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1부 1장 (11)
[빌런]
이들은 히어로의 능력을 각성했지만, 그 능력을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악당들입니다. 세계 곳곳에는 각성한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는 빌런들이 많습니다. 만약 빌런을 발견하면 바로 협회의 신고번호 17539로 전화해 주세요!
- [읽으면 도움이 되는 게임 팁. 164.]
주먹이 안면에 꽂혔다.
콰아아앙!
사무실 안에 강풍이 일어날 정도의 정권. 이미 그는 이 주먹으로 괴수 여럿을 장사 보낸 지 오래다.
하지만 그 주먹이 처음으로 막혔다.
우우웅-
소녀의 목에 걸린 베일이 어느새 솟아올라 대머리 남자의 주먹을 가로막고 있다.
"더, 덕배 형님?!"
주변의 깍두기들이 주먹을 휘두른 사내의 이름을 외쳤다. 그, 덕배는 얼굴을 붉히며 어깨를 뒤로 당겼다.
단순히 주먹을 내지르는 것이 아니라 어깨와 허리의 힘까지 실은 전심전력의 펀치. C급 괴수도 일격에 박살 내는 그 주먹은 소녀의 머리를 으깨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주먹은 소녀에게 생채기를 입히기는커녕, 베일을 뚫어내지도 못했다.
쿠우우웅!
"아아아악!"
덕배는 터져버린 주먹을 부여잡으며 소파에 쓰러졌다.
"뭐, 뭐야?"
곁에 있던 어깨들은 그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두 눈에 들어온 광경은 덕배가 저 얇은 천 쪼가리에 밀려 넘어지고 주먹이 터져나간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으니.
소녀, 피닉스는 얼굴을 가린 베일을 손으로 잡아 내리고 다리를 꼬았다.
"그러니까 좀 가만히 있어 봐요. 나 지금 생각 중이니까."
"이 괴물 같은 년이?!"
남자 하나가 골프채를 들어 피닉스의 뒤통수를 후렸다.
까아앙!
마찬가지로 골프채는 뒤통수로 끌어 올려진 베일에 의해 구부러졌다. 남자는 손아귀가 찢어지는 고통에 골프채를 놓고 주저앉았다.
"끄어어억!"
"비, 빌런?!"
청년이 겁에 질려 사무실 구석에 바싹 붙었다.
그가 알기에 한국에는 푸른 머리칼의 여고생 히어로는 없었다.
하지만 이 인근의 뒷세계에도 이런 빌런은 없었다. 이미 그들의 대장인 덕배가 이 구역을 꽉 쥐고 있는 빌런이지 않은가.
"아니. 빌런은 아닌데요. 아. 그냥 빌런이라고 해야 하나?"
피닉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이, 정신을 차린 덕배가 다시 주먹을 쥐며 일어섰다.
"크아아아악!"
괴성과 함께 내지르는 주먹은 전광석화처럼 피닉스의 복부를 향했다. 그 속도는 베일의 움직임보다 더 빨랐다.
턱.
피닉스의 조막만 한 손이 덕배의 주먹을 막았다. 피닉스는 농구공을 쥐듯 손가락 끝을 갈고리처럼 덕배의 주먹을 살짝 쥐었다.
"아아아악!!"
덕배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피닉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손을 놓았다.
"그 덩치로 엄살은."
피닉스는 차가 반쯤 남은 종이컵을 들어 막 입구로 던졌다.
새액! 퍼억!
허공을 가른 종이컵은 막 문으로 도망치려던 사내의 콧잔등을 스치며 벽에 박혔다. 마력이 실린 종이컵이 박힌 벽에서 콘크리트 잔해가 부스스 떨어졌다.
"으어, 허어억."
코가 베인 사내는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지춤이 축축이 젖으며 알싸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어휴."
피닉스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내가 진짜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피닉스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오줌을 지린 사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저기요.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요."
"예! 뭐든지 물어보십쇼!"
사내는 무릎을 꿇으며 그야말로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보통은 이다음 흐름으로는 약 먹이고 강간하잖아요? 그러면 강간한 여자들은 어떻게 돼요?"
"그, 그게...."
사내가 다른 이들, 특히 덕배의 눈치를 보았다. 피닉스는 사내의 눈앞에 작은 불꽃을 일으키며 웃었다.
"대답을 안 하면 죽어요~♪"
"팔았습니다! 저희끼리 돌려먹다가 마담에게 넘겼습니다!"
"와. 그럼 남자는요?"
"나, 남자는 상품 가치가 없어서 그냥 돈만 먹고 묻었...."
"우와. 제대로 쓰레기들이었네요."
피닉스는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가 손가락을 펼쳤다.
"자. 그러면 여기서 또 질문. 만약에 제가 약에 취해서 절여졌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예?"
"삐. 탈락."
