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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염의 피닉스-13화 (13/1,497)

〈 13화 〉1부 1장 (12)

푸른 하늘의 데스디나스의 주인공은 지극히 영웅적인 인물이다.

사람에 상처받고 나라에 배신을 당했음에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온 영웅. 그야말로 '히어로'라는 말이 어울리는 초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 히어로를 상대로 어떤 위치에 서야 하는가. 나는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마그마 속에 있던 사흘 동안 잠도 자지 않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론은 단 하나였다.

'쓰레기가 되자.'

원작처럼 행동하되 원작 이상의 빌런이 된다. 그 생각은 현재 시점이 원작보다 무려 5년이나 앞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점에 확고해졌다.

'그냥 괴수랑 괴인을 만드는 생산공장이 아니라 진짜 악의 조직을 이끄는 거야.'

전 세계에 펼쳐진 파편을 회수하려면 거대한 세력이 필요하다. 피닉스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지구 전체를 상대로 싸움을 걸기에는 시간상으로 무리가 있었다.

'메인 무대인 한국의 뒷세계에서 암약하는 빌런 조직.'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5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진짜 '악당'이 되기로.

이 지옥 같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리고 싶었다.

* * *

"어머. 뭘 그렇게 놀라요? 김상아 변호사님은 인텔리니까 원찬스 드릴게요. 원래 대답 못 하면 바로 죽이는데."

"미친 소리 하지 마!"

상아가 목이 갈라져라 소리쳤다.

"뭐? 저 남자를 부하로 부려?! 잘 들어! 저건 인간쓰레기야! 사람을 약 먹이고 강간하고 팔아치우는 거로 돈을 버는 개새끼들이라고! 너도 잘못했으면 저 짐승들한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그래서 저한테 뭘 줄 수 있는데요? 아, 변호사님이니까 계약서라도 써드려야 하나? 저랑 계약해서 제 부하가 되어주실래요?"

"......닥쳐. 미친 년."

상아는 독기어린 목소리로 욕설을 하며 구석에 놓인 보따리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 피닉스에게 던졌다.

스르륵.

구슬을 낚아챈 베일은 미끄럼틀 태우듯 구슬을 피닉스의 손바닥 위에 올렸다.

"오오. 괴수의 코어네요?"

"D급. 3000만 원은 될 거야."

상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덕배를 가리켰다.

"너 같은 이능력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그치? 그거면 저 쓰레기보다 가치 있지? 그러니까 그걸로 저 새끼 죽여줘. 네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음."

피닉스는 덕배에게 구슬을 들이밀며 물었다.

"당신 목숨값이 삼천만 원보다 더 비싸다고 생각해요?"

"...몰라. 시발. 죽일 거면 죽이던가."

"봐! 저 새끼도 자기 죽여달라잖아! 죽이라고!"

피닉스는 구슬을 손 위에서 만지작거리며 벽에 몸을 기대었다.

"암만 생각해도 저런 이능력자 1명 값으로 삼천만 원은 좀 손해긴 한데."

"뭐?"

상아는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멍청하게 물었다. 피닉스는 교복 주머니에 구슬을 집어넣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가 꺼냈다.

"짜잔! 구슬 마술. 괴수의 코어 하나가 순식간에 넷으로 늘었습니다."

피닉스의 손가락 마디 사이마다 구슬이 끼워져있었다. 상아가 준 구슬보다 더 크고 선명한 색의 코어가.

"제가 굳이 김상아 변호사님이 꿍쳐둔 괴수의 코어를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그럼 뭘 어쩌라고! 내가 가진 게 그거밖에 없는데!"

상아가 악에 받쳐서 소리쳤다. 핏발이 잔뜩 선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피닉스는 실실거리던 미소를 지웠다. 그의 눈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동정을 담고 있었다.

"더 가치 있는 게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다니 안타깝네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괴수의 코어를 다시 주머니에 넣은 피닉스는 덕배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안타깝네요. 김상아 변호사님이 당신의 미래를 팔았어요. 삼천만 원에."

덕배는 묵묵부답으로 두 눈을 감았다.

화르륵.

피닉스가 덕배의 어깨를 툭 치자 덕배의 온몸에서 푸른 불꽃이 일었다.

파스스스.

불꽃은 삽시간에 덕배의 온몸을 태웠다. 덕배는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자. 끝. 그러면 안녕히 계세요."

홀가분한 얼굴을 한 피닉스가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 상아는 뛰쳐나와 피닉스의 몸을 뒤돌려 어깨를 붙잡았다.

"무슨 짓이야! 죽여준다며!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럽게!"

