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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3화 〉#60 히어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5) (243/271)



〈 243화 〉#60 히어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5)

“Fuck! 그게 무슨 말이죠?!”


클럽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대관절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직 제대로 된 배신이라고 할 만한  아무것도 안 했다. 세뇌가 풀려가고는 있지만, 그것도 결코 티를 낸 적이 없었을 텐데...!

‘아니... 어제 참모랑 만났었죠... 혹시――’

아차 싶어 슬쩍 참모를 쳐다봤더니, 반짝이는 은발의 그녀가 생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은하수 같은 은발머리의 청초한 분위기의 여성이지만, 그 속에는 문어가 먹물을 쭉쭉 짜놓은 듯 시커먼 덩어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이!

알아챘구나!

‘...아니, 아니야.  인간의 수법은  알고 있어요.’

언뜻 보면 뭐든 알고 있는 것처럼 굴지만, 알고 보면 속은 허당일 때도 많았다.

지금도 조금 심증이 생겼다는 이유로 떠보려는 게 분명하다.


마치 다 안다는 듯이 너무도 당당하게 구니까, 속아 넘어간 이쪽이 괜스레 지레짐작하며 마구마구 틈을 보이는 것이다.

‘즉, 끝까지 제가 세뇌당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 괜찮아요.’


“클럽, 클럽?”


“아, 라헤 대장....”


“어쩌다보니 클럽의 이름이 의제로 나와버렸군요.”

“......으.”


라헤가 담담하게 말했다. 책망하는 것도 아니고, 믿지 못하겠다는 것도 아닌 목소리 톤.

라헤는 【천칭자리】답게 어디까지나 공정한 분위기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클럽이 배신 같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장인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회의는 단순히 확인을 위한 것...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죄가 없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니 클럽은 가슴이 따끔거리는  같았다.


어쩌지, 실시간으로 배신을 저지르려 하고 있는데요~.


‘그, 그치만, 그치만...!’

“전 결백해요! 라헤 대장!  절대로 배신 같은 짓은 하지 않습니다! 진심이에요!”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어비스】는 빌런조직이니까, 히어로인 자신이 이 빌런조직한테 무슨 짓을 하든 배신이란 행위가 되지 않는다. 않을 것이다.

“워워, 알겠어. 우리도 딱히 마녀재판 같은 걸 하려는 건 아니니까.”


“13호...!”

“사령관이라고 부르도록. 자, 그러면 의자를 가지고 가운데에 서주실까?”

이곳 회의실의 책상은 커다란 U자 형태로 되어있다. 끝이 살짝 안쪽으로 구부러져서, 조금만 더 가면 O자가 되는 느낌. 중앙부는 비어있다.


그리고 클럽은 그 중앙부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두 손은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니 허전하네.’

“자, 그러면 클럽의 배신 여부에 관한 심문을 시작하도록 하지. 참모...가 아니라, 부관. 일단 공문의 낭독을.”


“예, 13...사령관님.”


사령관. 부관.


아무래도 클럽을 제외한 모두에겐 그런 신분으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다.

썩을 놈들이...!

클럽은 입술 끝을 잘근잘근 깨물며 노려봤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월 ■■일, 본 의제는 최근 히어로 클럽 당사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히어로와는 그룹을 달리한 모임에서――”

반짝이는 은발의 참모는,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낭랑한 목소리로  앞의 원고의 낭독을 개시했다.


클럽은 불안한 눈초리로,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극히 진중한 눈으로 낭독하는 참모를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13호는 어디서 꺼낸 건지 팝콘을 올려놓고 와작와작 씹고 있고.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해서 조사에 착수한 결과, 아무래도 히어로 클럽에게는 공문서 위조 등 명백한 배신 행위가....”


“Fucking Shit! 이의 있습니다! 말도 안 돼요!”

클럽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당장에라도 참모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그녀를 압박하는 라헤의 날카로운 시선에 “큭...!” 하고 입을  다문 채 다시 의자에 앉았다.

“이의는 조금 뒤에 받겠습니다... 그럼 낭독을 계속할까요?”

“아니, 공문 낭독은 충분한 것 같네. 자료는 다들 가지고 있지? 좋아. 그럼 본인도 아니라고 하니 심문을 시작해볼까?”

13호는 손가락에 묻은 기름기를 낼름 핥더니, 여전히 책상에 올려놓았던 다리를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눈으로 클럽을 노려봤다.


‘읏...!’

