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62 빌런은 신의 눈을 손에 넣었습니다(1)
히어로협회의 사령관 백설선녀.
그녀의 행보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너무 없다. 아니, 일부러 숨기고 있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도로시에게 들은 대로라면 몇 백... 어쩌면 천년 넘게 살아온 신선 같은 거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이해를 못 할 것도 아니긴 한데.
‘천년 넘게 살았는데 평범하게 생활하긴 좀 무리가 아닐까?’
당장 신분증을 만드는데도 분명 문제가 있겠지.
설마하니 생년월일이 7자리 숫자가 되는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현대 사회에 신분증 없이 생활하는 것도 힘들 테고.
‘대외적인 신분을 따로 만들었을지도 모르겠어.’
가짜 신분을 만들어서 생활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 가짜 신분부터 시작해 더듬어 가도....
‘어렵구만.’
그쪽은 검찰이나 정부 쪽의 기밀자료를 들여다봐야 되겠지만, 나라의 중요한 부분은 히어로협회의 정보계 히어로들에게 지켜지고 있다.
애플의 능력으로도 돌파는 어렵다.
‘그렇다면 역시 그 부관이라는 사람을――’
“오빠?”
“아, 응. 끝났어? 타르트 먹을래?”
“먹을래요.”
아리아가 와아~ 두 손을 들고 기뻐하며 받아들었다. 나른해 보이는 표정이 오늘도 인상적이다.
“되게 예쁘다. 이거 완전 인스타용인데요?”
“보스꺼 사는 김에 네 생각도 나서.”
방에 찾아왔더니 한창 집중해서 【예지】 중이었는지, 가부좌를 틀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길래 방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눈도 감고 있으니 이참에 여기저기 주물러볼까도 생각했는데, 괜스레 집중력을 흩트릴까 봐 참았다. 치마를 입고 있었으니 바닥에 엎드려 팬티를 훔쳐보는 정도로 그쳤다.
물론 알몸도 보여주는 사이지만, 보여달라고 하는 것과 훔쳐보는 것은 뭔가 다르다. 전혀 다르다. 물론 난 최악의 악당이니까 하는 짓이지만. 정말 나쁜 놈이지?
“안 그래도 오빠가 부탁한 사람 찾고 있었는데요. ...아작아작... 맛있다 이거....”
“요즘 유명한 집이라더라. 보스가 사다 달라고 지랄지랄을 떨어서. 겸사겸사 네 몫도 사옴.”
“오빠 그거 즐기고 있는 거 다 알거든요.”
“뭐?”
“그냥 말해도 사줄 거였으면서, 보스가 매달리는 게 좋아서 괜히 튕기고 그러는 거잖아요.”
“......티 나니?”
“제 눈썰미를 우습게 보지 마셔요.”
“우리 보스는 바보니까 모를 거야.”
“뭐... 글쎄요.”
그 쪽도 그 쪽대로...라고 중얼거리는 데,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럼 청이라는 여자가 어디있는지는 알겠어?”
“그거 말인데요, 일단 말씀드려야 하는데... 전혀 모르겠어요.”
아리아가 예쁜 모양의 타르트를 햄스터처럼 아작아작 씹으면서 말했다. 고운 모양의 눈썹이 축 처진게 귀엽다.
“제 【예지】는 구멍도 많고 컨디션도 많이 타요. 하지만 그 청이란 사람은 전혀 다른 문제로 보이질 않아요.”
“다른 문제?”
“네. 이건 백설선녀라는 사람이랑 똑같은데... 뭔가 막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제 【예지】로는 접근을 할 수가 없어요. 보려고 하면 그대로 미로에 갇혀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응......?
“능력은 단순한 신체강화라고 하던데.”
“글쎄요. 별자리의 특성인지, 아니면 그 백설선녀라는 사람의 영향이 미쳐서 그런걸지도 몰라요.”
어쨌든 전혀 모르겠어요, 라며 아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풀이 죽어 고개를 푸욱 숙였다.
“도움이 못 돼서 죄송해요....”
그러면서도 아작아작 타르트를 깨물어먹는게 귀여워서,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여담이지만 남자가 했을 때 여자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2위가 머리 쓰다듬는 거라던데.
“헤.......”
