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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0화 〉#67 그 선녀와의 지리산에서의 밀회(1) (270/271)



〈 270화 〉#67 그 선녀와의 지리산에서의 밀회(1)

부우우웅― 부우웅―

“.......”

“.......”

“.......”

“Fuck? 뭔가요. 뭔데요. 여기 다 모여서 뭐하는 건데.”

【어비스】의 아지트. 회의실용 룸.

참모, 애플, 나, 그리고 클럽은 원탁처럼 보이는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 막 들어온 클럽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찔러댄다.

부우우웅― 부우웅―

“참모... 드디어.”

“네, 13호님.”

“서방님... 죽으시면 안 돼요...!”

“아니, 잠깐만요. 다들 뭐하는데. 나도 좀 알려줘봐요.”

“죽지 않고 다들 살아서 볼 수 있길 바래....”

“13호님... 13호님...!”

“서방니임... 흐으윽...!”

“Fuck! 뭐하는데? 나도  알아듣게 말 좀 해봐!”

부우우웅― 부우웅―

“그리고 그 진동 시끄러워! 전원을 끄든 전화를 받든 뭐라도 좀 해봐요!”

짜증난다는 듯이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는 클럽.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구만, 하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더니 살기가 담긴 죽일듯한 눈으로 쳐다봐졌다.

무서워라. 깨갱.

그 사이에 계속해서 울리던 스마트폰 단말기가 뚝, 하고 조용해졌다.

후우.

“...일단 상황을 설명해줄게. 앉아봐, 클럽.”

“뭔데요,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일단 들어는 볼게요.”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 클럽.

그런 클럽을 잠시 노려보고, 한숨을 내쉬고, 다시 쳐다보고, 한숨을 내쉬고.

“저기, 그거 그만하면 안 되나요? 사람 얼굴보고 한숨 쉬는 거 진짜 기분 나쁜데요?”

“아, 미안. 괜찮아. 얼굴  거 아니니까.”

“그럼 어디 봤는데.”

“.......”

“Fuck. 당장 제대로 불어라, 이 새끼야.”

다시금 불같이 날뛰기 시작하는 클럽을 진정시켰다. 이래서야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잖아. 하여간 귀찮은 여자야.

“클럽, 같은 7번대에서 생활하는 입장으로서, 요즘 스페이드는 좀 어때? 막 목이 아프다거나 하진 않아?”

“스페이드 씨요? 괜찮은데요. 별거 없어요. 어제도 빌런 조직 하나 궤멸시켰다고 상여금 받아서 좋아라하던데요.”

“13호님 요즘 지갑 쪼들린다 하지 않으셨어요?”

“좋아, 내일은 스페이드 돈으로 고기파티다!”

“이런 쓰레기들....”

일단 반쯤은 농담이고.

그보다 진짜 얘기가 진행이  되네. 하여간 스페이드가 문제다. 상여금 같은 걸 받다니 괘씸한 것. 내일  탈탈 털어먹어야지.

그건 그렇고.

“그보다 본론이야, 클럽.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려줄테니까.”

“아, 까, 부, 터! 그거 얘기한다고 하면서 뭘 자꾸 질질 끄는건데요! 이 한심아!”

“시끄러워! 테이블 탕탕 두드리지마! 소리 지르지 마! 재촉하지마! 유리 같은 섬세한 마음이라 그런 식으로 재촉하면 정신 없다고!”

“싫으면 빨랑 말을 하든가요! 진짜 죽여버리고 싶게!”

일단 여기에 이 인원들을 모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침부터 자꾸만 휴대폰이 울렸기 때문이다.

나라도 만나는 사람은 있으니 전화가 울리는 게 이상한  아니다. 적어도 열 손가락으로 간신히 꼽을만한 사람들과는 통화도 하니까.

문제는 이게 전혀 모르는 번호라는 것.

특별히 설치해 둔 앱으로 판별하기로 이게 스팸이 아니라는 것도 확인했다. 그런데 그게 한 번이 아니라, 아침부터 일정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울리고 있다.

――‘히어로측의 번호예요. 말씀하셨던 백설 선녀의 번호가 맞는 것 같아요.’

――‘13호님, 어쩌시겠습니까?’

그리고 참모와 애플을 불러 번호의 출처를 확인하고,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궁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전화가 온 건 조금 전 것으로 세 번.

 번이나  번 정도는 받지 않더라도 융통성 있게 넘어가주지 않을까, 하는 배짱으로 무시했지만, 세 번이나 무시하면 이제 저쪽에서도 슬슬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겠지.