피닉스는 미소와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화르륵!
"아아아악!!"
사내의 전신에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사내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사무실 안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다른 어깨들은 그런 사내를 도울 생각도 못 하고 몸을 피하기 급급했다.
"하아아악!"
사내는 불에 타는 와중에도 유리창을 열어 밖으로 뛰어내리려다, 창살과도 같은 방범창을 보며 절망에 빠졌다.
"한 명쯤은 그러지 않았어요? 창문으로 도망치려다 그거 보고 좌절하는 사람. 필름까지 붙여서 바깥이 안 보이게 해둔거 보고 진짜 심하다 싶었는데."
"캬아아악!"
피닉스의 빈정거림에 사내는 탁자를 박차고 뛰어올라 피닉스에게 달려들었다.
"쯧."
피닉스가 손바닥을 쳤다. 사내는 달려들려던 그 모습 그대로 온몸이 불타올라 재가되었다.
파스스.
바닥에 깔린 카펫에 쌓이는 재만이 사내가 존재했다는 증거로 남았다. 그마저도 피닉스가 휘저은 손짓에 불타올라 소멸했다.
"괴, 괴물!"
청년이 구석에서 벌벌 떨며 소리쳤다.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 한 명을 세상에서 말 그대로 지워버렸다.
"누구보고 괴물이래요. 사람의 탈을 쓴 쓰레기들이."
피닉스가 이번에는 손아귀가 찢어진 남자의 앞에 다가섰다. 남자는 엉덩이를 뒤로 끌며 도망치다 캐비닛에 부딪혔다.
"자. 그러면 그쪽도 마찬가지. 바로바로 대답을 안 하거나 '에?', '난닷테?' 같은 말 나오면 죽어요. 알겠죠?"
사내는 고개를 떨어져라 격하게 끄덕였다.
"아까랑 똑같은 질문. 제가 약에 취해서 저항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요?"
"그, 덕배 형님부터 차례대로 그, 성교를...."
"강간이잖아요. 뭘 잘났다고 말 돌리고 있어.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얘기해요. 안 그러면 죽일 겁니다?"
"도, 돌려먹으려 했습니다! 오늘 온종일! 부랄이 텅텅 비어서 한 방울도 안 나올 때까지!"
침까지 튀기며 말하는 사내는 필사적이었다. 피닉스는 여전히 속을 알듯 모를 듯 인자한 미소로 질문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어떤 체위로?"
"아, 그, 그러니까아아아아아악?!"
"바로 답 못하네요. 탈락."
말을 더듬기가 무섭게 골프채의 사내는 재로 타들어 갔다. 피닉스는 이번에 벽 구석으로 다가갔다.
청년은 침을 꿀꺽 삼키며 허리띠를 풀며 바지를 벗었다. 그 기행에 피닉스는 아무 말 없이 제자리에 멈춰 섰다.
"저, 저는 입에다가 먼저 박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 싸고 몸을 뒤집어서-"
"안물안궁."
청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불꽃에 휩싸여 사그라들었다.
"그러면 이제 한 명 남았네요. 이름이 덕배? 푸흐. 그러면 덕배 아저씨. 아저씨는 나를 어떻게 먹으려고 했어요?"
"...나는 그럴 생각 없었다."
덕배는 터져버린 두 주먹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피닉스를 노려봤다. 피닉스는 한껏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이죽거렸다.
"와. 거짓말하면 죽인다고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구라치는것 같냐? 미안하지만 난 너 같은 미친 년이랑 섹스 안 해."
"어머. 이 새끼 말하는 꼬라지 보세요."
피닉스는 덕배와 얼굴을 마주했다.
"뭐 나는 쟤들이랑 다르다 그거에요? 어차피 사람 납치해서 팔아먹는 인신매매범인 건 똑같은데?"
"...달라. 나는 그저-"
"누구는 재활용이고 누구는 소각용이라고 해도 쓰레기가 쓰레기인 건 아니죠?"
피닉스의 말에 덕배는 입술을 깨물었다.
으슬으슬 떨리는 입술에는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됐다. 죽여라. 너 같은 괴물이랑 만난 게 내 잘못이다."
"누가 지금 죽인대요? 아저씨는 아직 소각용 아니에요."
피닉스는 덕배의 멱살을 잡아들고 벽으로 집어 던졌다.
콰앙!
벽이 무너지며 덕배가 복도를 굴렀다. 피닉스는 그 잔해 위를 살포시 뛰어오르며 쓰러진 덕배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아아. 살아있는 거 아니까 일어나요. 아저씨 아직 할 일 하나 있어요."
"...하기 싫다면?"
"어? 하기 싫어요? 잘만하면 살려줄 수도 있는데. 진짜로요."
피닉스의 말에 덕배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의연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 무안하게, 생존의 동아줄이 내려오자 그 의지가 한없이 흔들렸다.
