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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9화 〉#61 이 나라에는 선녀가 산다(2) (249/271)



〈 249화 〉#61 이 나라에는 선녀가 산다(2)

“제길... 제길... 이런 세상... 싫어....”


빌런 김토토.

빌런 조직 【블랙팬츠】의 일원이던 그는, 몇  전 히어로에 의해 몸을 담고 있던 조직이 통째로 와해되어 버렸다.

폭삭 주저앉았다.

아주 그냥 망해버렸다.


히어로에게 습격 받았던 곳은 해안가 근처의 컨테이너 숲으로, 당시 속이 안 좋아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에서 변비와 사투하던 사이 이미 모든 이야기가 끝나 있었다.

든든하던 베테랑 빌런이던 형님도, 몸을 바쳐 자신을 지켜두던 동생들도 전부 붙잡혀 끌려가거나 죽어버렸다.

처음에는 망연자실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보스마저 붙잡혀버렸는데, 일개 조직원인 그가 무얼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전부 청산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나?

아니다.

조직이란 틀은 없어졌어도, 그의 마음에 있는 심지, 그것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빌런 조직에 속해있었어도 결코 흔들림 없고, 바뀌지 않는 한가지.

그를 험하고 위험한 빌런의 세계에 들여놓고 말았던, 거목과도 같은 소망.


“일 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


일이 하고 싶지 않다.

“일이 하고 싶지 않다고!!!!”


편하게 살고 싶다.


백수로 살고 싶다!!

상사의 갑질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매일매일 즐겁게 꼬치구이나 먹으면서 살고 싶고, 악착 같이 돈을 저금하려는 아득바득한 삶이나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퇴근하고 나서도 공부에 매진하는, 그런 꿈과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한  따위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아아아아!!!!

빼애애애애애애애애액!!!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 때문에, 그는 새롭고 깨끗한 삶을 살기를 거부했으며.

다시금 빌런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이번에는 신흥 중소규모의 조직이 아닌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중대형급의 조직에 신청서를 내었다.


자금은 다행히 조직이 와해되기 전 빼놓은 게 있었다. 백수로 먹고 살기에는 부족하지만, 적어도 연이 있던 브로커에게 조직을 소개시켜 달라고 할 정도는 되었다.

돈이 부족해서 빚이 조금 생겼지만, 뭐.

빌런 조직이라는 뒷배만 있으면, 누가 자신을 건드리요.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빌련 연합에 소속된 조직 【까망셔츠】.

브로커의 소개를 받아 찾아갔으나, 과연 대형급 조직인 만큼 바로 받아주지는 않았다.


“우리 조직에 들어오려는 자, 두려움을 몰라야 한다. 세상을 두렵게 만들 범죄를 저질러 보여라.”


결론은, 어떻게 해서든 용기를 보이라는 것이다.

용기만 보인다면 받아주겠다고.


후후.

고작해야 그 정도. 어렵지도 않다. 모두에게 보여주마, 이 몸의 용기를.





* * *




그렇게 해서 빌런 김토토는 먼저 카메라맨을 섭외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아무 말 없이 찍어달라고. 이제 이 사람이 찍는 영상은 【까망조직】에게 보내질 것이다.

그렇다면 범죄의 내용이다.


어떤 범죄를 저질러야 남녀노소 불문하며 나라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게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자신의 용기를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던 김토토는 결론을 내렸다.

“저항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몹쓸 짓을 해보자.”

고심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그도 정상적인 사람의 감성은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손대는 게 위험하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아청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아주 자~~~~알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남자는 물러설 수 없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가 타겟으로 삼은 것은 근처의 어느 편의점.

편의점 안에는 마침 소녀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 외모는 잘  수가 없다.

대강 보기로 열하나, 열두 살 정도일까. 많아 봐야 열넷은 넘지 않을  같았다.

