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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7화 〉#62 빌런은 신의 눈을 손에 넣었습니다(3) (257/271)



〈 257화 〉#62 빌런은 신의 눈을 손에 넣었습니다(3)

“커피나 차라도 타드리고 싶습니다만, 죄송합니다. 그게....”


“고마워요. 그런 것도 부조리, 불법이니까. 마음만으로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서글서글하게 웃는 경관은 한초령의 곁에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상관이어도 타 부서의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다른 작업하지 않으셔도 되나요? 괜히 저 때문에 시간 뺏기는  같은데.”


“지금은 바쁜 일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지금은 아리따우신 한초령 경정님을 1초라도 더 보고 싶은지라.”


“......아, 그래요?”


어머나, 이 남자 나한테 마음 있는 거 아냐?


...꼭 이런 남자일수록 ‘너무 존경해서 차마 연인으론 볼  없습니다’ 같은 말을 하곤 한다. 짜증나.


‘...감시하고 있네.’


자잘한 농을 던지기도 하고, 서글서글 웃고도 있지만, 한초령의 날카로운 오감이 경계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상한 짓을 하지 않는지, 혹은 뭔가 실수로 잘못 다루지는 않는지, 아마 이것저것 생각하는 거겠지.

일전에도 정신조작계 능력자에 의해 경찰서 내에서 큰일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항례의 사건을 생각해보자면 잘하고 있는 편이다.


요즘 시대에 이렇게 고지식하고 성실한 사람은 별로 없다.

출세할 타입인지는 한초령 본인도 모르겠지만.


‘음... 역시 그냥은 USB를 꽂기는 힘들어.’

USB를 통한 범죄나 해킹의 염려가 있으므로, 본체는 전원을 제외하고는 안쪽에 숨겨져 있다.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와중에 여길 열어 본체를 꺼내고... 그런 게 될 리가 없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었고.

결심한 한초령 경정이, 눈을 가늘게 뜨고 경관을 돌아봤다.

“저기 당신, 【특능범죄대책과】에 들어올 생각은 없나요?”

“네?”

경관이 어리벙벙한 눈으로 얼빠진 소리를 냈다.

“후후, 반쯤은 농담이에요. 생각은 해보세요.”

“어, 아... 영광입니다! 저는 한초령 경정님을 동경하고 있어서――”

아무도 듣지 못했겠지만.


한초령이 교묘하게 숨긴 오른손 안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어?!』


『이거 갑자기 왜 이러지?』

동시에 통제실 한쪽 구석에서 작게 소란이 일었다.

영상감시에 사용하던 모니터들과 컴퓨터들이 일제히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한초령이 앞에 앉은 컴퓨터도 마찬가지다. 모니터에 이상한 색의 줄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면서 화면이 깨진 것처럼 왔다갔다한다.


“어라? 무슨 일이죠?”

“......? 경정님, 죄송합니다. 잠깐  보러가겠습니다.”


“저도 같이 가죠.”


몇 명쯤 되는 경관들이 컴퓨터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서글서글한 경관이 난처한 듯 머리를 긁었다. 전담반에 연락을 넣었으니 금방 도착하겠지만....


영상이 아예 안 나오는  아니다, 조작이 먹히는 컴퓨터도 있다.

그러나 조작이 먹히다가도 안 되는 것도 있고, 영상도 나왔다가 안 나왔다가 하거나 반쯤 깨지고.


규칙성이 없었다. 이쪽은 화면이 깨지는 것처럼  나오고, 이쪽은 조작이  먹히고, 이쪽은 갑자기 발열이 심하다.

보통 전자기기는 맛이  증상부터 시작해 원인까지 차근차근 더듬어가는 법이다.

그런데 증상을 특정할 수가 없으니,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알 수가 없다.


‘으음... 갑자기 왜 이런다냐?’

서글서글한 경관.

그는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보니, 이리저리 컴퓨터 사이를 돌아다니고 본체실까지 들여다보면서 원인을 파악해보고자 했다.


나름 컴퓨터나 전자기기에 자신이 있으며, 웬만한 일이라면 다 고칠 수 있는 편인데....


‘원인을 모르겠네 진짜.’

뒤쪽의 [관계자 외 출입엄금!]이라고 써붙여 놓은 메인본체실까지 들어가봤지만, 역시 원인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좀 알  같은가요~?”

“아, 한초령 경정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들어오시면 안 돼요!”


“네~ 네~.”


본체실에 얼굴만 쏙 내밀었던 한초령은 느긋하게 말하며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해서 수리전담반 인원들이 도착할  즈음.

“지금은 바쁜 것 같으니까, 다음번에 다시 올게요~!”

한초령은 그렇게만 전하고 관제실 밖으로 나왔다.




