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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23화 (23/1,497)

〈 23화 〉1부 2장 (9)

<오후 7시, 관악산 정상 바로 아래.>

"흐아압!"

승형의 주먹이 괴수의 주먹과 맞부딪혔다. 불곰의 외투를 두르고 있음에도 저보다 훨씬 더 큰 거대괴수는 주먹이 맞부딪히자마자 곧바로 다른 손으로 승형의 손목을 쥐었다.

"큭?!"

거대괴수의 손아귀가 승형의 손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승형은 재빨리 팔로 흐르던 마력을 끊고 몸을 뒤로 뺐다.

화르륵!

팔이 빠져나간 불곰의 손목이 괴수에게 으스러졌다. 괴수는 제 손에 붙은 불꽃을 보더니, 성냥개비 다루듯 손가락을 비비며 불을 껐다.

캬하하항!

잡아먹으려는 듯 쿵쾅대며 달려오는 괴수는 혀를 늘어뜨리며 승형을 덮쳤다. 덩치에서 오는 파워는 승형보다 강했고, 마력량마저 승형을 웃돌았다.

남은 것은 스피드.

"흡!"

승형은 괴수의 두 손이 제게 닿기 전에 오히려 괴수의 아래로 파고들었다. 뛰어오면서 열린 다리 사이로 슬라이딩하듯 미끄러진 승형은 그대로 불곰의 손톱을 크게 휘둘렀다.

캬아악!

발목이 반쯤 떨어져 나간 괴수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다. 수십 년 된 거목이 도끼에 베어 쓰러지듯, 넘어지며 바닥을 구른 괴수는 형형하게 두 눈을 빛내며 승형을 찾았다.

"흡!"

승형이 괴수의 가슴 위로 올라탔다. 괴수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 손을 제 가슴 위로 들어 올렸다.

"어딜?"

승형의 뒤에서 타오르던 불곰이 두 팔을 크게 휘두르며 괴수의 양어깨를 강타했다.

순간 힘이 빠진 괴수가 이빨을 갈며 다시 팔에 힘을 주었지만, 내리 찍히는 불곰의 주먹은 괴수의 팔이 축 늘어질 때까지 이어졌다.

캬아악!

괴수가 머리를 들어 올리며 승형을 삼키려 했다. 불곰의 두 팔은 여전히 괴수를 잡고 움직이지 않았다.

"흡!"

승형은 호흡을 골라 마력을 주먹 쥔 손에 둘렀다. 불곰의 것과는 별개로 승형의 주먹에 피어오른 화권은 지척까지 다가온 괴수의 이빨을 깨뜨리며 괴수의 머리를 태워버렸다.

갸아아악...

괴수는 단말마와 함께 죽었다. 승형은 불곰의 팔을 다시 제 팔에 붙이고 정상으로 달렸다.

"후우, 후!"

바윗길을 한걸음에 달린 그의 눈에는 관악산 정상에 뜬 차원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하아."

서울 전역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고지에 오른 승형은 심호흡하며 스마트워치를 두드렸다. 차원문의 영향으로 신호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상황을 전달하기에는 충분했다.

퍼억!

차원문에서 막 튀어나온 괴수들을 펀치 한 방으로 으깨버린 승형은 스마트워치에 대고 소리쳤다.

"불곰 이승형, 차원문 앞에 도달! 파괴하겠습니다!"

승형의 등 뒤에 달라붙은 불꽃이 몸집을 키우며 거대한 곰의 모습을 갖추었다. 붉게 활활 타오르는 화염의 곰은 금방이라도 차원문의 핵을 부숴버릴 수 있도록 허리를 비틀었다.

치지직, 지직. 승형의 스마트워치로 신호가 전달됐다.

- 안 돼! 이승형 요원, 부수지 마!

"장관님?"

워치에서 들려온 목소리에는 다급함마저 느껴졌다. 어떻게 이 사람이 지금 협회 측 채널로 응답한 걸까.

