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63 그 빌런은 도깨비를 만났습니다(2)
도깨비 청.
그녀 스스로도 자신이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일단 알고 있는 것은, 평범한 인간이나 짐승들처럼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은 분명 아니라는 것이다.
약 1000년 전, 그녀는 어느 이국(異國)의 산속에 있었으며, 그렇게 스스로 의식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이 살아있구나, 라는 것을 실감했을 뿐이다.
어쩌면 그녀는 1000년보다 그 전부터 살았을 수도 있다.
그저 그녀에게 그녀라는 인격이, 그녀라는 의지가, 실낱같은 기억이 생기기 시작한 게 딱 그 시점이었다.
그뿐이다.
그 이국의 땅에는 도깨비 전설이 있었으며, 자신의 뿔도 손에 들려있던 방망이도 그 구전 그대로였다.
구전 속의 도깨비는 무서운 존재였다.
인간들을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천재지변을 일으키며, 무시무시한 힘으로 온갖 변덕을 부리고 폭력을 휘둘러 선인이든 악인이든 관계없이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신이 그 구전 속의 도깨비라는 것을 깨달았고.
또한 본능적으로 사람을 습격하지 않으면 안 됨을 깨달았다.
사람에게 공포를 주고, 죽이고, 약탈하고, 부수고, 유린한다.
그게 그 나라에서의 도깨비였고.
그런 구전들이 모여서 그녀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본능에 따라 죽였고.
그게 삶의 의의라는 듯이 살육을 멈추지 않았다.
살육을 멈추고 해의(害意)를 멈춘 순간, 그저 그것만을 위해 태어난 자신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런, 이런.’
매일 같이 반복하던 살육의 나날 중에 만난 것이, 여행중이던 어느 백발의, 젊다 못해 어린 여성이었다.
――‘진기하고도, 불쌍한 아이로구나.’
변덕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주었던 건.
――‘내가 있던 땅의 도깨비들은 무섭다기보단 친근한 아이들이라네.’
그녀의 이름은 백설. 선녀라고 불리는 선인이며, 선계를 벗어나 인간 세상을 두루 떠도는 여행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니 이 넓은 세상에서, 그녀를 만났던 건 운명이라도 봐도 좋겠지.
그녀는 손쉽게 살육을 일삼던 도깨비인 그녀를 제압하고, 그 손을 잡아끌어 한국이라는 땅으로 데려왔다.
한국에는 자신이 있던 곳과 비슷한 도깨비라는 것들이 있었다.
다만 느낌은 비슷할지언정, 자신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간들의 공포와 경외가 모여 태어난 게 자신이라면.
이 땅의 도깨비들은 훨씬 친근한 존재였다.
술을 좋아하고, 씨름을 좋아하고, 장난을 좋아하고, 인간을 좋아하고.
그대로 백설선녀와 함께 수련하며 시간을 보내자, 차츰차츰 자신을 이루는 것들에 이 땅의 도깨비라는 개념이 섞이기 시작하는 것을 깨달았다.
죽이지 않아도 살아남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웃으면서, 그들과 어울리며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음을 깨달았다.
자아가 싹 텄다. 의식이 싹 텄다.
살육이라는 『의무』로 살아가던 자신에게 ‘이렇게 하고 싶다’는 『감정』이 생겨났다.
청이라는 이름은 그즈음에 받게 되었다.
* * *
다각다각다각다각!
어둠 속에서 덮쳐드는 인형의 무리들. 근처에 있던 가로등은 전부 꺼져서 본래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깔려있어야 했다.
“어기여이~차!”
그러나 청이 손에 들린 방망이를 가볍게 휘두르자.
우지지지지지지지직!
요란한 굉음과 함께 덮쳐들던 인형들이 산산조각 나 날아가고, 방망이의 궤적을 따라 푸른 불길이 공중에서 타올랐다.
도깨비의 흔적이라고도 불리는 도깨비불이, 그녀가 흩뿌리는 특수한 요기(妖氣)를 따라 푸르게, 푸르게 타오른다.
불길은 방망이에 얻어맞은 인형들에게도 붙어서 타올랐다.
[끼에에에에에에에!] [탄다! 탄다! 불탄다!] [방화범!] [방화범이다!] [쓰레기!]
“누가 쓰레기냐, 멍청한 것들.”