* *


관제실 밖에 나와, 또각, 또각, 구두굽을 울리며 나아간 한초령 경정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임무, 완료해버렸네.”


긴장이 풀린 허탈감으로 어깨가 축 늘어졌다.


손에는 사용이 끝난 USB 하나와, 근처 전자기기에 랜덤성 오류를 일으키는 도로시 특제 버그 스위치가 들려있었다.

둘 다 13호에게 건네받은 것들로, 관제실 컴퓨터의 이상은  스위치 때문이다.


――‘잠깐이지만 시선을 끌 수 있을 거야. 너라면 그 정도로 충분하겠지?’


13호 그 자식.


 안다는 듯이 말하는 게 더럽게 짜증난다.

하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버그 스위치 때문에 경관들이 우왕좌왕 돌아다니며 한초령에게서 시선을 뗀 사이, 아무도 모르게 본체에 USB를 꽂는 것을 미션을 마친 것이다.


3초면 충분하다기에, 딱 3초.


‘씨이... 누군가한테 들키기라도 했으면 좋을텐데.’

타고난 오감과 형사로서의 감으로 아무도 자신에게 주목하지 않은 그 짦은 틈새를 포착해내, 그 틈에 일을 마쳤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음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


해킹용 USB를 꽂은 것이다, 적어도 뭔가 방화용 프로그램에라도 걸렸으면 좋겠지만, 13호가 그런 거에 걸릴 정도로 허술한 인간 같지는 않다. 이것도 뭔가 대비를 했겠지.

“.......”


화장실 벽에 기댄 한초령의 몸이, 주르륵 밀려 내려왔다.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며 쪼그려 앉는다.

“빌런 13호... 용서 못하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그 인간의 부탁을 받아서 기뻐하는  마음아.

자꾸만 두근두근 뛰는 심장아.


13호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그리움에 젖는 내 머리야.


...제발 분위기 파악  해주라.




* *




한초령은 모르고 있지만.

13호는 몇 달 전에 그녀를 세뇌한 이후로 추가로 세뇌한 적이 없었다.

세뇌라고 하는 것은 어지간히 깊이 들어가지 않는 한,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영향력이 약해져간다.

그런데도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건.

그녀 스스로가 그에게 종속되길 바라고 있다는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마 13호와의 인연을 계속 붙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13호를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을, 한초령은 한사코 인정하려 들지 않겠지만....





* *





짜악―! 하고.


보스의 손바닥이 내 등짝을 날카롭게 때렸다.


......아니, 이 사람이?!


“13호~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 사와!”

“부탁을 하려면  친절하게 대하고 하든가요?! 아프잖아!”


보스가 내게 눈을 부라렸다.

“싫어? 그래서 지금 싫다는 거지?”


“......누가 싫답니까. 그런데 바로 어제 타르트 사드렸잖습니까.”

“1일 1디저트는 필요해.”


“.......”

“...너 어딜 그렇게 쳐다봐?”


보스가 경계하듯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껴안았다.


하지만 그 잠깐 사이, 내 눈은 똑똑히 스캔을 마쳤다.


그래, 틀림없다.


“...보스, 최근 가슴 커지지 않았나요?”

“?!!?!?!!?”

보스인 바이올렛 님이  머리를 투닥투닥 때리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턱에 손을 댄  보스의 흉부를 쳐다봤다.

각이 날카로운 정장이라도 입고 있으면 한 눈에 알 텐데, 요즘 항상 낙낙한 티셔츠만 입고 있어서 못 알아봤다.


...맞아! 분명 조금 커졌어!

“축하합니다 보스! 먹는대로 다 가슴으로 가는 모양이네요! 무슨 아이스크림으로 사올까요!?”

“이익...! 시끄러! 시끄러 변태야!”

“......저기요, 두 분. 애정놀이는 다른데서 해주시면  될까요?”


빌런조직 【어비스】의 아지트.


우리는 그 중 도로시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실험실에 와있다. 당연하지만 이 실험실의 주인인 도로시도 있으며, 애플도  옆에서 “헤~”하고 속을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짙게 드리워진 다크서클에, 언제나 입고 다니는 백의. 요즘은 그 아래에 멋부리기 좋아하는 여대생처럼 자주 입는다.


백의 아래에 여대생룩이라.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왜 남의 신성한 실험실에서 꽁냥대는 겁니까?”

“꽁냥아니야, 도로시. 내가 13호 이 바보랑 꽁냥이라니, 오해도 그런 오해가 없어.”


더불어 말하자면 도로시는 굉장히 언짢아 보였다.

순간 미안한 마음이 솟아오른다.

도로시의 가슴은 10대 이후로 성장이 멈췄다는 모양이며, 지금도 결코 크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괜찮아 도로시! 클럽 보다는 크니까!


만지기에도 딱 좋은 크기라고 생각해!

