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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4화 (24/1,497)

〈 24화 〉1부 2장 (10)

<독산역.>

쿠웅!

화염 거인이 주먹을 내려친다. 건물이 무너지며 주변 일대에 흙먼지가 일었다.

"야! 일단 피해!"

"A급이 뭐 이리 무식해?!"

사냥꾼들은 화염 거인의 공격을 피하며 제각각의 위치에서 화염 거인을 둘러쌓다.

"죽어라. 이 똥멍청이!"

김성오가 어깨에 들쳐멘 화포에서 마력의 포탄을 쏘아 올렸다. 한국은 여전히 총기 소지가 불법이었지만, 김성오처럼 관련 무기에 재능을 가진 이능력자에게는 특별한 면허를 부여해 타국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막았다.

<마포(魔砲)>.

마력을 포탄으로 만들어 쏘아내는 그 이능력은 거대괴수를 상대로 발군의 화력을 자랑했다.

□□□□□□□□!!

화염 거인이 제 명치를 향해 쏘아지는 포탄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어, 어어?!"

마치 피구공을 주먹으로 쳐날리듯 화염 거인은 포탄을 때렸다. 화염 거인의 옆을 스쳐 지나간 마포는 강에 다다라 다리를 박살 냈다.

"성오 형님."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동료 사냥꾼의 빈정에 성오가 성을 내며 마력을 다시 끌어모았다.

"공격은 등신같이 하는 놈이 방어 하나는 기똥차게하네!"

일부러 빗맞히는 건가 생각이 들 정도로 화염 거인은 공격에 젬병이었다. 실제로 지금도 화염 거인의 발길질은 애꿎은 허공만 가르고 상가 하나를 부쉈다.

화염 거인이 바닥을 구르는 순간, 15층 아파트 옥상에서 사냥꾼 하나가 뛰어내렸다. 그는 양손으로 도끼를 쥐고 화염 거인의 머리를 노렸다.

"A급은 내거다아아아아아아!!"

도끼의 날에 마력이 서리며 화염 거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푸욱!

"으잉?"

마력으로 주조되기 까지 한 도끼가 화염 거인의 정수리에 꽂혔다. 화염 거인은 지금까지 보여준 그 어떤 속도보다 빠르게 남자를 손에 쥐었다.

"어, 크억!"

손에 꽉 쥐어진 남자는 어떻게든 화염 거인의 손에서 탈출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미 푸른 화염은 남자의 몸을 빠르게 익혀나갔다.

□□□□!

화염 거인은 남자를 도끼째로 던져 강에 처박았다. 그리고 갑자기 자세를 잡더니 도로를 향해 힘껏 뛰어올랐다.

"으억?! 피해! 또 다이빙이다!"

화염 거인이 몸을 뒤로 까뒤집으며 대로에 누웠다. 김성오는 도로에 대자로 누워버린 화염 거인을 향해 포구를 돌렸다.

"어디 누워서도 막는지 보자."

포신 옆에 새겨둔 디스플레이에 마력이 완전히 충전되었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김성오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 마포를 쏘았다.

"됐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마포는 괴수의 명치를 향해 떨어졌다.

콰과앙!!

막 상체를 일으키려던 화염 거인의 가슴에서 막대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 거인은 그 폭발에 그대로 머리가 젖혀지며 땅에 뒤통수가 찍혔다.

"해치웠나?"

"너 지금 일부러 그런 거지?"

동료 사냥꾼의 말에 성오는 인상을 찡그렸다. 약속의 대사를 꺼낸 동료 사냥꾼은 제 무기를 다시 점검하며 낄낄 웃었다.

"어차피 형님 마포 화력 개 약하잖아요."

"야. 그래도 나 B급이거든? 화력 하나는 A급 판정이거든?"

"한 번 장전하는 데 15초나 걸리는 지루가 무슨."

사냥꾼들이 농담 따먹기를 하는 사이, 흙먼지가 가라앉았다.

□□□□.

화염 거인은 미동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어? 진짜? 성오 형님이 죽였다고?"

성오는 제 공격에 화염 거인이 쓰러졌음에도 떨떠름했다.

"이게 죽네."

"형님 뽀록샷인거 같은데요? 저기 봐요."

화염 거인의 명치에는 회색빛의 암석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화염 거인의 핵이었다.

"핵 크기 보이냐? 저거 완전 A급 끝자락인 것 같은데? S급인 줄."

"대박 터졌네요, 형님. 지분 따져서 막타 10%만 받아도 한국 뜨겠는데요?"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냥꾼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말이다. 돈 바싹 모아서 원탁 히어로가 있는 나라로 이민을 가자.

성오는 눈 앞에 펼쳐진 황금빛 미래에 침을 꿀꺽 삼켰다.

"차원문 진짜 대박이네. 이런 것만 쏟아지면 진짜 소원이 없겠다."

"좀 더 쏟아졌으면 좋겠는데요? 히히."

