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8화 〉#61 이 나라에는 선녀가 산다(1)
선녀(仙女).
대한민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신화에 등장하는, 하늘나라에 사는 여성.
혹은 일반적인 인식 속의 선인(仙人)과 같이, 어떠한 도(道)를 깨우쳐 인간의 틀을 뛰어넘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
하늘 나라의 궁녀로서 일하는 여성들을 칭하기도 하고, 혹은 단순히 하늘에 머물 뿐인 여자 선인들을 선녀라고 표현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서양에도 비슷한 이미지로 천사가 있지만, 미묘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동양인들의 상상이 모여, 선녀라 함은 ‘기본적으로 매우 정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미의 상징이자, 청순가련하고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이 몸이니라.”
......그렇다고, 한다.
“진짜라니까?”
...그렇다고... 한다....
“진짜라고!!”
그렇다고 하니까... 뭐... 응... 네....
* * *
“13호. 있어?”
“응? 도로시?”
똑똑, 노크하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하던 작업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도로시가 귀엽게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다. 어떡하지, 이 입만 열면 독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여자가 귀여워 보이다니, 정말 세상 말세다.
...아니, 외모만 보면 귀엽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만.
“바빠?”
“아니,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응. 저번에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던 내용.”
도로시가 슬쩍 안을 살펴보고, 태연하게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흰 백의를 걸친 왜소한 몸. 짙게 내려온 다크서클.
손에는 새카만 상자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내가 도로시에게 조사해달라고 맡겼던 것이다.
소피아를 세뇌하고 나서, 그녀가 썼던 【시나리오】에 반응해 허공에서 튀어나온 물건.
큐브처럼도 보이는, 새카말 뿐인 상자.
“뭔가 좀 알아낸 거 있어?”
“없어.”
“......진짜? 사실 그냥 쓰레기였다거나?”
“쓰레기는 네 머리고.”
말이 심하다.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며 항의하듯 노려봤지만, 도로시는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손 안에서 상자를 굴렸다.
공장에서 만든 듯 깔끔하고 정확한 정육면체다.
“안에 뭔가 들어있는 것 같긴 해. 측정기기로 측정해보면 반응은 있거든.”
“뭐가 들어있는 건데? 폭발물이나 독가스 같은 건 아니겠지?”
“원자폭탄일 수도 있지.”
“네가 말하면 진짜 같으니까 하지마....”
“하지만 진짜 모르겠어. 전기 같기도 하고, 불 같기도 하고, 네가 말한대로 폭탄이나 독가스일지도 몰라. 어떤 계측기기를 가져가도 뭔가 있다고는 반응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
한마디로 안에 든 게 ‘0’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제일 문제인 건 그거야. 언제 만들어졌는지조차 모르겠어.”
“응?”
“보통 골동품의 제조년도를 파악하는데는 생활기스나 열화 정도를 보거든? 내 초과학 측정기기를 사용하면 어떤 유물이라도 1, 2년 정도 오차로 제작년도를 측정해낼 수 있는데....”
전혀 안 나와, 라며 도로시는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이거 기스도 안 나. 요걸로 한 번 긁어볼래?”
도로시가 내게 끝이 뾰족한 송곳을 내밀었다.
손에 받아들고 상자의 겉면을 조심조심 긁어보자, 예상했던 끼기긱―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뭐야 이거?”
“그치?”
단단한 바위를 긁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푹신한 쿠션을 누르는 것 같기도 하다.
새삼 이렇게 보니 재질이 짐작도 안 가는 데다가, 말한대로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단순히 겉면이 검은색이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무슨 짓을 해도 흠집 하나 나지 않아. 혹시 몰라서 저번에 만들어 둔 최고경도 파일 드라이버로 쑤셔봤는데 멀쩡했어.”
“야.”
파일 드라이버라니, 그러다 진짜 부서졌으면 어쩌려고.
...낑낑거리며 파일 드라이버를 손에 드는 도로시라, 상상하니까 어쩐지 웃기다.
도로시의 설명이 이어졌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전혀 모르겠고, 기스조차 안 나는 것으로 봐선 지금껏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불괴(不壞)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거야.”
“...애초에 부술 수 없으면 가공하는 것도 불가능한 거 아냐?”
“만들기 전에는 액체였다가, 굳히고 나니 이런 모양이 되었다...라는 것도 가능하지. 얼음이 그렇잖아.”
“그렇게 말하니 이해가 가네. ...그래서?”
내가 되묻자, 도로시가 어깨를 으쓱했다.
“포기. 전혀 모르겠어.”
“천재 과학자라더니 별 거 아니구만~.”
파지직!
“......! ...!”
“다시 말해볼래?”
배때지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강렬한 전격의 충격. 도로시는 생긋 웃으며 손에 든 소형 전기충격기를 파지직 울려보았다.