푸른 불꽃 속에서 마찬가지로 요사스럽게 빛나는 푸른 눈.
청이 노성을 외치며 방망이를 휘두르자, 우왕좌왕하던 인형들도 산산조각나며 흩어져, 불타올랐다.
어차피 불꽃은 그녀의 요력으로 조절할 수 있다. 길바닥 한복판이라 해도, 태울 대상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후웅―! 와드드드득!
화르르륵!
그렇게 거리낌 없이 불꽃을 흩뿌리고, 거리를 망가뜨리지 않게 절묘하게 조절하며 방망이를 휘두른 결과.
“......헹. 별것도 아니구만.””
5분도 지나지 않아, 그녀를 에워싼 인형들은 전부 망가지고 타버려 재가 되었다.
이 때까지도 별 다른 이상은 없었고, 누군가 흑막이 나타나는 일도 없었다.
인형들이 잔뜩 몰려든 사이 뭔가 수작이라도 부릴 줄 알았더니, 그조차도 없었다.
‘끝까지 나오질 않네... 간을 보려는 건가?’
아니면 그냥 쫄아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근처에선 불길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을 견디지 못한 옷 끝이 살짝씩 타는 게 신경 쓰였다. 몇백년이나 수련을 쌓았건만, 감정이 격해질 때마다 멋대로 옷을 불태우는 불꽃은 영....
탓.
타탓!
“......?!”
도깨비 청이 기척을 느끼고 있던 곳은 정면이었다.
그래서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을 경계하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인데.
‘뒤에서?!’
지금껏 한껏 숨을 죽이고 있던 또 다른 기척이 수면 위로 떠오르듯 한순간에 드러났다.
그것도 바로 등 뒤에서.
“【그것은 열두개의 시련. 그 첫 번째. 30일간의 사투 끝에 쓰러뜨린 사자의 거죽――】”
‘영창?!’
별자리의 힘을 쓰는 각성자...!
청은 허리를 뒤틀며 다급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손에 들린 묵직한 쇠몽둥이가 공기를 가르고, 푸른 불꽃의 궤적을 그리며 날아들었지만.
달려드는 그림자는 그 찰나 간에 땅을 기는 짐승처럼 낮게, 낮게 몸을 숙이며 몽둥이의 궤적을 벗어났다.
“【리온타리 티스 네메아】!”
영창과 함께 불꽃과도 같은 붉은 기운이 터져 나오고, 도깨비 청을 향해 매섭게 휘둘러졌다.
“......!”
처음에는 주먹, 이어서 발.
도합 네 번의 응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붉은 궤적을 그리며 날아드는 주먹은 청의 오랜 감으로 보자면 틀림없이 위험한 위력을 가졌으며,
우득...!
단순히 막아내려던 팔이 그 한순간에 삐걱거릴 정도였다.
화릇, 화르르릇!
그러나 도깨비 청도 괜히 오랜 수련을 마쳤다고 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맨손으로 막아낼 수 없는 습격자의 연격을, 손과 팔에 창출 간에 푸른 불을 휘감아 막아냈다.
그녀에게 있어서 이 푸른 불꽃은 감정의 표현이자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꾹꾹 눌러담은 힘의 발현이기도 하다.
휘둘러지는 붉은 기운, 그에 맞서듯 휘감기며 떨어뜨리는 푸른 불꽃.
어둠 속에서 휘둘러지는 그것을, 청은 몽둥이를 손에 놓지 않은 상태로도 충분히 막아냈다.
“훌륭한 실력...!”
그럼에도 저도 모르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아무래도 나이를 먹은 탓인지.
어쩔 수 없이 상대를 위에서 내려보는 말투가 되는 것도, 상대의 실력을 가늠해버리는 것도 어찌할 바가 없는 그녀의 습관이 되엇다.
‘어디보자... 키는 나와 비슷한가. 괴물화하면 분명 내가 더 크겠다만, 그건 상대가 인간이라면 당연하겠지. 그보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구만.’
몸에 착 달라붙어 실루엣이 확 드러나는 소매 없는 가죽 상의, 그리고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는 가죽 반바지.
얼굴에는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까지 쓰고 있었다.
완전히 어둠과 동화되어 기습을 하기 위해 작정한 복장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맹수처럼 빛나는 붉은 눈 정도일까.