13호는 허당이고, 쓰레기고, 허접하고, 못 미덥고, 오물 덩어리다――이게 클럽의 평가였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고, 13호는 본래 어느 히어로도 감당하지 못하던 최강최악의 빌런이었던 만큼 때때로 이루 말할 수 없는 박력을 보일 때가 있었다.

어쩌면 바로 지금도 그렇지 않을까.

13호의 시선을 받으니, 클럽은  몸이 뻣뻣하게 굳고 긴장이되었다. 식은땀이 또르륵 흘러내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껴졌다.


‘Fuck... 아냐... 기백에 속지마...!’

자신은 결백하다. 그걸 보이지 않으면  된다.


물론, 배신에 대해서는... 결백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말 배신했냐고 물으면 어쩌지?’

거짓말은 해선 안 된다.


거짓말은 용서 못할 죄다.

거짓말을 하면 불행해진다.


그러니... 자신은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냥 묻는 거면 어떻게 얼버무리면 돼. 7번대를 배신한 게 아니면 나는 배신한 게 아니니까... 하지만 세뇌에 관해 묻는다거나 하면... 그땐 큰일인데....’

그때는 정말 숨김 없이 전부 말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을 넘기려면.


‘가능한 질문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해야 돼요... 그런 질문을 하는  쓸데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철저히...!’


클럽은 눈을 바로 뜨고 13호를 마주 바라봤다.

괜찮다. 할 수 있다.


이 작은 어깨에 7번대의 미래가 걸려있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자, 오시죠... 뭐든 질문 해보시든가요...!’

클럽은 두근두근 하며 13호의 질문을 기다렸다. 꼴깍, 목울대를 귀엽게 울리며 침을 삼킨다.

“그럼, 질문하겠습니다. 7번대의 히어로 클럽.”

깍지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던 13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 가슴 둘레는 몇이지?”


오, 신이시여.

제발 저놈의 정수리 위에 토르의 쇠망치를 콰광 떨어뜨려주옵소서.


* * *




“장난해요?! 누가 대답할  같아요?!”

“흠... 피의자가 발언을 거부하는  이 경우는 어떻게 하지, 라헤 대장?”

“묵비권은 행사할 수 없습니다. 【지휘부】에 도움을 받아 심문계 히어로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고문으로 입을 열게 만들어야합니다.”

“저런, 부하인데 고문을 하겠다고?”

“정의를 위해서라면... 가슴이 아프지만... 저도 같은 고문을 당하는 것으로....”


“으아아아아~~~! 안 돼요! Fuck! 그만! 알겠어요! 말할게요! 말하면 되잖아요!”


라헤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질문에 거부하는 건 안  것 같았다.


클럽은 원망하는 눈으로 13호를 노려봤다.

...어쩔  없다. 말하는 수 밖에.


가슴사이즈, 가슴사이즈.


‘Fuck! 젠장! 그딴걸 왜 물어보는 건데요?! 빌런이란 놈들은 사람의 마음이 없는 건가요! 이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 일인데!’


거짓말...을 해버린다면.


클럽은 그 생각은 바로 접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안 돼요.’


거짓말은 용서 못  죄다. 해선 안 된다.


늘 『결백하고 정직하며 거짓 없이 진실되게』.


맞아. 그래야만 한다.


그러니까....

클럽은 머뭇거리며 말했다.

“......센티.”


“응? 뭐라고?”

“으... ■■센티... 라고요... 제 가슴둘레...!”

“브라사이즈는?”

“................................”


“브라사이즈는?”


“.......A...AA.”

“맙소사, 트리플 A?!! 그게 가슴이야?!”

“......!!!!!”

클럽은 가슴을 가리듯 손을 올린 채, 13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근소하게 AA에 가깝거든요?! AA브래지어 차도 괜찮거든요?! Fuck! Pervert! 죽어버려!”

사람도 아닌 인간! 섬세함이 결여되어 있어! 죽어버려!

거기다 자신을 바라보는 같은 7번대 동료들의 뜨뜻 미지근한 시선이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으으으으...!’

“그래서 이게 제가 배신했다는 얘기랑 뭔 상관인데요!”


클럽이 화를 내며 말했다.


클럽의 정신력은 이 시점에서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어진 추격타는, 클럽을 바닥 아래로 쑤셔 박고 나락까지 떨어뜨렸다.


“그러면 이제 제가 발언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손에  종이를 탁탁 두드린 건, 은발머리를 반짝이는 참모.


참모는 소녀틱한 가느다란 목소리로, 낭랑하게 발언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히어로 네트워크에 기록된 히어로 클럽의 데이터입니다. 당연히 신체의 각종 사이즈에 대한 정보도 들어가 있죠.”


“......!!”