"그것도 그렇지만 제가 또 고급인력이라서. 받은 만큼 태워드렸습니다. 초당 1억? 삼천만 원만큼 태웠어요."

"개소리하지마!!!"

"아, 진짜."

피닉스는 상아의 팔을 옆으로 밀어내며 상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히, 히익?!"

바로 앞에 덕배가 어떻게 죽었는지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에, 상아는 온몸을 오들오들 떨며 겁에 질렸다.

"왜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는 걸까, 김상아 씨. ...없애버리고 싶어 지게."

" "

상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피닉스는 상아의 어깨를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다 다시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에요. 전 절대 '쓸데없이' 누구 죽이거나 그러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웃어요. 스마일! 왜 꼭 누가 죽일 것처럼 그러고 있어요."

상아는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뭐 어디 사람 못 죽여서 미친놈도 아니고. 지금도 그렇잖아요?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인신매매나 하는 쓰레기들이에요. 죽어도 싸죠? 그렇죠? 아, 이것도 묻는 거니까 대답을 해주세요."

"으, 네! 네!"

상아가 턱이 쇄골에 닿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피닉스는 상아의 어깨에서 흘러내린 옷을 추스르며 웃었다.

"그죠? 사람 같지도 않은 쓰레기들이었어요. 청소한 거죠. 앞으로 펼쳐질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서. 러브 앤 피스!"

피닉스는 주머니 속에 들어간 구슬을 하나 꺼내 상아의 손에 꼭 쥐여줬다. 상아가 덕배의 목숨값으로 지불한 D급 괴수의 코어였다.

"그러니까 이건 안 받을 거에요. 길가에 굴러다니던 쓰레기 치웠다고 돈을 주거나 그러지는 않잖아요. 그죠? 사람 사는 세상에."

상아는 피닉스를 따라 웃었다. 웃지 않으면 큰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예, 예!'

"그런데 말이에요."

피닉스는 상아의 두 손을 꼭 쥐었다.

"이 괴수의 코어를 보따리에 숨겨서 버스에 탔으면, 그 뒤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흡?!"

상아가 손을 빼내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피닉스에게 잡힌 두 손은 올가미에 걸린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괴수의 코어는 다른 괴수의 맛있는 먹잇감이죠. 코어를 섭취하면 그 힘을 그대로 흡수하니까. 숨겨도 소용없어요. 마력을 차단하는 막을 씌우지 않은 코어는 아무리 약한 괴수라도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더라고요. 공항 넘어오면서 얼마나 달려들던지."

피닉스가 손을 떼었다. 반동으로 벽에 부딪힌 상아는 바닥을 굴렀다가 보따리를 챙겨 바깥으로 향하는 문으로 달렸다.

쿵! 쿵쿵!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바깥에는 푸른 불꽃의 막이 펼쳐져 있었다.

"D급 괴수의 코어라고 했죠? 이야, 이거 들고 버스 탔으면 저어기 고속도로 내려가다가 재밌는 일 벌어졌겠다. 그죠? 어디 몸에다가 숨기면 냄새 새어나갈까 봐 엄청나게 둘러싸셨잖아요. 히어로가 동승해도 괴수들 떼거리로 몰려오면 다 소용없는 짓인데."

"아아악! 아악!"

저벅, 저벅. 피닉스는 덕배의 시체를 넘어 상아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 사람 팔아먹으려고 한 쓰레기들이랑 비교했을 때, 함께 탄 버스 승객들 다 괴수의 밥으로 만들뻔한 사람도 죽어 마땅한 쓰레기일까요?"

"닥쳐! 그딴 일 절대 안 일어나!"

"저런.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요."

피닉스가 상아의 바로 뒤에 섰다. 상아는 문고리를 여는 것을 포기하고 바닥을 기어 방 중앙으로 도망쳤다.

"대답 좀 해주세요. 저 지금 몹시 진지하게 궁금한데."

"개소리 집어치워! 넌 인간도 아닌 년이야!"

"...흐."

그 말이 무엇이 우스웠을까. 피닉스는 갑자기 그야말로 미친 사람처럼 폭소하기 시작했다.

"아하하하! 하하하! 크흐, 인간도, 아니래! 아하하하!"

배까지 부여잡으며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마치 뮤지컬 속에서나 보던 광인의 그것과도 같았다.

배역에 함몰되어 과잉된 감정을 실어 광소하는 배우.

"아하, 하하하. 하아...."

피닉스는 그대로 수 초를 웃다가 숨을 헐떡였다. 소파를 집고 자세를 바로 세운 피닉스는 상아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누구보고 인간도 아니래?"

