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0화 〉#63 그 빌런은 도깨비를 만났습니다(3)
챙! 채챙!
어둠 속에서, 얇은 칼날과 쇠몽둥이가 맞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강한 사람이야. 적어도 체크 씨. 아니면 그 이상으로....’
도깨비 청을 앞에 둔 스페이드는, 꽁꽁 둘러싸맨 모자며 마스크 아래로 긴장으로 인한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는 13호의 명령으로(세뇌 때문에 13호의 명령엔 거스를 수 없다) 히어로를 습격하게 되었다.
히어로인 자신이 히어로를 습격한다니, 여러모로 불만은 있었지만, 거절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 듣기로는 B급 정도라고 듣고 왔는데....
‘B급은 지랄!’
무거운 쇠몽둥이를 가볍게 휘두른다, 이 정도는 【신체강화】에 특화된 스페이드 정도라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자신은 13호와 결탁해 기습을 건데다, 한계까지 높인 스피드와 연계공격을 펼쳤건만, 상대는 선수(先手)를 놓치고서도 여유 있게 자신의 공세를 받아넘겼다.
‘천년을 산 도깨비라니.’
저런 걸 맡기다니 정말이지 너무하다고, 스페이드는 생각했다.
생각하는데.
생각하는데도.
“아하.”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하핫!!! 좋구나! 좋아! 죽일 듯이 달려드는 게 좋구나! 전장에 선 것이 좋구나! 싸울 수 있는 게 얼씨구 좋다구나야!”
뿜어져 나가는 참격. 불빛이 비치는 거리를 내달리는 붉은 기운의 단도.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이 뿔 달린 이마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급소를 다리를 노리고 내질러진 공격은 묵직한 몽둥이에 가로막혔다.
이어서 이쪽을 분쇄하듯 날아오는 몽둥이를 칼날로 흘려보내고, 반대로 세 번의 참격을 날리고, 그에 응하듯 파일 드라이버 같은 힘이 실린 도깨비의 앞차기에 공격을 포기하고 다시금 거리를 둔다.
그러면 멀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푸른 불꽃을 이끌며 도깨비가 코앞까지 순식간에 덮쳐들었다.
정말이지 너무하다. 빌런의 명령을 받고 히어로를 덮치는 것도 그런데, 하필이면 상대는 확실하게 자신보다 강한 상대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데도.
“아하하하! 싸움은 좋은 것이다! 젊은 것!”
호랑방탕하게 웃는 도깨비의 웃음소리가 전염되듯, 스페이드의 마스크 아래의 입도 저절로 웃는 모양이 되어있었다.
싸움의 고양감.
전투의 기쁨.
그런 것이 파도처럼 흘러나와 스페이드의 머리에 쾌락물질을 마구 분비했다.
――각성자들은 전부 크든 작든 싫든 좋든 별자리의 영향을 받는다.
그녀가 힘을 받은 별은 【헤라클레스 자리】.
반인반신이라고도 불리며, 누구나 인정하는 고대 그리스의 웅대한 대영웅.
별자리가 가리키는 그 고대의 대영웅이 스페이드의 안에서 호소한다. 싸워라, 이겨라, 즐겨라, 하고.
“......헷!”
13호의 명령도, 눈 앞에 있는 게 히어로라는 사실도, 지금 이 한순간 스페이드의 머리에서 깨끗하게 날아갔다.
남은 것은 오로지 전투를 계속하기 위한 날이 선 호승심 뿐.
눈 앞에 있는 강자를 꺾기 위해, 그저 오로지 전투를 즐기기 위해 스페이드는 팔을 휘두르고 짐승처럼 몸을 날렸다.
* * *
“좋구나! 좋은 아이야!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는 좋은 아이다! 울리는 쇳소리가 기분 좋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흘러도 기쁠 따름이지!”
격렬한 움직임에 견디지 못하고, 습격자가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져 날아갔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청이 쓰고 있던 비니도 이미 다 타서 너덜너덜해져, 오래 전에 날아가버렸다.
청이 정면으로 나선 순간, 붉은 머리카락은 질주하여 품으로, 측면으로, 사각으로, 시야 밖으로 돌아가 노도와 같은 난타를 펼쳐댔다.
두 손으로 들고 있는 가벼운 단도, 그리고 낭창낭창한 두 다리를 족도(足刀)와 같이 자유자재로 다루는 움직임은 물 흐르는 듯한 연타를 이어갔다.
“어기야~ 디영차!”
그 물흐르는 듯한 연계의 틈새로, 도깨비방망이가 무식하게 비집고 끼어 들어와 수직으로 내리쳐졌다.
“큿...!”
묵직한 몽둥이를 얇은 단도로 완전히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갑작스런 난입에 피할 수도 없다.
