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6화 〉#62 빌런은 신의 눈을 손에 넣었습니다(2)
내려치는 주먹에 쩌적, 하고 갈라지는 나무 탁자.
한초령 경정의 사람 같지 않은 힘을 생각해보자면, 이것도 그나마 힘을 조절한 거라고 생각하면 심장이 오들오들 떨린다.
그러나 13호는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웃으며 태연하게 커피를 마셨다.
...아니, 자세히 보면 커피를 든 손도 미미하게 떨리고 있지만.
“‘빌런 따위’ 라니. 말이 너무 심하잖아. 빌런에게도 인권은 있다고.”
“없습니다.”
“...없긴 없지. 요즘 세상에 잡히면 사형이라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긴 하지.”
13호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별자리의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인권도 박탈당하고 뒈질 수밖에 없는 각성자들이. 나 같은 빌런도 그렇지만, 히어로들도 마찬가지잖아. 빌런한테 죽는다고 해도 소소한 사례금이 전부지? 나름 순직인데 현충원에는 묻어주나? 매일 같이 죽고 죽이는 게 일상인데.”
“.......”
“빌런들도 불쌍한 놈들이야, 경찰나리. 착한 놈들도 있고, 여린 놈들도 있어. 우리가 가해자라는 편견과 오해는 접어줘.”
13호가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며, 가벼운 말투로 흘려보낸다.
빌런과 히어로, 각성자와 사회의 관계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일부 여론이나 단체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빌런이 된 사람들, 히어로가 되어 현대 사회에도 죽고 죽이는 게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에게 동정표를 던지고, 이를 어떻게든 해야하는 게 아니냐며 청원을 넣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새에게 알은 세계다』.”
침묵한 채 듣고 있던 한초령이, 자그맣게 읊조렸다.
13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재밌다는 듯 웃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지? 경찰 나리는 문과랑 연이 없을 것 같았는데.”
“당신도, 빌런 주제에.”
“지금은 이 꼴이지만 나름 대학 수석 졸업자 나부랭이거든. 웬만한 건... 아니, 지금 이야기랑은 상관 없구나. 그보다 내가 말하려는 의도는 이해한 거로 봐도 되겠지?”
13호의 주장은 명백했다.
좀 더 다른 시선, 다른 방향으로 봐달라는 거겠지.
진보한 시각을 바란다는 거다. 관념을 깨부수고, 빌런은 모두 나쁜 놈이라는 대중적인 상식에서 벗어나,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긍정해달라고.
13호의 말도 어떻게 들으면 일리는 있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개소리.”
한초령의 말이, 13호의 의견을 단호하게 쳐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얘기다.
“흠?”
“어쩌면 당신 말대로 결백한 빌런이 있을지도 모르고, 정말 불쌍한 히어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러니까.”
“각성자가 아닌 저는 당신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 그러니까 거창한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라며 말을 잇는다.
“당신이 저한테 한 짓은, 당신이 하는 짓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까. 당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개소리는... 흘려넘길 수가 없네요...!”
* * *
뿌드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13호에게까지 들려왔다.
경찰인데도 빌런에게 범해졌다는 굴욕이, 그 기억이 한초령의 뇌리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거기다 히어로들도, 자신의 친구인 체크도 떠올려본다. 그녀를 신나게 범하던 13호를.
용서해선 안 된다.
용서할 순 없다.
당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니, 그딴 개소리를 용납해줄 것 같아?!
“.......”
“.......”
처진 눈매 아래서, 역전의 용사와도 같이 예리한 눈이 13호를 꿰뚫어보듯 노려본다.
그 시선을 13호는 아무 말 없이 마주보다, 홀짝이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용서할 수 없다면서, 왜 여기 혼자 왔어? 흉악한 빌런이 경찰서 한복판에 떡하니 찾아와줬는데.”
“.......”
한초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해.”
“......내가, 왜....”
“대답하라니까?”
예고도 없이.
13호가 한초령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읏......!”
13호의 시선을 피하듯 미묘하게 비스듬하게 아래를 향하려던 한초령의 고개를, 내민 13호의 손이 그녀의 턱을 억지로 꾸욱 밀어올려 다시금 시선을 맞춘다.
고개가 올라가며, 희고 예쁜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남의 턱을 멋대로 만지다니. 남자고 여자고를 떠나서, 이 어찌나 무례한 행동인지.
대화할 때의 예의범절도 모르는 인간이라며 매섭게 매도해주고 싶었지만,
“대답해, 한초령 경정.”
진지한 13호의 목소리에, 내뱉으려던 매도의 말이 슬그머니 목 아래로 내려갔다.
“......무서워서.”
“응?”
“...당신을 체포하려 하거나... 동료들을 부르려거나... 할 때마다 머릿속의 내가... 바뀌는 기분이 들어서....”
아마도 13호가 심어둔 세뇌암시 때문인지.
13호에게 불리하도록 행동을 하려할 때면, 자꾸만 머리 안 쪽에서 내가 아닌 다른 의지가 튀어나온다.
마치 자신의 안에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는 것 같아서.
이대로면 자신의 자아가 사라지고, 뭔지 알 수도 없는 인격이 몸을 차지할 것 같아서.
도저히 그의 의지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좋아, 잘 대답했어.”
“......크읏!”
한초령은 13호의 손을 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13호의 손을 쳐내기 직전, 그 근처에서 손이 멋대로 멈췄다.
때리지 말라고, 자신의 안에 있는 다른 인격이 호소하는 것이다.
“진짜... 싫어...! 나는 경찰인데...! 빌런쯤은 지금까지 몇 번이나 때려눕혀 왔는데...! 당신 따위...!”
“미안하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나는 빌런이니까. 나쁜 악당이니까. 나쁜놈한테 잘못 걸렸구나,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할 거야.”