사냥꾼들이 저마다 화염 거인에 접근하며 낄낄거렸다. 성오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여인을 보며 설렁설렁 경례했다.

"충성! 사냥꾼 김성오, 협회 히어로님께 보고합니다."

"...하필 네가 왜."

녹발의 여성은 김성오를 보자마자 역겹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김성오는 능글맞게 웃으며 녹발 여인에게 다가갔다.

"왜 그래? <스톰 걸>?"

"그러니까 히어로명 <템페스트 레이디>로 바꿨다고!"

"세상 사람들 다 널 스톰 걸로 안단다, 춘자야."

"옛날 이름 부르지 마! 양선우라고 말했지!"

양춘자, 아니 스톰 걸, 아니 양선우가 빽 소리를 질렀다. 김성오는 복장이 터져라 웃으며 손을 저었다.

"미안, 미안. 오랜만이다 보니. 큭큭. 근데 너 차원문은 어쩌고 여기로 바로 왔냐?"

"A급이 지금 차원문 막으러 갔어. 나는 저거 처리하러 온 거고. 운이 좋았네."

양선우는 쓰러진 화염 거인을 보며 한시름을 놓았다. 그와 함께 온 다른 히어로들은 화염 거인 근처에 모이는 사냥꾼들을 통제하며 화염 거인을 바닥에 묶기 시작했다.

"아. 그러면 차원문 닫히는 거냐? 아깝네. 더 사냥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신서울이나 부산 인근이면 모를까. 여기는 위험해서 안 돼. 그리고 너 A급 마격까지 넣었잖아? 그것만 해도 지분 10% 고정이야."

"우리 춘자가 사냥꾼 일들을 어떻게 그리 잘알까? 혹시 겸업? 아니면 전업?"

"난 히어로로 살 거야! 그리고 춘자라고 부르지 마!"

양선우가 얼굴까지 붉히며 성을 내자 김성오는 그녀의 어깨를 툭툭치며 웃었다.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동료 사냥꾼이 다가온 김성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예요, 형님? 이거?"

동료 사냥꾼이 새끼손가락만 펼치며 흔들자 김성오는 화포로 사냥꾼의 뒤통수를 때렸다.

"얌마. 어디서 감히 나를 모욕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얘랑? 허이구. 광검 설화공주랑 결혼하는 소리 하고 있네."

"......."

양선우의 머리칼이 흩날리며 바람이 일어났다. 김성오는 양선우에게서 일어나는 바람에 침을 꿀꺽 삼키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춘자야? 음, 선우야? 우리 대화로 해결하지 않을래? 우리 그래도 좋게좋게 끝났는데 이런 식으로 싸우는 건-"

"비켜, 멍청아!"

양선우가 두 팔을 뻗자 강한 바람이 용솟음쳤다. 동료 사냥꾼과 급히 바닥을 구른 김성오는 등 뒤의 엄청난 열기에 넋을 잃고 말았다.

"역시 안 죽었네?"

양선우의 마력을 탄 질풍은 화염 거인의 손을 가로막았다. 화염거인은 누운 상태에서 손을 뻗어 성오를 낚아채려 했었다.

투둑, 투둑.

마력으로 짜인 구속구가 간단히 떨어지며 화염 거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히어로들은 저마다 이능력을 발휘해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마쳤고, 사냥꾼들은 그보다 한 발자국 뒤에서 히어로들을 지원하기 위해 장비를 들어 올렸다.

□□□□.

화염 거인은 상체만 들어 올린 채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도 화염 거인을 따라갔다.

"......저게 뭐야?"

김성오는 시선 끝에 걸린 관악산 정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화포를 떨어뜨렸다.

파지지직!

허공에 떠오른 거대한 차원문. 그 크기는 눈앞의 화염 거인조차 쉽게 오갈 수 있을 만큼 커져 있었다.

"A급이 갔다며?!"

"......비상!"

양선우가 스마트워치에 온 신호를 확인하고 빠르게 전언을 읽었다. 다른 히어로들 또한 그 신호를 확인하고 표정이 굳었다.

- 차원문 폭주.

- S급 '위험종'의 마력 반응을 확인.

폭주라고? 어째서? 불곰이 실패한 건가?

양선우는 이어지는 신호를 확인하고 절망에 빠졌다.

- 당장 서울을 탈출할 것.

"아, 아아악!"

사냥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은 미국에서 있었던 다저스의 재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양선우는 그 사건을 현장에서 봤다. 마음이 꺾이자 두 다리도 풀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아아...."

"정신 차려!"

김성오가 다가와 양선우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제정신을 차릴 것 같지 않아지자, 그는 양선우를 화포 메듯이 어깨에 걸치고 동료 사냥꾼에게 소리쳤다.

"시동 걸어! 서울 뜬다!"

"어, 어디로요!"

"시발 인천이든 북한이든 어디로든 튀어야 할 것 아냐!"

김성오가 소리치기가 무섭게 화염 거인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

그 짧은 사이에 회복을 마치기라도 한 듯, 노출된 핵은 다시 푸른 불꽃에 휩싸여 보이지 않았다. 김성오는 입이 바싹 말랐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미치겠군."

