 받아들이고 소파 앞으로 나와 마주앉았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않겠습니다."
"내가 살려준건 아니라니까. 그런데 뭣 좀 물어봐도 되냐?"
덕배의 말에 가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대로 말할까?'
드디어 걱정했던 말을 하려는구나. 가을은 어차피 정체가 밝혀질 것, 순수하게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네. 제가 배우 천가을-"
"너 누군데 피닉스랑 아는 사이냐?"
"네?"
"그러니까 걔랑 무슨 사이냐고. 그 미친□...흠흠. 걔가 사람 특별취급하는건 이번이 처음이거든?"
가을의 머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을 보며 덕배는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했다. 잠든 가을의 얼굴을 보던 피닉스의 눈빛은 아련하기까지 했다.
'날 처음에 어떻게 봤더라.'
인간쓰레기. 만지기도 싫은 벌레. 본인 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것을 제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던 자에게 있어 소중한 사람이라면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러니까 너같은 어린애가 어쩌다 저런-"
"저 어린애 아니거든요! 28살 이라구요!"
이제는 덕배가 말문이 막혔다. 가을은 씩씩거리며 제 신분증을 꺼내 덕배에게 들이밀었다.
"자! 봐요! 신서울주민증!"
"...위조?"
"신서울주민증은 정부에서 협회랑 연계해서 발행하는 거거든요?! 위조자체가 불가능해요! 봐요! 마력 반응 들어간 공인마크!"
"아니. 그거야 아는데 그쪽 상태가...."
험한 곳에서 굴렀는지 옷 이곳저곳이 헤지기는 했어도, 덕배의 눈에는 가을이 암만봐도 20대 초반의 대학생같았다.
"나이 속인거 아냐?"
"흐, 흐흥. 제가 좀 나잇살 안 먹기로 유명하죠."
곧 계란 한 판에 가까워지는 가을은 제 외모를 두고 의심하는 덕배에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근데 저를 몰라요? 국민짝사랑, 천재아역, <마지막 사랑> 현지연 역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천가을을?"
"...혹시 <아줌마>의 그?"
천가을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아! 그걸 어떻게 아세요? 제 데뷔작이었는데! 쫄딱 망해서 많은 분들이 제 데뷔작을 다른 거로 아시던데."
"......그냥."
덕배는 말을 삼켰다. 고아원에서 원장이 학대하며 틀어놓았던 그 영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어린 아이가 영화 속에서 모진 학대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근데 네가 진짜 천가을이라고? 배우가 서울을 왜 와?"
"그러니까요!"
이어지는 대화에 긴장이 풀린건지, 천가을은 자신이 겪은 억울하게 죽을뻔한 경험에 대해 성토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시청률이 잘나가고 고증 욕심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서울에서 드라마촬영이 말이 돼요? 인천도 아니고! 그냥 아무 대학 교정에서나 찍으면 되는 장면을 가지고...."
덕배는 손을 들어 가을의 말을 끊었다. 말 많은 촉새는 피닉스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만. 알겠으니까 그만. 아무튼 당신이 진짜 천가을이라 그거지."
덕배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문 밖을 가리켰다.
"그가 기다리고 있다."
"아."
가을은 종종걸음으로 덕배를 뒤따라갔다. 언제든지 도망갈 수 있도록 거리를 살짝 벌리며 따라가는 모습이 경계심 강한 고양이같았다.
계단을 오른 덕배가 2층 한 강의실 앞에 서서 안쪽을 가리켰다. 가을은 문과 덕배를 번갈아보다 살며시 문을 열었다.
"저기요...?"
강의실 안에는 책상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칠판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소녀가 있었다. 마카를 입에 물고 잔뜩 인상을 찌푸리는 얼굴도 가을은 예뻐서 순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 아."
문앞에 선 가을이 시야에 들어온 피닉스는 황급히 손가락을 튕겼다. 칠판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꺅!"
갑자기 타오른 불길에 가을이 놀라 물러섰다. 불길은 칠판 위에 그려진 수많은 문구를 태웠다.
팡!
피닉스가 합장하듯 손바닥을 치자 불꽃이 한순간에 소멸했다. 칠판은 금방 새로 만든것처럼 광이 났다.
"천가을 씨?"
"네, 네?"
가을이 대답하자 피닉스가 혀를 찼다. 뒤따라온 덕배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길 바랐는데."
"본인이 천가을 맞대잖아. 네가 생각하던 그 사람 아니면 직접 죽이던가?"