자, 그러면 이제 어떡한다.

“라는 느낌으로 이 자리에 모두 모이게  거야.”

“아니, 저기, fuck, 저는 지금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는데요. 선녀? 전화? 무슨 일인데요? 제대로 설명 안 해줄래요?”

“네가  엄마야? 굳이 다 말해줘야 해?”

“그럴 거면  불렀어 X발아!”

“어쭈, 클럽 너 요즘 입이 더럽다? 언제 한 번  여의봉으로 입 한 번 세척해줄까?!”

“이 인간이 진짜 미쳤나?! 며칠 안 본 사이에 왜 이렇게 됐대요?! 참모 씨, 애플 씨, 이 인간 진짜 왜 이래요?!”

“13호님이 요즘 잠을 거의 못 잔 모양이라... 아무래도 트집 잡을 사람이 필요한 모양입니다. 참아주세요, 아라 양.”

“좋겠다~ 서방님이랑 저렇게 싸울  있다니, 부러워~.”

“Fuck?! 저는 그냥 샌드백 대용?! 장난해요?! 다른 사람 불러!”

참모와 애플의 따스한 눈빛이 거북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지금 솔직히 백설 선녀한테 호출받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 떨려버리는 걸.

당장 씩씩거리며 뛰쳐나가려는 클럽을, 나도 마찬가지로 책상을 탕! 두드리며 가로막았다.

“클럽! 마침 오늘 우리 아지트에 와 있는 게 너였던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라고 다 되는  아니야! 너밖에 안 되니까 부른 거라고!”

“......어, 뭔데요.”

여전히 언짢은 표정이었지만, 자기밖에 안 된다는 소리에는 솔깃했는지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사실이다. 클럽 밖에는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싸가지 없는 여자랑 비슷한 게 너뿐이야... 그래서 그렇다고, 클럽.”

“뭐가 비슷하다는 건데요. 뭔데.”

“싸가지 없는 성격이라던가 이상한 말투라던가, 무엇보다 그 훌륭한 사반나 대평원 같은 빈약한 흉부가  여자랑 닮았어.”

“13호님의 말씀에 따르면 풍만한 가슴의 여성은 그저 그것만으로 용서하고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앙~ 가슴이 커서 슬퍼~ 나도 클럽처럼 평평하고 빈약한 가슴이었으면 서방님의 힘이 되어드릴 수 있었는데~.”

이미지 트레이닝을 겸한 것도 있다.

그 백설 선녀를 상대하기 위해서, 그 빈약한 어린애 같은 백설 선녀와 가장 비슷한 체형의 클럽을 앞에 두고 이겨내는 상상을 하는 것.

그렇게 해서 백설 선녀와의 싸움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이끌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협력해 줘.

“이... 인간들아아아아아아!!!!”

“끄헥?!”

“13호님?!”

“서방니임?!”

그러나 클럽은 어디가 그렇게 언짢았는지, 단숨에 폭발한 그녀는 몸을 휘릭 돌려 단숨에 달려와, 테이블을 뛰어넘고 내 안면 정중앙에 날아차기를 날렸다.

훌륭하고 깔끔하다. 가벼운 몸을 이용한 말끔한 풋워크가 일품이다. 그보다 코가 더럽게 아프다.

아니, 그보다 나를 공격하지 못하도록 암시를 걸어놨을 텐데.

쿠웅!

클럽에게 얻어맞고, 의자와 함께 뒤로 넘어지고.

클럽은 넘어진  위에 올라타 마운트를 잡고 그대로 열심히 주먹을 내려꽂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사람! 가슴을! 놀리지! 말라고! 인간아!”

“억, 윽, 푸억...!”

대단해. 저 자그마한 손에서 나온 것이라곤 생각도  되는 맵디 매운 연타가 얼굴에 고스란히 꽂힌다.

아무래도 그녀의 빈유를 우습게 본 것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세뇌암시를 뛰어넘은 모양이다.

하지만... 바라던 바야!

클럽의 연타 사이로, 나는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

“더 때려! 더 세게!”

“......?!”

클럽의 주먹이 우뚝 멈췄다.

“멈추지 마! 더 때려주세요! 익숙해져야 해!”

“으... 에에...?”