13호는 한초령의 고개를 꾸욱 밀어올린 채 일어서, 그녀가 옆으로 밀어놨던 커피를 그녀의 입 안에 흘려넣었다.
아무 것도 안 들었다고 하긴 했지만, 거짓말이다. 세뇌약을 넣어놨다.
악당의 말에 진실을 바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
한초령의 눈에 서서히 빛이 사라져가고, 초점이 맞지 않고 몽롱해져 간다.
“...히어로도 아닌데, 자꾸 끌어들여서 미안하다.”
13호는 그 앞에 손을 흔들거나, 몇 가지 질문을 하며 한초령의 세뇌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붉게 빛나는 그녀의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그대로 자신의 입술로 파묻을 수 있을 것 같은, 얇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예쁜 빛깔의 입술을.
‘아쉽네, 조금은.’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알게 되고, 영화의 취향이 맞는 것도 알게 되고, 술을 마시는 것도 즐거웠다.
나이도 자신보다 조금 어리지만, 딱 괜찮은 오차다.
만약 13호가 연구시설에 억지로 끌려가는 일이 없었다면.
그가 바이올렛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비스】의 일원이 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그녀와는 둘도 없는 인연을 만들 수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쓸데없이 감상적이 됐네.’
생각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13호는 고개를 저어 생각을 털어버리고, 대신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그러면 좋아, 한초령. 이제부터 중요한 걸 부탁할 생각인데, 괜찮지?”
“네... 무엇이든지....”
“네 동료들을 배신하는 일이어도?”
“.............”
멍한 눈의 한초령은 입술을 살짝 벌린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뜻이었다.
“좋아, 그러면 맡기겠어.”
13호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 한초령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몇가지 지시를 한 뒤, 그대로 방치해둔 채 떠나갔다.
한초령이 정신을 차린 건 13호가 떠나가고 약 3분 뒤였다.
* * *
또각, 또각, 하는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늘어뜨린 한초령 경정이다.
‘이건 뭐람....’
한초령은 흰 장갑을 낀 채, 손에 들린 USB를 만지작거렸다.
장갑은 혹시 모를 지문대책이었다. 가끔 가져온 증거물 조사를 할 때면 장갑을 끼기도 하니 이상하게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13호 그 인간, 또 세뇌약 같은 걸 먹여...? 진짜....’
커피에 담긴 세뇌약을 마시고, 그 상태로 남겼던 13호의 암시와 지시는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져있었다.
거부하고 싶어도 심층 레벨로 각인된 암시는, 그녀의 몸을 멋대로 움직이기에 이르렀다.
‘진짜 최악....’
그렇기 때문에 한초령은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할 일은 범죄이자, 동료를 넘어 나라를 팔아넘기는 수준의 일이 되니까.
그런데도.
그런데도 여전히, 그녀는 13호를 한결 같이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짜증난다.
“실례하겠습니다.”
【영상감시 통합관제본부】.
한초령은 정중하게 인사하며, 그렇게 불리는 부서 안으로 들어갔다.
약간 폐쇄적인 느낌이 드는 실내에는, 영상감시 모니터와 심심할 때면 24시간 풀가동 될 수밖에 없는 컴퓨터들이 가득 들어차 있다.
급한 사건은 없는 것인지, 사람이 별로 없다.
“한초령 경정님 오셨습니까?”
“예, 수고하시네요.”
각이 잡힌 경례에 한초령 경정도 경례로 응수해주었다.
한가한 때라 그런지, 지금 이 자리에 그녀보다 계급이 높은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자신보다 계급이 낮은 인원들에게도 존대하는 건, 타부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대재해』 때의 활약으로 유례없는 특진을 거듭해 출세한 그녀지만 딱히 거들먹거리는 성격도 아니고, 젊고 어린데 아득히 높은 상관의 자리에 위치한 그녀 때문에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생기기도 했다.
존댓말은 그런 사소한 트러블 방지용이다.
그래선 안 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애초에 그녀 본인이 이쪽이 편하다고 하니 뭐.
“...어라,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몸은 멀쩡하니 괜찮아요. ...오늘은 한가한 것 같네요?”
“아하하하, 저번에 오셨을 때는 난장판이었죠. 빌런 차량을 추적하겠다고 온 도시의 CCTV를 돌려보고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한가한 것도 오랜만이에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젊은 경관이 아하하 웃으며 말했다.
얼빠져 보이지만 유능한 인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언젠가 자신의 부서로 끌어들일 생각도 하고는 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조금 곤란한데.
“그보다 무슨 일이신가요?”
“수사 때문에 영상을 좀 확인해야 해서요. 여기, 이용에 대한 허가는 받아왔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어디 영상이 필요하시죠? 조작해드리겠습니다.”
“...그거 말인데요.”
한초령 경정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컴퓨터 한 대를 빌려서 직접 보고 싶네요. 아직 두루뭉술하게 밖에는 감이 안 잡혔다고 할까, 직접 조작하면서 봐야 감이 잡힐 것 같아요.”
“한초령 경정님이라면 그런 일도 자주 있으셨죠. 예, 저쪽 13번 컴퓨터로 사용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안내받은 13번 컴퓨터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자리였다.
아마 배려해준 걸 테지만, 지금은 오히려 괴로웠다.
차라리 누군가가 알아채고 자신을 막아줬으면 싶었으니까.
“존경하는 한초령 경정님이 계시니 두근두근합니다! 이따가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기, 저는 경찰이지 아이돌이 아닌데요.”
“아아, 이렇게 미인이신데다 아름답고 늠름하고 강한데다 책임감까지 넘치시는 한초령 경정님! 경정님은 이미 저희 서의 아이돌이십니다!”
......부담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