주먹과 팔을 막아내며, 청은 한걸음 물러나 손에 든 몽둥이를 끌어당겨 비스듬하게 휘둘렀다.
“어기여엉~차!”
지나칠 정도로 여유로운 기합성과 함께 낫처럼 끌어당겨지는 쇠몽둥이.
이렇게나 달라붙어있으니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을테지.
그렇게 생각했더니, 눈 앞의 습격자는 몽둥이의 힘을 미끄러뜨리듯 스르륵 옆으로 굴러 피해내는 게 아닌가!
‘잘 피하는....’
바닥을 짚고 구르는 듯한 몸이 우뚝 멈춰서고, 그대로 두 팔로 바닥을 짚으며 풍차처럼 다리를 휘두른다.
노리는 것은――발인가!
“......하하!”
그러나 채찍처럼 휘둘러진 습격자의 낭창낭창한 다리가 닿기도 전에.
청이 폴짝 뛰어오르며 도약해 그 발을 피해냈다.
“칫....”
습격자는 반격을 피하듯 억지로 자세를 바꾸며 청에게서 멀어졌다. 조금 전까지 습격자가 있던 그 자리에, 간발의 차로 몽둥이가 쿠웅! 떨어져내렸다. 피하지 않았다면 저 몽둥이에 박살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타닥, 탓.
여기저기 흩뿌려진 인형의 잔해 사이에서 유연하고 경쾌하게 몸을 놀리며, 붉은 기운을 두른 침입자가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다.
붉은 기운의 침입자.
푸른 불꽃을 두른 도깨비.
두 명은, 혹은 한 사람과 한 괴이(怪異)가 어둠 속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대치했다.
“하하하....”
먼저 입을 연 것은 청 쪽이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좋구나!! 좋구나야! 이 얼마나 오랜만의 싸움판이란 말이더냐!”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는 청.
말투도 이미 변해버렸다.
지금껏 유지하고 있던 평범한 21세의 유능한 비서로서의 가면은 완전히 벗겨지고, 옛 잔재와도 같은 호랑방탕한 도깨비의 얼굴이, 몸을 부대끼는 싸움을 즐거워하는 도깨비의 본색이 훤히 드러났다.
감출 생각도 없었다.
“......”
공기마저 울리는 호쾌한 목소리에, 붉은 기운의 습격자는 초조하게 주먹을 어르쥐었다.
챙― 채챙― 허리춤에 매여진 검집에서 단도와도 비슷한 길이의 칼을 꺼내드는 습격자. 양손에 각각 하나씩, 총 두 자루의 검.
그 모습에 쿠웅! 하고 도깨비의 손에 들린 몽둥이의 끝이 바닥을 내리쳤다.
“덤벼보거라, 습격자. 어디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즐거운 달밤이 되게 해주었으니 반죽음 정도로 봐주도록 하마.”
푸른 불꽃의 불빛이 비추는, 세월이 느껴지는 오만한 미소.
그러한 도깨비 청의 도발에.
붉은 기운을 두른 습격자는 다시금 청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그리고. 거리한복판에서 전투가 한창인 한편.
‘위험한데....’
나는 그 모든 것을 숨어서 지켜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나는 직접 눈으로 보고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어중간한 위치에 벽 뒤에 몸을 숨기고 숨어있는 상태다.
상황을 살필 수도 있고, 언제든 도망칠 수도 있는 어중간한 위치.
베테랑 히어로라면 충분히 눈치챌 수 있는 거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있다는 걸 들키는 것까지도 나름 플랜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인형들을 물리쳤을 때부터, 이미 일이 잔뜩 꼬였음을 느꼈다.
――‘이 천년을 산 도깨비 청님께서....’
도깨비라니.
그런 건 못 들었다고!
‘자료에 나와있던 대로면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B급 히어로였을 텐데!’
단순한 【육체강화】 능력자라고 되어 있어서 의심도 않고 덥썩 믿어버렸다.
참모도 그 경력에 수상한 건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A급 히어로인 스페이드라면 여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이냐.
장난도 정도껏 쳐야지.
【육체강화】는 커녕 【도깨비】인지 뭔지 영문도 모를 말을 씨부리지 않나.
심지어 지금 스페이드의 완벽한 기습마저 어렵지 않게 막아내지 않았나!
‘괜찮은 거냐 스페이드...! 위험할 것 같으면 도망쳐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