“......굉장히 언짢은 기분이 드는데.”


타직거리는 특제 전기충격기를 손에 들고 흘겨보는 도로시를 무시하는데, 실험실 한구석을 넓게 차지하고 있던 홀로그램 화면에 파밧- 하고 뭔가가 흔들렸다.


“서방님! 신호 왔어요~!”


애플이 기쁜 듯 말하며 근처의 기기판에 달라붙어 뭔가를 타닥타닥 두드렸다.

기기판으로 조각하는  슈퍼컴퓨터 이상의 성능을 자랑하는 초슈퍼컴퓨터, 라는 모양인데 자세한 내용은 들어도 이해가  돼서 모른다.


도로시가 만들었으니, 분명 몇 세대는 뛰어넘은 엄청난 초과학의 물건이겠지.


발명은 도로시가 했지만, 실제 사용하는 건 【전뇌의 주인】 능력을 가진 애플이다.


전자기기라 하면 전부 애플의  아래에 있다.

조금 후에, 홀로그램으로 넓게 펼쳐지는 형태로 다양한 화면이 떠올랐다.

S시 곳곳에 설치된 영상기기의 화면들.

“여기에 제가 해킹한 사기업들의 CCTV 영상 화면들까지 합치면~.”

애플이 즐겁게 중얼거리며 말하자, 추가로 화면들이 계속 떠올랐다 사라지거나 했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팝업화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광경이다.


S시 한정이라지만, 한 도시의 CCTV 화면 전체가 지금 애플의 손 아래에 있었다.


“그나저나 경찰까지 써먹다니, 예전에는 아무 것도 못해서 나한테 머리 박고 고개 숙이던 한심한 녀석이었는데....”

도로시가 감개무량한 듯 말했다.

“정말 최고로 쓰레기 같은 악당이 되었구나, 너.”

“칭찬 고마워.”

“맞아.  부하가 이렇게 쓰레기가 될 줄은 나도 몰랐어.”

“보스. 제가 이렇게까지 하게 된 건 보스의 명령 때문인데요.”


“내 명령 때문만이야?”

“......뭐... 글쎄요.”


보스에다 도로시까지 세뇌했으니 뭐라고 해야하나... 음... 그거다, 그거.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거.

“서방님은 태생 악당이었던 게 분명해요! 악당이 아닌 서방님은 서방님이 아니고, 쓰레기인 서방님이 아니면 물에서 벗어난 물고기 같은 느낌일 거예요. 서방님이 쓰레기라 저는 아주아주아주 기뻐요!”

“.......”

왜지? 다들 기뻐하는 데 나만 전혀 기쁘지 않은데.

계속해서 뭔가 자잘하게 떠올랐다 사라지는 홀로그램 화면을 쳐다보며, 애플은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럼 여기에, 도로시님과 함께 개발한 프로그램을 추가하면....”

그 말과 동시에, 팝업처럼 떠오르던 화면이 일제히 사라졌다.

뚝, 하고 꺼지듯이.

그리고 몇 개의 화면만이 남았다.

미리 입력해놓은 얼굴 이미지며 신체데이터며 갖가지 데이터를 따라, 그 수많은 영상 속에서 98.2%의 정확도로 지정한 대상을 찾아내고 놓치지 않고 포착해낸다.


“이것으로 완성입니다. 어떠신가요, 서방님? 저와 도로시님이 함께 구축한 【아이즈 오브 갓(Eyes of God)】――프로그램 【신의 눈】입니다.”

콘크리트 정글이 되어버린 수도에서, 특히나 방범의식이 투철한 한국에서 영상감시의 눈을 피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조금이라도 사회와 정상적인 연결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더.


그리고 지금  순간, 이 모든 감시영상은 【어비스】의 눈이 되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보는 신의 눈처럼.

무엇이든 볼 수 있고, 무엇이든 찾아낼 수 있다.

“호오, 이게... 13호도 그렇고, 재밌는 걸 만들어냈네.”


보스가 재밌다는 듯이 웃으며 홀로그램으로 다가갔다. 조금 전과는 달리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의 영상만이 떠올라 있다.

“보스 돈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지 이런 거.”

“역시 서방님의 보스셔요!”

도로시가 불량하게 웃으며 말하고, 애플이 엄지를 세워보였다.

나도 보스의 옆에 나란히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영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떤 인물의 얼굴을 가리키듯, 얇은 초록색 선이 상자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게 그 여자란 말이지?”

“네, 서방님. 백설선녀는 데이터가 부족해서 그런지 안 나오네요.”

“괜찮아. 둘 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충분해.”


마스크를 쓰고, 비니를 뒤집어 썼으며, 히어로제복 위에 야구점퍼를 걸친 여성.

히어로협회 백설선녀의 측근, 히어로 청.


드디어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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