스페이드는 두 손에 든 단도로 정면에서 막는 척하며, 붉은 기운을 한 점에 응집해 그대로 몽둥이와 함께 흘려버렸다.
“잘했구나! 그걸로 끝나선 안 되지!”
다시금 되돌아와 휘둘러지는 묵빛의 쇠몽둥이. 이번에도 역시 줄타는 심정으로 아슬아슬하게 흘려넘겼다.
수차례 반복되는 몽둥이와 단도의 응수. 몽둥이의 측면과 단도가 격렬하게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불꽃의 틈새를 메우듯 청의 푸른 도깨비불이, 스페이드의 붉은 기운이 날아들어 부딪치고 튀어 올랐다.
몸의 틈새 사이로 명치를 노리고 무릎을 쳐올린다. 그러면 청의 가느다란 다리가 스페이드의 다리를 휘감듯 반대로 짖쳐 올라와, 그녀의 턱을 노리고 발을 날린다.
가까스로 피해내고, 이번엔 몸을 돌려 하단 돌려차기.
그러나 마치 스페이드의 행동을 비웃듯 바닥에 더더욱 밀착한 극하단 돌려차기로 스페이드를 넘어뜨렸다.
결정타가 이어지기 전, 스페이드는 먼지투성이가 되어 꼴사납게 구르면서도 가까스로 피해냈다.
‘아아, 역시 안 돼. 이길 수가 없어.’
맞부딪칠 때마다 느껴버린다. 피부에 찌릿찌릿 전해져온다.
힘도, 속도도, 저쪽이 한 수, 혹은 몇 수 위.
힘은 저쪽이 위다. 속도도 저쪽이 위다. 힘도 속도도, 자신은 분명하게, 완벽하게 뒤진다.
채앵!
찰나 간에 단도를 역수로 쥐며 사각에서의 허점을 노렸지만, 이 역시도 무산된다. 페인트를 걸어봐도 오히려 상대방 쪽에서 노련하게 자신을 끌어당겼다.
기술과 허허실실(虛虛實實)마저도 저쪽이 한 수 위.
능력도, 기술도, 수읽기도, 그 모든 것이 선을 달리했다.
‘만약 내가 그 대영웅이었다면.’
스페이드의 별자리는 【헤라클레스 자리】.
그러나 스페이드가 헤라클레스 본인인 건 아니다.
그저 빌려온 힘이고, 그마저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음을 이 순간 통감했다.
그것이 분노가 되어서.
그것이 안타까움이 되어서.
도저히 용납하기 싫어서.
탐욕스럽게 힘을 갈구하는 마음에, 스페이드의 붉은 눈이 반짝 빛을 발하며 타올랐다.
* * *
채챙! 채채채채채채챙!
또 다시 이어지는 연격의 응수, 튀어 오르는 불똥, 그리고 거리가 멀어지지도 좁아지지도 않는 극한 밀착 상태에서.
스페이드의 태세가 미미하게 변화했다.
“【오너라! 반인반신의 몸마저 불태우는 심판과 재정의 불꽃! 정화와 태종(太終)의 업화!】”
“음...!”
한치의 머뭇거림을 허락하지 않는 고속전투.
정신을 깎아먹는 초밀착 상태에서의 사투 중에, 스페이드의 영창이 울려퍼졌다.
“【죄 많은 패왕을 불사르는 불꽃의 대검(大劍), 그대를 시험하는 시련의 풀무】!”
째애애애앵―!!
스페이드의 손에 들린 단도가 산산조각나 반짝이며 흩어졌다.
순간의 흐트러짐, 그리고 계속해서 맞부딪치는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붉은 기운으로 보강되었던 얇디얇은 칼날이 결국엔 부서져 깨져버렸다.
과연 무기도 없이, 도깨비불을 두른 쇠몽둥이의 폭력을 견딜 수 있을까?
――무리지 그건.
도깨비 청은 이를 드러낸 채 웃으며 확신했다.
이것으로 끝장이다.
다음 일격을 막기 위해 눈앞의 습격자는 팔을 희생할 것이다.
그리고 두 팔이 부러진 습격자는 이어지는 연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넝마 조각이 될 정도로 두들겨 맞겠지. 영창 같은 걸 이어갈 틈도 없을 것이다.
“끝이다, 젊은 것.”
즐거웠다.
싸움과 투쟁과 내기와 씨름을 좋아하는 도깨비는.
이 순간 승리를 확신하고 묵빛의 쇠방망이를 휘두른 청은.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앙!
“어........?”
다음 순간.
그녀의 몽둥이를 가로막은, 스페이드의 손에 들린 무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불과 유황으로, 죄 있는 자에게는 영원히 타오르는 심판을】.”
스페이드의 손에 들린 것은 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거대하고 투박했다.
그러나 몽둥이라고 하기에도 마치 우둘투둘한 날이 달려있어 칼처럼 보이기도 했다.