- 전화 끊어! 이승형, 당장 차원문 부숴!

"영호 형님?!"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이승형의 선배이자 전술기획과를 맡은 유영호였다.

- 그러니까 차원문을 조기에 발견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차원문에서 나오는 괴수들로 핵을 좀 얻어 봅시다!

- 그럴 시간이 어딨어!

이승형! 뭘 멍때리고 있어?! 당장 닫아!

- 유영호! 1시간만 괴수를 사냥해도 떨어지는 핵의 개수만 2천 개가 넘어! 자네는 그 노다지를 사람 몇 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 포기할 겐가!

- 야 이 미친놈아! 이미 사람이 죽었어! 광검 안 보내줄 거면 닥쳐!

- 뭐? 너, 너 이....

지지직. 차원문의 마력이 더욱 강해지며 신호가 차단되었다. 승형은 빠르게 머리를 굴려 상황을 인지했다.

협회 측-유영호는 당장 차원문을 닫기를 바란다.

정부 측-장관은 차원문에서 나오는 괴수들을 사냥하다가 적절한 시기에 닫기를 바란다.

"...후우."

만약 승형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정부 의견을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그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친가는 현 정부에서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으니까.

하지만 승형은 히어로로서 사명을 다하기에 더는 망설임이 없었다.

"곧 내려갑니다, 가을씨."

불곰의 주먹이 차원문의 핵을 향해 쇄도했다.

* * *

문 너머에서 흘러오는 이계의 바람 속, 있어서는 안 될 '그것'의 기운이 느껴진다.

푸른 화염.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척살해야 할 최고 우선순위의 적. 정령.

찌르르르.

괴수는 차원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같은 시각, 히어로 협회 본부.>

"차원문 반응 소실! 괴수들의 반응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오퍼레이터의 보고에 유영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불안 불안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결국 이승형은 히어로로서 제 의무와 사명을 다해 차원문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유영호!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아?!]

스크린 한쪽에서 스피커 아이콘 하나가 반짝거리며 노성이 들려왔다. 'SOUND ONLY'라고 적힌 화면 아래에는 <대한민국 정부 괴수대책부>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압니다. 차원문을 막았죠. 거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흥분을 가라앉힌 영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것이 상대의 속을 더 긁었다.

[문제? 무우우우운제?!]

"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차원문을 닫아야 한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대통령님의 말씀이셨을 텐데요."

영호는 대통령이 후보 시절 TV 토론회에서 그가 했던 말을 언급했다. '차원문 개폐의 효율성'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했던 때, 당시 후보였던 대통령이 했던 말을 그대로 언급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대통령님 그 말씀만큼은 인정하는바-"

[이승형이 대통령님 조카인 걸 알고도 그렇게 말을 하는 거냐, 지금?!]

영호가 속으로 혀를 찼다.

[뭐? 단독으로 차원문을 막으러 보내? 내가 차원문 닫으라고 했지 이승형 혼자 보내라고 했어?! 이승형 손끝 하나 다치기라도 해봐! 전부 다 모가지야, 모가지!]

"죄송합니다. 장관님. 차원문의 여파로 전파가 지직 잘 안 터지네요. 지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지금 장관을 상대로 장난을-]

영호는 손에 마력을 불어넣어 스마트폰을 부숴버렸다. 그저 제 스마트폰으로 전화가 와서 넘겨줬을 뿐인 오퍼레이터는 남은 할부 개월 수를 생각하며 눈물을 삼켰다가, 급하게 반짝이는 신호에 황급히 신호를 연결했다.

"여기는 본부! 이승형 요원?!"

본부의 스크린에 이승형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원문을 닫은 사람치고는 어딘가 상당히 초조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

유영호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큰일이 났음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야?!"

[여, 여기는 불곰! 차원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

유영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이승형이 우물쭈물하며 제 스마트워치의 화면을 하늘로 돌렸다.

