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화 〉#65 보스는 빌런을 걱정한다
빌런 조직 【어비스】는, 나름 신흥 조직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약 십하고 몇 년 전 쯤에 일어나기 시작한 『대재해』.
웬만한 대형 빌런조직은 다 『대재해』 때의 유품 찌끄레기 같은 것들이니까. 대재해 이후에 생겨난 【어비스】는 신흥 조직이라 불러도 이상할 것 없다.
* * *
――각성자란 무엇일까.
언제부터인지 알게 모르게 나타나고 늘어나기 시작한 각성자들.
각성자들은 대부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다. 한국과 같이 사회에서 서로가 다닥다닥 밀집해있는 사회에서는 더욱더. 유교 사상으로 모두에게 평등과 평일(平一)을 강요하는 분위기라면 더욱더.
각성자라면 크든 작든 무언가 유별난 구석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이라는 틀에 맞출 수가 없다.
대부분 사지육신 멀쩡하며 일반인들보다 몇 배, 몇십 배는 강한 그들은 내면 어딘가에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매일 같이 사람을 죽이라고 머릿속에서 누군가 속삭이거나.
매일 같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거나.
매일 같이 정의를 외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거나.
매일 같이 사람을 속이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이거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르지만, 각성자들은 어떠한 충동에 시달렸고, 이 충동을 막아줄만한 브레이크가 없었다. 있더라도 얇은 나뭇가지 마냥 손쉽게 부러져버렸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 한 나라의 시민.
모두가, 정부가, 공기관이, 사람들이, 가족들이 그런 그들을 어떻게든 수용하고자 했다. 어떻게든 합을 맞춰보고자 했다.
――어찌나 어리석은지.
――이 어찌나 어리석은지.
화평도 평화도 교섭도 대화도, 상대가 그럴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상대도 이쪽도 어느 정도 자기희생을 감수하고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야 가능한 것이다.
살인을 하고 싶은 짐승한테 살인은 나쁘니 하지 마, 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게 될까.
제대로 된 교섭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나쁜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다만 어리석었을 뿐이다.
어리석다.
정말 어리석다.
* * *
그리고 애석하게도, 제대로 된 방안도 결론도 법률도 내려지기 전에 사건은 일어났다.
불법 연구소에서의 『무차별 각성자 납치사건』.
본인들의 동의 없이 각성자들을 납치해, 그들의 능력을 연구해 인공적으로 같은 현상을 일으키려던 탐욕에 젖은 인간들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납치된 각성자들에게 인권은 없었다. 일부러 노린 듯이, 붙잡힌 각성자들은 전부 비전투계거나 싸울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을 납치한 불법 연구소의 병사들은, 어째선지 ‘국가 소유의 무기’들을 소지하고 있었다.
――『각성자들에게 인권 따윈 없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어! 대화도! 교섭도! 아무 것도!』
――『나라는 우리를 버렸다고!!』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가족을 생각하며.
실낱 같은 이성으로 견디고 있던 각성자들이, 이 사건으로 인해 완전히 분기탱천해 봉기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일어난 것이 대재해.
현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포학한 폭력과 혼란의 시대였다.
* * *
“보스, 들어가겠습니다.”
똑똑, 하는 노크소리. 그리고 익숙한 어느 과학자의 목소리에, 바이올렛은 “들어와.”하고 말했다.
끼익―
문이 열리자, 예상대로 들어온 것은 여전히 흰 백의를 입은 과학자였다. 오늘은 얇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스스로의 시력을 조절할 기술이야 얼마든지 있을 텐데도, 일할 때는 기분이라며 항상 쓰고 있다.
일이 아닐 때는 벗으니까, 지금도 일모드라는 뜻이다.
방에 들어온 과학자는,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바이올렛은 창틀에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하고 계셨나요, 보스?”
“아무 것도. 그냥 생각을 조금. 『대재해』에 대해서.”
“대재해....”
도로시가 감상에 젖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 또한 대재해의 피해자다. 똑똑한 그녀인데다 오랜 시간 외국에 있던 덕에 가장 심한 시기의 화는 피했으나, 『대재해』 말기쯤 그녀의 뛰어난 능력에 눈독을 들인 탐욕스런 인간들에게 붙잡혀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
도로시는 뛰어났지만, 상대가 나빴다.