더 어린아이를 고를 수도 있겠지만, 그 정도로 어린아이에게 트라우마를 주는 것은 도저히  수 없었다. 김토토, 그는 이미 최저최악의 쓰레기이지만 아직 실낱 같은 사람의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비는 거기까지다.

이제부터  아이에게 어마어마한 못된 짓을 해야한다.


아청법에 걸리고, 버러지를 보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더라도, 자신은 해내야만 한다.  보여야 한다.

자신의 용기를 보여야만 한다.

반드시, 반드시 빌런 조직【까망셔츠】에 들어가보이리라.


그래서 단순히 숨만 쉬고 서있기만 하는 것으로, 가끔 저질스런 범죄를 저지르고 내 마음대로 살면서 태평하고 한가한 백수 같은 생활을 하고 말리라!


“안녕~.”

“......?”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고 여자아이에게 다가간 김토토. 그대로 가볍게 인사하자,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아이가 무슨 일이냐는 듯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처럼 새하얀 아이였다.

아니, 정말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하얬다. 단순히 빛이 반사되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모자 아래로 흘러 떨어지는 머리카락은 은발에 가까운 새하얀 백발이었으며, 피부는 새하얬고 눈도 설원의 그것처럼 은빛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앳된 티가 남아있는 얼굴인데도, 대단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마치.

마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눈을 모아서 만들면 이런 아름다움이 생기는 걸까?


본래 김토토가 하려던 나쁜 짓은, 어린 여자아이에게 ‘팬티  보여줄래~? 우헤헤헤!’하고 묻는 것으로 여자아이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준다는 계획이었다.

당연히 촬영이 끝나면 여자아이에게 오체투지로 사죄하고 눈 앞에서 자기 뺨을 찰싹찰싹 때리고 화가 풀릴 때까지 밟아주세요! 라고 외친 후 경찰에 스스로 출두해 죗값을 치르고 나와 빌런 조직에 당당히 입성한다는, 그런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 모든 생각이 깡그리 날아갔다.


퐁, 하고.

사랑에 빠져버렸다.

“아가씨.”


“응?”

“결혼해주세요.”

“..........에?”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여자아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청혼을 하고 있었다.


“결혼해주세요, 아가씨.”


“...어, 어라? 내가 잘못 들은 게냐? 허, 허허.”

“결혼해주세요 아가씨!!!!”


“아니, 그만.”

“당신을 위해서라면 갱생해보일게! 나쁜 짓도 그만둘게! 이제부터 열심히 자격증 공부해서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서, 13년 후엔 마이홈을 장만할 수 있게 노력할게! 나와 결혼해줘! 결혼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 아니아니아니아니! 잠깐만!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아이는 둘, 아니 셋이 좋겠어! 결혼해주세요오오오오오오오오!!!”

“그만하거라아아아아아아아!!!!”

용기 있는 고백이 편의점 안에 울려퍼졌다.

그 모습을 섭외된 카메라맨이 흥미 반 어이상실 반의 표정으로 열심히 찍는다.

당황하는 여자아이.

 앞에 무릎꿇고 열성적이게 고백하는 빌런 김토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기세로 고백을 계속하는 남자와, 그런 남자에게 당황하며 멀어지려 하는 여자아이.


“이보세요! 지금 뭐하는 짓....”


어딜 어떻게 봐도 범죄로 밖에 보이지 않는 광경에 편의점 점원이 당황하며 뛰어들려던.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화르르르르르륵――!

무시무시한 폭발과, 불꽃.


유리벽을 깨부수며 날아 들어온 무자비한 불꽃이, 편의점 내부를 미쳐 날뛰는 격류처럼 휩쓸었다.


* * *




“아~~~~하하하하하! 타올라라! 전부 타버려라아아아아아아아아!!!!”

빌런명 마리아나.

불꽃을 다루는 각성자이자, 히어로측에서 고랭크 토벌지정을 내건 빌런으로 특별한 빌런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게릴라 빌런이다.


