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1부 1장 (5)
류 요호 지부장은 타들어 가는 담배를 재떨이에 쑤셔 짓이겼다.
"후우."
담배가 몸에 해로운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지금 전화를 할 상대는 담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맨정신으로 대하기 어려웠다.
뚜루루루-
전화기 소리가 들리길 수 차례. 딸칵하는 소리와 함께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했소. 류 동무.]
"아닙니다, 국장님."
침이 절로 삼켜졌다. 온몸이 긴장으로 빳빳히 굳었다.
[주석께서도 이 결과에 상당히 만족하고 계시외다.]
"그렇습니까?"
지부장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미확인 괴수를 조선 쪽으로 보내자는 그대의 기책을 말씀드렸더니 주석께서도 감탄하셨소.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야 뭐 이쪽에서 알아서 해결했지만.]
지부장은 그 해결 방법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상대가 한국에 악감정을 가지고 있어 그 이름마저도 달리 부르는 것은 십분 이해했지만, 이번에는 그 정도가 심했다.
"예. 그...미사일을 쏘셨죠."
[물론 그걸로도 S급 괴수에게 해를 입힐 수 없지. 하지만 괴수를 날려 보내는 정도는 가능하지 않은가?]
"...S급 괴수입니까?"
[후후. 그게 빌런인지 괴수인지는 이제 그 누구도 모르지.]
수화기 너머에서 낮은 웃음이 들려왔다.
[시보에는 운장이 활약한 것으로 알려질걸세. 운장의 오의를 맞은 괴수가 큰 타격을 입고 조선 쪽으로 도주. 어쩌겠는가? 이미 조선의 영공으로 괴수가 넘어간 것을. 우리가 국제법을 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예. 그렇습니다."
전 세계 전방위적으로 괴수들이 출몰하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괴수의 사체와 그 핵이 새로운 자원으로 활용되면서 세계는 하나의 약속을 만들었다.
'괴수의 토벌은 영토의 주권국이 해결한다.'
자국 내 영토의 괴수에 대한 토벌의 주권을 가짐과 동시에 타국의 간섭을 배제하는 국제적 협약. 범국가 조직인 히어로 협회는 당연히 반발했지만, 끊임없이 벌어지는 괴수 부산물의 처리 문제에 협약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부장은 그 협약을 악용해 괴수를 중국의 영해에서 한국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그 푸른 소녀 빌런, 아니 S급 괴수에 대한 토벌의 1차 의무는 한국으로 넘어간 것이다.
"오랜만에 S급 괴수의 등장이군요. 한국은 참 복 받았군요."
[사냥할 수 있다면 말이지. 큭큭.]
국장의 비웃음에 지부장은 따라 미소지었다. 8년 전-2012년-, 세계를 들썩이게 한 '평양 사태' 이후로 한국은 히어로 계에서 위상이 크게 내려갔다.
[아무튼 현재 우리 당에서는 영웅들을 섣불리 움직일 수 없어. 자네도 알다시피-]
"예. 사막 쪽에서 흑전갈의 새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그래. 전력 대부분이 내륙 쪽에 있지. 다행히 우리의 군신께서 해안을 모두 맡아주신 덕분에 아무 문제 없이 '괴수를 쫓아낼 수' 있었지만.]
잠시 대화가 끊겼다. 지부장은 역시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어 굳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예의 그 <불사조>를 사냥하면 어떻게 하죠?"
[부정 탈 소리. 감당 불가능한 괴수를 조선 쪽으로 보내어 우리의 원조를 바라게 만드는 전략을 짠 건 자네가 아닌가?]
"예. 그렇죠. 하지만...."
지부장은 히어로 협회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한국의 두 S급 영웅을 떠올렸다.
하지만 만약 둘이 힘을 합쳐서 그 소녀를 잡는데 성공한다면-
[허튼소리 마시게. 자네는 그저 조용히 지부를 관리하면 되는 게야. 이제 슬슬 중앙으로 와야 하지 않겠는가?]
"아, 예! 예! 그렇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당을 위해 힘써주시게.]
딸칵. 전화가 끊기는 소리와 함께 지부장은 온몸에 긴장이 풀리며 의자에 그대로 기대 누웠다.
"머리 아프군."
괴수라는 존재가 나타나 세계의 위협이 되면서 동시에 그에 대한 대책본부인 히어로 협회의 위상 또한 높아졌다.
중국이 다른 나라와 차이가 있다면 그 협회의 힘보다 중앙이라고 불리는 당, 그중에서도 '대괴수관리대책국'의 위세가 협회보다 더 높다는 것.
'협회에 많은 영웅이 있지만, 본부에는 군신이 있다.'