[하늘에 새로운 차원문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거기서 뭔가, 뭔가 계속 넘어오고 있습니다! 괴수는 아니고, 꼭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것이-]

째재쟁!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이승형의 신호가 끊겼다. 본부 상황실에 순간 정적이 내려앉았다.

"......."

유영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커피 캔을 짓눌렀다. 수십 수백 번을 돌려본 다저스 게이트의 사건 영상. 갑자기 그 영상이 떠오르는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괴수 반응 점검해! 당장!"

"네, 네!"

오퍼레이터가 당황하면서도 빠르게 차원문 근처를 대상으로 다시 마력 분포를 스캔했다. 대기 중에 흩뿌려진 마력을 파악해 괴수의 등급을 추정하는 시스템.

오퍼레이터는 자신의 모니터에 뜬 수치에 경악하며 유영호를 돌아봤다.

"추정치 S급 오버...! '악마종'입니다!"

유영호의 시야가 아뜩해졌다.

* * *

이승형은 제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차원문은 닫는 데 성공했다. 불곰의 이능을 최대한으로 끌어모아 내지른 주먹은 차원문의 핵을 아주 깔끔하게 파괴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차원문의 바로 위. 상공에서 새로운 차원문의 전조가 나타났다.

까드득, 까가가각!

허공의 균열 사이로 튀어나온 진보라 빛의 발톱이 균열을 억지로 벌리고 있었다. 발톱 하나가 제 몸통만 한 크기에 승형은 등 뒤의 불곰을 더욱 크게 키워 균열을 때렸다.

하지만 그 펀치는 괴수의 발톱에 부딪혀 오히려 승형이 튕겨 나갔다.

"으아악!"

바위를 굴러 나무에 부딪힌 승형이 피를 토했다. 타박상 이상으로 압도적인 마력에 짓눌려 내상을 입은 것이 더 컸다.

"아, 안 돼!"

승형은 본능적으로 저 불길한 기운의 괴수가 지금까지 봐왔던 그 어떤 재앙보다도 더 큰 재앙임을 직감했다. 그것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모든 열성을 바쳤던 히어로로서, 생존에 대한 본능을 그 누구보다도 잘 느끼는 인간으로서, 그리고 '불꽃'의 이능력을 사용하는 자로서의 확신이었다.

콰직!

발톱이 세계의 균열을 크게 움켜쥐고 뜯어냈다. 괴수는 그 사이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새?"

보라색 불꽃을 머금은 새의 머리가 차원 너머로 튀어나왔다. 괴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제 머리를 더욱 앞으로 들이밀었다.

찌지직!

균열이 길게 찢어졌다. 괴조의 몸이 한 번에 쑥 균열 바깥으로 튀어나와 관악산 정상에 내려앉았다.

쿠웅!

괴조가 찢고 나온 차원문은 너덜너덜해져 있으면서도, 그 역할을 완수했다는 듯 균열을 메꾸며 조용히 사라졌다.

■■■■■■.

바위에 두 다리를 박고 서서 날개를 펼쳤다. 깃털 사이로 활활 타오르는 보랏빛 불꽃은 주변 나무에 옮겨붙으며 거대한 화마를 일으켰다.

화르르륵!

해가 떨어진 밤의 관악산이 보랏빛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승형은 제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때문이야.'

더 빨리 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망설였기 때문에 지체가 되어 차원문을 제대로 닫지 못했다. 그 바람에 저런 괴물이 지구에, 서울에 발을 들였다.

■■■■?

승형은 괴조와 눈이 마주쳤다.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눈 맞춤이었지만, 그 압도적인 마력과 존재감에 승형의 불곰은 나약한 성냥불처럼 사그라들었다.

■■■■■■.

괴조는 하찮은 존재에게 손조차 쓰기 귀찮다는 듯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승형은 그저 공포에 질린 채 괴조가 하늘로 떠오르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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