별자리에 선택받아 각성한 이 여성은, 별자리의 충동으로 늘 무언가를 태우고 싶었다. 폭발이 좋았다. 화염은 예술이다.

처음에는 감히 범죄자가 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작은 것을 태우고 살았다. 성냥, 책, 옷....


그러다 그녀의 생각의 근본을 크게 바꿔버렸던 것이, 어느 작은산의 대화재다.


별자리가 부여하는 본능이 강요하던 충동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어느 날 어느 인적 드문 산의 나무를 불태웠다.

사람이 없으며, 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선 숲. 거기다 하필 건조한 겨울날이었다.


나무 하나에서 시작된 불꽃은 그대로 이리 붙고 저리 붙으며 결국 삽시간에 산 전체로 퍼져나갔다.


산 전체가 하나의 모닥불이 되어 캠프파이어마냥 화려하게 불타는 광경. 그리고 수많은 사람이 이 광경을 영상을 통해 보게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그날 밤에 깨달았다.


불꽃은 예술이다.


화염은 예술이다.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가 봐줬다.

그게 그녀의 선을 지키던 마지막 껍질을 부숴버렸다.

“『빌런 마리아나, 오늘은 편의점을 태워보았다!』. 딱 좋은 영상이 만들어졌어용~~~!”

그녀는 태우는 충동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이 불타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빌런이 되어, 충동에 시달릴 때마다 마구 태웠다.


그게 사람이 되었든 건물이 되었든 산이 되었든, 이제  바 아니었다. 태우고 싶으면 태울 뿐이다.

태우고, 태우고, 태우고, 태우고.

히어로가 그녀를 붙잡기 위해 달려든 적도 있었지만, 그 히어로도 태워버렸다.

그녀에게 매료된 동료가 생겨서, 그는 그녀를 늘 따라다니며 바로 옆에서 최고의 각도로 영상을 찍어주었다. 히어로에게 잡히지 않도록 교묘하게 도주경로를 기획해주는 것도 이 남자다.

지나칠 정도로 정교한 그의 편집을 한차례 걸친 영상은 금방 SNS에 업로드되고,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사람들이 보게 된다.

모두가 불태우는 아름다움을 안다.


모두가 그녀가 불태우는 광경을 보고 있다.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아~~~하앗! 모두모두 잘 봐줬어~~~?! 불탔지이~~~~?! 화려하지이~~~~?! 아름답지이이~~~~~?”


모두가 그녀의 영상을 주목한다. 전세계의 사람들이.

매번 희대의 빌런이 언제 잡히나, 또 무슨 짓을 하나 궁금해서 보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대부분은 영상 속의 여성을 보기 위해서다.


기쁜 듯이 방화를 저지르고 불태우면서.

――그러면서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보기 위해서.

“아~~~~하하하하하! 탔어! 불탔어! 오늘은 또 몇 명이나 죽었을까아아~~~~?! 응~~~~?!”

그녀는  운다. 웃으면서 운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오늘도 불태울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슬퍼서 운다.

그러면서도 목숨을 끊어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운다. 아직 태울 것이 남았다며 죽지말고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라며 자신을 강요하는 별자리의 목소리에 운다.


“히어로! 히어로! 히어로! 히어로!!!!  봐! 와보라고! 희대의 빌런이 여기에 있다고오오오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얼마든지 죽여보라고오오오!!!!”

...이렇게나 슬픈데.


이토록 마음이 아픈데, 방화의 기쁨에 웃을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운다.

그런 것이다.

오늘도 웃으며 눈물흘리고 방화를 저지르고 사람을 불태워죽인 그녀는, 이제 동료가 지정한 도주 루트를 통해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방화를 저지를 것이다.


그럴 터였다.


“――【바람이여, 바람이여, 부디 이곳에 시원하게 불어주오】.”

그럴 터였는데.


“......어?”


부오오오―하고 바람이 불어왔다. 그녀가 입고 있는 얇은 셔츠가 뜨거운 열기를 품은 바람에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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