운장은 단 한 명이지만 현재 중국 최강인 동시에 모든 인민의 영웅이다.
협회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운장의 소속을 협회에 등록시키고 하고 싶어 하지만, 당에서는 오히려 운장의 위세를 등에 엎고 협회를 장악하려고 하고 있다.
'아직 협회 쪽 줄이 더 단단해 보이지만....'
당장은 협회에 적을 두고 있지만 언제든지 본부로 넘어갈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둔 상태다. 그래서 지금도 지부장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오늘 있었던 운장의 전투 데이터를 삭제하고 있다.
[데이터 소거 중...90%.]
적토의 마갑에 장착된 블랙박스. 소녀와의 전투가 그대로 담겨있는 그 영상은 그 누구도 볼 틈도 없이 지부장의 손에 의해 소멸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부장은 새로운 담배를 쥐고 불을 붙였다. 호기심에 한 차례 재생했던 전투 영상의 끝.
하늘을 수놓은 화염구 무리를 눈앞에 둔 운장의 마지막 행동은 '후퇴'가 아닌 '도주'에 가까웠다.
"...설마 그럴 리가."
운장이 겁을 먹고 기수를 돌렸다니 그 무슨 공안에 끌려갈 소리. 지부장은 담배를 빨아들이며 영상을 삭제했다.
* * *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
이제는 사람이 모두 떠나 황폐한 백사장이 된 해안가를 박 노인은 매일같이 산책하고는 했다.
괴수가 나타나는 위험지역이라 동네 사람들 모두가 피난을 떠나고 군대마저도 철수했지만, 노인은 아직 이 동네를 떠날 수 없었다.
"육시럴 할 괴수 놈들."
노인은 쌀쌀한 바닷바람에 몸을 부르르 떨며 라디오의 버튼을 켰다.
귀신같이 요금을 퍼가던 통신사 놈들은 인천이 괴수에게 점령당하자 귀신같이 전파를 끊어버렸고, 졸지에 잘 사용하던 스마트폰은 벽돌이 되어버렸다.
결국 박 노인은 창고에 잠자던 라디오를 꺼내 들었다. 다행히 라디오는 이곳까지 아무 문제 없이 주파수가 닿았다.
[...이쯤에서 국방부 대변인의 발표를 다시 듣고 오겠습니다.]
피곤함이 잔뜩 낀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가 엄숙한 목소리의 남자가 말을 시작했다.
[국방부에서는 중국 측에서 서해로 한 발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하였으며...]
[...라고 정부에서는 말했습니다. 도 교수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아니, 중국 정부에서는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상식적으로 괴수에게 미사일을 쏘는 나라가 어디 있어요?]
[중국은 미사일을 쏜 건 분명 확인했습니다. 이건 미국 측에서도 인정한 부분입니다! 분명히 쐈어요!]
[그래서 그 미사일은 어디서 터졌죠? 미사일이 서해 한복판에 터졌는데 그 증거가 어딨습니까?]
잔뜩 빈정거리던 도교수는 비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미사일이 진짜 발사됐으면 어딘가에서 폭발이 일어났겠죠. 그런데 그런 곳 지구상에 어디 한 군데 없어요. 하다못해 주변 괴수들이 미사일에 자극되어 날뛰기라도 했나요? 저는 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국방부에서 큰 실수를 했다-]
[폭발 있었습니다! 그때 히어로 운장이 서해안에서 괴수와 싸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국방부를 대변하던 이가 말을 자르며 소리쳤다. 그는 과거 직업군인이면서 현재 협회에서 파견된 히어로였다.
[운장이 비록 중국소속이긴 하지만 명백히 12 영웅인 만큼 자국 내에서 발사된 미사일도 어떻게 수습했을 것-]
[본인 자신도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라는 거 아시죠? 차라리 괴수가 미사일 먹어치웠다고 하시죠.]
"육갑 떨고 있네."
점점 더 격해지는 두 패널의 설전에 박 노인은 라디오를 꺼버렸다.
"군견이고 뭐고 세상이 이 꼬라지인데 어쩔 기여."
남쪽은 평화로울지 몰라도 과거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던 부근은 마경이 따로 없다.
"내가 젊었을 때는 빨갱이 내려온다고 난리를 치더니 다 뒤지고 괴수 놈들만 개떼처럼 내려오고 있는데 무얼."
2012년. 평양에서 벌어진 비극이 있던 이후로 이 나라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박 노인은 그날 바다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
쿠구구구구--!
"뭐, 뭐시여?!"
땅이 진동한다. 지진일까 싶을 정도의 강렬한 흔들림에 박 노인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괴, 괴수인감?!"