자, 잘못 했습니다...!
전기충격기를 들이대며 협박하는 도로시에게 필사적으로 사죄했더니, 도로시는 한숨을 내쉬며 전기충격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적어도 현대에 만들어진 물품은 아니야. 아~주 아주 오래 전게 아닐까?”
“기계로도 측정할 수 없었다며. 어떻게 알아?”
“감이야.”
“감이냐.”
난 배가 더 좋은데.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데, 이번엔 목덜미에 전기충격기가 들이밀어졌다.
“......!!! ...!!”
“좋아, 역시 13호 넌 꿈틀거리는 게 어울려. 벌레 같으니까.”
서있지 못해 바닥을 짚고 엎드렸더니, 도로시가 그대로 내 뒤통수 위에 발을 올렸다. 꾸욱꾸욱 밟아댄다.
...팬티 보인대요. 오늘은 흰색이구나.
세뇌암시로 알아서 보여주게 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렇게 슬쩍 보는 것도 슬쩍 보는 대로 신선한 즐거움이 있다.
훔쳐보는 건 범죄지만, 난 어차피 나쁜 빌런이니까 괜찮지롱!
“...불온한 기운!”
“갸악?!”
“야한 생각했지, 쓰레기.”
“진짜 너무한다...! 너 언젠간 복수해줄 테니까...!”
“그건 됐고. 그보다 이 상자야.”
도로시가 내 머리 위에서 발을 치웠다.
“네가 모르면 알 방법이 없잖아. 포기하자.”
“싫어! 모르는 걸 모르는 채로 두는 건 과학자의 수치야!!”
“아, 그래...?”
그렇다면 어쩔 건데?
그렇게 시선으로 물었더니, 도로시가 입술을 비죽 내밀고 영 탐탁치 않은 듯이 틱틱거리며 말했다.
“알만한 사람을 족쳐야지.”
“네가 모르는 데 누가 알아? 보스? 아리아? 애플이나 라헤?”
딱 이렇다 할 사람이 없다.
내가 생각하기로 뭔가 알만한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는데, 도로시의 말이 단호하게 내 생각을 끊었다.
“총대장.”
“뭐?”
“히어로협회의 총대장한테 물을 거야.”
* * *
히어로협회총괄사령부의 장. 혹은 각 히어로 부대를 총괄 지휘하는 총 지휘관.
사령관이자, 총대장이라 불리는 사람.
말하자면, 대한민국 히어로들의 톱이다.
그런 사람에게.
“진짜야? 이거 알아보겠다고 총대장을 찔러보자고? 아니, 그 사람이면 안 다는 보장은 있고?”
“거기 밖엔 짚이는 곳이 없어. 그리고 솔직히 생각해서, 굉장히 감이 안 좋거든? 이거 그냥 가지고 있다간 큰일 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어. 과학자로서의 감이야, 이건.”
“......위험한 거야?”
“나도 모르지만, 만약 이 내용물이 반물질 폭탄 같은 거라면 이 정도 크기로도 차르 봄버쯤 되는 위력이 나와.”
“위험한 거야?”
“아시아를 절반쯤 날려 먹고도 남을걸.”
위험하네. 그냥 바다 밑바닥에 던져버리고 싶다.
“아니, 그런데 왜 히어로의 총대장인데?”
“너, 히어로측의 총대장이 어떤 여자인지 몰라?”
“......이야기는 들었는데.”
나는 자신없이 말했다.
빌런으로서, 당연히 히어로측의 총대장에 대한 얘기는 들은적 있다.
그러나 소문 뿐이고,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본 적이 없다.
듣기로는, 히어로 협회의 총대장은 히어로 중에서도 특히나 이질적이라고 한다.
듣기로는, 히어로 협회의 총대장은 불로불사(不老不死)라 한다.
듣기로는, 히어로 협회의 총대장은 그 아름다움이 나라를 기울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듣기로는, 히어로 협회의 총대장은 필시 인외(人外)의 존재라고 한다.
또 내가 듣기로는, 그 총대장이라는 인간은... 분명....
“―――선녀(仙女).”
도로시가 담담히 내뱉었다.
“나는 그 여자가 선녀라고 들었어. 몇 백, 몇 천 년은 이 땅에서 살아온.”
“.......”
“그 여자라면 이것에 대해서도 알지 않을까? 전혀 모르는 지식이 있더라도 이상할 게 없어. 혹은 그게 신대의 것이라도, 바다 밑의 용궁성 얘기더라도, 하늘 위의 천상궁(天上宮) 얘기일 수도 있지. 그게 뭐가 되든, 걸어볼 가치는 있어.”
“......너, 정말 그 말을 믿는 거야?”
아니, 솔직히 이 나이 먹고 ‘선녀’라는 것을 믿기는 조금 어렵다.