"재활용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또 능력자는 우대하거든요. 살아서 다시 쓰일지, 아니면 못 쓰고 버려질지는 아저씨 선택이에요. 자. 3 초안에 답하세요. 할지 안 할지. 셋-"
"하겠다."
덕배는 몸을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 모습에 피닉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뭘 하면 되지?"
"아. 뭐. 별건 아니고."
피닉스는 주변을 훑으며 물었다.
"아까 김상아 씨 데려간 그 놈팡이, 지금 어디 있어요?"
* * *
호철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허름한 침대에는 실신한 나신의 여성이 몸을 떨고 있었다.
"형님, 좋습니까?"
석필이 질렸다는 듯 묻자 호철은 침대에 대자로 누우며 대답했다.
"야. 네가 아직 유부녀 맛을 몰라서 그래. 자고로 여자란 농익은 30대에 그 맛이 절정을...."
"네. 저는 20대 이상 할머니는 취급 안 합니다."
"미친 페도 새끼."
호철은 쓰러진 상아의 등을 손으로 쓸며 자세를 고쳤다.
"너 그래서 진짜로 안 할 거냐? 나 진짜 모처럼 기분 좋으니 뒷구멍은 쓰게 해주마."
"진짜로 관심 없다니까요. 그리고...."
석필은 입술을 훔치며 피식거렸다.
"얘기했잖아요? 이 아줌마 말고 파릇파릇한 여고생도 물었다고. 형님이 걔 와꾸보면 이런 아줌마는 바로 마담한테 팔아치울걸요?"
"그 정도냐? 와 씨. 나 당장 가도 되냐?"
"덕배 형님한테 허락 맡아요. 일단 걔는 그 형님이 해결하기로 했으니까."
"덕배 '형님'? 지랄. ...갑자기 그 대머리 새끼 얘기는 왜 해?"
"형님 아직도 덕배 형님이랑 화해 안 했어요?"
"야. 솔직히 너나 나나 사람 팔아치우는 거 돈 벌려고 하는 짓 아니냐."
호철은 침대에 기대앉으며 자세를 고쳤다.
"님도 따고, 어! 뽕도 따고, 어! 어차피 세상 다 팔아먹을 거 좀 따먹으면 어디가 덧나냐! 엉! 그 새끼 이능력 좀 좋은 거 각성했다고 씹선비질하는거 존나 마음에 안 들어! 시발! 좆은 무슨 야구 배트 꽂아놓은 새끼가!"
"덕배 형님이 여자들 안 안기는 하죠."
"남자 새끼가 말이야, 어! 지도 사람 팔아서 돈 벌어먹으면서! 시발! 내가 그 새끼 혹시나 히어로 등록하면 존나 모아놓은 증거 다 까발릴 거야. 하여튼 한 번 걸리기만 하면-"
"우와. 얘는 쓰레기도 아깝네요."
문이 쾅 열리며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저벅저벅 들어왔다. 코를 찌르는 밤꽃 냄새에 코를 막으면서도 시선은 기절한 상아에 닿아있었다.
"네. 물을 것도 없네요."
피닉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호철의 온몸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끄아아악!!"
호철은 비명을 지르며 안고 있던 상아를 침대에 집어 던졌다. 좁은 방안을 이리저리 부딪히고 바닥을 구르며 불을 끄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불꽃은 빠른 속도로 호철을 구워버렸다.
"끄어어억...."
피닉스는 호철이 타들어 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다가, 그가 숯검댕이 되어 고개를 떨구자 석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우리 구면이죠?"
"시발! 뭐야!"
석필이 옆에 있던 카메라 대를 집어 들어 피닉스에게 겨눴다. 끝에 달린 스마트폰은 격하게 흔들리며 화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하아."
막 피닉스를 따라 들어온 덕배는 코를 찌르는 탄내에 인상을 찌푸렸다. 덕배의 등장에 석필은 잠시 환호했으나, 이내 곧 진상을 깨달았다.
"시발 너 이 새끼! 배신했구나!"
"미안하다."
"이 의리 없는 새끼야! 호철 형님이 너 역사에서 죽어가던 거 거둬줬더니! 시발 능력 등급 높은 거 각성했다고 배신하냐!!"
"시끄러워요."
피닉스가 손가락을 튕기자 석필은 푸른 불꽃에 휩싸였다. 이미 덕배가 사무실에서 몇 차례 봤던 것처럼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불타는 그 모습에 덕배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 내 차례냐?"
"그런 셈이긴 한데요."
피닉스는 침대 위에 죽은 듯이 쓰러진 상아를 보며 짧게 혀를 찼다.
짝.
박수와 함께 상아의 몸 주변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덕배는 순간 놀랐지만, 불꽃이 무엇을 태우고 있는지를 보고 더 놀랐다.