A급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부터 의심했어야 하는데. 김성오는 계속해서 양선우를 흔들어대며 무기인 화포조차 버리고 트럭 뒤에 올라탔다.

쿠웅.

화염 거인이 걸음을 내디뎠다. 성오는 그것이 날뛰기 시작하려는 전조로 생각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쿠웅.

화염 거인이 다시 또 한 걸음을 내디뎠다. 성오는 두 번째 걸음의 방향이 꺾여나간 것에 의아해했다.

쿠웅!

화염 거인이 발을 크게 구르며 뛰어올랐다. 성오는 그게 흡사 신체강화 능력자들이 몸을 강화해 돌진하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긴 관악산 방향인데?"

□□□□□□□□!!!

화염 거인의 온몸에 타오르던 푸른 불꽃이 거세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일직선으로 달리며 건물을 밟고 아파트를 통째로 부수며 나아가는 화염 거인의 앞길에는 관악산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아."

성오는 말을 잃었다.

관악산의 정상에는 보라색으로 불타는 거대한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며 날고 있었다.

■■■■■■■■■!!

칠판을 긁는듯한 쇳소리로 포효하며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보랏빛 괴조. 고막을 터뜨리려는 듯한 강력한 마력의 파동에 성오는 양선우의 귀를 막았다.

"크윽!"

뇌를 직접 흔드는 것 같은 충격에 성오는 머리가 띵해져 뒤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끄으으...."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화염 거인은 산의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그 시각, 서해 해상.>

선박들이 길게 늘어져 있는 바다. 불법 어선들을 경계하는 경비정에 탄 해경들은 맞은편에 대치하고 있는 한 인마(人馬)에 다리가 떨렸다.

"이거...난리났다."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다.

서울에 발생한 차원문. 국제 협약에 의해 차원문이 발생한 지 한 시간 이내에 발생국에서 닫지 못할 경우, 인근 국가의 히어로가 나서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야! 서울 어떻게 됐어?!"

"S급 위험종 나왔다고 합니다."

"미친...."

해경들은 자신들의 뒤, 서울 한복판에서 날뛰고 있을 S급 괴수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그 S급 괴수를 인지한 건지는 몰라도, 차원문이 발생하자 마자 곧장 영해 밖에 나타난 S급 히어로에 해경들은 경외를 느꼈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영해입니다!"

"알고 있다."

마이크를 통해서 내는 목소리보다 마력을 실은 목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 상대의 중후하고 낮은 목소리에는 위엄이 철철 흘러넘쳤다.

"한국에서 차원문을 닫지 못하면, 바로 출격할 뿐."

적토가 투레질을 하며 파도를 디뎠다. 운장은 마실이라도 나온 것 마냥 말을 몰았고, 그 위치는 서울로 달리는 최단거리였다.

"운장만 나오면 좋다, 이거야."

해경은 레이더에 잡힌 수많은 점들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근데 상륙함을 수 백척 동원하는 건 아니지!!"

인해전술이라고 하던가.

서해 바다를 꽉꽉 메운 중국 히어로들은 군과 연계하여 강습상륙함의 갑판에서 무기를 움켜쥐고, 초조하게 시간만 기다리고 있었다.

차원문이 발생하고 1시간이 지난 시점.

그 시각이 지나면 곧 도착하게 될 상륙함들의 뱃길을 열어줘야 할 것이다.

"젠장.... 젠장!"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차원문이 빨리 닫히기를 바라는 것 밖에는.

* * *

"각하."

검은 양복의 비서관이 소파에 앉아 고뇌에 잠긴 남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집정관이 광검을 동원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왜?"

남자는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정보들을 취합하며, 비서관의 말에 짜증을 부렸다.

"단순 차원문 아닌가. 그럼 서울에 있던 이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될 터."

"...그, S급 괴수도 나왔다고...."

"그럼 더욱 잘 됐군."

남자는 안경을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이승형이 주인공이 될 무대 아닌가."

"...외람되오나 불곰은 그저 A급 히어로일뿐-"

"위험에 빠지면 각성하겠지. 히어로라는 것들이 늘상 그러지 않나."

남자는 느긋한 얼굴로 차를 홀짝이며 이죽거렸다.

"뭐, 그러다 죽으면 적당히 선전 도구로 사용하세. 히어로 이승형, 서울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

"......예. 그리고 서해에서의 전갈입니다만."

비서관은 다른 사진을 보였다. S급 히어로이자 원탁 영웅 중 한 명인 운장이 바다 위에서 서울로 언제든지 달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망할 놈들."

남자는 중국의 동향을 살피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국제 협약 상 분명 1시간이랬지."

"예."

"그럼 59분에 닫도록 하세."

"......그럼 그동안 서울은-"

"문제 있나?"

남자는 활짝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망한 도시, 여기서 더 망한다고 달라질 거 하나도 없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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