딱.

상아는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허공에 팔을 휘저으며 어떻게든 불을 꺼보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아악...."

덕배를 비롯한 이들 모두가 그렇게 사라진 것처럼, 상아도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불꽃이 타올랐다가 사그라든 시간은 정확히 덕배가 타올랐던 만큼이었다.

"자, 그럼...."

피닉스는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케이스 끝이 살짝 그을린 와중에도 스마트폰은 여전히 촬영 모드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촬영까지? 가지가지 했네요."

영상 녹화를 중단하자 촬영된 영상이 갤러리에 저장되었다. 앨범에는 방금 찍힌 상아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사진과 영상이 가득했다.

"으."

피닉스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갤러리를 닫았다.

'나중에 시간 되면 포맷해서 지우든가 해야지.'

핸드폰에 불법 동영상이나 넣고 다니는 존재라고 오해받을 수는 없지만, 서울에 들어가서 제대로 된걸 개통하기 전까지는 임시로라도 써야 했다.

삐삐삐.

"어라?"

스마트폰에서 울린 경고음을 확인하자 배터리가 고갈되었음을 알렸다.

"이런."

빨간불을 보이는 배터리. 피닉스는 황급히 서랍 근처를 뒤져 충전기를 찾아내 스마트폰과 연결했다.

"급속충전에 1시간?"

피닉스는 함께 떠오른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4시 12분. 한시바삐 서울로 올라가도 모자랄 때 계속해서 시간이 끌리고 있다.

'이래서 딴짓하지 말고 그냥 갔어야 했는데....'

피닉스는 베일을 손가락으로 꼬았다.

그냥 이 자리를 떠날까, 아니면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스마트폰을 챙겨갈까.

'...심심하니까 있는 게 낫지.'

가는 동안 데이터를 쓰면서 이 세계에 대한 정보를 탐색할 좋은 기회라고 자신을 세뇌하며, 피닉스는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올리고 기지개를 켰다.

"그럼 한 시간 동안 뭐하죠...."

목에 감은 베일을 베베 꼬던 피닉스는 방안을 훑다가 덕배의 시체에 시선이 닿았다.

신체 강화라는 단순한 이능력을 가졌지만 잠재력은 높아 보이는 자. 원작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동네 빌런.

이걸 괴인으로 만들면 어떻게 될까?

"......."

피닉스는 조용히 괴수의 코어를 꺼냈다.

* * *

조덕배.

어딘가 연식이 들어 보이는 이름은 그의 부모가 아무렇게나 지어준 이름이었다.

일용직 노가다꾼과 물장사를 하던 여인이 일으켰던 하룻밤 불장난의 결과물.

어려서부터의 첫 기억이 고아원에서 원장에게 뺨을 맞는 것으로 시작한 덕배의 인생은 그야말로 막장인생이었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덕배가 더는 고아원에 있을 수 없게 된 나이가 된 날, 고아원에서 나와 길거리를 전전긍긍하던 그는 역사에서 노숙하다가 박호철이라는 남자에게 거두어졌다.

타고는 그의 덩치를 보고, 제 영업장의 관리를 맡기려던 호철은 덕배를 수하처럼 부리기 시작했고, 덕배는 그저 그의 명령을 따르는 삶을 살았다.

그런 덕배의 인생에 전환점이 다가왔다.

이능력의 각성.

영종도를 습격한 괴수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영종대교를 달리던 와중에 각성한 <신체 강화>의 이능력은 본디 축복이 돼야 했었지만, 덕배에게는 새로운 족쇄가 되었다.

'야. 네가 히어로가 되겠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물장사 어깨 잘하던 놈이 인류의 영웅이 되면 이 나라는 끝이야, 끝. 개꿈은 접고 가서 수금이나 돌아. 너 부모님 찾고 싶다며? 그러면 돈 많이 벌어야지?'

마침 자신의 능력도 각성한 호철은 덕배의 힘을 이용해 사업을 점점 더 크게 벌리기 시작했다. 그저 동네 어깨들에 불과했던 그들은 무주공산이 된 인천의 뒷구역에 터를 잡아 세력을 굳혔다.

인천이 터지기 전에 최대한 돈을 모아 신서울로 뜬다.

그리고 모은 돈을 상납금으로 바쳐 신서울 최대의 조직 '빌런연합'에 가입한다.

덕배는 그렇게 호철의 목표를 따르는 충직한 개였다. 비록 여자애는 욕심이 없어 탐하지는 않았지만, 인천 뒷세계에는 '스킨헤드'라고 불리며 악명도 쌓았다.