상대는 바보였지만, 사회에서의 힘이 있었으니까.
“우리 【어비스】는 전원 그 대재해의 피해자였으니까.”
당사자조차 아닌, 그저 유탄에 맞은 듯한 억울한 피해자들.
그런 피해자들을 그러모으고 꾸려모아 만든 것이 빌런 조직 【어비스】다.
말이야 쉽지만, 저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이 모든 걸 이루다니. 피를 토하는 노력이 그 뒤에 있었음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스에게는 무척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분명 이제는 떠나가버린 다른 동료들도요.”
“후후, 저번에 길가에서 한 명 만났거든. 코드네임 릴리, 기억해?”
“네. 저보다 어린 귀여운 여자애잖아요.”
“대머리독수리가 양아버지가 되어줬대. 지금은 번듯하게 잘 사는 모양이던걸.”
“그 대독이요?!”
대머리독수리, 줄여서 대독.
과거 【어비스】에 재적해 있던 깐깐하지만 정이 많은 아저씨였다.
한 두명이 아닌 【어비스】의 멤버들은, 이제는 사회에 돌아가서도 잘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부 보스랑... 그 팔푼이 덕분이겠네요.”
“에이, 도로시랑 참모가 없었으면 아무 것도 못했어. 나도 뭐 조직 같은 걸 잘 다루는 것도 아니고.”
“아뇨. 보스랑 그 팔푼... 후우, 13호 덕분이 맞습니다. 저도 참모도 힘을 빌려드린 것 뿐이에요.”
이미 삶의 의미도 목적도 의욕도.
전부 타고 사라져 재만 남은 것이 도로시와 참모라는 인간들이었다.
그나마 은혜를 갚고자 바이올렛과 13호를 돕던 것이, 현재와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래서 도로시, 이 밤에 왜 찾아왔어? 아직 안 잤네.”
“저번의 그 큐브에 대해서 보고드리려고 합니다.”
“그 검은색?”
“예.”
도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큐브란 소피아와의 일전에서 나타났던, 그 검은 상자다.
지금은 편의상 『큐브』라고 명칭을 통일했다.
도로시가 뭔가 말하기 전에, 바이올렛이 가로막듯 물어왔다.
“그게 【만능】과 관련돼 있다고?”
“13호가 써낸 보고서로 보면 그렇게 밖에 생각이 안 드네요.”
“흐응.”
“아는 건 아무 것도 없지만요.”
“...그거,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까?”
도로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이 맞다면, 38.1% 확률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뭔가 정확한 수치가 나오니까 얼떨떨한데?”
“참모 녀석과 비슷한 종류의 문헌을 잔뜩 조사한 후 나온 결론입니다. 결국 짐작일 뿐이지만, 과거 기록과 구전 중에 【만능】과 관계된 것이 죽어버린 사람을 살린 경우가 총 38.1%였습니다.”
“나머진 그런 걸 손에 넣고도 살릴 수 없었다는 뜻이구나.”
“.......”
“후후.”
바이올렛의 눈이 즐겁다는 듯 호를 그렸다.
“보스는 【만능】을 원하십니까?”
“글쎄. 그런 거창한 건.”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도로시는 별다른 표정없이, 그저 담담하게 그런 바이올렛에게 묻는다.
“보스는 여전히――과거를 바꾸기 원하시나요?”
그 질문에, 바이올렛의 표정도 사라졌다.
* * *
바이올렛은 어느 명문가의 아가씨였다. 재벌 영애라고 해도 좋았다.
충분히 사랑받고 자랐으며, 그녀 또한 가족을 사랑하고 있었고, 나름 별다른 고충 없이 그런 평탄한 하루하루를 즐기고 바라며 그렇게 살아가던 금수저 아가씨였다.
스스로는 그 때를 생각하면 철부지였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과거를 바꾼다.
그건 실의 능력을 쓰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과거로 건너갈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미래로 만들만한 역량은 없었다.