뭐? 가을이 순간 놀라 벽에 붙었다. 피닉스는 책상위에 양반자세로 앉아있던 다리를 풀어 책상 아래로 떨어뜨렸다.
"축하해요. 천가을씨. 당신 천가을이라서 산 거야."
"아니었으면 어쩔려고 했어요?"
피닉스는 헛웃음을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죽였죠. 조덕배 씨가."
"...!!"
가을은 확신했다. 이 둘은 빌런이다.
"무슨 목적으로 절 구해준거죠? 돈? 신서울주민증?"
"천가을씨 드라마 너무 많이 본 거 같은데요."
"배우니까 당연하죠! 아니, 그게 아니잖아요 지금!"
안 된다. 덕배는 슬슬 말리기 시작하는 천가을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음...정확히는 천가을 씨를 구한게 아니에요."
피닉스가 어깨춤에서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지나가다가 괴수가 보이길래 죽였고, 마침 그 쪽이 죽기 직전인 순간이었을 뿐이에요. 여기로 데려온 이유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까싶어서 그랬던거고."
"...우리가 언제 만난 적 있나요?"
가을은 기억을 더듬었다.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중에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미인들이 기백은 넘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눈 앞의 '피닉스''라는 사람은 기억에 없었다.
"혹시 성형?"
"자연인데요."
"그럼...성전환?"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때가 되면...농담이고, 만난 적은 없지요. 하지만."
피닉스가 책상에서 내려와 가을에게 다가갔다. 가을은 등을 벽에 바싹 붙이며 까치발을 들었다. 안 그래도 손가락 하나 차이날 정도로 키가 크던 가을이 발까지 드니 피닉스의 눈이 목 근처에 이를 정도였다.
"저, 저기요? 대체 누구시길래-"
와락.
"?!?!"
피닉스가 가을을 안았다. 두 팔을 가을의 허리에 감고 머리는 쇄골에 묻었다.
"그, 저, 저기?"
밀착된 몸에서 전해지는 체온이 따사로운 햇살같았다. 가을은 눈을 굴리며 두 손을 만세 상태로 든채 어쩔줄 몰라했다.
"웁!"
이미 덕배는 눈꼴시렵다못해 헛구역질을 하며 복도를 달렸다. 졸지에 빈 강의동에 둘만 남게된 상황에 가을은 옷을 타고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에 멈칫했다.
"......."
소녀는 울고 있었다. 아니, 터질듯한 울음을 억지로 참는듯했다. 가을은 우물쭈물하다가 두 손을 내려 청화라고 하는 이를 안았다.
"그, 미안해요. 진짜 기억을 못하겠어서...."
"...하아."
옷을 타고 전해지는 깊은 한숨에 가을은 전율이 일었다. 어딘가 안도감과 그리움이 담긴듯한 숨결에 가을은 얼굴이 상기되며 몸이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두근, 두근, 두근.
안 그래도 잠깐 자는 사이에 차마 말로 표현못할 꿈까지 꿨는데 갑자기 이런 만남이라니. 가을의 무의식속에 잠들어있던 악마가 깨어나 속삭였다.
'가능.'
악마는 두 개의 가위를 부딪히며 웃었다. 맞은편에서 그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천사가 가을에게 속삭였다.
'사랑만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
점점더 빨라지는 심작 박동에 가을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떡 삼켰다. 그 소리가 너무나도 커서 그런지 강의실 안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피식. 어디선가 쉰소리가 들렸다. 피닉스는 가을의 허리를 다독이듯 두드리고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요. 마력공명으로 가을씨 몸 안의 마력 친화율을 검사한거니까."
"...에?"
"음식, 공기, 물. 자연에 쌓인 마력은 인간의 체내에 극히 일부지만 축적되죠. 인간의 육체는 그 중에서 자기 체질에 가장 맞는 속성의 마력만 체내에 흡수하게 돼요. 그게 인간이 이능력자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는거죠."
갑자기 강의가 시작됐다.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지식을 무차별로 퍼붓는 신종 교수법에 가을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물론 교수의 설명은 학부생의 멘탈붕괴에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마다 속성별로 수용가능한 최대량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마력은 각자 고유의 성질을 가져요. 이게 각 속성에 대한 '친화율'로 나타내는데, 데이터로 표현하면 화속성 17%, 수속성 72% 이런식이죠. 도플갱어가 아닌 이상 마력 친화율은 절대 똑같을 리가 없어요."