최근에는 자신의 힘이 너무 강해져 부하들이 저를 따르고 그로 인해 호철과 사이가 요원해져 버렸지만, 어찌 됐든 덕배는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네.'

그 모든 것이 운 나쁘게 걸린 미친 살인마에 의해 불타버렸다. 덕배의 인생은 고작 삼천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팔려버렸다.

'삼천만 원이나 돼서 다행이네. 내 인생.'

한 인간의 가치를 금전으로 매길 수는 없지만 덕배는 제 인생의 값어치가 딱 그만큼이라는 것을 스스로 공감하는 데에 웃음이 나왔다. 인간쓰레기의 삶이 그보다 더 가치 있다고 할 수는 없었으니까.

'다시 태어나면 좀 더 가치 있는 인생을.'

부잣집 금수저는 아니라도 좋으니 화목한 가정에서 양친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다. 지랄 맞은 여동생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고.

'근데 나 뒤진 거 아니야?'

푸른 화염이 제 시야를 가리며 생전 처음 겪는 고통과 함께 의식을 잃었다. 아마 그것이 덕배의 삼천만 원짜리 죽음이었을 것이다.

'이거 사후세계인가 그러면?'

"조덕배. 조덕배."

이제 이름이 세 번 불리면 저승으로 끌려가는 건가. 덕배는 자조하며 이름을 부른 미성에 답했다.

"나는 어느 지옥에 갇히는 거냐?"

"현실이란다. 덕배야."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덕배는 심장이 멎는듯한 충격에 놀라 다시 의식을 잃었다.

* * *

"...뭐야. 이 새끼 또 왜 기절?"

나는 의식을 잃은 덕배의 뺨을 툭툭 쳤다. 바위처럼 변해버린 피부는 사람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이질적이었다.

'바위 괴수였구나.'

나는 덕배의 심장에 박힌 괴수의 코어-상아가 남기고 간 것-을 살폈다. 탁한 회색빛으로 빛나는 괴수의 코어는 덕배의 전신을 바위처럼 물들였다.

'그냥 인천공항에서 주운 거로 박아줄 걸 그랬나?'

온몸 구석구석에 넣어둔 괴수의 코어. 인천공항에서 괴수들을 잡아 족쳐 얻어낸 전리품들은 모두 최소 C급 이상의 물건들이었다.

'오히려 D급 보기가 더 어려웠지.'

딱 B급 정도의 냄새와 마력만 풍기니까 괴수들이 A급은 저보다 약한 줄 알고 덤비고, B급은 맞먹으니까 덤비고, C급은 해볼 만한 줄 알고 덤비더라.

D급 이하는 그래도 무서웠는지 알아서 숨어들었다. 덕분에 일일이 찾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지나쳐 터미널까지 걸어왔다.

'이놈의 호기심이 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는데. 서해무기와는 달리 무계획적으로 만들어낸 두 번째 괴인에 나는 볼을 긁적였다.

'이거 어떻게 처분하지?'

원작에서도 '히어로'를 괴인으로 만드는 간부는 없었다. 애초에 불가능한 거로 되어있었으니까. 하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시체에다가 코어를 박아넣어 봤더니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

'진짜로 괴인으로 다시 살아날 줄 몰랐지.'

그럼 이건 괴인으로 봐야 하는 건가? 인간으로 봐야 하는 건가.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좀비? 히어로 괴인? 괴인빌런?

'몰라. 그냥 괴인으로 퉁쳐.'

괴인이랑 빌런을 나누어 부르는 것도 귀찮은 와중에 또 새로운 분류를 내라는 것은 심력 낭비다. 나는 '인간, 히어로의 괴인화'에 대한 호칭 정의를 언젠가 학계에 맡기기로 정하고 다시 덕배의 얼굴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조덕배. 조덕배. 조덕배 씨?"

도저히 깰 기미가 안 보인다. 하는 수 없지. 스마트폰이 완충될 때까지만 기다려야겠다.

그때까지도 안 깨어나면 다시 죽이고 가는 수밖에.

"99%...."

"낯선 천장이다."

덕배가 의식을 되찾았다. 나는 운명의 장난 같은 타이밍에 감탄할 지경이었다.

"1%만 늦었어도 다시 죽었는데."

"???"

덕배의 표정에 의아함이 가득하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고는 두 팔을 벌리며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환영한다. 나의 두 번째 종복이여."

"...갑자기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말투야. 술 처먹었나. 사람 삼천만 원에 태워죽이더니 저승까지 따라왔네. 시발련."

죽일까. 나는 건방진 부하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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