아무리 주변 사람들이 말을 하고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면서 전해져온다 해도, 역시 어떤 각색이 아닌가, 누군가가 의도한 헛소문이 아닌가 생각해버리게 된다.
도로시는 과학자다. 그리고 지극히 현실주의자다.
그러니까 그런 헛소문을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도로시는 그런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내 가슴께를 쿡쿡 찔렀다.
“그치만! 이런 걸! 봐버렸잖아! 불로불사든 천상궁이든 선녀든, 이제는 뭐든 있겠다 싶어. 아니, 뭐라도 있어 줬으면 좋겠어! 연구라도 할 수 있게!”
“어, 음.”
“알겠어? 과학자는 해명하지 못하는 게 있으면 참을 수 없지만, 새로운 발명을 마구 쳐내는 어리석은 인간은 아니야. 오히려 새로운 게 있으면 참지 못하고 오싹오싹해지는 변태들이지! ......후훗, 나만 이러려나?”
에잇, 웃는 것도 귀엽네. 말세야, 말세.
* * *
“그런고로, 다음번 목표는 히어로 총대장으로 삼을 것. 보스한테는 컨펌 받아놨어.”
도로시는 더 이상 할 얘기는 없다는 듯이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문으로 향햇다.
“나 없는 데서 이야기 진행시키지 마...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고... 총대장이라니....”
“아, 보스가 전해달래. 『죽지 마.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거니까』, 라던데.”
“크윽...! 왜 쓸데없이 감동시키는 건데 그 여자는...!”
“그럼 잘 부탁해~ 그렇지, 라헤라도 탈탈 털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대장 정도면 총대장을 직접 볼 일도 있었을 거 아니야. 나머진 알아서 잘 해봐~ 나도 돌아가서 ‘이거’가지고 좀 더 조사해볼게~.”
타악―
그 말을 끝으로, 도로시는 미련 없이 문을 닫고 떠나갔다.
정말이지 첩첩산중이다.
겨우겨우 7번대를 세뇌하고, 4번대를 어찌어찌 함락하고, 이어서 우릴 노린 아이우스를 반대로 깔아눕히고 나니, 이제는 적진의 총대장을 노리게 되었다.
매번 도로시의 세뇌도구로 아슬아슬하게 넘겼을 뿐이지, 지금의 나는 거의 평범한 인간이다.
별자리는 여전히 응답이 없고, 마력은 보충도 안 되고, 히어로들에게 섹스를 통해 긁어모으는 마력도 실전에 써먹긴 영 애매하다.
그런 인간이, 저 무시무시한 집단의 총대장에게 싸움을 걸라니.
............
.................................하아.
“내 인생이 이렇지 뭐.”
나는 한숨과 함께, 손에 들고 있던 마사지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부우웅―하고 진동하기 시작한다.
“우웁... 웁... 후읍....”
“미안, 라헤. 기다렸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고문실이다. 갑자기 도로시가 찾아오는 바람에 하던 일을 멈췄지만, 이제 마저 해야겠지.
“후웁... 우우웁....”
눈 앞에 있는 것은 라헤.
매끄런 상아색 머리가 인상적인, 늠름한 7번대의 대장이 지금 치과에서 볼 법한 눕히는 의자에 눕혀져, 손 발을 뒤로 한 채 구속되어 있다.
몸을 가리는 옷은 전부 벗겨져있지만, 허벅지까지 오는 스타킹과 흰 장갑은 여전히 남아있는 게 묘하게 선정적이다.
다리는 꼴사납게 벌려 사타구니를 훤히 드러내고 있으며, 벌름거리는 음순에서는 애액이 꿀처럼 흘러내렸다.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는데, 도로시가 와버리다니.
“우웁... 훕......!!”
안대에 눈이 가려지고, 입에는 볼개그가 물려져 있다.
귓가에서 전동마사지기를 부우웅- 하고 울려주자, 라헤가 괴롭다는 듯 몸을 떨었다.
시각정보가 차단된 만큼,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게 재미있다.
“라헤, 오늘은 그냥 좀 장난만 칠 생각이었는데, 안 될 것 같네.”
유두에 붙여놓은 로터의 스위치도 다시 올렸다.
푸들푸들 떨리는 탐스런 유방이 참 보기 좋다. 유두는 충혈될 정도로 단단하게 곤두서 있다.
“총대장에 대해 아는 걸 모두 불어줘야겠어. ...그럼 일단, 물어보기 전에 한 시간만 더 이대로 괴롭힐게? 제대로 대답 안 하면 한시간씩 늘리는 거야. 딱 좋지?”
싫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라헤.
나는 그런 라헤의 제스처를 무시하고, 실실 웃으며 그녀의 보지에 마사지기를 가까이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