파아아앗---!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바다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솟구친다. 해수면에서 뛰쳐 솟아오른 거대한 물뱀의 그림자. 박 노인은 그 그림자의 정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서해무기?!"
쿠우웅!
서해 깊은 곳에 사는 A급 괴수가 왜 이런 곳까지 나타났는가. 박 노인이 어떻게 도망칠 겨를도 없이, 서해무기는 그 주둥이를 쩍 벌리며 백사장에 처박혔다.
"...므이?"
수 십 년간 뱃일을 해온 그는 스쳐만 봐도 물고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그것은 원래 물고기였을 괴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지라, 저 거대한 해룡과도 같은 괴수의 상태를 눈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뒤졌다고?"
그럴 리가. 워낙에 영악한 놈이라 바닷속에서 나오지 않기에 사실상 공략 불가라고 판정 난 놈이다. 그런 녀석이 지금 백사장에 혀를 쭉 내밀고 쓰러져있다.
심지어 몸 중간부터는 안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듯 너덜너덜해져 흉한 살을 죄다 보이었다.
"나도 이제 뒤질 때가 됐나...?"
라디오에서는 미사일이 사라졌으니 뭐니 하더니 이제는 바다 괴수가 죽은 채로 눈앞에 나타났다. 박 노인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레 서해무기의 시체-로 추정되는 것-에 다가갔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백사장에 깨신 소주병을 꼬나쥐고 한 발짝 씩 주둥이로 걸어갔다.
대략 열 발자국 남은 순간.
쩌-억
"으허 시벌!"
갑작스레 들어 올려진 서해무기의 주둥이에 놀란 박 노인은 본능적으로 깨진 소주병을 던졌다.
녹색으로 빛나는 무기는 여러 바퀴를 돌며 주둥이를 열고 나온 푸른 머리칼 소녀의 머리를 때렸다.
퍽.
"어, 어?"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즈음이던 손녀딸과 비슷한 몸집. 하지만 소주병과 부딪힌 머리칼 위로 떠 오른 마력의 보호막은 금방 소녀의 정체를 가늠케 했다.
"히, 히어로?"
박 노인의 물음에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서해무기의 입에서 바닥을 기며 빠져나왔다. 온몸에 착 달라붙은 연녹색 빛의 베일 아래 드러난 육체는 노인이 10년만 젊었다면 흑심을 혹하게 할 만큼 선정적이었다.
소녀는 멍한 눈으로 박 노인과 서해무기를 번갈아 보다 입을 열었다.
"...끄으."
소녀의 시야는 이리저리 흔들렸다. 박 노인은 달음박질로 소녀에게 다가가 앉았다.
"괜찮냐? 거 뭐 어디 레이드 뛰다가 먹힌겨?"
"웁."
소녀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는다. 박 노인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에 따라 몸을 피했다.
"우웨에에에엑!!!"
소녀는 입에서 바닷물을 거세게 토해냈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에 박 노인은 한 발자국 더 물러섰다.
"모...."
초점이 돌아온 소녀는 박 노인을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모택평 십...."
소녀는 현 중국의 대괴수관리대책국의 국장을 향해 쌍욕을 내뱉으며 자신이 토해낸 토사물에 얼굴을 처박으며 쓰러졌다.
"......모택평은 누구여?"
박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의식을 잃은 소녀를 서해무기의 주둥이에서 끌어냈다.
찌걱, 찌걱.
"으악?!"
박 노인은 소녀의 팔을 잡아당기다 미끄러져 손을 놓고 말았다. 소녀는 그대로 자신이 토해낸 바닷물 위에 고개를 처박았으며,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으으...."
이걸 업고 가야하나. 괜히 내가 손이라도 건드렸다가는 나중에 크게 경을 치르지 않을까. 노인의 노파심이 시시각각 깊어가는 사이에도 소녀는 기절한 채 입에서 바닷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쩌다 저리 됐을꼬."
노인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소녀의 몸을 일으켰다. 키가 평범한 축에 속하는 노인보다 머리통 하나 작은 키의 소녀는 자신의 손녀보다 훨씬 작고 아담했다.
"불쌍한 것 같으니."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히어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의식을 잃은 소녀를 백사장에 방치하여 괴수에게 잡아먹히게 놔두기에는 노인의 양심이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세계가 괴수에게 망해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끼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죽지 말고 살어. 내는 더 송장 치르기 싫으니까."
노인은 소녀를 등에 업고 힘겹게 집으로 걸어갔다. 몸이 들썩거려서 그럴까. 소녀가 신음을 흘리며 의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흐으, 으으으...."
"아, 정신이 드냐?"
"우웨에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