이 칠칠치 못하게 풀어진 얼굴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다.
어차피 세뇌 때문에 느끼고 있을 호의일 뿐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해지는구만.
“충분히 도움 되고 있으니까 괜찮아. 타르트 더 먹을래? 잔뜩 샀는데.”
“네! 먹을래요!”
눈이 돌아가서 타르트를 고르기 시작하는 아리아.
그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여동생이나 딸을 보는 듯한 기분에 마음이 푸근해졌다. 뭐랄까, 오빠미소인지 아빠미소인지가 멋대로 지어지네.
그러나 그 순간 도로시의 목소리가 뇌리에 스쳐지나갔다.
――‘최면은 갑을 관계가 중요해!’
맞아.
아리아가 내게 보이는 호의는 단순한 세뇌에 의한 것이다.
평범한 오빠동생 사이인 것도 아니고, 세뇌가 풀린다면 언제든 이빨을 드러낼 수 있는, 오로지 세뇌로 이루어진 관계니까.
‘갑을 관계를 유지하려면 역시 나쁜놈이 되어줘야 돼.’
갑을 관계, 갑을 관계.
......흠.
“아리아.”
“우물우물... 웅?”
“일로. 일로. 허전하다.”
나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채 허벅지 부근을 탁탁 두드렸다.
“......웅?”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하던 아리아가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괜찮아요?”
“괜찮아, 가 아니야. 명령이야. 와.”
“네~.”
아리아가 즐겁게 웃으며 내 다리 사이에 폭 들어왔다.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죄책감이 든다. 연인 사이에서도 명령 받는 건 기쁜 일이 아닐텐데, 세뇌 때문에 명령 받는 것도, 원수인 빌런의 품에 이렇게 폭 안기는 것도 기쁘다고 느끼다니.
불쌍한 녀석.
하지만 나는 최악의 악당이니까, 어쩔 수 없다. 이런 일로 죄책감을 느끼고 포기할 거라면 빌런 노릇은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아직이다.
갑을 관계를 확실히 하기 위해, 조금 더 확실하게 나쁜 짓을.
“너 어떤 타르트가 제일 맛있어?”
“지금 먹는 이거요!”
야금야금 갉아먹던 건 귤 타르트. 예쁘게 이빨자국이 나있다.
“안 그래도 귤 좋아하는데, 색감이나 모양도 예쁘고 되게 달콤하니 좋네요.”
“그래?”
타르트를 든 아리아의 손목을 덥석 집었다. 한 손에도 다 안 들어오는 가느다란 손목.
그대로 끌어당겨, 손에 들고 있는 타르트를 입으로 덥석 물었다.
“어....”
아리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놀란 그녀를 무시한 채, 타르트의 반절 정도를 한입에 베어 물고 와작와작 씹어먹는다.
좋아.
맛있게 먹는 타르트, 그 중 제일 좋아하는 맛이라면 하나를 통째로 먹고 싶었겠지.
맛있게 먹고 있던 걸 절반이나 빼앗겼으니 지구가 반으로 쪼개질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갑을 관계 완성이다.
“오빠...?”
“남기지 마. 다 먹어. 내가 멋대로 먹어버렸다는 사실을 음미하면서, 내가 씹은 곳은 특히 신경 써서 아작아작아작아작 씹어먹도록.”
후후.
후후후후.
이런 굴욕까지 주다니, 나는 역시 최악의 악당이다.
“.......”
“.......”
뭔가 이상한 기분도 들었지만, 무시하고 아리아의 몸을 폭 끌어안는다. 아리아는 다시 타르트를 먹는데 열중하기 시작했다. 왠지 귓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분노로 얼굴에 열이 오른걸까.
그런 아리아의 옷 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가볍게 주물렀다.
“응......!”
남은 한 손으론 입고 있는 팔랑팔랑한 스커트 아래로 넣어, 팬티의 천 위로 음부를 문지른다.
따뜻한 온기가, 말랑한 음순의 살집이 손에 닿는 게 기분 좋다.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으니 꽃향기와도 비슷한 달콤한 향기가 났다.
‘자,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까.’
아리아의 【예지】와 애플의 【전뇌의 주인】이면 웬만한 정보는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방향이든 오컬트적인 방향이든 견고한 시큐리티로 보호되고 있는 백설선녀와 그 측근에 닿으려면.