지금 그녀가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어차피 결말은 똑같다. 가족들은 전부 죽어버리고, 홀로 남은 그녀는 절망하고 만다.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라도 있지 않은한.
【만능】이라는 능력이 있지 않은한.
“........”
바이올렛은 별 다른 말없이 밖을 바라봤다.
그런 그녀에게 도로시가 추가로 말을 이었다.
“13호는 보스를 위해 【만능】의 단서를 얻고자 하고 있습니다. 히어로의 사령관이자 총대장, 백설 선녀에게 다가간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나는.”
“13호 녀석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바이올렛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싫다는 듯이 도리도리 젓는다.
“나도, 【만능】의 힘이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은 슬픈 일이 너무 많다.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있고.
손에 닿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다.
만나고 싶어도 다시는 못 만나는 사람도 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다른 경우도 흔하다.
인생에는 자신이 어찌할 엄두도 나지 않는 거대한 벽이 너무나, 너무나 많았다.
그러니까.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만능】의 힘에 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라며 바이올렛은 말을 잇는다.
“나는 지금의 【어비스】가 좋아. 너희야말로 지금 내겐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야. ...누구 한 명 잃는 일 없이, 이대로 쭉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 거야.”
그래서 13호에게도 말했다.
히어로를 버리라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살아달라고.
“......뭐, 이해는 갑니다. 이해는 하겠습니다만.”
도로시는 한숨을 쉬었다. 고집불통의 보스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너무 고지식하다.
“바이올렛님, 13호 그 놈은 확실히 멍청하고 한심하고 안이하고 쓸데없이 정은 많고 팔푼이에다 떨거지예요.”
“너무해....”
“사실인걸요.”
그 어이없다는 표정에, 바이올렛이 고운 눈썹을 오므렸다.
그래도, 라며 도로시가 말을 잇는다.
“그 멍청이가 보스를 남겨두고 죽겠습니까? 못 할 일이 있겠습니까?”
“.......”
“보스는 악마한테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말씀하셨는데, 13호 그 놈은 보스를 위해서라면 악마의 왕도 멱살 잡고 끌어내려서 있는 대로 탈탈 뱉어내게 할 걸요.”
“......킥.”
그 비유에 바이올렛이 쿡쿡 웃었다.
도로시는 등 뒤에 숨겨가지고 있던 와인병을 꺼냈다. 바이올렛이 그 의도를 파악하고, 근처에 있던 찬장에서 와인잔을 꺼낸다.
탁, 탁.
테이블 위에 잔을 내려놓고, 도로시도 와인병을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걱정마시고, 그 바보한테 맡기세요.”
“그래. 그리고 내가 명령해봤자 여자는 못 버리는 놈이고.”
맞다, 맞아. 상대가 남자였다면 몰라도, 그 녀석 여자가 얽히면 쓸데없이 폼 잡는 것도 있고.
남자들 종특이라고 해야하나.
그 놈이 유별난 걸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로시는 문득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바이올렛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근데 보스, 되게 토라져 보이는데요.”
“.......”
도로시가 눈을 깜빡깜빡 뜨고, 설마 하는 눈초리로 말했다.
“설마 싶은데, 질투였던 건 아니겠죠...? 히어로를 위해서 13호가 목숨을 건다던가 하는 게... 하하, 설마 아니겠지만요!”
“..................................................”
“......보스?”
바이올렛은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서 머뭇머뭇 말한다.
“그, 스페이드란 여자... 13호를 마구 때렸고... 뭔가 근데 자주 얽히는 것 같지 않아...? 다른 히어로들보다... 응... 뭐, 딱히 신경 쓰는 건 아닌데... 응....”
어, 아니, 잠깐만. 그 반응.
보스. 잠시만요.
...거북해졌다.
'망했다. 쓸데없는 말을.'
도로시는 서둘러 코르크 마개를 따고, 피처럼 붉은 와인을 잔에 따랐다.
빨리 취해서 잊어버리고 싶다. 말도 안 돼. 이런 사실 알고 싶지 않았어.
“마십시다! 보스!”
“그래! 마시자! 마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