"청소 끝."
푸른 불꽃은 호철이 싸지르고 떠난 흔적들만을 정확히 태워 소멸시켰다. 피닉스는 상아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봐요. 정신 차려요."
"어, 으응...."
"김상아 변호사님."
"아! 아아."
상아가 제정신을 차리며 깨어났다. 처음에는 멍하니 피닉스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방금까지 있던 일을 떠올렸다.
"아...아아아아악!!!"
짐승의 절규와도 같은 비명을 지르며 이불에 얼굴을 묻는다. 피닉스는 덕배에게 시선을 주며 방에서 빠져나왔다. 덕배는 그저 말없이 피닉스를 따라 나왔다.
바람은 너무나도 쌀쌀했다.
"후우."
피닉스는 구름이 가득해진 하늘을 보며 착잡한 얼굴로 웃었다.
"어때요? 당신들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보니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요? 그런데 이런 짓은 왜 했어요?"
덕배는 피닉스의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돈이 필요했다. ...많이."
"돈이 필요하면 이런 짓 해도 되는 건가요?"
덕배는 터진 주먹을 쥐었다.
"변명은 하지 않아. 그저, 이게 돈을 빠르고 많이 버는 길이었다."
"흥."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아무 말 없이 문밖에서 잠시 서 있었다.
"음."
피닉스는 방안을 슬쩍 흘기고는 덕배에게 안을 가리켰다.
"이제 들어가죠."
피닉스는 철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상아는 이불을 둘러싸고 침대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쓰러진 호철의 시체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었다. 피닉스는 그 모습에 살포시 웃으며 상아와 눈을 마주쳤다.
"분은 그걸로 풀렸나요?"
"...분? 이걸로?"
상아는 이를 갈며 피닉스를 노려봤다.
"저 새끼 살아있었으면 내가 산 채로 씹어먹었을 거예요. 저 새끼도, 저 새끼 도운 새끼들도."
귀기 서린 상아의 말에 덕배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피닉스는 덕배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상아에게 덕배를 가리켰다.
"이 남자도 저거 동료였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상아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덕배에게 달려들었다. 어느새 원래의 옷을 챙겨입은 상아의 두 손에는 전기충격기가 들려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상아를 보며 덕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허. 아직이요."
피닉스가 손을 뻗어 상아를 막아세웠다. 상아는 그 손을 피해 덕배를 향해 달렸지만, 피닉스는 상아의 뒷덜미를 잡아 침대를 잡아 던졌다.
"아아아악! 나를 막지 마!"
"워, 워. 진정해요. 나는 당신에게 '거래'를 하려고 하는 거니까."
피닉스는 한 손을 앞으로 쭉 펼쳤다.
"당신이 원한다면 이 남자에게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을 주면서 죽일 수 있어요. 그야말로 그냥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아픈 고통.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기는커녕 '제발 죽여줘'라고 수백 번은 말할 고통."
"그럼 당장 죽여버려!"
피닉스는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 덕배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게 저 남자는 나름 이능력자란 말이죠. 신체 강화 계인 것 같지만 재능도 출중해 보이고. 쓰레기라도 재활용이 같아서 말이에요."
"무슨 소리야?! 죽여! 죽이라고!"
상아는 악을 쓰며 덕배를 가리켰다. 그저 계속 웃는 피닉스에 상아는 피닉스에게 매달려 울부짖었다.
"제발, 죽여줘. 당신도 사람이잖아. 그럼 저 새끼들이 어떤 짓을 저지른 지 알 거 아냐?!"
"아. 참 그게 말이죠."
피닉스는 상아를 다시 잡아 침대 위로 던졌다. 여전히 웃고 있는 그 모습이, 상아는 너무나도 인간 같지 않았다.
"제가 몹시 감수성이 부족한 놈이거든요? 그래서 '효율'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하나 질문할 게 있어요.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서 저 남자를 죽일 지 살려줄 지 정할게요."
"그런 게 어딨어?!"
"여깄죠. 싫음 말고요. 덕배야. 가자."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덕배의 팔을 잡아당기는 행동에 덕배가 오히려 더 놀랄 지경이었다.
"잠깐만!"
상아는 초인적인 힘으로 달려가 피닉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질문, 답할게! 뭐든지 답할 테니까!"
상아는 죽일듯한 눈빛으로 피닉스와 덕배를 노려보았다. 피닉스는 두 손을 비비며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어떤 질문이라도 좋죠?"
피닉스는 두 팔을 펼치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가 역설적이게도 상아는 너무나도 아름답다고 느꼈다.
"제가 저 남자를 부하로 쓰려고 하는데, 그를 죽이는 대신에 당신은 내게 뭘 줄 수 있어요? 저 남자를 살리는 것보다 이득이면 죽여줄게요."
아름다운, 악마의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