“으응... 아....”
손 안에 쏙 들어오는 가슴을 주무르면서, 팬티 아래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보짓살을 매만지고 비볐다.
연한 분홍색의 입술로 타르트를 입에 문 아리아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달콤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요한 애무는 아리아가 타르트를 다 먹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중간에 목이 메여 음료수를 가지러 갈 때도 엉덩이를 주무르며 뒤에 따라붙어 놓치지 않았다.
하아... 하아... 헤휴우....
“좋아, 즐겼으니 이만 간다, 아리아.”
지친 아리아를 침대 위에 눕혀준 후, 아리아의 방에서 나왔다.
아리아나 애플의 능력으로도 결국 조사망은 좁히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직 생각나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도로시가 있을 아지트의 실험실로 향했다.
* * *
“한초령 경정님, 경정님을 찾으시는 분이 계신데요.”
“예? 저를 찾는 사람이요?”
밝은 남색의 경찰복 셔츠, 짙은색의 스판팬츠. 소매 양 끝에는 일자형 태극 사괘(四卦) 자수.
검은 동양의 미인이라는 느낌이 확 나는, 부드럽고 고운 긴 흑발.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와도 같은 부드럽게 처진 눈꼬리의 미인.
한초령. 젊은 나이에 유례없는 승진을 거듭해 경정이라는 지위를 얻고, S시 경찰서 【특능범죄대책과】의 과장이기도 한 그녀가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도 그럴게 이렇게 일하는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짐작도 가질 않는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꼭 경정님을 뵈어야 한다는데요.”
“남자인가요? 여자?”
“남자였습니다. 이걸 전해드리면 알 거라면서....”
그렇게 말하며 부하가 내민 것은 작게 접은 쪽지였다.
어째 감이 안 좋은데.
한초령은 경계하면서도 쪽지를 펼쳤다.
쪽지에 적힌 것은.
『13』
이라는 숫자였다.
“!?”
단순한 숫자였지만, 그 의도를 곧바로 깨닫고 한초령 경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나친 기세에 책상에 무릎이 부딪쳐 덜컹! 하고 흔들렸다.
“겨, 경정님?!”
“......!”
고운 입술을 깨물고, 눈이 단숨에 찡그려졌다.
아무래도 험악한 표정을 지어보이려 했던 모양이나, 천성적인 처진 눈매 때문에 그런 표정도 느긋나른해 보였다.
“이 쪽지를 준 사람, 어디에 있죠?”
“아, 예. 서 정문 부근의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알겠어요. 금방 가도록 할게요. 당신도 맡은 업무로 돌아가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부하 경찰이 경례한 후 떠나가고, 한초령 경정은 쪽지에 적힌 숫자를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더니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테이블이 늘어선 테라스 같은 느낌의 야외 휴게실.
13호는 휴게실 가장자리에서 사온 커피를 들이키며 느긋하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서 한복판에서 저게 무슨 여유람. 한초령은 보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에서도 그녀를 알아챈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그녀를 불렀다.
“안녕, 오랜만이야.”
“......아주 좋은 배짱이시네요? 범죄자가 경찰서에 떡하니 찾아오고.”
“매스컴이 알면 좋아라 기사들을 써낼만한 내용이지. 네 몫도 사왔는데, 마실래?”
컵을 보니 경찰서 근처에 있는 세련된 커피숍에서 사온 모양이다.
내밀어진 커피를, 한초령은 옆으로 도로 밀어냈다.
저번에도 이런 식으로 건네 받았다가 된통 당했더랬지. 그 때 전해준 건 13호에게 세뇌당한 체크였지만.
“.......”
“뭐 타지는 않았으니까 걱정말고 마셔.”
“교활한 빌런의 말을 들을 생각은 없네요.”
그보다, 라며 한초령이 눈을 매섭게 떴다. 처진 눈꼬리 때문에 전혀 무섭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여기에 온 거죠? 이 경찰서 내부에 당신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텐데. 아니, 도대체 왜 온 건가요? 빌런인 당신 따위가!”
쾅! 한초령 경정이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치자, 테이블이 크게 흔들렸다. 컵 안의 커피가 출렁였다.
나무로 된 테이블에 쩌적, 금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