들고 있는 것은 바위보다도 튼튼한 나무를 깎아 만든 투박한 부검(斧劍).
전설 속 네메아의 사자를, 일백(一百)머리의 히드라를, 수많은 괴물과 마물들을 물리치고 그 피로 물들었던 헤라클레스의 올리브 나무 곤봉.
전투에 집중하던 청이 어느샌가 신경을 놓고 있던, 숨어있던 13호가 마력을 쥐어짜내 스페이드에게 전달한 무기였다.
【아르고자리】의 13호는 전설 속 영웅들의 온갖 무구를 꺼낼 수 있으며, 마침 헤라클레스가 【아르고 호】의 선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찰나 간의 보조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갑작스런 변화에 깜짝 놀란 청. 그리고 그 틈을 타듯, 스페이드가 포효하며 그녀의 몽둥이를 자신의 올리브 목 부검으로 밀어냈다.
휘청, 흔들리는 도깨비의 몸.
그리고 그 사이.
“【넘실대는 불꽃의 파도, 웅대한 영웅의 제사! 바라건대, 내가 향하는 곳에 태양이 있기를!】”
높게 쳐든 스페이드의 부검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스페이드의 몸을 타고, 팔을 타고, 이어서 높이 쳐든 부검을 휘감아 오르듯, 무시무시한 열파가, 넘실대는 시뻘건 불꽃이 하늘에 닿을 듯 타오르고,
“【프로고시스, 프레제 우라니아】!!!!”
그대로 단두대의 칼날처럼, 신화 속 화염 거인의 대검처럼, 그대로 묵직하게 청을 향해 내리쳐졌다.
“하... 하하하하하하하하!!!”
근처에 닿는 것만으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숨을 쉬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버릴 듯한 열파를 앞에 두고.
도깨비 청은 외려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그리고는 휘청이던 어중간한 자세로, 한손으로 들던 몽둥이를 두손으로 꽉 쥐고.
그대로 대각선 위로 휘둘러올렸다.
“【이겨라, 이겨라, 지지 말지어다. 나의, 나의――도깨비방망이】.”
다음 순간.
몽둥이를 감싼 푸른 도깨비 불꽃이.
내리쳐지는 하늘에 닿을 듯한 불타는 대검이.
서로 맞부딪치고, 이윽고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 * *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터져나오는 섬광,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굉음.
무시무시한 열파와 충격이 대지에 울려 퍼지고, 자욱한 흙먼지가 푸화악 솟아올랐다.
그렇게 잠시후, 푸른색의 불꽃도 붉은색의 기운도 꺼져내려갈 무렵.
“......망했다. 너무 신을 냈네.”
천천히 흩어져가는 분진 속에서, 청이 아차 싶은 듯이 중얼거렸다.
근처에 떠오르는 푸른 도깨비불. 이윽고 먼지가 걷혀지며 청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런 그녀의 맞은편에는, 몇 미터쯤 떨어진 위치에 검은 바디슈트의 습격자가 기절한 듯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었다.
청의 몸에 상처다운 상처는 없었다. 분명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 분명한 습격자의 마지막 공격은 훌륭했지만, 그녀가 쌓아온 천년은 헛게 아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지금 청은 입고 있는 점퍼를 제외하고는 알몸이라는 것이다.
‘아니, 천년 세월을 쌓아왔다고 해도 쬐~끔 위험하긴 했지. 방금 그건.’
그만큼 습격자의 마지막 공격은 위협적이었지만, 아쉽게도 상성 문제가 있었다.
청 또한 불을 다루므로 열에 내성이 있다는 건 둘째치고, 그녀가 입고 있는 점퍼는 불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옛 전설 속 화광수라고도 불리는, 불쥐의 털가죽으로 만든 옷.
화완포(火浣布), 혹은 화한단(火漢緞)이라고도 불리는, 불에 타지 않는 옷이다.
평범한 옷은 그녀가 조금만 힘을 내도 타버리니, 항상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이 점퍼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래봐야 뭐 얼마나 가려지냐마는....’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하반신이며 국부가 아슬아슬하게 보일 듯 말 듯하니 여러모로 신경쓰인다.
뭐, 옷이야 도술로도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상관은 없다.
도술로 만든 옷은 이래저래 눈에 띄니 가능한 피하고 싶지만.
‘그런데 이만한 소동이 일어났는데, 얼굴 들이미는 사람 한 명 없네?’
거기다 그만한 폭발이 있었는데, 거리도 거의 부서지지 않았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싼 자연스러운 위화감을 깨달았다.
‘과연, 그렇구만....’
청이 스스로 무언가를 납득하듯, 턱을 매만지며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거릴 때였다.
촤르르르르르르르르륵!
하는 쇳소리가 들려온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