“그 여자에게 이기기 위해서, 나는 당하는 기쁨을 알아야 한다고! 더 패! 더 때려주세요! 이참에  옷을 갈기갈기 찢고 그대로 날 범해줘! 오물을 보는 눈으로 내려보고 ‘이런 허접한 3류자지로 여자를 기쁘게 할  있을 것 같습니까?’하고 비웃어주세요! 부탁합니다!”

“.......미, 미쳤어....”

클럽이 진심으로 질렸는지, 양 팔을 껴안으며 내게서 사사삭 멀리 멀어졌다.

“13호님. 가기 싫다고 하셔도 이 정도로 정신을 놓으시면  됩니다.”

“가기 싫다고 한 적 없어... 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후우....”

메이벨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 백설 선녀를 상대할만한 묘수는 생겼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결정타가 부족했다. 메이벨이 제시한 대안만으로는.

스페이드의 목숨이 담보로 잡혀있는 이상, 조금이라도 승산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런 방도를 찾다 보니, 저도 모르게 초조해진 모양이다.

“......아까 그거,  물어본 거예요?”

“응?”

“스페이드 씨에 대해서. 잘 있는지 물어봤잖아요. 지금 일이랑 뭔가 연관이 있는 거예요?”

“...으으음... 있긴 있지. 있긴 있는데.”

바닥에 ㅊ자로 누운 채 어떻게 설명할까 잠시 고민하자니.

다시금 스마트폰이 부우우웅―하고 울렸다. 같은 번호였다.

참모가 ‘이제 더는  됩니다’라는 눈으로 내게 스마트폰을 넘기고, 나는 별수 없이 받아들어 통화 버튼을 눌렀다.

금방 다시는 듣고 싶지 않았던, 활기차고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시오, 빌런 13호의 번호가 맞는고?]

아닙니다, 하고  끊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꾹꾹 눌러담고, “네, 맞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렇구먼. 잘못 건  알았잖아. 그보다 오랜만이군?]

“내 폰 번호는 어떻게  거야.”

[다 아는 방법이 있다네. 그보다 생각보다 빨리 받았네 그려. 난 또 변명거리나 생각하고 뭉그적뭉그적 대여섯번은 더 무시하고 받을 줄 알았네만.]

“아, 아뇨. 아닙니다. 바로 받은 거예요. 스마트폰이 무음이었던 모양이라 전화가  줄 몰랐네요. 아하하하.”

[그런가? 내가 괜한 오해를 했구먼.]

폰 스피커 너머에서 껄껄, 하는 어린애답지 않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는 어린애인데, 말투가 이러니 위화감이 엄청나다.

왠지 모르겠지만,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짜증이 몰려왔지만.

[다음부터는 제대로 스피커 켜놓고 옆에  두고 있게나. 벨이 두  이상 울리기 전에 즉각 받도록. 알겠느니?]

“아니, 나도 사정이란  있는데 항상 그럴 수는.”

[못 하시겠다?]

스피커 너머의 목소리가, 진하게 웃은 듯한 기분.

그리고 동시에 오싹한 한기가 느껴졌다.

“클럽! 스페이드한테 전화해 봐!”

“――하고 있어요!”

클럽이 초조해하며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하고 울리는 신호음.

[걱정마시게. 아직 아무 것도 안했느니.]

“......성격 나쁜 할망구 같으니.”

[젊디 젊은 19살의 육체이니 그런 호칭은 봐주게. 그보다... 알아들었겠지? 다음부터는 늦지 말고 받게.]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지못해 대답하자 “참 잘했어요~.”하고 어린애 달래듯이 말하는 것이 배알 꼴린다.

이것으로 끝났으면 싶었지만, 백설 선녀의 용건은 그것만은 아니었던 듯 하다.

[그러면 아이야, 지금 당장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겠느냐?]

“히어로협회로? 잡아 넣으려고? 아니면 공개처형?”

[아니다.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느냐. 그런 짓을 하려고  부른 것도 아니거니와, 그 정도라면 히어로 아이의 목숨 정도는 버려버리지 않겠느냐. 너도 명색에 빌런이라는 작자라면.]

“......흥.”

히어로의 대장인 주제에 같은 히어로를 인질로 잡고 있는 여자한테, 그런 소리 듣고 싶지는 않다.

나도 빌런 주제에 히어로를 인질로 잡히다니 참 웃기는 꼴이지만.

“그래서 어디로 가라고.”

[지리산.]

“네?”

눈을 깜박이며 뭔가 잘못 들었나 해서 다시금 귀를 기울였다.

[지리산으로 오라 했느니라. 오늘밤은 여기서 한 번 즐겨나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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