피닉스는 고개를 들어 가을과 눈을 마주하며 싱긋 미소지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천가을이 아닐리 없어요. 화 2, 수 17, 풍 68, 지 31, 광 8, 암 37, 환 88. 기억하고 있는 수치랑 똑같네요. 푸흐흐."
"어...저기...."
"하. 진짜 안타깝네요. 화속성 50%만 넘겼어도 제가 강제로 이능력 각성시킬 수 있는데. 이러면 다른 애들 세뇌풀기 전에는 능력 각성도 어렵고. 흐음. 그보다도...."
"그러니까 지금 무슨 말씀을...?"
피닉스는 포옹을 풀고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서 천가을을 위아래로 훑었다. 천가을은 왠지 음흉한 눈빛에 저도 모르게 두 팔을 가슴팍에 밀착했다.
"아뇨. 그냥.... 마력수치는 똑같은데 완전 다른 사람 같아서. 나이차이 때문가? 몸매는 비슷한 것 같은데. 천가을씨, 가슴 좀 만져봐도 돼요?"
"미쳤어요?!"
천가을이 씩씩대며 빼액 소리를 질렀다. 피닉스는 두 눈을 껌뻑이며 놀랐다가 손사레를 치며 웃었다.
"아하하! 미안해요. 그 사람이면 자기가 더한 섹드립치면서 더 만져보라고 했을텐데. 후훗. 그러면 으음...잠시만요. 모처럼 첫만남이니까...."
피닉스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이마 앞에 댔다. 방금전까지 경박하던 모습과는 달리 진중하게 의식을 치르는듯한 분위기에 가을마저 경건해졌다.
화르륵.
피닉스가 입고 있던 교복이 창염으로 변해 피닉스의 몸을 휘돌았다. 불꽃 사이사이로 얼핏 보이는 새하얀 나신에 가을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삼켰다.
창염은 마력으로 흩어지며 하늘하늘한 비단천으로 변했다. 사파이어를 녹여내린듯한 청색의 면에 고급스러운 흰 자수가 타오르는 불꽃 무늬로 장식된 사제복. 피닉스가 두 손을 펼쳐 머리를 앞에서부터 쓸어내리자, 창염은 불가루로 흩어져 허리까지 내려오는 반투명의 베일이 되었다.
"...아!"
가을은 제 목에 걸린 청록의 베일이 누구의 것인지 깨달았다. 피닉스는 오른손을 제 왼 쪽 어깨에 살포시 올리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뵙겠습니다, 천가을 씨."
"아, 네! 만나서 반가워요. 그...."
"태양의 화신. 영원히 꺼지지 않는 푸른 불꽃. <창염의 피닉스>라 하옵니다."
"...어, 네?"
순식간에 여러 명칭을 들은 가을이 뭐라 대답해야할지 몰라 안절부절했다. 피닉스는 가을에게 다가가 두 손을 맞잡으며 상쾌하게 웃었다.
"그냥 피닉스라고 불러요."
"아, 네. 닉스씨."
"피닉스."
"...네."
가을은 잡힌 두 손을 거꾸로 잡으며 피닉스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찌됐든 구해줘서 고마워요. 피닉스 씨 아니었으면 정말 저, 죽을뻔했어요."
"괜찮아요.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와, 남녀차별하는거봐라?"
어느새 화장실에서 돌아온 덕배가 안면을 꿈틀거리며 강의실로 들어왔다. 연회색의 피부는 마력 역류로 군데군데 갈라져있었다.
"...언제 분위기 좋을 때 방해하라고 했어요? 부하 2호?"
"아니. 어이가 없잖아. 지금. 사람 태워 죽이는 악당이, 커억!"
빛처럼 쏘아진 불꽃의 덩어리가 덕배의 입을 때렸다. 가을은 시선을 돌리려다 제 손에 들어오는 힘에 돌아가려는 고개를 간신히 멈췄다.
"후후. 마침 잘 됐네요. 저기 저 덩치는 조덕배. 제 부하 2호랍니다."
"...부하, 요."
가을은 얼굴에 붙은 창염에 괴로워하며 바닥을 구르는 덕배에 약간의 동정심이 생겼다. 마력을 다시 돌려 바위피부를 재생한 덕배는 몸을 일으키다 손에 잡은 의자를 바닥에 집어던졌다.
"□□!"
덕배가 무언가 소리쳤지만 그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피닉스는 눈썹을 으쓱이며 덕배에게 가을을 가리켰다.
"소개할게요. 이쪽은 천가을 씨."
"아, 제가 할게요. 저는 배우-"
"우리 청화단의 뉴페이스랍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