클럽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손 끝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온 몸의 땀샘이 열리고, 식은땀이 왈칵 쏟아져나오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그건. 그걸 어떻게.

어느샌가 클럽의 입은, 자연스럽게 애원의 말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  돼요... 안 돼... 그건...!”

안 된다. 저건 막아야 한다. 그것만은, 절대로 알려선 안 된다.


그러나 참모는 생긋 웃어주더니, 이내 얼굴을 냉정하게 굳히고 말을 이었다.

“이곳에 기록된 데이터에 의하면 히어로 클럽의 가슴둘레  사이즈는 ●●센티.... 조금 전 말씀하신 것보다 2cm가 크죠.... 거기다 확실하게 AA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머리를 끌어안고 덜덜 떠는 클럽.

그런 클럽을 몰아넣듯, 쾅! 하고 거세게 책상을 내리치는 참모.


“도대체 어째서, 지금 말한 가슴 둘레와 기록에 남아있는 가슴 둘레가 2cm나 차이가 나는 겁니까! 피의자는 발언해주시기 바랍니다!!!”

“으... 아....”

“그 사이에 살이 빠져서 가슴이 작아졌단 얘기는 하지 마십시오!  몇 달간 가슴사이즈는 항상 똑같았으며, 심지어 제가 가지고 온 자료는 불과 2주 전에 측정한 사이즈입니다! 자! 변명할 말이 있습니까?!”


“아, 아아아아아아......!”

클럽은 몸을 웅크린 채 신음했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들켜버렸다. 최대최악의 비밀을 들켜버렸다!

7번대의 동료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소곤거리는  느껴졌다. 뜨뜻미지근해졌던 시선이, 차츰 태양과도 같이 뜨뜻해져버리는 게 느껴졌다.

아아아아... 죽고 싶어... 수치로 죽어버리고 싶어... 이대로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고 빵! 하고 쏴서 뇌수를 흩날리며 죽어버리고 싶어어......!


“자, 히어로 클럽! 당신은 히어로 네트워크라는 중요한 공문서에 거짓된 내용을 기입했습니다. 그것도 가슴사이즈를 속인다는 천인공노할 짓을요!”

“뭐, 나 같은 고수들은  눈에 가슴사이즈를 알아보지만 말이지.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어떤가요, 히어로 클럽! 당신의 얄팍한 속임수는 초고수 변태이신 13호님... 실례, 사령관님의 눈썰미 앞에 어차피 아무 의미도 없건만. 그런데도 공문서를 위조하며 가까스로 심신의 안정을 꾀했던, 그 뻔뻔한 심정을 묻고 싶군요!”


클럽은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입술을 꽈악 깨문다.


그렇다. 자신은 분명 가슴사이즈를 속이고 있었다.


거짓말은 천인공노할 짓인데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만큼, AA를 향한 유혹이, 2cm의 유혹이 너무 컸다.

 거짓이 밝혀진 지금, 클럽은 그야말로 알몸으로 벗겨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맞...습니다.”


클럽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인정합니다. 제가 가슴사이즈를 속이고 있었다는 것은.”

“후, 보십시오. 피의자가 인정했습니다. 더 이상 회의를 할 필요도――”

“그러나!”


클럽은 고개를 확 들었다. 그 눈에는 불꽃이라도 타오를  같은 의지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단순히 제 에고일 뿐, 배신이라는 행위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검토해주시기 바랍니다!”


“.......”


 기백에, 참모가 입을 다물었다.


* * *





클럽은  포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7번대를 위한 이 의지만큼은, 흔들리지 않는다.


최대최악의 비밀인 가슴사이즈에 대해서 들켜버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제부터 커질 것인데. 내년쯤이면 적어도 라헤 대장만큼은 빵빵하게 부풀 가슴이다.

그러니... 지금 이것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재검토를 바랍니다. 저는 배신 행위에 관련이 없습니다.”

클럽은 독한 마음으로 그렇게 선언했다.

다 몰아세웠다며 기고만장해하던 참모도, 얼굴을 굳히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잠시 찾아온 침묵.

그리고 침묵을 깬 것은, 13호였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농담?!”


“그래. 가슴사이즈 가지고 배신이니 뭐니 하는 건 웃기잖아.”

“......?!”


웃겨? 웃기냐고! 이게 웃기냐! 내 가슴 비웃냐고~~~!!!


부들부들 떨며 13호를 노려보는 클럽.


그런 클럽의 시선을 13호는 태연하게 넘겼다.

“그러면 심문을 계속해볼까. ...클럽이 배신자인지 아닌지, 확실하게 흑백을 가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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